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제 게임 이야기를 해보자

영화 라이센스를 바탕으로 한 게임 제작은 결코 만만한 프로젝트가 아니다. 스타워즈나 디즈니 만화를 바탕으로 한 게임들 같은 매우 소수의 작품들은 물론 작품성이나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라이센스 게임들은, 다른 창작자의 비전을 성격이 전혀 다른 매체에 옮기는 어려움에 더해 영화 개봉에 맞추어야 하는 빡빡한 스케줄까지 겹쳐 결국 이름값도 못하는 졸작이 되어 버리곤 하기 일수이다. 터미네이터를 바탕으로 나왔던 다양한 게임들은 이러한 극과 극에 이르는 스펙트럼 전체에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 훌륭한 재미에 더해 게임 역사에 매우 중요한 획을 그은 작품부터 그야말로 쓰레기에 불과한 것까지, 지금부터 터미네이터 게임들에 대해 알아보자.  

터미네이터 라이센스를 활용한 게임은 무려 20개가 넘는데, 이들 중에는 현재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특급 개발사의 시발점이 된 작품부터, 다시 꺼내들 가치조차 없는 게임까지 그 퀄리티가 변화무쌍하다.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숨막히는 액션과 매력적인 공상과학적 설정은 게임으로의 전환에 안성맞춤이었지만, 아무리 T-800이라도 무리한 일정과 역량 없는 개발자를 구원하진 못했던 것이다.


터미네이터 게임들의 성공과 실패는 게임 산업 자체, 그리고 영화 라이센스에 대한 게임 산업의 접근 방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훌륭한 예시라고 할 수 있다. PC 게임 쪽에서 터미네이터 게임 시리즈를 지속적으로 내놓았던 베데스다는 첫번째 작품 이후 이를 기반으로 계속해서 발전된 신작들을 내놓으면서 터미네이터 게임의 확고한 지지층을 확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반면 콘솔 쪽에서는 그저 터미네이터의 이름값이 주는 반짝 효과를 노린 제작사들이 돌려가며 게임을 찍어냈고, 이들은 일단 게임 하나를 팔아먹고 나면 팬들이 터미네이터 게임에 대해 지금, 그리고 앞으로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될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시대를 앞서갔던 명작이 있었으니

제임스 카메론의 오리지널 터미네이터가 개봉했던 때는 게임 역사에 있어 가장 암울한 시기였다. 바로 아타리 쇼크로 인해 콘솔 시장이 급격하게 침체기에 빠진 시점이었던 것이다. 아타리로 등장했던 E.T.의 실패로 인해 업계에서는 히트 영화의 라이센스가 게임의 성공으로 직결된다고 믿는 사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1990년에 이르러서야 메릴랜드에 위치한 작은 개발사인 베데스다 소프트웍스가 터미네이터 1의 PC 게임을 내놓게 된다. 이는 블록버스터 속편 T2로 인해 터미네이터에 대한 관심이 다시 폭발적으로 커지기 1년 전의 일이었다. 

꽤나 엉뚱한 타이밍에 발매되긴 했지만, 베데스다의 터미네이터는 게임 그 자체만을 놓고 보았을 때에도 상당히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80년대 전반에 걸쳐, 자유도 높은 '샌드박스'형 액션 어드밴처 게임은 유럽 쪽의 게임 개발계에서만 주로 논의되던 사상이었으며, 미국에서는 이케론(Echelon)같은 스페이스 시뮬레이션 정도에서나 적용되던 개념에 불과했다. 미국에서 이러한 장르가 진정으로 꽃피우기 시작한 것은 이로부터 한참이 흘러 그란 테프트 오토 III가 성공을 거둔 이후였던 것이다. 그러나 베데스다의 터미네이터는 이 모든 것보다 멀찌감치 앞선 게임이었다. 

베데스다의 터미네이터에는 분절된 레벨이나 정해진 루트, 미션이 전혀 없었다. 대신 게이머는 카일 리스나 T-800 중 하나가 되어 사라 코너를 무슨 방법을 동원해서든 살아남게 하거나 없애거나 하는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 전체 60마일에 이르는, LA를 모티브로 한 광활한 도시를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음은 물론, 거리와 빌딩은 상당히 최적화된 3D 엔진을 통한 풀 3D로 구성되어 돌아다니는 동안 로딩이 전혀 없었다. 이러한 자유도는 단순히 이동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는데, 다양한 장비들 역시 구입하거나 훔칠 수 있었고, 보다 편리한 이동을 위한 차량의 탈취도 가능했다. 베데스다의 터미네이터는 향후에 절정의 인기를 누리게 되는 샌드박스 장르를 10년이나 앞서 보여준, 선구자적 작품이었던 것이다.

터미네이터는 또한 1인층 슈팅 장르의 요소들을 차용하였는데, 이는 id 소프트웨어가 호버탱크 3D로 FPS 장르의 가능성을 시험했던 시점으로부터 1년 전, 울펜슈타인 3D로 대형 히트를 치는 시점으로부터는 2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비록 베데스다의 터미네이터가 어느 한 분야의 괄목할 만한 혁신을 일으킨 게임이라고 하긴 힘들지만, 이 게임이 보여준 독특한 스타일은 당시 미국 컴퓨터 게임의 그것과는 매우 다른 것이었으며, 특히 차량 탈취 요소는 GTA의 아버지뻘로 알려진, 유명한 영국 게임인 헌터보다도 더 먼저였다. 터미네이터 게임은 원작 영화와 마찬가지로 무난한 수준의 성공을 거두었으며, 영화와 타이밍을 맞춘 다른 터미네이터 소재의 게임들의 성공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베데스다의 터미네이터는 뭔가 거대한 흐름의 시작이었다는 의의를 갖는다. 터미네이터를 개발한 줄리안 리페이(Julian Lefay)는 이 게임에서 시도된 프리-로밍 게임 디자인을 RPG에 접목시켜 아레나(Arena)라는 게임을 만드는데, 이 게임이 바로 베데스다에게 지금의 명성을 안겨준 엘더 스크롤 시리즈의 첫 작품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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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트라비스 파스(Travis Fahs) / 번역: 페이비안 / 원문 게시일: 2009.5.20 / 원문출처: IGN Retro

* IGN.com으로부터 전문 번역 허가를 받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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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리넨 2009.05.27 17: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호오.. 저런 터미네이터 게임이 존재했었다니. 그것도 베네스다에서 만든 것이군요. 점점 흥미로워지네요. ㅇ_ㅇ

  2. 무요 2009.05.28 11: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페이비안님 좋은 포스팅 감사하며, 전작(?) 세가 이야기는 진짜 눈물 없이는 ㅜ.ㅜ

  3. 2009.05.28 1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4. BlogIcon 블랙 2009.06.03 08: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베데스다의 터미네이터는 꽤 독특하고 사실적이었죠. (알몸으로 시작해서 옷을 구해야 한다든가....)

  5. BlogIcon myrrh 2009.06.05 09: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베데스다의 터미네이터는 극악의 난이도로도 유명했던 게임이죠. 뭐 솔직히 말해 극악까지는 아니지만 꽤 어려웠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터미네이터로 진행하면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는 카일과 사라가 함께 다니게 되는데 차로 칠려고 하면 차 피하는 속도가 거의 환상에 가까웠다는...^^

  6. BlogIcon myrrh 2009.07.02 06: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하, 크레이지 택시는 잘 모르겠고 미드타운 매드니스에서 사람들이 피하는 속도에 버금갔습니다. 크레이지 택시도 비슷할 거라 생각해요. ^^

  7. BlogIcon 먹튀 검증 2018.08.05 14: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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