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소니는 플레이스테이션을 발매하면서 게임 업계에 화려하게 데뷔하였으며, 이 사건이 게임 산업 전반에 걸친 파장은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었다. 당시 비디오게임 시장은 닌텐도와 세가가 지배하고 있었고, 이러한 구도는 1985년부터 지속되고 있었다. 십 년에 걸친 이러한 라이벌 관계를 통해 양 사는 다양한 마케팅 슬로건들을 내세웠지만, 이렇듯 활발한 마케팅은 일반적으로 상당히 제한된 의미의 '게이머'라는 타겟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소니는 이보다 더 큰 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비디오게임이 단순한 틈새 시장이 아니라 영화와 마찬가지로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구성하는 하나의 거대한 기둥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2000년 발매되어 전 세계에서 대 히트를 기록한 플레이스테이션 2를 통해 소니의 이러한 비전은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2006년 발매된 플레이스테이션 3과 함께 소니는 다시 한 번 거대한 도약을 꿈꾸고 있다. PS3의 성공 여부는 지금도 여전히 불투명하며, 최근의 경제 위기 또한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팬들에게 있어 PS3는 킬존 2와 같은 환상적인 게임은 물론, ‘카지노 로얄’과 같은 멋진 영화를 최고의 화질로 즐기게 해주는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기기로 추앙받고 있다.

자, 그럼 이 모든 것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게임 산업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한 번 상상해보자. 1995년에 플레이스테이션은 발매되지 않았고, 소니는 지금까지도 TV와 MP3 플레이어만 (그리고 캠코더와 카메라, PC만) 만들고 있었더라면? 게임 업계를 통째로 흔들었던 소니의 진입이 없었다면 현재 우리가 즐기고 있는 게임들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이러한 상상은 단순히 재미를 위한 것만은 아니다. 올드게이머들 중 일부는 비디오게임 업계에 대한 소니의 ‘침범’을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단순한 비난에 앞서, 소니의 등장이 게임 산업, 그리고 현재 우리가 즐기는 게임들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그들 역시 정확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다른 가정 하의 1995년

1995년 당시, 비디오게임 업계는 전체적으로 볼 때 그다지 훌륭한 모습은 아니었다. 슈퍼패미콤은 슈퍼 마리오와 돈키콩 컨츄리 같은 프랜차이즈로 여전히 잘나가고 있었으며 닌텐도 64의 등장은 아직은 먼 얘기였다. 반면 세가의 메가드라이브는 32X와 세가 CD의 실패로 급격한 하향세를 타고 있었으며, 세가 새턴의 갑작스러운 발매는 미숙한 준비로 인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게임 판매점은 한정된 본체 수량에 당황했고 개발자들은 충분히 다듬어지지 않은 게임들을 세상에 내놓아야만 했으며 게이머들은 궁색한 동시 발매 타이틀 라인업으로는 40만원에 달하는 가격을 지불하고 새턴을 구입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 기계가 비디오게임의 역사를 바꾸었다.


만약 플레이스테이션이 없었더라면 세가는 새턴을 그렇게 일찍 시장에 내놓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원래 계획되었던 9월까지 시간이 주어졌다면 좀 더 다양하고 충실한 게임들과 함께 본체의 물량 역시 충분히 공급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세가의 운명은 플레이스테이션의 위협이 없었다면 좀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정말 그랬을까?

사실 드림캐스트는 새턴이 가진 근본적 문제에 대한 대응 차원으로 나온 콘솔이다. 새턴 자체가 하드웨어적으로 볼 때에는 그다지 완성도가 높은 물건은 아니었다. 많은 개발자들이 코딩에 어려움을 겪었다. 본체를 개발한 세가 정도나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고, 그런 세가조차도 버추어 파이터 2 이후에서나 본체의 성능을 백퍼센트 활용한 게임을 만들 수 있었다. 만약 게이머들에게 새턴 이외에 주어진 선택지가 없었다면, 과연 세가가 드림캐스트를 만들면서 개발자들을 위해 손쉬운 프로그래밍 환경을 구축하는데 그렇게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까? 현명한 기업들은 경쟁을 통해 그들이 가진 최고의 장점을 이끌어낸다. 그런 면에서 세가는 드림캐스트와 같은 훌륭한 하드웨어를 만들기 위해 소니로부터 크게 한방 맞을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당시의 닌텐도를 놓고 보면, 1995년에 이미 닌텐도 64와 관련된 여러 움직임이 있었다. 닌텐도의 N64에 대한 계획은 플레이스테이션의 등장으로 인해 큰 영향을 받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닌텐도는 여전히 복제와 해킹에 대비하여 게임 소프트웨어에 대해 카트리지 형태를 고수했다. 그러나 IGN 플레이스테이션 편집자인 제프 헤인즈는 N64와 닌텐도의 운명을 크게 바꾸었을지도 모르는, 비디오게임 역사에 있어 가장 중대한 순간, 바로 닌텐도가 슈퍼패미콤 용으로 계획했던 CD-ROM 주변기기에 대한 계획을 철회하면서 소니를 내쳐버린 바로 그 사건을 지적한다.

제프 헤인즈 (IGN 플레이스테이션)
: 만약 소니가 게임 업계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면, 몇 가지 중대한 부분에서 게임 업계는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소니와 닌텐도가 공동으로 CD-ROM 포맷 관련 작업을 진행했었기 때문에, 내 생각으로는 세가의 CD-ROM 포맷 게임기인 새턴과 맞붙기 위해 닌텐도 역시 그 때 개발된 기술로 CD-ROM 기반의 차세대기를 시장에 내놓았을지도 모른다. 제규어나 3DO가 헤매고 있었던 그 시절, 소니 기술 기반의 CD-ROM은 닌텐도에게 나중에 N64의 카트리지 기반으로 나와 커다란 히트를 기록했던 바로 그 게임들을 한 단계 더 멋진 게임들로 끌어올릴 수 있는 충분한 위상과 저장 공간을 선사했을 것이다. 골든아이 007, 퍼펙트 다크,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 그리고 슈퍼 마리오 64가 만약 카트리지의 제한된 사이즈에 갇히지 않았었다면 어떤 게임이 되었을지 상상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명작들은 아마 실제로 그랬던 것보다 더 엄청난 인기를 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세가가 고수했던 콘솔 제작사로서의 성공에 대한 희망도 더 빠르게 꺾였을 것이며, 극단적으로는 닌텐도의 화려한 게임 라인업에 밀려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선 세가 CD나 새턴의 전례를 생각하며 드림캐스트의 개발 자체를 완전히 포기해버렸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전개로 비디오 게임 업계는 결국 닌텐도 1인 천하로 이어졌을 것으로 보이지만 이러한 추측은 방금 말했듯 극단적이긴 하다.

파이날 판타지 VII는 어디로?

닌텐도가 차세대 게임기에 카트리지를 고수하고, 소니가 디스크를 선택함으로서 스퀘어는 닌텐도와의 오랜 협력관계를 청산한다는 엄청난 결정을 하게 된다. 스퀘어가 파이날 판타지 VII를 통해 꿈꾸던 거대한 비전에는 그에 걸맞는 충분한 용량이 필요했다. 닌텐도가 카트리지에 집착하자, 스퀘어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스퀘어는 소니 진영으로 넘어갔고 플레이스테이션은 그 즉시 하드코어 게이머들도 관심을 갖는 게임기가 되었다.

만약 소니가 없었다면 파이날 판타지 VII는 어떻게 되었었을까? 닌텐도가 소니와 함께 개발한 슈퍼패미콤용 CD-ROM 주변기기를 그대로 발매했었더라면, 아마도 닌텐도 64도 어떤 형태로든 디스크형 매체를 수용했었을 것이다. 스퀘어는 닌텐도와 협력관계를 계속 유지했을 것이며 파이날 판타지 VII는 초기에 의도했던 대로 닌텐도의 하드웨어에서 돌아가는 게임이 되었을 것이다.

파이날 판타지 VII

만약 슈퍼패미콤용 CD-ROM 주변기기도 없었고 닌텐도 64도 카트리지를 고수했었다면, 스퀘어는 디스크를 사용하는 또 다른 콘솔 메이커와 접촉을 시도했을까? 스퀘어가 파이날 판타지 VII를 가지고 세가와 이야기를 시작했었더라면 어땠을까. 엄청난 파장이 일어났을 것이다. 세가의 강력한 자체 소프트와 튼튼한 서드 파티 개발사들, 거기에 스퀘어의 핵폭탄급 RPG까지 가세한 새턴은 닌텐도가 결코 얕볼 수 없는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마치 세가의 메가 드라이브가 아케이드에서 컨버전된 멋진 게임들과 소닉 더 헤지독으로 16비트 시절 닌텐도의 독주에 제동을 걸었던 것처럼 말이다.

파이날 판타지 VII의 성공과 비디오게임계에 있어 RPG 게임의 중요성이 부각된 그 중심에는 물론 스퀘어라는 걸출한 개발사가 있었다. 그러나 IGN 플레이스테이션 편집자인 리안 클레멘츠가 지적하듯이, RPG라는 장르가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플레이스테이션을 통해 장르 자체가 좀 더 발전하고 부각되도록 의도한 소니의 강력한 지원 사격도 큰 몫을 했던 것이 분명하다.

리안 클레멘츠 (IGN 플레이스테이션): 만약 소니가 플레이스테이션을 통해 비디오게임 산업에 진출하지 않았다면, 이론적으로는 아무도 플레이스테이션을 몰랐을 것이고, 따라서 아무도 아쉬워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플레이스테이션은 수 년간 내가 가장 좋아했던 콘솔이었으며 이제는 비디오게임에 있어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장르가 된 RPG 장르의 발전을 견인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콘솔이기도 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지금의 나는, 소니와 플레이스테이션이 없는 게임 산업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계속...)

글: 레비 부케넌 & IGN 플레이스테이션 팀 / 번역: 페이비안 / 원문게시일: 2009.2.25 / 출처: IGN Retro

* IGN.com으로부터 전문 번역 허가를 받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