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날 판타지 VII의 개발은 스퀘어로서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FF6의 개발도 그 당시 기준으로는 엄청난 규모라고 할 수 있는 50명의 개발 인원이 투입된 대형 프로젝트였는데, 이번에는 이마저도 훌쩍 뛰어넘는 규모가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사카구치는 FF7에서 다시 디렉터의 역할을 맡고자 했으나 프로젝트 팀의 크기가 점점 커지면서 프로듀서 역할만으로도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개발이 본 궤도에 올랐을 때, 전체 프로젝트 팀의 인원은 FF6에 참여했던 인원의 네 배가 넘는 크기로 불어났다. 사카구치가 총괄 프로듀서로 팀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는 반면, 크로노 트리거의 개발을 통해 좀 더 성숙해진 기타세 요시노리가 다시 디렉터의 자리를 맡게 되었다.

CGI 그래픽에 대해서는 단지 6개월 정도의 경험 밖에 없었던 스퀘어로서는 개발 초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조각이 하나씩 둘씩 맞추어져 가면서, 팀원들은 자신들이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기타세는 개발 초기부터 FF7이 선사하는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고 새로운 세계가 북미 게이머들에게 크게 어필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두려워한 것은 오히려 좀 더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일본 게이머들이 FF7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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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FF7의 변화는 피상적인 수준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 실제로 게임플레이 면에서는 크게 변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변화가 가져온 파장은 대단했다. 비유를 하자면, 각본에서만 존재하던 이야기를 보는 것과 실제 극장에 걸린 영화를 보는 차이였던 것이다. 게임 중간에 여주인공이 맞이하는 극적인 죽음이 크게 화제가 되었지만, 사실 이전 판타지 스타 시리즈에서도 이러한 플롯이 사용되었고 파이날 판타지 시리의 전작에서도 유사한 전개가 있었기에 완전히 새로운 아이디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세심한 디테일과 영화적인 연출이 가져다주는 감각은 작은 스프라이트와 대화 상자로 느낄 수 있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결코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되었던 것이다.  

스퀘어에서는 자사의 3D 격투 게임인 토발 No.1에 FF7의 데모 디스크를 부록으로 포함시켰고, 전 세계가 드디어 플레이 가능한 버전의 FF7을 처음 맛볼 수 있었다. 기대감은 일본과 북미 양 쪽에서 점점 더 높아져 갔고, 많은 게임 매체들이 앞다투어 FF7 특집을 기획했지만, 이 게임이 얼마나 큰 성공을 거둘 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 여러 번의 연기로 인해 파이날 판타지 VII은 1997년에 이르러서야 등장할 수 있었는데, 결과물은 기다림을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을 작품이 되었다. FF7은 발매 후 단 3일 만에 200만 카피가 팔렸으며, 총괄적으로는 전세계 총합 천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파이날 판타지 시리즈가 등장한 적이 없던 유럽에서도 큰 인기를 얻은 덕분이기도 하다.)


RPG의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다. FF7은 향후 발매되는 일본식 RPG 게임들에 아주 명확한 영향을 미쳤다. 화려한 이벤트 신과 디테일한 배경은 RPG 게임의 필수 요소가 되었고, 덕분에 이러한 연출을 위한 용량이 부족했던 닌텐도 64에서는 RPG 게임을 찾아보기 무척 힘들게 되었다. 서양쪽에서도 FF7의 파급효과는 분명했다. 소니의 부사장이었던 버니 스톨러(Bernie Stolar)가 한 때 플레이스테이션의 성능을 보여주는 데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로 배척했던 RPG 장르였지만, PS의 시장 지배력을 굳건히 했던 것은 다름 아닌 일본식 RPG인 FF7이었던 것이다.

파이날 판타지 VII이 특출나게 혁신적인 게임이라고 하긴 힘들다. 프리랜더링 방식의 배경과 CGI 이벤트 신 같은 요소는 이미 다른 게임들에서 시도된 것들이었고, 게임플레이 자체는 파판 시리즈의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그러나 스퀘어는 기존에 알려진 이 모든 요소들을 바탕으로 전세계 게이머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작품을 빚어내었고, 북미 콘솔 게이머들이 RPG에는 관심이 없다는 당시의 일반적인 상식을 깨부수어 버렸다.

많은 이들에게, 특히 북미와 유럽 게이머들에게 파이날 판타지 VII는 그들의 첫 번째 RPG였다. 그 이유 하나 만으로도 팬들의 감정 이입과 충성도 면에서 32비트 콘솔 시대에 존재했던 다른 무수한 RPG들과 FF7은 감히 견줄 수 없는 차이가 있었다. 지금 시점에서 냉정하게 돌아보면 FF7도 결코 완벽한 게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아직도 스퀘어에서 FF7의 캐릭터를 기반으로 한 어드밴트 칠드런이나 더지 오브 캘베로스 같은 상품을 만들 수 있는 것은 FF7이 팬들의 가슴 속에 진정으로 오래 가는 감흥을 남겼기 때문일 것이다.

파이날 판타지 VII는 시리즈의 커다란 전환점이었으며 상업적으로도 정점에 해당하는 타이틀이었다. 이어서 이어지는 시리즈의 작품들이 FF7이 남긴 여러 기록에 도전하였지만, 그 아성을 깨는 데 성공한 작품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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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러스 멕러린(Rus McLaughlin) / 번역: 페이비안 / 원문 게시일: 2009.6.26 / 출처: IGN Retro

* IGN.com으로부터 출처 표기를 조건으로 전문 번역 허가를 받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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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팬도 많고 안티도 많은 FF VII이지만, 저는 대학생활을 이 녀석과 같이 시작하기도 했고... 많은 추억들이 이 게임을 즐기던 시절과 엮여 있어서 잊을 수 없는 게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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