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시스는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기가 되었고, 세가는 이러한 경쟁 우위을 계속 지켜가고 싶었다. 세가는 언제나 다음 단계를 생각하는 회사였다. 문제는 그 '다음 단계'라는 것이 항상 명확하지는 않았다는 점이었다. 세가는 한 가지 방향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방향을 다양하게 시험해보곤 했는데, 몇몇은 잘 알려진 것이지만 몇몇은 게이머들 사이에서 회자되지도 못한 채 묻혀진 것들도 있었다. 다방면에 걸친 세가의 시행착오는 실수를 저지는 본인들은 물론이려니와 팬들에게도 가슴아픈 일이었다.

문제는 세가 CD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라이벌 NEC가 이미 애드온 방식의 CD 주변기기를 내놓은 바 있었고, CD-ROM 미디어는 PC게임 쪽에서 서서히 기지개를 펴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 광학매체에 미래가 달려있다고 판단한 세가는 서둘러 CD-ROM을 수용하고자 했다. 전 세가 오브 아메리카 CEO 톰 칼린스키도 "세가는 광학 디스크를 활용한 제품을 개발하는 경험을 쌓고자 했다"고 기억했다. CD-ROM 주변기기가 제네시스를 대체할 만한 상품은 아니라는 것을 세가 역시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지만, 향후를 대비하기 위한 일환으로 세가 CD를 출시하게 된다.

하드웨어에 대한 준비와 함께, 이러한 CD 미디어의 장점을 뽐낼 소프트웨어가 필요했다. 카트리지로는 구현이 불가능한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게임을 찾는 와중에, 세가는 디지털 픽쳐스라는 작은 개발사와 그 개발사의 게임을 퍼블리싱하는 새롭게 설립된 제작사, 소니 이미지소프트를 만나게 된다. 디지털 픽쳐스는 당시 톰 지토(Tom Zito)와 아타리의 전설적인 인물, 롭 플롭(Rob Fulop)이 디자인한 게임들 몇 가지를 멀티트랙 비디오 테입을 사용하는 게임기 용으로 개발하고 있었다. 그들의 게임은 대부분이 비디오 클립으로 되어 있어서, 게이머로 하여금 실질적으로 '영화를 보는' 느낌의 플레이를 선사할 예정이었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매우 매력적이었고, 그들이 처음으로 내놓은 두 개의 게임인 수어 샤크(Sewer Shark)와 나이트 트랩(Night Trap)은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세가는 나중에 세가 CD의 개선된 모델에 수어 샤크를 번들로 포함하기도 했다. 또한 그들은 프라이즈 파이터(Prize Fighter)라는 풀 모션 비디오 기반의 복싱 게임을 내놓고, 이어서 가능한 모든 장르에 풀 모션 비디오를 삽입한 타이틀들을 연달아 선보였다. 드래곤즈 레이어(Dragon's Lair)와 같은 레이저디스크 기반의 아케이드 게임들 역시 새로운 이식을 통해 다시 인기를 얻게 되었다.

세가 CD에는 또한 기존 게임플레이 요소를 유지한 채 음성, 음악, 애니매이션 이벤트신 등의 부가적인 요소만을 더한, 비교적 보수적인 접근을 채택한 게임들도 있었다. 특히 풀모션 비디오가 그다지 큰 인기를 얻지 못했던 일본과 유럽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더 강했다. 이러한 게임들 중 소닉 CD는 팬들로부터 시리즈 사상 최고의 게임으로 추앙받았고, 예전 PC 게임이었던 스네쳐의 세가 CD 이식작은 CD 미디어를 통해 게임이 보다 강력한 스토리텔링 매체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한 사례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대중들의 반응은 기대와 달랐다. 풀모션 비디오는 한동안 시장을 떠들썩하게 했지만, 일시적인 유행에 지나지 않았던 것으로 판명되었다. 고작 몇 년 만에, 세가 CD는 각광받는 필수 주변기기에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퇴물로 전락했다. 닌텐도 역시 소니와 함께 CD-ROM 주변기기에 대한 가능성을 검토했으나, 이러한 협력관계가 깨어진 후에는 CD-ROM이라는 아이디어 자체를 내던져 버렸다.

단순히 저장매체에 대한 변화만이 아닌 차세대 게임기에 대한 고려도 세가 내부에서 서서히 진행되었다. 이 즈음의 이야기는 톰 칼린스키는 물론 많은 세가 팬들에게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에 모든 하드웨어 개발을 책임지고 있던 일본 세가 본사는 어웨이 팀이라는 이름의 조직을 구성하여 차세대 32비트 시스템의 개발을 시작했다. 그러나 세가 미국 지사에 도착한 차세대 게임기의 프로토타입은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프로젝트 새턴은 크고 비싼 기판에, 최적화되지 않은 부품들이 복잡하고 투박하게 붙어있는 세련되지 못한 기기였다. 두 개의 CPU와 두 개의 그래픽 칩, 그리고 여타 프로세서들이 달려 있었지만 서로 어울리지 않고 따로 놀았다. 개발자들이 프로그래밍하기에도 어려웠고, 경쟁력 있는 가격에 마케팅을 하기도 어려웠으며, 더 저렴하고 단순한 하드웨어에 비해 큰 장점을 갖고 있지도 않은 기기였던 것이다.


미국 R&D 부서의 수장이었던 조 밀러(Joe Miller)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파악하고 이를 톰 칼린스키에게 보고했다. 비록 세가 미국 지사가 하드웨어 문제는 관여하지 있진 않았지만, 이번에는 일본에 보다 나은 대안을 제시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이러한 시도에 대해 칼린스키는 다음과 같이 기억한다.

"우리는 실리콘 그래픽스를 찾아가서 [SGI 창업자인] 짐 클락(Jim Clark)과 만났죠. 그들은 당시 MIPS 테크놀로지를 인수했고, 게임기에 쓰일 칩셋을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칩셋이 마음에 들었고, 그래서 일본 세가에 연락해서 한번 살펴보기를 요청했어요. 일본에서 건너온 하드웨어 담당자는 이 모든 노력에 대해 시종일관 시큰둥해 했죠. 칩셋의 크기가 너무 크다는 둥, 필요하지 않은 자원이 너무 많다는 둥 기술적인 관점에서 여러가지 반대 의견을 냈습니다. 우리로서는 상당히 짜증나는 상황이었어요. 분명히 우리가 보여준 칩셋이 속도, 그래픽, 오디오 면에서 훨씬 뛰어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일본 관계자와의 미팅 후에, 나는 짐 클락에게 세가는 실리콘 그래픽스의 칩셋을 도입할 의향이 없다는 뜻을 전했어요. 그랬더니 그가, '그럼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거지?'라고 묻더군요. 그래서 저는 '시애틀 쪽에 N으로 시작하는 다른 게임 회사가 있으니 한번 만나보는게 어때?'라고 말했고, 당연히 그는 그렇게 했습니다. 그들은 계약을 체결했고, 그 계약이 결국 닌텐도 64의 기반이 되었던 거죠." - 톰 칼린스키


만약 세가가 닌텐도 64에 사용되었던 3D 하드웨어에 CD-ROM 미디어를 합친 게임기를 내놓았으면 과연 차세대 게임기 전쟁은 어떤 양상이 되었을까. 그 가능성이란, 세가 팬들에게 있어 정말 너무도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너무 아쉬워하지 말자. 진짜 안타까운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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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트레비스 파스 / 번역: 페이비안 / 원문게시일: 2009.4.21 / 출처: IGN Retro

* IGN.com으로부터 전문 번역 허가를 받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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