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는 실로 놀라운 회사다. 설립에서 15년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작은 독립 개발사에서 글로벌 대형 제작사로 성장한 것도 대단하지만, 이미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던 일인칭 슈팅 게임이나 격투 게임의 흐름을 뒤쫓지 않고, 당시에는 틈새 시장에 불과했던 장르들을 아무도 상상할 수 없었던 방법으로 보란 듯이 게임계의 주류로 올려세운 블리자드의 업적은 게임 업계에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큰 영향을 미쳤다.

게임 매니아들의 관심과 기대가 디아블로 III와 스타크래프트 II의 소식에 몰려 있지만, 사실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했던 것은 블리자드의 가장 위대한 프랜차이즈, 워크래프트 시리즈라고 할 수 있다.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의 초창기를 장식했던, 지금 보면 소박하기까지 한 첫번째 작품부터 전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온라인 게임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이르기까지, 워크래프트 시리즈는 항상 시대를 한발 앞선 게임이었다. 올해에도 높은 기대를 받고 있는 블리자드의 게임쇼인 블리즈컨의 개최에 즈음하여, 블리자드에게 전세계적 명성을 안겨준 워크래프트 시리즈가 걸어온 길을 살펴보자.



아제로스의 태동

블리자드도 그 시작은 보잘 것 없었다. 1991년 2월 설립 당시에는 '실리콘 & 시냅스(Silicon & Synapse)'라는 이름이었고, 외우기 힘든 이름만큼이나 사업적으로도 그다지 순탄하지는 않은 회사였다. 초기에는 설립자들이 개인 신용카드로 카드 빚을 내서 월급을 충당할 정도로 재정 상태가 불안정했고, 개발자들은 이렇게 마련한 자금이 바닥나기 전에 첫번째 게임을 만들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지금의 블리자드는 완벽한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처음 예정했던 발매일을 몇 년 씩이라도 연기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지만, 1991년에는 그런 사치는 생각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설립 후 4개월 만에 개발진은 그들의 첫번째 게임, RPM 레이싱을 내놓았지만 이것만으로는 여전히 안정된 회사가 되기에는 충분치 않았다. 회사를 유지하기 위해 개발팀은 유명한 PC 게임들을 맥이나 아미가용으로 이식하는 용역 작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덕분에 어느 정도 숨쉴 틈을 갖게 된 실리콘 & 시냅스는 (RPM의 후속작이라 할 수 있는) 락&롤 레이싱, 전설적인 퍼즐-플랫폼 게임 로스트 바이킹즈(The Lost Vikings), 그리고 영화적 연출의 플랫폼 게임인 블랙손(Blackthorne) 같은 오리지널 타이틀들을 대형 제작사인 인터플레이를 통해 내놓을 수 있었으며, 이 게임들은 모두 16비트 시대의 고전 명작으로 지금도 기억되고 있다.

실리콘 & 시냅스는 인터플레이의 그늘 아래에 머무르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이름을 알아주길 바랬던 것이다. 그러나 '실리콘 & 시냅스'는 사람들의 뇌리에 쉽게 남는 이름은 아니라는 것을 자신들도 서서히 자각하기 시작했다. 시냅스가 무슨 뜻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판에, 실리콘 & 시냅스를 기억해주길 바라는 것은 무리였던 것이다. 새로운 브랜드로 '카오스 스투디오즈'라는 후보도 잠시 등장했지만, 결국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가 채택되었다. 조금 튀는 듯한 이름이었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브랜드를 정했으니 이 브랜드에 아이덴티티를 부여할 새로운 게임이 필요했다. 블리자드라는 이름이 공개될 무렵, 이미 내부적으로는 야심찬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빌 로퍼(Bill Roper)와 패트릭 와이엇(Patrick Wyatt)이 총괄하는 이 작품은 웨트스우드 스투디오즈의 고전명작 듄 II에 대한 오마주이자 도전이었다.

1992년 발매되었던 듄 II는 당시 존재하는 어떤 장르에도 속하지 않는, 완전히 독창적인 게임이었다.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진지 구축 전략과 전통적인 전투의 조합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지만 듄 II에 이어 이 가능성을 개척하는 게임은 한동안 등장하지 않았다. 다른 개발사는 물론 웨스트우드조차도 후속작을 내지 않는 상황에서 블리자드는 바로 이 가능성에 도전한 것이다.


워크래프트는 듄 II의 기본적인 뼈대를 거의 그대로 가지고 가면서 필드에 좀 더 가까워진 시점과 확연하게 빨라진 페이스를 가미한 게임이라고 할 수 있었다. 풍부한 판타지 설정은 배경 스토리로서 매우 매력적이었으며 미션 기반의 캠페인은 매우 디테일하게 구성된 스토리를 바탕으로 전개되어 양쪽 세력 모두의 관점으로 플레이할 수 있었다. 오크와 유사한 호드 세력과 인간 세력은 대체적으로 비슷한 게임플레이를 보여주었으나 각각 독특한 마법과 소환 주문을 사용할 수 있었으며, 나중에 시리즈로 발전되면서 보여주는 다양성에 대한 단초가 되었다.

워크래프트는 넓게 보면 듄 II의 유사품이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이제 막 싹을 틔우기 시작한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장르를 새롭게 정립했다고 하기에 충분한 혁신을 가져온 게임이기도 하다. 둠이 온라인 멀티플레이어를 통해 일인칭 슈팅게임의 흐름을 바꾸어버린 것처럼, 워크래프트 역시 모뎀 혹은 로컬 네트워크를 통해 두 명의 플레이어가 서로 겨룰 수 있게 했던 것이다. 일단 익숙해지면 속이거나 압도하는 것이 쉬운 컴퓨터 AI에 반해, 적수가 반대편에 존재하는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로 게임의 전략 자체가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진입하였다. 패턴에만 익숙해지면 되던 게임이 이제는 전략과 지력이 동원해야 하는 게임이 된 것이다. 워크래프트 이후 등장하는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은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적어도 멀티플레이어 옵션은 필수로 갖추고 있어야 했다.

클릭하시면 게임플레이 동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블리자드의 야심작은 1994년 여름, 데모 버전을 통해 최초로 공개되었다. 풀 버전의 게임의 등장까지는 아직도 몇 개월 남은 시점이었지만, 맛보기치고는 상당히 많은 컨텐츠를 담은 데모 버전은 게이머들의 기대감을 높이기에 충분했으며, 플로피디스크에 담긴 데모를 사람들이 서로 복사해주면서 이 독특한 게임에 대한 입소문은 계속해서 퍼져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1월에 정식으로 발매된 워크래프트는 출시와 동시에 큰 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었다. 게임 관련 매체들조차 수 개월이 지나도록 게임에 대한 리뷰조차 싣지 않았다. 그러나 게임을 접한 게이머가 다른 게이머에게 권하고, 그렇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접하게 되면서 워크래프트는 그 때까지 블리자드의 다른 어떤 게임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블리자드는 덕분에 더 큰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을 정도의 재정적인 여유까지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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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트래비스 파스 (Travis Fahs) / 번역: 페이비안 / 원문 게시일: 2009.8.18 / 출처: IGN Retro

* IGN.com으로부터 출처 표기를 조건으로 전문 번역 허가를 받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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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하셔도 스타크래프트 II의 발매일이 더 빨라질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다음 글은 빨리 나올지도.. (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