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특수부대, 기분 나쁜 오래된 저택, 사방에서 다가오는 좀비들. 호러 장르의 전형을 골고루 갖춘 바이오 하자드는 B급 공포 영화에 가장 가깝게 다가간 비디오게임 시리즈이다. 유치한 제목에 서투른 대사에서부터, 모두가 잠든 한밤 중 불끄고 즐기다가 콘트롤러를 마치 애인 팔처럼 움켜쥐거나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게 만드는 것까지 호러 장르의 모든 기본을 충실히 갖춘 바이오 하자드의 역사를 살펴보자.


바이오 하자드는 그 자체로 서바이벌 호러라는 장르를 구축한 게임이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게임에서의 잔인한 표현은 심슨즈에 나오는 ‘이치 & 스크래치’ 스타일의 질 나쁜 농담 재료 정도로 밖에 인식되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캡콤이 32비트 게임기 시대를 노리고 만들어 낸 블록버스터였던 바이오 하자드는 선혈과 폭력을 그 원점인 공포의 영역으로 회귀시켰고, 이후 게임 역사를 바꾸어 놓았다. 2009년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강력한 프랜차이즈로 남아 있는 바이오 하자드는 그 제목처럼 게임계 전반을 확실하게 전염시켰다.

공포의 시작

16비트 게임기 시대가 저물면서, 비디오게임에는 두 가지 큰 혁신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나는 3D로의 진화였으며 다른 하나는 CD-ROM으로 인한 저장 용량의 대폭적인 증가였다. 차세대 게임기들은 이전 게임기들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 될 예정이었다. 게임 디자이너 미카미 신지는 16비트 게임기 시절 슈퍼패미콤용 디즈니 게임들을 만들어 왔지만, 그의 다음 프로젝트는 완전히 다른 성격이 될 예정이었다. 3D와 방대한 저장 공간을 활용한, 차세대 게임기가 아니면 불가능한 게임을 완전히 바닥부터 만들어 내는 것, 다시 말해 차세대 게임을 대표할 수 있는 기념비적 작품을 만드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미카미 신지가 그의 프로젝트를 시작했던 것은 1994년 초반이었으며, 당시만 해도 차세대 게임기에 대한 내용이 아직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세가는 여러 가지 새로운 게임기에 대한 개발 컨셉을 검토 중에 있었고, 소니의 성공 여부 역시 의심스러운 분위기였다. 캡콤은 미카미에게 새로운 컨셉을 만들어 내는 데 6개월 정도의 시간을 주었다. 그동안 만들던 디즈니 게임들에 염증을 느낀 그는 좀 더 성인 지향의 게임을 만드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저는 정말 무서운 게임을 만들고 싶었어요.” 미카미는 1996년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힌다. “유령이나 뭐 이런 거 말고, 실제로 자신에게 다가오거나 공격하는 데에서 공포감을 느낄 그런 괴물들이 나오는 게임 말이죠.” 비디오게임에도 호러 장르는 오래 전부터 있었지만, 이러한 공포감을 조성하는 데 성공한 게임은 없었고, 대부분 액션에 너무 비중이 크게 맞추어져 있었다. 미카미는 조지 로메로의 리빙 데드 영화들, 에일리언, 죠스, 그리고 캡콤의 RPG 게임인 스위트 홈 등에서 새로운 기획에 대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비록 입 밖에 내진 않았어도 아마도 가장 큰 영감을 주었던 것은 ‘어둠 속에 나홀로’라는 프랑스 게임일 것이다. 이 명작 게임으로부터 그는 게임플레이 전반에 대한 바탕을 구성할 수 있었다. 프리랜더링된 배경과 실시간 3D 캐릭터가 주는 역동성은 새로운 하드웨어의 성능을 어필할 수 있었으며, 어드밴처와 액션의 적절한 조합은 좀비와의 사투에서 살아남는 시나리오와 딱 맞아 떨어졌다. 판타지적 요소와 초현실적 분위기는 캡콤의 임원들이 받아들이기에는 좀 적절하지 않았을지 몰라도, 어둠 속에 나홀로가 바이오 하자드에 미친 영향은 너무도 명백하다. 에드 셈라드가 미카미와의 인터뷰에서 바이오 하자드가 어둠 속에 나홀로와 다른 점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미카미의 대답은 아주 단순명료했다. “바이오 하자드의 그래픽은 환상적이죠.”


바이오 하자드의 개발이 끝나갈 무렵, 개발팀의 인원은 40명이 넘게 늘어나 있었고, 캡콤은 바이오 하자드를 차세대 게임기 시대에 캡콤을 대표할 게임으로 포지셔닝하였다. 캡콤이 바이오 하자드를 세상에 내놓을 당시, 메탈 기어라는 이름은 아직 패미콤 명작 게임으로만 기억되고 있었고, 사람들은 닌텐도의 울트라 64로 나올 다음 파이날 판타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이오 하자드의 프리랜더링된 드라마틱한 배경과 폴리곤 캐릭터의 조합이 준 강렬한 인상은 스퀘어소프트가 소니의 하드웨어로 옮겨가는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있다.

1996년 3월, 몇 개월의 발매 연기를 거쳐 호러 게임의 명작, 바이오 하자드가 드디어 발매되었다. 플레이스테이션은 미국에서 발매된 지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이었으며, 마땅한 킬러 타이틀도 부재한 상황이었다. 바이오 하자드가 플레이스테이션 독점 게임으로 남으리라는 보장은 없었지만, 새턴으로 등장하기 전까지는 플레이스테이션의 판매량을 견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다음 해에 이르기까지, 바이오 하자드의 판매량은 백만장을 넘겼으며 순식간에 스트리트 파이터와 양대 산맥을 이루는 캡콤의 간판 블록버스터급 게임이 되었다.


바이오 하자드는 게임 매체들의 호평과 시장에서의 판매량 두 가지 모두 성공한 케이스였다. 어둠 속에 나홀로와 종종 비교되었지만, 이러한 비교에서조차 환상적인 그래픽과 어둡고 강렬한 분위기를 통해 바이오 하자드는 나름의 아이덴티티를 얻었다는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높은 난이도, 의도적으로 색깔이 억제된 ‘평범한’ 캐릭터, 너무하다 싶을 정도의 체력과 총알 제한 등은 그 동안의 게임 디자인 상식을 파괴하는 혁신적인 시도였다. 대부분의 액션 게임이 마초적이고 파워를 과시하는 욕구를 충족시켜주었던 반면, 미카미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 약하고 무력하다는 느낌을 경험하는 것 역시 강렬한 인상을 줄 것이라고 판단했다.

바이오 하자드와 그 이식작, 그리고 디렉터즈 컷을 모두 더하면 그 판매량은 270만 카피에 달한다. 바이오 하자드는 차세대 게임이란 어떠해야 하는가를 정의했으며 모탈 컴뱃의 엽기적 연출 정도로나 사용되었던 게임에서의 폭력성을 공포가 감도는 스토리텔링의 영역으로 녹여내는 데 성공하였다.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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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트레비스 파스 / 번역: 페이비안 / 원문게시일: 2009.3.11 / 출처: IGN Retro

* IGN.com으로부터 전문 번역 허가를 받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