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게임 매커니즘에 대한 독특하고 실험적인 접근 방식으로 유명해지는 카와즈 아키토시가 처음 그의 색깔을 보여준 게임이 바로 파이날 판타지 II였다. FF2의 레벨업 방식은 매우 독특했는데, 레벨이 올라 캐릭터의 전체적인 스텟이 상승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한 기술에 대해서 개별적인 능력의 향상이 이루어지는 방식이었다. 예를 들어 검을 사용하는 캐릭터는 검에 대한 숙련치와 공격력이 향상되고, 마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마법을, 궁술을 높이려면 활을 열심히 쏘아야 하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최대 HP마저 적의 공격을 많이 받을수록 높아지는 방식이었다. 

기획서 상에서는 이러한 아이디어가 게임에 깊이를 더하는 멋진 생각이었을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게이머들이 캐릭터의 레벨을 높이기 위해 조금은 가학적으로 캐릭터들이 적에게 공격당하는 것을 그대로 방치하는 상황이 전개되었으며, 가뜩이나 노력이 많이 드는 레벨업 작업이 더더욱 고통스러운 과정이 되어버렸다. 나중에 만들어진 리메이크 작품들은 이러한 부분을 많이 희석시켰지만, 결국 카와즈 아키토시는 파이날 판타지 XII에 이르기까지 파이날 판타지의 메인 시리즈에 참여하지 않게 되었고 대신 스퀘어의 보다 실험적인 작품이었던 SaGa 시리즈를 담당하게 된다.

파이날 판타지 1편이 북미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스퀘어는 속편 역시 북미에 내놓기로 결정한다. 1편의 현지화 작업을 닌텐도에서 담당했던 반면, FF2의 경우에는 새롭게 설립된 스퀘어의 미국 지사에서 로컬라이제이션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직 충분한 경험이 없었던 탓에 현지화에 대한 충분한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번역 작업 역시 기술적으로 많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프로젝트가 지지부진하자 스퀘어는 FF2의 현지화 작업을 전면 취소하고 차세대기로 처음 발매되는 파이날 판타지 IV에 집중하기로 한다. 

파이날 판타지 II는 1편만큼의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팬들이 떠나가 버릴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지만, 파이날 판타지 시리즈에 새로운 추진력을 부여하는데에도 실패한 게임이었던 것이다. 레벨 업 시스템에는 많은 문제가 있었지만, FF2는 귀여운 초코보와 시드라는 캐릭터 등 향후 시리즈로 이어지는 다양한 흔적들을 남겼다. 

사카구치와 그의 팀이 다시 모여 파이날 판타지의 다음 작품을 준비할 무렵, 8비트 게임기의 시대는 서서히 저물고 있었다. 그들은 전작에서 실패했던 부분을 면밀히 검토하고 라이벌 게임들의 장점들을 철저히 분석하여 전편들을 뛰어넘는 작품을 만들고자 했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용량인 4메가비트 카트리지에 담긴 파이날 판타지 III는 진정한 대작이었다. 1편에서처럼 캐릭터에 특정한 이름을 부여하지 않는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게이머들은 게임을 진행하면서 스스로의 입맛에 맞게 캐릭터들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 게임 시작 시 설정할 수 있는 다섯 개의 클래스에 안주하는 대신, 게이머들은 게임을 진행하면서 다양한 직업(Job)을 넘나들 수 있었는데, 이를 통해 20개가 넘는 클래스 속에서 캐릭터의 독특한 능력치를 키워나갈 수 있었다. 이는 드래곤 퀘스트 III의 레벨 업 시스템과도 어느 정도 유사한 감이 있었지만 향후 파이날 판타지 시리즈에서의 클래스 시스템의 근간을 세우는 계기가 되었으며, 특히 파이날 판타지 택틱스 시리즈에 큰 영향을 미쳤다.


파이날 판타지 III에 대한 게이머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지만 비교적 빠르게 팬들의 뇌리에서 잊혀져 간 게임이 되었다. 시리즈의 다른 게임들이 계속해서 리메이크가 되었던 반면, 파이날 판타지 III는 2006년 닌텐도 DS로 리메이크되기까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래스, 어빌리티, 스킬 체계를 확립함은 물론 사랑스러운 모그리들이 처음 등장하는 등 파이날 판타지 III는 시리즈 역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게임임에는 분명하다. 


다음 세대로...

차세대 게임기로의 전환은 기회인 동시에 위기이기도 하다. 기존 시리즈를 새로운 단계로 업그레이드하는 기회가 될 수 있기도 한 반면, 기존 게임기를 통해 확보해 두었던 팬 베이스를 다시 처음부터 쌓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파이날 판타지 III는 세가의 16비트 게임기인 메가 드라이브가 발매된 이후, 그리고 닌텐도의 슈퍼 패미콤이 발매되기 직전이라는 미묘한 타이밍에 등장했었으며, 스퀘어에서도 시리즈가 언젠가는 16비트 세대로 넘어가야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이러한 전환기로 인한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스퀘어는 파이날 판타지 시리즈의 게임 두 개를 동시에 개발하기로 한다. 파이날 판타지 IV로 명명된 첫번째 게임은 다시 한 번 8비트 패미콤 용으로 만드는 반면, 파이날 판타지 V는 새롭게 등장할 슈퍼 패미콤 용으로 개발하기로 한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향후 시리즈를 두 팀으로 나누어 번갈아 가며 개발하는 파이날 판타지 시리즈의 제작 방식에 영향을 미치긴 했지만, 1990년 당시의 스퀘어로서는 아직 감당하기 벅찬 작업이었다. 초기 기획단계를 지나자 마자 스퀘어는 두 개의 게임을 동시에 개발할 수 있는 재정적인 능력이 갖추어지지 못했다고 판단하고, 본격적인 개발 단계에 이르기 전 조용히 패미콤용 게임의 개발을 중단한다. 이 프로젝트에 투입되었던 인력은 다시 슈퍼패미콤용 게임쪽으로 돌려졌고, 이 16비트용 파이날 판타지가 파이날 판타지 IV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클릭하시면 FF4의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FF IV: After Years'의 WiiWare 게임화면으로 넘어갑니다.


기존 작품들도 게임의 밑바탕이 되는 게임플레이 요소들에 큰 변화를 주어 왔지만, FF4에서는 이러한 게임플레이 요소들이 보다 유저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또한 그렇게 함으로써 게임플레이가 파이날 판타지의 매력적이고 장대한 스토리를 뒷받침할 수 있는 방향으로 다듬어졌다. 이름 없는 캐릭터들이 등장하던 전작과 달리, 이번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가진 매우 많은 수의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이러한 캐릭터 구성을 통해 유저들에게 다양한 클래스에 대한 경험을 제공함과 동시에, 다양한 캐릭터들이 얽혀서 풀어내는 보다 복잡한 스토리 구성이 가능해졌다. FF4 역시 기존 게임들과 마찬가지로 중세 판타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지하세계와 우주에 이르는 다양한 배경과 함께 지금까지의 게임과는 차원이 다른 다양함을 갖춘 세계관을 팬들에게 선보일 수 있었다.

게임플레이에 있어서도 액티브 타임 배틀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전투에 획기적인 변화가 이루어졌다. 캐릭터들마다 공격 이후에 그 캐릭터의 스탯에 따라 다음 공격까지 딜레이 시간이 있는데, 이를 통해 게이머는 보다 빠른 캐릭터와 보다 빠른 판단으로 게임을 좀 더 유리하게 가져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세이브 포인트 역시 FF4에서 새롭게 도입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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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러스 멕러린(Rus McLaughlin) / 번역: 페이비안 / 원문 게시일: 2009.6.26 / 출처: IGN Retro

*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번역 연재가 늦어지고 있는 점 사과드립니다. 너그러운 양해를 부탁드릴께요~

* IGN.com으로부터 출처 표기를 조건으로 전문 번역 허가를 받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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