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가의 반격

세가는 마스터 시스템을 살리기 위해 고분분투했고, 거의 혼자서 마스터 시스템의 게임 개발을 도맡아야 했던 세가의 R&D 부서는 마치 최대효율로 가동되는 소프트웨어 공장과도 같았고, 개발진들은 이러한 도전 속에서 경험을 쌓으며 점점 더 단단해졌다. 마스터 시스템은 결국 콘솔 전쟁에서 패배하고 말았지만 세가는 이제 막 그 찬란한 도전의 시작을 열었을 뿐이었다. 게임 업계의 좋은 점 중 하나는 바로 영원한 승자란 없다는 것이다.

비록 닌텐도의 시장점유율은 거의 독점의 수준에 다가서고 있었지만 닌텐도를 포함한 전반적인 게임 산업은 80년대 말 그 규모가 축소되어 가고 있었다. 지금에 와서 보면, 이러한 흐름은 차세대 게임기로 넘어가기에 앞선 주기적인 침체기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지만, 당시 닌텐도는 당장 새로운 기기를 출시할 생각이 없었다. 타이밍으로 볼 때, 이 시점이야말로 세가가 다시 반격을 꾀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기회는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NEC가 허드슨과 함께 개발하면서 여론의 주목을 끌었던 16비트 게임기가 1987년에 일본에서 발매되었으며 조만간 미국 진출도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세가는 또 다른 경쟁업체가 강력한 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지켜만 보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세가는 자사의 경쟁력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또한 개발일정을 최대한 줄이고자) 그들의 가장 강력한 자산인 아케이드 부서를 활용하기로 했다. 


세가는 16비트 하드웨어에 있어 수 년간 선두주자였으며 골든 엑스와 수왕기 같은 게임의 기반이 된 다재다능한 하드웨어 '시스템 16'은 세가의 가장 성공적인 아케이드 하드웨어였다. 세가의 목표는 시스템 16을 기반으로 하면서, 마스터 시스템과의 호환성을 유지하는 가정용 게임기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최종적으로는 마스터 시스템 게임을 위해선 아답터가 필요했다.) 300개가 넘는 이름을 가지고 브레인스토밍을 한 결과, 세가의 차세대 게임기 이름은 '메가 드라이브'로 결정되었다.

메가 드라이브의 일본 발매는 1988년 할로윈 직전에 이루어졌다. 일본 런칭은 완전한 실패로 돌아갔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3가 한 주 전에 발매되었고, 일본의 모든 게이머들은 이 게임을 즐기는 데 너무나 정신이 팔려 아무도 세가의 새로운 하드웨어를 거들떠 보려고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메가 드라이브의 발매 후 1년은 완전한 실패는 아니었지만, 40만대라는 판매량은 결코 눈부신 성공이라고 할 수 없었다. 세가는 다음 해를 기약하며 눈물을 삼킬 수 밖에 없었다.

나카야마 하야오는 세가 임원진들에게 매일 "백만대!" 라는 구호를 외치게 했다. 메가 드라이브는 1989년 여름, 제네시스라는 이름으로 수왕기를 번들로 포함하여 미국 시장에 데뷔하였다. 세가 오브 아메리카가 다시 전장으로 돌아왔고, 제네시스의 성공을 위해서는 새롭게 출발하는 미국 지사를 이끌 새로운 리더가 필요했다.


마이클 캇츠(Michael Katz)는 게임 업계의 흥망성쇠를 함께 보낸 매우 현실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인텔리비전의 전성기 시절 마텔에서 일했었고, 게임기 벤처였던 시절의 코레로에서 근무했던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세가의 새로운 게임기를 처음 접했을 당시 아타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마스터 시스템의 유통을 통카에게 넘기고 미국 지사를 철수시켰던 세가는 제네시스의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 미국 파트너사를 물색하고 있었고, 아타리에게도 참여 의사를 타진했다. 이 때 캇츠는 이 제안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으나, 젝 트라미엘은 알려진 바 대로 콘솔 시장에 대해서 무척 냉소적이었고 따라서 세가의 제의는 거절당했다. 세가는 결국 스스로 제네시스를 발매하기로 하고, 이러한 과업을 위한 리더로 캇츠를 주목하게 된다. 

제네시스의 미국 발매로부터 한 달 후에 마이클 캇츠가 세가 오브 아메리카의 사장으로 선임되었다. 그에게는 다음 해 동안 제네시스 판매량 100만대 목표치를 달성하라는 임무가 주어졌다. 현실주의자였던 캇츠는 이러한 목표의 달성 가능성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의 유일한 관심은 그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뿐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세가는 세 가지 심각한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광고, 서드파티 지원, 그리고 북미 시장에 먹히는 게임의 부재였다. 캇츠는 이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가기 시작한다.

닌텐도가 주요 개발사들의 숨통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서드파티를 갖추기 어려웠던 세가는 대신 유명인들과의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하기로 한다. 캇츠는 북미 게이머들을 확보하기 위해, 특히 점점 더 증가하는 젊은 성인 게이머층을 공략하기 위해선 스포츠 게임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했다. 세가가 가장 먼저 계약을 체결한 유명인은 샌프란시스코 49ers의 쿼터백인 조 몬타나였다. 이 계약으로 세가는 조 몬타나에게 170만 달러라는 금액을 지불했지만 그 효과는 충분했다. 뒤를 이어 토미 라소다와 에반더 홀리필드, 그리고 킹 오브 팝, 마이클 잭슨도 세가의 팀에 합류했다. 


미식 축구 게임을 위한 첫번째 개발 협상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세가는 이러한 게임을 빠르게 만들어 낼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했다. 세가의 미국 본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일렉트로닉 아츠라는 작은 개발사가 있었다. 당시의 EA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거대 기업이 아닌, 재정적인 문제로 허덕이고 있는 중소 개발 업체에 불과했다. EA는 급하게 재정적 도움이 필요했지만 이미 제네시스 용으로 존 메이든 풋볼 시리즈를 개발하고 있었다. 세가로부터 지원받은 자금으로 위기를 넘긴 EA는 우선 자사의 존 메이든을 먼저 내놓고 세가와 약속한 시점보다 늦게 조 몬타나 풋볼을 출시하였다. 그러나 세가는 두 개의 매우 성공적인 미식축구 게임이 제네시스에 등장한 것만으로도 매우 행복했다. 전 세가 오브 아메리카 CEO인 톰 칼린스키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나는 [EA에 세가 게임인 조 몬타나를 맡긴 것을] 전혀 후회하지 않아요. 하지만 저는 종종 [전 EA CEO였던] 레리 프롭스트와 [EA 창업자인] 트립 호킨스에게 '만약 세가가 아니었다면, 자네들은 게임 업계에 남아 있지도 못했을 걸!'이라고 말하며 놀리는 것을 즐기곤 합니다."

세가는 또한 마리오에 대적할, 국제적으로 통하는 블록버스터급 게임이 필요했다. 인터네셔널 크리에이티브 팀이 새로운 마스코트의 기획을 맡고, 일본 개발진이 게임 그 자체의 개발을 맡았다. 불독, 늑대, 히어로 수트를 입은 뾰족 머리 뚱보 아저씨 등 수없이 많은 아이디어들을 검토한 끝에 최종적으로 선정된 것은 90년대에 유행하던 악동 기질을 갖춘 초고속 고슴도치였다. 마이클 캇츠는 이 아이디어들 맘에 들어하지 않았다. 그의 생각으로는 평균적인 미국 아이들에게 어필하기에 고슴도치가 너무 낯선 동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문이 불여일견이었다. 한번 소닉 더 헤지혹을 접한 이들은 캐릭터가 갖고 있는 매력을 부인할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소니는 자사의 광고 전략을 완전히 다시 검토해야만 했다. 첫번째 슬로건은 '아케이드의 경험을 집에서 즐길 수 있습니다.'였으나 이는 잠재 고객층을 너무 제한하는 데다가 닌텐도와의 전면 승부는 회피하는 의미가 강했다. 세가의 새로운 게임기는 성능 면에서 패미콤을 훨씬 앞서고 있었으며, 이를 충분히 어필할 필요성이 있었다. 캇츠는 경쟁 광고의 형식으로 세가의 강력한 16비트 게임기를 오래된 닌텐도의 기기와 차별화하고자 했다. 그 결과 세가에서 다양한 매체들을 통해 시작한 광고 캠페인은 다음과 같은 문구를 자랑스럽게 내걸고 있었다. 'Genesis does what Nintendon't.' (제네시스는 닌텐도가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나카야마 하야오의 100만대 목표는 환상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세가 오브 아메리카는 직원 50명 정도의 작은 회사에 불과했고 마이클 캇츠는 CEO로 부임한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제네시스의 향후 성공을 위한 기반 다지기에 투자했다. 그러나 이런 건 중요치 않았다. 제네시스는 그 해 50만대의 판매량을 기록했고, 그 책임은 마이클 캇츠에게 돌아갔다. 나카야마와 데이빗 로젠은 그의 자리를 대신할 후임자를 몰색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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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트레비스 파스 / 번역: 페이비안 / 원문게시일: 2009.4.21 / 출처: IGN Retro

* IGN.com으로부터 전문 번역 허가를 받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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