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Leif Ericson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선구자들과 관련하여 이러한 일화는 무수히 많다. 세상을 바꾼 혁신을 이룬 사람 뒤에는 타이밍과 운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밖에 없는 불확정 요소들이 존재하며, 이는 비디오 게임 산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랄프 베어, 놀란 부쉬넬, 미야모토 시게루 같은 추앙받는 영웅들은 물론 그 명성에 걸맞는 업적을 이룬 것이 사실이지만, 그에 못지 않은 많은 위대한 선구자들이 세상이 주목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기에 등장하여 그 담대한 발견이 그저 시간에 묻혀버리는 일도 있는 것이다.

IGN Retro에서는 게임의 한계에 도전하여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으나 이에 마땅한 세상의 주목을 받지 못한 선구자들을 기리고자 하는 취지에서 불운의 탐험가의 이름을 딴 The Leif Ericson Award를 제정하고자 한다. 이들의 놀라운 혁신은 모방작들을 낳거나 새로운 장르를 성립하는 등의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지 못하고 조용히 사라져 갔지만 그 의의 만큼은 역사에 남을 만 하기 때문이다.

Pong으로 시작하는 비디오 게임의 역사 이전에 한 게임이 있었으니...

만약 비디오 게임계에서 Leif Ericson과 직접 비유될 수 있는 인물을 꼽으라면 윌리엄 히긴보덤 (William Higinbotham)이 가장 적격일 것이다. 그는 1958년에 당시 엄청나게 고가였던 컴퓨터 장비를 활용하여 오픈하우스 이벤트에 참석하는 일반 대중들을 즐겁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다가 이전의 그 무엇과도 다른 새로운 것을 창조해냈다.

두 명의 플레이어가 각각 패들 콘트롤러를 사용하는 테니스 시뮬레이션은 이전까지 컴퓨터를 활용하여 만들어진 게임들인 틱-택-토 또는 님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이러한 게임들은 고전적인 게임에 AI라는 새로운 게임 상대를 만들어내는 데 그쳤지만, 그의 게임은 새로운 경험 자체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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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긴보덤의 '테니스 포 투'(Tennis for Two)는 그래픽을 활용한 표현, 리얼타임 게임플레이, 물리 법칙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포함한 많은 면에서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진 게임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이후에 등장하여 비디오게임의 상용화는 물론 비디오게임을 주류 문화로 편입시키는 역할을 했던 기념비적인 게임들인 랄프 베어(Ralph Baer)의 오딧세이 및 아타리 사의 히트 게임 퐁(Pong)은 기본적으로 테니스 포 투와 매우 유사한 개념을 가진 게임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히긴보덤의 머리 속에는 이 게임을 가지고 사업을 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는 그의 발명에 대한 특허를 얻지도 않았으며 게임을 치워버리기 전까지 대중에게 단 두 차례만 공개했을 뿐이었다. 손에 꼽을 몇 사람 정도만 테니스 포 투를 실제로 플레이해볼 수 있었으며 따라서 향후 게임 개발자들에게 미친 직접적 영향 역시 미미하다.

그의 발명은 수 년이 지난 후 오딧세이와 관련된 특허를 무효화시키기 위한 게임 회사들의 시도들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랄프 베어 역시 이러한 소송 이전에는 테니스 포 투에 대해 전혀 들어본 바가 없었으며, 따라서 그의 특허를 무효화시키려는 게임 회사들의 노력 또한 수포로 돌아갔다. 오딧세이는 현대 비디오게임의 가장 직접적인 조상이 되었으며 게임산업 사상 가장 돈을 많이 벌어다주는 특허가 되었다. 반면 윌리엄 히긴보덤의 발명은 그에게 한 푼도 가져다주지 않았다.


출처: IGN Ret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