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턴 시절 겨우 몇 가지 프랜차이즈만으로 연명했던 세가는 상당히 곤란한 입장에 처했다. 자사의 게임을 통해 강한 드라이브를 걸어야 했던 드림캐스트였지만, 제네시스 (메가드라이브) 시절의 다양했던 히트 게임들은 이미 그 빛을 잃은지 오래였던 것이다. 새로운 벡터맨이나 수왕기는 메탈 기어나 마리오에 대적하기 역부족이었다. 세가에서 자랑하는 몇몇 인기 시리즈들은 새로운 시대에 맞도록 전폭적인 혁신이 이루어졌다. 판타지스타 시리즈는 온라인으로 향했고, 소닉은 어드밴처 파트를 도입했다. 하지만 드림캐스트가 타사의 콘솔에 대해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필요했다.

새턴에서 드림캐스트로 넘어가는 동안, AM 아케이드 부문과 R&D 콘솔 부문을 포함한 세가의 개발 부문에서는 대규모의 구조조정이 이루어져 조직이 좀 더 작은 규모의 준 독립적인 세컨드 파티 구조로 나누어졌다. 각각의 개발 스투디오는 여전히 세가 본체에 소속되어 있지만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험하고 연구하는 창의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전례 없는 자유도가 주어진 것이다. 이전까지 겉으로 구분되지 않았던 개발팀들이 각각의 로고를 갖게 되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각 개발팀의 고유한 색깔을 선호하는 자신들만의 팬층을 확보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시도는 그리 오랫동안 유지되지 못했다. 2003년 새미가 세가를 인수하면서 스투디오들을 다시 통합시켰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짧고 강렬했던 폭발적인 창의성의 시대는 드림캐스트 고유의 것으로 남겨지게 되었다. 드림캐스트를 기억하는 뜻에서 우리가 사랑했던 그 때의 퍼스트 파티 스투디오들을 한 번 되돌아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유나이티드 게임 아티스트 (United Game Artists)

새롭게 구성된 세가의 세컨드 파티 개발 스투디오들이 사실은 1991년 진행된 개편에서부터 유지된 내부 개발팀에 대한 명칭을 변경한 것에 불과했지만, 유나이티드 게임 아티스트(이하 UGA)는 완전히 새롭게 구성된 팀이었다. AM3의 수장이자 세가 랠리의 프로듀서였던 미츠구치 테츠야를 리더로 한 UGA는 드림캐스트를 위한 새로운 시도를 위해 구성된 팀이다.

UGA는 종종 비판의 의미로 사용되던 "실체보다 스타일이 우선"이라는 문구를 그들 만의 독특한 색깔로 승화시켰다. 이 스투디오의 짧은 생애 동안 만들어진 작품들은 멋진 스타일이 얼마나 큰 반향을 불러올 수 있는지를 몸소 보여주는 것들이다. 첫번째 작품이었던 스페이스 채널 5는 게임 자체만 놓고 보면 파라파 더 랩퍼의 바탕 하에 앞서 나온 음악을 따라하는 게임에 불과하지만, 그 스타일 자체만으로 팬들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 게임이다.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스페이스 채널 5는 신나고, 복고적이며, 강력한 중독성을 가지고 있었다.
 
반짝반짝 60년대 풍의 스타일과 함께 하늘로 날아가버린 듯한 싸구려틱 센스가 오히려 멋져보이는 스페이스 채널 5의 중심에는 젊고 섹시한 '스페이스 리포터' 우라라가 그녀의 멋진 짧은 비닐 스커트로 그녀 만의 멋을 과시하시는데, 라라 크로포트 이후로 가장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라고 할 수 있었다.

복고풍의 음악 역시 잘 알려지지 않은 캔 우드만의 맥시칸 플라이어라는 재즈 음악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60년대 풍의 사운드가 그루브와 미래 지향적 이미지가 함께 공존하는 게임의 분위기와 맞아 떨어진다. 이 모든 것들이 맞물려서 각각의 부분 이상의 시너지를 창출했던 스페이스 채널 5는 2000년도에 발매되었는데, IGN에서는 본질적인 게임플레이적 요소가 부족하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9.2라는 높은 점수를 주었다.

스페이스 채널 5의 진보적인 사운드 디자인은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 미츠구치는 사운드와 이미지가 서로 의미있게 조화를 이루는 작품을 계속 추구해나갔고, 미술가 칸딘스키에 영감을 받아 다음 프로젝트의 테마를 감각의 융합이라 할 수 있는 '공감각'으로 정했다. 그는 플레이어가 음악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창출하기를 윈했고, 이것이 그의 다음 작품인 레즈(Rez)의 시작이었다.

근본적으로 레즈는 무척 단순한 게임이다. 본질에 있어서는 간단한 버전의 팬저 드라군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타겟에 커서를 맞추어 대상을 쏘는 게임플레이가 기본이었다. 다른 모든 움직임은 자동으로 이루어지고 시점 역시 앞을 향하여 고정되어 있으며 무기는 단지 외형에 변화가 있을 뿐이었다. 듣기에는 무척 지루한 게임일 거 같지만, 템포가 완벽하게 설계된 전개로 인해 플레이어는 단순함을 넘어선 초월적인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게임은 수평선과 하나의 파동 만으로 시작된다. 타겟을 록-온하면 전자 드럼 소리가 울리고 무기를 발사하면 멜로디가 흘러나오면서 화면에 색채가 퍼지게 된다. 이어서 베이스 드럼의 둔탁한 소리와 함께 단순한 지형이 등장한다. 이런 식으로 비주얼과 음악이 조금씩 조금씩 복잡해져 가면서 플레이어는 화면과 소리에 완전히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처음으로 시도되는 도전이었다. 음악이 게임플레이에 있어 실질적으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비트에 맞추어 플레이한다고 해서 스코어가 향상되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음악에 빠져들어 고개를 까딱이거나 발을 구르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추상적인 비주얼은 테크노 풍의 음악과 왠지 모르게 잘 어울렸다.


레즈는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작품은 아니었으며 드림캐스트 버전으로는 북미에 발매조차 되지 못했지만, 게임에서 보여준 혁신적인 사운드 디자인은 이후로도 많은 게임들에 큰 영향을 주었다. 에브리데이 슈터(Everyday Shooter)에서 스페이스 인베이더스 익스트림(Space Invaders Extreme)에 이르기까지 많은 게임들이 레즈에서 선보였던 공감각적인 느낌과 추상적인 비주얼을 참고하였으며 많은 주류 게임들도 게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다이나믹한 사운드를 도입하게 되었다.

스투디오가 다시 와해되지 직전, UGA는 자신들이 시작했던 프로젝트에 다시 한 번 돌아갈 기회를 얻는다. 스페이스 채널 파트 2는 원작에서 추구했던 비전을 완벽하게 현실화한 작품이다. 첫번째 작품이 단순한 아트 프로젝트였다면 후속작은 포텐셜이 완전히 열린 대작이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레즈를 통해 얻은 경험들은 우라라의 세계에 고스란히 적용되어 독특한 인터렉티브 뮤지컬이 창조되었다.

전작에서는 프리랜더링된 배경이 사용되어 전경과 후경이 살짝 싱크가 어긋난 경우도 있었으며 화면 연출에 상당한 제약이 있었지만 후속작에서는 더욱 스타일리쉬하면서도 디테일이 넘치는 리얼 타임 공간을 통해 화면이 좀 더 생동감을 갖게 되었다.

게임플레이 자체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두번째 액션 버튼이 더해진 것이나 숨겨진 보너스 요소를 제외하면 전혀 변한 게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러나 게임의 외형은 완전히 새로운 수준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새련되게 다듬어져 있었다. 포로를 구출하면 음악에 때로는 미묘하게 때로는 분명하게 변화가 이루어진다. 우라라는 댄스 뿐만 아니라 악기나 노래로도 적들과 대결할 수 있었으며, 이러한 부분들이 모여 궁극적으로 ('스페이스 마이클' 잭슨을 포함한 전체 밴드가 구성되었다. 전작으로부터 고작 2년의 시간이 흘렀을 뿐이었지만, UGA는 스스로의 기준을 훨씬 뛰어넘는 성과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유나이티드 게임 아티스트는 드림캐스트의 몰락 이후 새로운 작품을 더 이상 만들지 못했다. 새미와의 합병 이후, 스투디오는 소닉 팀과 통합되었으며 미츠구치 테츠야는 독립하여 Q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였다. UGA의 모든 게임들은 PS2로도 이식되었지만, 그들이 남긴 업적은 드림캐스트를 빼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들의 정신은 소닉 팀으로 이어져 필 더 매직이나 럽 래빗 같은 독특한 게임이 나오는 배경이 되었지만, 그들이 전성기 때 보여준 그 감각은 그 이후로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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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트래비스 파스 (Travis Fahs) / 번역: 페이비안 / 원문 게시일: 2009.9.7 / 출처: IGN Retro

* IGN.com으로부터 출처 표기를 조건으로 전문 번역 허가를 받은 글입니다.

* 세가 팬이시라면 또 다른 IGN 번역연재 '눈물없인 볼 수 없는 세가의 역사'도 읽어보세요. 좀 더 세가라는 회사 쪽에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습니다. (이번 글은 드림캐스트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좀 더 집중하여 전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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