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GN 특집기사: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의 역사
글 / 러스 맥러힌 (Rus McLaughlin)
2007년 11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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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구도의 형성
마리오는 이미 이 시점에서 열 개가 넘는 휴대용 게임에 등장했으며 이 중 대부분이 게임&워치 타이틀이었다. 그러나 미야모토의 스승 격인 요코이 군페이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휴대용 게임기인 '게임보이'를 개발함에 따라 야마우치 회장은 (당연하게도) 마리오를 즉시 투입하기로 했다. 요코이의 개발1팀은 1989년에 게임보이용으로 최초로 발매되는 마리오 게임의 개발에 착수했고, 이 게임은 미야모토 시게루가 전혀 참여하지 않는 최초의 마리오 게임이 되었다.
게임보이용 '슈퍼 마리오 랜드'는 마리오가 비행기나 잠수함을 타고 슈팅 게임처럼 진행되는 부분을 포함한 12개의 잘 구성된 레벨을 갖추었다. 기본적인 스토리는 마리오가 버섯 왕국을 떠나 살랄라랜드에서 데이지라는 이름의 또 다른 공주를 사악한 우주인 타탕가에게서 구해내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속편인 슈퍼 마리오 랜드 2에서는, 버섯 왕국으로 돌아온 마리오가 버섯 왕국을 점령한 새로운 적인 와리오와 대결하게 된다.
요코이가 만들어낸 마리오 게임으로 인해 게임보이는 패미콤 이상의 인기를 얻게 되어 닌텐도의 최고 히트 콘솔의 영광을 차지하게 되었으며, 게임 자체도 마리오 3의 판매량에 육박했다. 반면 같은 해에 닌텐도는 조직 개편을 단행하여 개발4팀은 닌텐도 EAD (Entertainment Analysis and Development)가 되었으며, 이에 따라 미야모토는 닌텐도의 차세대기인 슈퍼패미콤 (미국 명칭 SNES)로 발매되는 모든 게임에 대한 책임과 권한을 가지게 되었다. 미야모토는 즉시 슈퍼패미콤 발매동시 타이틀로서 새로운 마리오 게임의 개발에 들어갔다.
시장 상황은 NES 발매 때와는 달랐다. 닌텐도에게는 강력한 경쟁자인 세가에서 2년 전에 발매한 제네시스라는 게임기가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었고, 또한 소닉 더 헤지독이라는 강력한 마스코트가 새로운 경쟁자로 등장했다. 소닉은 더 빠르고, 더 세련되며, 악동 같은 이미지로 컨셉부터 안티-마리오라는 걸 누구도 알 수 있었다. 세가에서는 이러한 부분을 강력히 홍보하였으며, 제네시스는 닌텐도가 갖추지 못한 부분을 확실하게 공략해 나가고 있었다. 소닉과 비교할 때 마리오는 너무도 수수하고 희생적인 이미지로, 소닉처럼 왠지 위험해 보이기도 하는 반영웅의 이미지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닌텐도의 중역들은 이런 부분들을 우려했으며, 이러한 걱정은 결국 미야모토에게 새로운 게임의 개발 일정을 재촉하는 압박으로 다가왔다.
슈퍼 마리오 월드는 1991년에 SNES의 발매와 함께 등장했으며 소닉 1편과 2편을 합친 판매량보다도 2배가 넘게 팔려나갔다.
16비트 세상으로 넘어온 마리오 게임은 그래픽, 사운드, 게임성 모든 면에서 기존의 마리오 게임에 비해 월등히 향상된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1편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게임의 판매량을 넘어선 인기를 보여주었다. 거대한 포탄을 떨어뜨리고, 스타로드로 가는 숨겨진 길을 발견하는 재미에 더해 스핀 어택은 파이어 마리오의 능력과 적절히 조합되었으며 숨겨진 블럭을 통해 회전문도 만들어지는 등 새로운 요소들에 게이머들은 열광했다. 바우저가 돌아왔고, 마리오의 절친한 친구, 요시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개발1팀은 오리지널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에서부터 마리오를 공룡 위에 태우는 컨셉을 기획했으나 당시 하드웨어의 한계로 인해 포기했었다. 요시는 다양한 색상에 그 색에 대응하는 특수 능력을 갖추고 있었으며 게이머들의 너무도 많은 사랑을 받은 나머지 슈퍼 마리오 월드 2: 요시 아일랜드는 게이머가 마리오를 조작하는 것이 아닌, 베이비 마리오를 안전하게 보호해야 하는 요시에 완전히 초점이 맞추어지게 되었다.
마리오라는 캐릭터는 1984년 골프 게임에 등장한 이래로 거의 모든 장르와 게임 타입에 등장하였으며, 9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그가 등장하는 게임보다 캐릭터 자체가 비디오게임을 대표하는 이름이 되었다. 마리오는 농구, 테니스, 핀볼, 체커, 낚시, 바이크경주, 스노우보드를 즐기는 만능 스포츠맨이며, 댄스 댄스 레볼루션에 참여하기도 하고, 의사로서 테트리스와 유사한 퍼즐을 풀기도 했다. 루이지는 사라진 마리오를 찾아 카멘 센디에고의 절벽을 탐험했으며, 마리오는 숫자, 글자, 타이핑, 그림, 그리고 손뜨게 등의 교육 타이틀에도 등장했다.
어떤 장르는 마리오로 인해 새로 생겨나기도 했다. 마리오카트는 1992년 발매와 함께 기존의 복잡한 레이싱과 대비되는, 쉽고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레이싱 장르를 확립했다. 중간 중간 등장하는 랜덤 파워-업 아이템 덕분에 게임은 예측할 수 없는 재미를 주었는데, 총과 미사일 대신 날아가는 거북등껍질과 적들을 조그맣게 만들어 밟아버릴 수 있는 번개 등이 신선한 무기로 등장했다. 이어지는 속편에서는 동시에 플레이할 수 있는 인원 수가 4명으로 늘어났으며, 이후 모든 게임 시스템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카트 레이싱 게임에도 등장해야 하는 트랜드를 만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마리오의 원점이라고 할 수 있는 플랫폼 게임에 있어서는 상황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미야모토는 마리오의 '진정한' 속편은 모든 면에서 완전히 새로운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5년 간에 이르는 여러가지 실험들이 만족할 만한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는 새로운 마리오를 현재의 게임기에서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으며, 이로 인해 마리오와 루이지의 SNES에서 마지막 모험은 플랫폼 게임이 아닌, 'Legend of Seven Stars'라는 RPG 게임의 형태가 되었다.
코드네임 슈퍼 마리오 FX로 불리웠던 미야모토의 미완성 프로젝트는 최초의 3D 플랫폼 게임을 지향하고 있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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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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