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날 판타지 IX의 개발 초기, 스퀘어는 그 동안의 시리즈 흐름과 역행하는 이번 작품을 번호가 붙는 정식 후속작으로 할지, 아니면 단순히 스핀 오프 타이틀로 할 것인지를 두고 고민했다. 분명 원점으로의 회귀에 대해 혼란스러움을 느끼는 팬들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발이 계속 진행되면서, 진화된 그래픽과 연출이 고전적인 구성 및 게임플레이와 자연스럽게 믹스된 이번 작품은 새로움과 익숙함이 조화된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직전에 발매된 게임들이 좀 더 리얼한 그래픽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흘러온 반면, FF9는 아마노 요시타카의 디자인에 카툰 풍의 느낌을 가미한 그래픽을 추구했다. 모그리, 초코보, 그리고 파판 시리즈의 대표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흑마도사 등과 함께 스토리 역시 크리스탈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우메마츠의 음악 역시 옛 테마를 바탕으로 재구성되었으며, 게임 내 배경 속에도 시리즈의 옛 게임들과 연관이 있는 요소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닌텐도와 결별한 이후 걸어온 길에 대한 올드팬들에게 바치는 화해의 편지와도 같은 게임이 바로 FF9였다.

파이날 판타지 IX는 거의 모든 매체들의 찬사와 함께 발매되었다. 사카구치 스스로도 지금까지의 파판 시리즈 중 그가 원래 가지고 있던 비전에 가장 근접한 게임이자 가장 좋아하는 게임이라고 밝혔다. 몇몇의 게이머들에게서는 고전으로의 회귀가 어떤 때에는 너무 상투적이라는 불만도 있었지만, 적어도 서양쪽에서는 파판 시리즈 중 가장 호평을 받은 게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FF9는 '고작' 500만 장의 판매량에 그치는데, 이는 32비트 세대가 쇠퇴기에 접어드는 시점이었음과 동시에 몇 달 전에 발매되었던 드래곤 퀘스트 VII가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고 알려져 있다.

우려먹기의 시대

플레이스테이션의 전성기 시절, 파이날 판타지라는 이름은 거의 모든 곳에 퍼지게 된다. 최고의 인기를 구사하는 시리즈였기 때문에 팬들의 기다림을 채워줄 수 있는 무엇인가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스퀘어에서 여러 가지 파생 게임들을 내놓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PS 시절부터 시작되었던 이러한 경향은 지금도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되고 있다.


초코보가 시리즈의 마스코트로 자리매김함에 따라, 스퀘어에서는 초코보를 소재로 한 게임들을 여러 장르에 걸쳐 찍어내기 시작한다. 초코보 다리에 로켓 스케이트를 달아 마리오 카트를 흉내낸 초코보 레이싱을 만들기도 하고, 초코보 테마의 보드 게임도 등장하였으며 풍래의 시렌 스타일의 RPG인 초코보의 이상한 던전은 나름의 성과로 속편까지 만들어졌다.

초코보의 귀여움은 그렇다치고, 팬들에게 있어 가장 주목받았던 스핀 오프는 파이날 판타지와 택틱스 오우거의 요소를 결합한 게임인 파이날 판타지 택틱스였다. 택틱스 오우거의 디렉터였던 마스노 야스미, 리드 아티스트였던 미나가와 히로시, 요시다 아키히코, 그리고 음악을 맡았던 사키모토 히토시와 이와타 마사하루까지 참여한 이 작품은 스퀘어로서도 상당히 공을 들인 작품이었다.

파이날 판타지 택틱스의 개발은 FF7과 거의 병행하여 이루어졌지만, FF7의 영향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무방했다. FFT는 시리즈의 전통적인 2D 게임들을 바탕으로 구성되었으며 특히 FF5의 방대했던 잡 시스템이 자연스럽게 녹아든 게임이었다. 마스모토는 택틱스 오우거의 매력이었던 게임플레이와 스토리의 깊이를 훼손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난이도를 조절하고 스토리의 분기를 최소화시켜 파이날 판타지 택틱스가 기존의 전략 게임 팬들만이 아닌, 보다 넓은 유저층에 받아들여질 수 있기를 바랬다.


사실 샤이닝 포스 시리즈나 파이어 엠블램 시리즈를 제외한 전략 RPG 게임은 일본이나 북미에서 메인스트림에 속하는 장르가 아니라고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스퀘어의 이러한 시도는 상당한 도박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기존 택틱스 오우거 팬들만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팬층을 확보해야만 FFT는 성공을 거둘 수 있었기 때문이다.

스퀘어의 도박은 실패한 것처럼 보였다. 일본에서의 판매량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지만, 첫 해에 백만장에 이르지는 못했으며, 북미에서도 FF7를 둘러싼 관심과 몇몇 팬들이 보인 호감도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러나 FFT는 천천히 입소문을 타고 게이머라면 꼭 한 번쯤 접해보아야 하는 게임이라는 명성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히트 게임의 재발매판인 'Greatest Hits' 라인으로 FFT가 다시 등장하자, 판매량은 갑자기 폭발했고, 최종적으로 PS판 FFT는 전세계적으로 225만장이라는 판매량을 달성하여 두 개의 속편과 PSP 이식까지 이루어지게 된다.

시리즈의 본편들과 비교해서 FFT의 판매량은 눈부신 성과라고 하기 힘들지도 모르지만, 게임 업계에 미친 영향은 결코 작지 않았다. 택틱스 오우거를 통해 개척되었던 전략 RPG의 공식들, 특히 3D 지형과 대각선 시점 같은 것들이 보편화되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심지어 이러한 공식들이 적용된 새로운 세대의 전략 RPG 게임들은 스스로의 장르를 '택틱스'라고 정의하기에 이른다. 여전히 아주 보편적으로 사랑받는 게임 장르는 아닐지 모르지만, FFT 이후로 팬층을 계속해서 넓혀가고 있는 전략 RPG 게임들은 마스노 야스미의 택틱스 오우거와 파이날 판타지 택틱스에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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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러스 멕러린(Rus McLaughlin) / 번역: 페이비안 / 원문 게시일: 2009.6.26 / 출처: IGN Ret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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