뿌린 대로 거두리

세가는 일본에서 결코 시장의 선두주자로 나서지 못했다. 미국 지사에서 제시한 전략적 방향을 거부한 일본 본사는 그 댓가를 톡톡히 치르게 되었다. 새턴의 하드웨어 문제와 아케이드 게임에 너무 의존하는 경향에 대해 미국 지사에서는 지속적인 우려의 목소리를 냈으나 그들은 전혀 이에 귀기울일 생각이 없었다. 세가는 이러한 태도로 인해 여러 번의 실패를 맛보게 되지만, 그래도 소가 뒷걸음치다 쥐를 잡는 경우도 생기게 마련이다.

새턴은 일본에서 1994년 11월 22일에 발매되었다. (32X의 일본 발매는 그로부터 일주일 뒤였다.) 초도물량 20만대는 상점에 진열되자마자 매진되었다. 이러한 인기의 주요 원인은 (칼린스키의 견해와는 반대로) 바로 아케이드 게임인 버추어 파이터였다.


1980년대 중반부터 세가는 아케이드 기술에 있어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16비트 기술과 하드웨어 스케일링을 먼저 도입한데다가 이를 지속적으로 개량, 발전시켜 경쟁자들보다 상당히 앞서 있었던 것이다. 1990년대 초반에서 중반에 걸쳐, 세가는 3D의 도입이라는 또 한번의 기술적 도약을 이룩해낸다. 세가의 모델 1 하드웨어는 버추어 파이터, 버추어 레이싱, 스타워즈 아케이드 등 명작들을 낳았으며 1993년 모델 2 기반의 데이토나 USA가 공개 테스트를 실시하였을 때, 이 게임이 보여준 놀라운 속도감과 필터링과 텍스쳐 매핑이 적용된 폴리곤이 보여주는 화려한 화면은 그야말로 다른 여느 게임들을 압도하는 것이었다.  1994년 당시 세가의 게임을 보고 지나가던 발길을 멈추지 않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정도였다.


물론, 새턴은 이러한 모델 2의 성공을 가능하게 했던 기술적인 혁명과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기기였다. 하지만 이러니 저러니해도 결국 세가의 아케이드 게임이 가정용으로 이식될 방법은 단 하나, 새턴을 통해서였다. 아케이드 이식작들은 새턴 게임 리스트의 중추를 이루었으며 기기의 초기 성공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물론 일본에서의 이야기이다. 미국에서는 아케이드가 여전히 사양길을 걷고 있었기 때문에, 버추어 파이터가 가질 수 있는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작을 수 밖에 없었다.

세가는 1995년 5월 처음으로 열린 Electronics Entertainment Expo(E3)에서 새턴을 즉시 미국에 발매하겠다고 발표하여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새턴의 미국 발매는 너무도 급하게 추진되는 것이었으나 일본 본사에서 제네시스의 조기 퇴진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불행하게도, 세가의 새턴 발매에 대한 깜짝 뉴스는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오브 아메리카의 CEO 스티브 레이스 (Steve Race)의 짧고 명료한 또 하나의 발표로 인해 그 화제성을 대부분 잃고 말았다. 스티브 레이스는 연단에 올라 단 한 마디를 기자들에게 던졌다. "299 달러." 기자들의 웅성거림과 함께 모든 미디어의 관심이 소니에게로 옮겨가 버리는 순간이었다.

새턴의 미국 발매는 순탄치 않았다. 첫 해에 준비된 게임이 너무 적었던 것이다. 몇몇 아케이드 이식작과 함께 팬저 드라군(Panzer Dragoon)이 주목을 받았고, 클락워크 나이트나 버그!가 '마스코트' 게임의 빈자리를 채워주긴 했지만, 많은 이들이 도대체 언제쯤이면 소닉을 볼 수 있는지 궁금해했다. 길고 악몽같은, 그리고 결과적으로 실패로 끝난 새턴용 소닉 개발 프로젝트는 그 자체로도 하나의 긴 이야기가 되겠지만, 결론만 말하자면 소닉은 새턴으로 등장조차 하지 못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새턴의 발매 일정을 미처 통보받지 못한 게임 소매점들은 항의하는 뜻으로 세가 게임의 유통을 거부하기도 했다.

새턴과 32X를 둘러싼 부정적인 이미지가 널리 퍼져가는 가운데, 세가는 새턴의 복잡다난한 아키텍처를 헤집고 게임을 개발해야 하는 개발사들을 독려할 그 어떤 인센티브도 제시하지 않았다. 세가의 가장 강력한 지원군이었던 EA는 3DO를 강력하게 밀다가 나중에는 소니 진영으로 넘어가게 되어 세가는 한 때 미국 시장을 지배할 수 있었던 가장 강력한 무기였던 스포츠 게임 라인업을 잃고 말았다.

일본 본사의 의사 결정, 특히 새턴을 둘러싼 불협화음에 진절머리가 난 톰 칼린스키는 1996년 세가에 사표를 던지게 된다. 그의 후임자로는 소니에서 스카웃되어 COO로 일하던 버나드 스톨러(Bernard Stolar)가 지목되었다. 그는 소니에서 일할 당시, EA를 스포치 게임 관련 파트너로 포섭하고 모탈 컴벳 3를 기간 한정 독점으로 끌어오는 등 플레이스테이션 서드파티 확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었다.

스톨러는 칼린스키와는 매우 다른 스타일의 경영자였다. 현실적이며 즉흥적이며, 사람들의 호감을 얻기 보다는 일을 성사시키는 데에 더 중점을 두는 리더였다. 그는 그의 업무 상 필요한 협상과 설득의 어려움을 즐겼으며 이러한 협상에서 우위를 가져가는 능력을 높이 평가하는 인물이었다. 스톨러는 소니에서 세가로 이직을 결심한 순간을 다음과 같이 기억한다.

"나카야마 하야오씨와 함께 일하기로 했던 건 그가 게임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주 깊이 관여할 수 있는 새로운 하드웨어의 개발과 새로운 사람들로 구성된 팀, 그리고 세가의 전반적인 구조조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죠. 이러한 가능성이 제게는 상당한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 버니 스톨러


스톨러는 처음부터 새턴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새턴 그 자체의 개발과 이후의 마케팅 과정에서 세가는 너무도 많은 치명적 실수를 저질렀다. 그에게 있어 새턴은 그 수명이 다할 때까지만 적당히 챙겨주면 될 존재일 뿐이었다. 지금도 그의 새턴에 대한 생각은 변한 바가 없다. "난 새턴이 실패작이라고 생각했죠. 게임들은 멋졌지만, 하드웨어는 정말 엉망이었어요."

높은 개발난이도와 서드파티 지원의 부재로 인해, 스톨러는 게임소프트의 양보다는 질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새턴의 높은 가격이 정당성을 가지려면 지속적으로 수준 높은 게임들이 공급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를 위해 일본에서 나온 게임 중 미국 시장에서 어필하기 힘든 것들에 대해서 아예 북미 발매를 보류해 버리는 전략을 취했다. 새턴이 미국보다 일본에서 선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전략은 많은 논란을 낳았다. 소니에서 근무하는 동안에도 스톨러는 현지화와 RPG를 강력히 반대했었는데, 이 역시 차세대 게임기의 성능에 대한 강력한 이미지를 심어주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 근거한 것이었다.

세가는 수준 높은 게임으로 새턴을 지탱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이러한 부분에서만은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는데, 지금도 세가의 팬들은 세가가 내놓은 팬저 드라군 사가, 샤이닝 포스 III, 가이언 히어로즈, 나이츠 인투 드림즈와 같은 명작 게임들을 잊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사쿠라 대전 시리즈가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북미 지역으로의 이식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새로운 벡터맨과 토잼&얼 타이틀에 대한 소문도 돌았지만 현실화되진 않았다.

스즈키 유는 침체에 빠진 새턴을 구할 '킬러 타이틀'에 대한 책임을 맡아 버추어 파이터의 인기를 활용한 홍콩 영화 풍의 거대한 복수극을 기획한다. 초기에는 버추어 파이터를 바탕으로 구성되던 게임은 게임 내 배틀 시스템을 제외한 버추어 파이터와의 모든 연계성을 지우고 셴무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셴무는 그러나 새턴을 구할 기회조차 없었다. 새턴의 발매에서 고작 2년이 지난 1997년 E3에서 스톨러는 보통 CEO로서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발표를 해버리고 만 것이다. "새턴은 우리의 미래가 아니다."라는 그의 발언은 새턴의 즉시 퇴출을 의미하지는 않았으나 당시 차세대 전쟁의 끝을 고하는 것이었다. 스톨러는 더 이상 게이머들에게 거짓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지금도 이 발언에 후회는 없다고 한다. "(새턴으로 인한) 회사의 출혈은 너무 심했고, 저는 새로운 팀을 구성하고 싶었습니다." 많은 팬들이 스톨러의 이러한 결정에 반발해 그를 악의 화신처럼 몰아붙이지만, 그에게는 보다 깊은 뜻이 있었다. 세가로서는 다음 전쟁에 대비하여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았고, 이를 위해서는 전열을 정비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가 바라본 것은 드림캐스트를 통한 세가의 부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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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트레비스 파스 / 번역: 페이비안 / 원문게시일: 2009.4.21 / 출처: IGN Retro

* IGN.com으로부터 전문 번역 허가를 받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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