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를 장식할 도전

사카구치 히로노부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스퀘어에 입사하였다. 당시 21세였던 그가 일반 소프트웨어 회사였던 스퀘어에서 맡았던 역할은 컴퓨터 게임의 영역으로의 사업 확장이었다. 닌텐도의 패미콤으로 가정용 게임기 시장이 활성화되고 있었으며 어드밴처와 RPG 같은 서양쪽 장르들이 일본 게임기에 서서히 침투하여, 곧 단순하고 오래된 아케이드 슈팅을 밀어내고 가장 주목받는 장르가 되던 시기였다.

일본에서 RPG 장르의 분수령은 1986년 패미콤으로 드래곤 퀘스트가 등장했을 때였다. 위저드리나 블랙 오닉스 같은 게임들도 일본에 소개된 바 있었지만 에닉스의 드래곤 퀘스트는 이러한 RPG의 요소들을 보다 단순하고 재미있게 재구성하여 가정용 게임기 유저들에게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만든 타이틀이었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젤다의 전설과 함께 드래곤 퀘스트는 패미콤의 초창기를 장식한 대표작이 되었고, 이들 게임으로 인해 패미콤은 새로운 경지의 성공을 이루게 된다.

1986년의 이러한 분위기 속에 스퀘어는 자사의 초창기 게임들을 발매한다. 사카구치는 몇 개의 그래픽 어드밴처를 선보였고, 스퀘어의 다른 스텝들은 스퀘어의 최초 오리지널 RPG인 '크루즈 체이서 블라스티'라는 게임을 내놓는다. 그 다음 해, 스퀘어는 패미콤으로 꽤 쓸만한 유사 3D 게임들을 개발하는데, '토비다제 대작전'과 '하이웨이 스타'는 북미에서도 '3D 월드러너'. '라드 레이서'라는 이름으로 선보여 주목을 받았다. 스퀘어의 게임 개발은 그 퀄리티 면에서 탄력을 받기 시작했으나 문제가 하나 있었다. 게임 판매량이 그다지 신통치 않았던 것이다.


사카구치는 회사의 미래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었고, 결국 회사는 도산의 위기마저 맞이하게 된다. 다음에 만드는 게임이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될 것임을 직감했던 사카구치는 후회 없는 명작을 만들고 깨끗하게 게임 개발에서 손을 때기로 결심한다. 판타지 세계에서의 서사시를 마지막 작품의 테마로 잡은 그의 작품은 말 그대로 '파이날 판타지'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이름이 갖는 진실성(?)이 나중에 게임 팬들 사이에 회자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이 보다 더 적절한 이름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파이날 판타지는 당시 RPG 게임들의 구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게임이었다. RPG 장르는 아직 포화상태는 아니었지만 경쟁은 치열했다. 파이날 판타지는 세가의 판타지 스타와 같은 주에 발매되었으며 그로부터 두 달 후에는 드래곤 퀘스트 III의 발매가 예정되어 있었다. 팬들은 지금까지도 이들 중 어느 게임이 최고인가를 놓고 설전을 벌이고 있지만, 이들 모두가 RPG 장르를 메인스트림에 올려놓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드래곤볼의 작가인 토리야마 아키라를 디자이너로 끌어들인 에닉스와 대적하기 위해, 스퀘어는 뱀파이어 헌터 D를 통해 명성을 얻은 독특하고 심오한 스타일의 아티스트, 아마노 요시타카를 기용한다. 여기에 우메마츠 노부오의 아름다운 사운드트랙이 가세한 파이날 판타지는 상당한 완성도를 갖춘, 누구라도 한 번쯤 해볼만한 게임이 되었다. 

이 첫번째 게임이 파이날 판타지를 단숨에 RPG계의 제왕으로 등극시킨 것은 아니지만, 스퀘어를 재정적 위기에서 최소한 잠깐이라도 구원할 수 있을 정도의 성공은 거두었다. 스퀘어가 나중에 컴퓨터 게임 시장에서 손을 떼고 콘솔에 집중하여 전세계적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계기가 된, 닌텐도와의 길고도 끈끈한 밀월관계도 바로 이 게임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파이날 판타지가 북미에서 발매된 것은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였다. 이미 판타지 스타와 드래곤 퀘스트(북미판은 드래곤 워리어라는 제목이었다.), 심지어 16비트로 발매된 판타지 스타 II보다도 늦은 시점에 발매된 파이날 판타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미에서 이들보다 앞선 판매량을 보여주었다. 많은 북미 콘솔 게이머들은 파이날 판타지를 통해 처음으로 이토록 넓고, 깊은 세계로의 몰입을 경험하였다. 게이머는 그의 첫번째 RPG를 결코 잊지 못한다. 스퀘어는 엄청나게 든든한 지원군을 얻게 된 것이다. 


다시 또 한 번

해외로의 진출이 아직 가시화되지 않았던 시점부터 스퀘어는 파이날 판타지의 속편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드래곤 퀘스트가 매 해 새로운 게임을 선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스퀘어도 서두르지 않으면 뒤쳐지고 만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스퀘어는 전작에서 단순히 퀘스트를 확장하거나 클래스를 늘리는 방식 대신, 전작과의 연계성은 최소화하고 게임플레이 요소를 진화시키는데 최선을 다하며 뭔가 새로운 것을 창출해내는 쪽으로 파이날 판타지 시리즈의 방향성을 잡았다. 드래곤 퀘스트가 기존의 형식을 최대한 보존하는 반면, 파이날 판타지 시리즈는 지속적으로 뭔가 새로운 것을 찾아나가게 된 것이다.

사상 최초로 스퀘어에서는 네러티브를 게임 전면에 부각시켰다. 전편이 비교적 심플한 스토리에 주인공들도 쉽게 바꿀 수 있는 일반적인 캐릭터였던 반면, 판타지 스타 같은 경쟁작들은 풍부한 스토리에 이벤트신까지 구성되어 있었다. 파이날 판타지 II는 아마노 요시타카가 디자인하고 이름까지 갖춘 캐릭터에, 전작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새로운 세계에서 펼쳐지는 보다 복잡하고 심오한 스토리라인을 갖춤으로서 이들을 뛰어넘는 작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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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러스 멕러린(Rus McLaughlin) / 번역: 페이비안 / 원문 게시일: 2009.6.26 / 출처: IGN Retro

* IGN.com으로부터 출처 표기를 조건으로 전문 번역 허가를 받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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