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트메이커 (Hitmaker)

1991년에 구성된 AM3는 세가의 주력 아케이드 개발 스투디오 중 하나였음에도 불구하고 AM2의 명성에 가려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AM3는 32비트 시절 세가 랠리와 버추얼 온과 같은 명작들을 만든 바 있었으며 그 밖에도 3D의 초창기를 수 놓은 많은 명작들을 선보였다. 미츠구치 테츠야가 UGA를 이끌기 위해 수장의 자리에서 물러난 후, AM3는 오구치 히사오의 지휘 하에 조직개편을 맞이하게 된다.  

비록 새로운 스투디오들에게 상당한 자유가 주어지면서 이들 역시 굳이 아케이드 부문을 고집할 필요는 없었지만, 히트메이커는 아케이드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않았다. 새로운 나오미 기판 덕분에, 어짜피 아케이드와 콘솔은 함께 가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다. 히트메이커로 이름을 바꾼 그들의 첫번째 프로젝트는 그동안 아케이드에서 지겹도록 울궈먹은 레이싱 장르에 신선한 아이디어를 통해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작품이었다.

아케이드 시장이 가파르게 몰락의 길을 걷고 있던 90년대 후반, 게임 센터는 건 슈팅, 격투, 음악 그리고 레이싱 게임들만으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으며, 새로운 게임들조차도 장르의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세가에서는 이미 이머전시 콜 앰뷸런스(Emergency Call Ambulance)나 할레이 데이비슨 앤 LA 라이더스 (Harley Davidson and LA Riders) 같은 작품들을 통해 레이싱 장르의 변화를 모색한 바 있으나 일반적인 선형적 전개에서 선택 분기만이 추가된 형태에 불과했다. 오구치는 아케이드 레이싱의 스릴과 샌드박스 장르의 자유도를 결합하는 혁신적인 게임을 구상하고 있었다.


크레이지 택시는 기존의 체크포인트 대신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도시 내에 저마다의 목적지를 가진 승객들을 배치하였다. 이 게임은 단순히 기술만을 요구하는 게임이 아니었다. 승객을 태우고 내리는 데에는 나름의 전략적인 고려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과장된 물리적 요소들과 미국 서부를 테마로 한 매력적인 도시를 바탕으로 하여 샌 프란시스코 러시와 아웃런의 요소들도 섞어 놓은 크레이지 택시는 완전히 새로운 데다가 잘 다듬어지기까지 한 멋진 팝-펑크 패키지로 새롭게 태어나게 되었다.

크레이지 택시는 발매 즉시 모든 게임 센터의 필수 게임이 되었으며, 눈에 분명히 띠는 노란색 아케이드 박스는 곧 발매될 가정용 버전에 대한 자연스러운 홍보이기도 했다. 아케이드 발매 후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드림캐스트 버전이 아케이드 완전 이식의 형태로 등장하였다. 가정용 버전에는 새로운 도시가 추가되었지만 그 밖에 다른 추가점은 없었다. 아케이드 원작에 충실한 대신 가정용에 어울리는 스토리 모드가 배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라도 가볍고 신나게 즐길 수 있었기 때문에 크레이지 택시는 드림캐스트의 몇 안되는 밀리언 셀러 중 하나에 등극하였다. 15분짜리 한 판만 즐기려고 생각하다가도 순식간에 수 시간씩 몰입하게 만드는 것이 크레이지 택시의 매력이었다.

히트메이커는 크레이지 택시를 통해 그 이름을 널리 알렸으며 이어지는 스포츠 장르에의 도전도 성공적이었다. 버추어 테니스 역시 그 단순한 형태로 인해 비디오게임에서 숱하게 활용되어 왔던 테니스를 소재로 한 게임이었지만, 등장하자마자 테니스 장르 자체를 부활시키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테니스를 소재로 한 게임들은 그 본질에 있어서 아타리 시절의 퐁(Pong)에서부터 전혀 변하지 않았었다.

버추어 테니스는 아케이드의 단순함과 즉각적인 접근성에 파고들수록 조금씩 깨우치게 되는 현실적이고도 미묘한 플레이 감각을 접목시켜 가벼운 게임을 원하는 캐주얼 게이머나 오랫동안 즐기며 실력을 쌓아가길 원하는 스포츠 게임 팬들 모두를 만족시키는 데 성공하였고, 덕분에 테니스 게임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왔던 큰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버추어 테니스는 드림캐스트의 가장 강력한 타이틀 중 하나가 되었으며 속편도 그리 오래지 않아 등장하게 되었다. 닌텐도는 이듬 해에 마리오 테니스로 대응했으며 그 밖에 많은 개발사들도 버추어 테니스가 일으킨 테니스 게임 붐에 동참하게 되었다.

크레이지 택시에 이어 아케이드에 선보인 잠보! 사파리(Jambo! Safari)는 오픈 월드 드라이빙과 올가미 사냥을 결함하여 마치 낚시 게임을 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게임이었지만 크레이지 택시 수준의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고 드림캐스트로도 이식되지 않았다. 대신 드림캐스트만을 위한 크레이지 택시 2가 뉴욕을 모티브로 하는 두 개의 추가 스테이지와 점프 매커니즘과 함께 등장하였다. 속편은 오리지널 크레이지 택시만큼의 평가를 받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인상적인 판매량을 기록하였다.

히트메이커는 제임스 본드와 버추어 캅을 믹스한 건슈팅 게임 컨피덴셜 미션과 버추얼 온 2의 드림캐스트 버전을 통해 약간씩의 성공을 거두었지만 초기에 보여줬던 화려한 성과를 재현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2001년 3월, 드림캐스트의 생산이 영원히 중단된 바로 그 즈음에 내놓은 그들의 마지막 작품은 팬들의 뇌리에는 잊지 못할 게임으로 영원히 남게 된다.

세가가가는 지금까지도 게임이라는 장르 내에서 가장 독특한 자기 인용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남아있다. 팬들의 의지를 통해 승리를 거두는 판타지 내면에는, 세가 스스로가 자신의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는 숙명론적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시뮬레이션과 RPG이 결합된 세가가가에서 플레이어는 세가의 수장이 되어 세가 캐릭터들이 실제로 존재하고, 기업들은 단지 매출로 싸우는 게 아니라 실제 배틀을 벌이는 가상의 세계에서 세가의 존립을 위한 모헙을 펼치게 된다. 표면상으로 이 게임은 마치 세가가 스스로에게 바치는 오마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세가가 팬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애정과 감사의 표시였다. 그 누구도 아닌, 세가에게만 어울리는 방식으로 말이다.


세가가가의 별난 컨셉과 자사에 대한 패러디는 드림캐스트 시절에 개발자들에게 얼마나 큰 창조적인 자유가 주어졌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오카노 '테즈' 테츠가 오구치에게 게임의 컨셉에 대해 설명했을 때, 오구치는 이를 농담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어쨌거나 무척 작은 규모의 예산이 할당되었지만, 프로젝트는 팀원들의 애정어린 노력을 통해 계속 진행되었고, 이들은 부족한 예산을 최대한 활용하여 스토리 스스로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임을 만들고자 했다. 세가가가의 개발은 셴무의 그늘 아래에서 진행되었지만, 프로젝트의 끝 무렵에는 셴무 시리즈도 드림캐스트를 결국 구원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 분명해지고 말았다.

히트메이커는 그들만이 가능한 방식으로 팬들을 위로했다. 세가가가의 마지막에 결국 세가는 문을 닫고 마는데, 그 후에 플레이어는 동네 게임 가게에서 일하고 있는 알렉스 키드를 만나게 된다. 소닉에게 세가의 마스코트 자리를 넘겨주고 뒷방으로 밀려난 경험이 있는 알렉스 키드는 영광과 인기가 넘치는 자리에서 밀려 떨어지는 것이 어떤 아픔을 주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플레이어에게 이러한 변화가 피할 수 없는 것이며, 모든 위대한 순간은 그 끝이 있는 법이라는 것을, 그리고 중요한 것은 언제나 앞을 향하여 전진하는 것이라는 점을 설명한다. 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세가의 끝을 선언하는 상징적인 순간이었으며, 이렇게 아픈 추억을 통해 우리 모두가 배우게 된 교훈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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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트래비스 파스 (Travis Fahs) / 번역: 페이비안 / 원문 게시일: 2009.9.7 / 출처: IGN Retro

* IGN.com으로부터 출처 표기를 조건으로 전문 번역 허가를 받은 글입니다.

* 세가 팬이시라면 또 다른 IGN 번역연재 '눈물없인 볼 수 없는 세가의 역사'도 읽어보세요. 좀 더 세가라는 회사 쪽에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습니다. (이번 글은 드림캐스트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좀 더 집중하여 전개됩니다.)

* 게임역사 및 기타 게임관련 번역글 더보기 (클릭)

* 크레이지 택시 때문에 패달까지 달린 핸들 악세사리를 처음 샀더랬습니다. 아케이드 판이랑 비슷하게 만들 거라고 굳이 서서 했더랬습니다. 세가가가는 딱 보고 왠지 엔딩이 처절할 거 같아서 안했더랬습니다. 10년만에 예상 적중했음을 알았군요. ㅋ

* 이 글로 레트로그 포스트 수가 딱 400개를 기록했습니다. (비공개글 포함) 블로그명을 변경하면서 추구했던 목표와는 다르게 계속 번역 블로그 쪽으로 치우치는 듯 하지만, 어쨌거나 들르시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블로그가 되었으면 합니다. 50만 히트 이벤트에 당첨되신 기드님, 쾌도 쿤님, 키리님께는 각각 원하시는 게임을 다음주 월요일에 배송할 예정입니다. 늦어서 죄송하고요. ^^;;

* 저 트위터도 시작했습니다! 게임 좋아하시는 분들께서 퐐로좀 해주세요. 굽신굽신~ 트위터 계정은 heejaeC입니다. Follow me on Twit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