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F X에 대한 팬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파이날 판타지 시리즈 최초로 같은 캐릭터와 세계관을 공유하는 '진짜' 속편에 대한 개발이 2002년에 시작되었다. 이미 개발이 거의 마무리되어 발매를 앞두고 있던 파이날 판타지 XI와 구분하기 위해, 이번 작품은 파이날 판타지 X-2라고 명명되었다. 이미 대부분의 배경과 캐릭터가 전작을 통해 구성된 상태였고, 게임 엔진도 거의 그대로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전작 개발팀 1/3 정도의 인원과 상대적으로 작은 예산만으로 개발팀이 구성되었으며, 개발 기간 역시 1년 정도로 비교적 짧게 가져갈 수 있었다.

FF X-2가 FF10과 연계성은 유지하면서도 너무 비슷하지는 않은 게임이 되도록 하기 위해 스퀘어에서는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X-2는 팬 서비스 차원의 게임이었고, 이를 감안하여 기존 시리즈의 무거운 멜로드라마를 벗고 좀 더 가볍고 즐거운 느낌이 되도록 한 것이다. 조작 가능한 캐릭터도 유나, 리쿠 그리고 페인 이렇게 딱 3명의 여성 캐릭터로 단순화하고 여기에 잡 시스템과 '드레스 업' 요소를 결합시켜 여성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TV 광고 역시 이렇게 달라진 분위기를 어필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파이날 판타지 시리즈라기 보다는 아메리칸 아이돌의 느낌이 나도록 연출하였다.

이러한 밝고 가벼운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게임 디자인 자체에 대해서는 스퀘어의 이름에 부족하지 않은 참신하고도 충실한 구성이 갖추어졌다. 잡 시스템을 바탕으로 캐릭터를 다양한 방향으로 성장시킬 수 있다는 점에 더해, 북미 RPG의 구성과 유사한 미션 기반의 구조를 시리즈 최초로 도입하였다. 또한 게임 초반부터 거의 모든 지역을 탐험할 수 있다는 점이나, 대부분의 게임 진행이 사이드 퀘스트를 수행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점 등도 시리즈의 다른 게임들과 크게 차별화되는 부분이었다.

파이날 판타지 X-2는 FF X 수준의 평가나 판매량을 기록한 게임은 아니었지만, 이러한 기준으로 판단하기에는 그 제작 의도 자체가 다른 게임이었다. 그야말로 팬들을 위한 작은 소품 격인 게임으로서 400만 카피라는 판매량은 오히려 이 게임이 팬들에게 얼마나 성공적으로 어필하였는지를 알려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FF X-2의 발매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스퀘어는 오랜 시간 동안 라이벌 관계로 지냈던 에닉스와 합병하게 된다. 비즈니스적으로는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었지만, 사카구치 개인에게 있어서 이러한 움직임은 치명타라고 할 수 있었다. 스퀘어 내부에서도 사카구치의 입지는 이미 상당히 축소되어 있었고, FF X-2의 개발에 있어서 그의 역할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합병된 스퀘어에닉스의 경영진들은 사카구치의 지난 업적보다, 그가 영화 파이날 판타지를 통해 회사에 끼친 9,400만 달러에 이르는 손해에 더 민감했다. 그가 아무리 대단한 히트 게임을 만들어내더라도, 이 금액은 결코 쉽게 복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국 2004년, 스퀘어에서 21년 동안 몸담으면서 회사를 세계 최고의 게임 제작사 중 하나로 만들었던 사카구치는 스퀘어를 떠나 미스트워커라는 회사를 스스로 설립하게 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자기 방식 대로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차원에서, 사카구치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온 것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새로운 지평

스퀘어가 파판 시리즈의 11번째 정식 후속작이 온라인 게임이 될 것이라고 발표했을 때, 팬들은 상당히 동요했다. 심지어는 배신감을 느낀 이들도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개발사의 입장에서 온라인 게임으로의 전향은 매우 논리적인 행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는 새로운 장르로의 진출이라기 보다는 개발자들이 오래전부터 생각하던 이상의 실현이었기 때문이다. 사카구치가 하와이 스투디오에 있을 때, 그는 북미에서 에버퀘스트가 성공하는 것을 보았고, 파이날 판타지 역시 이러한 흐름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리즈의 개발진들은 파이날 판타지 X을 만들면서 온라인 요소를 작품에 반영하고자 하였지만, 결국 이 아이디어가 하나의 독립적인 게임이 된 것이다.

시리즈의 베테랑 개발자이자 프로듀서인 다나카 히로미치 역시 사카구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또한 풍부한 디테일의 광활한 세계와 그 안에서 펼쳐지는 실제 플레이어들의 상호작용이야말로 파이날 판타지를 처음 만들면서 꿈꾸던 궁극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중들의 생각은 달랐다. 2000년 FF XI이 발표되자 팬들은 그들에게 너무도 익숙한 경험이었던 스토리 기반의 1인용 게임이 어떻게 온라인 플레이만으로 대체될 수 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특히 북미 지역이나 다른 아시아 지역과 달리 온라인 게임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일본에서 팬들이 느낀 불안감은 더욱 클 수 밖에 없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스퀘어의 핵심 전략은 바로 크로스-플랫폼 디자인이었다. PS2 버전으로 온라인 게임에 익숙치 않은 콘솔 게이머들을 MMORPG 장르로 포섭하는 반면, 이미 이 장르에 어느 정도 유저 기반이 형성된 PC 버전으로 핵심 유저층을 확보하는 이러한 전략은 사상 처음으로 시도되는 것이었다. 결국 이 전략 덕분에 FF XI는 PC 버전을 계속 업그레이드하면서 한계에 이른 PS2의 수명에 영향을 크게 받지 않고 Xbox 360으로도 넘어갈 수 있게 된다.

파이날 판타지 XI는 상당한 예산과 본격적인 깊이를 가진 메이저급 MMO 게임으로서는 일본 최초였다는 점에 더해, MMO 게임들을 다양하게 즐겨본 게이머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주는 몇 가지 혁신이 눈에 띠는 게임이었다. 잡 시스템은 파이날 판타지 시리즈의 세계관의 연장일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캐릭터 성장에 있어 유연성이 부족했던 기존 온라인 게임과 대비되는 장점이었다. 더 이상 게이머가 여러 클래스를 경험하기 위해 다수의 캐릭터를 키우는 고생을 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대신 다양한 직업을 통해 레벨 업 함으로서 서로 다른 종류의 파티에 적합하도록 역할을 바꿀 수 있게 되었다.


파이날 판타지 XI는 또한 가장 어려운 MMORPG로도 악명을 떨쳤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가 빠른 전개로 초보자들에게도 상대적으로 열려 있는 반면, FF XI은 느린 페이스의 레벨 업과 정말로 어려운 퀘스트들로 인해 고전적인 RPG에 익숙한 게이머가 아니라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게임이었던 것이다. 최고 레벨의 플레이어들이 20시간에 걸쳐 전투를 벌이다가 결국 패배하고 말아 이슈가 되었던 판데모니엄 와든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높은 난이도가 단점으로만 작용한 것은 아니다. 한 번 키운 캐릭터를 쉽게 포기할 수 없는 FF XI에서, 캐릭터의 업적과 명성은 상대적으로 오랫동안 지속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는 게임에 있어 팀웍과 커뮤니티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는 효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인기로 인해 서서히 밀리고 있긴 하지만 이미 FF XI는 스퀘어가 처음에 사업계획서 상에서 목표로 한 5년 유지 이상의 성과를 보여주었으며, 4개의 확장팩이 발매된 지금까지 커뮤니티는 여전히 활발하다. 이후 시리즈 작품들이 다시 오프라인으로 돌아갔지만, 올해 E3의 깜짝 발표 중 하나로 새로운 온라인 파이날 판타지가 발표되기도 하였다.

FF XI의 발매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스퀘어에서는 팬 베이스를 확대할 또 하나의 계획을 발표한다. 바로 닌텐도와의 재결합을 선언한 것이다. 스퀘어의 일정 지분을 소니가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이들에게는 상당히 놀라운 소식이었지만, 비즈니스적으로는 탁월한 전략이었다. 파이날 판타지가 닌텐도 게임기에 마지막으로 등장한지 어느덧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닌텐도의 팬층은 스퀘어에 있어 새로운 공략 타겟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카와즈 아키토시가 파이날 판타지 II 이후 처음으로 다시 시리즈 개발에 참여하여 그의 장기인 새로운 게임플레이와 아름다운 비주얼 디자인을 선보이게 되었다. 그는 닌텐도 콘솔용 파이날 판타지를 협력 플레이에 기반한 뉴 에이지 건틀릿 같은 게임으로 만들고자 하였으며, 시리즈 초기의 크리스탈과 마법사에 오마주를 바치는, 그러나 새로운 종족들과 이타하나 토시유키의 환상적인 아트 스타일로 새롭게 꾸며진 독특한 세계를 창조해낸다.


파이날 판타지: 크리스탈 클로니클스는 플레이스테이션 쪽으로 나오는 스퀘어의 정식 파이날 판타지 시리즈와 경쟁관계에 있는 작품이라기 보다는, 닌텐도 팬들을 다시 파이날 판타지의 세계로 불러들이는 초대장 같은 게임이었다. 130만장이라는 판매량은 수치 상으로 아주 인상적인 것은 아니지만, 20명도 채 안되는 개발진이 만든 게임으로서는 아주 훌륭한 성과라고 할 수 있었다. 스퀘어에서는 그 이후로 크리스탈 클로니클스의 세계에 기반한 속편과 스핀 오프 작품들을 DS와 Wii로 계속 내놓고 있다. 크리스탈 클로니클스는 또한 그 이후에 DS로 등장하게 되는 파이날 판타지의 이식작 및 리메이크 작품들에 대한 시장을 다지는 역할도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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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러스 멕러린(Rus McLaughlin) / 번역: 페이비안 / 원문 게시일: 2009.6.26 / 출처: IGN Retro

* IGN.com으로부터 출처 표기를 조건으로 전문 번역 허가를 받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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