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텐도의 패밀리 컴퓨터, 흔히 패미콤이라 불렸던 가정용 비디오게임기가 일본에서 발매된 것은 1983년이지만, 실제로 큰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슈퍼마리오브라더스가 등장한 1985년 이후의 일이다. 내가 초등학교 (당시는 국민학교)에 입학한 해가 바로 그 1985년이었지만, 패미콤이 우리집에 들어온 것은 아마도 그보다는 한참 뒤의 일일 것이다.
당시는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된 시대도 아니었고, 게임&워치 수준의 단순한 전자게임기조차 호사스러운 놀이라고 여겨지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일본에서 대히트를 기록한 패미콤이 이런저런 경로를 거쳐 동네 근처 백화점 장난감 코너에 비치되고, 그걸 얻기 위해 몇 번의 중간/기말 시험에서 부모님이 납득할 만한 성적을 보여 상으로 패미콤을 구입해 우리집 TV에 연결하게 되기 까지는 아마도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아무튼, 당시에는 나름 널널하던 초등학교 시절에 저 게임기를 얻고야 말겠다는 각오 하나로 성적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게끔 해주었던 패미콤은 지금 돌이켜 볼 때 무척 고마운 물건이었음이 틀림없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이유로 저 게임기가 갖고 싶었던 걸까. 아마도 아까 언급한 동네 근처 백화점 장난감 코너, 그 유리 진열장에 열과 오를 맞춰 멋진 그림들과 함께 자태를 뽐내던 패미콤용 팩들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도 용산 등지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나름 인기 있는 소프트가 진열대에 펼쳐져 있는 그런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당시에는 '알팩'이라고 해서 케이스는 없이 카트리지만 나와 있는 녀석들이 상당히 많았다는 정도. 이런 저런 수상한 경로를 타고 흘러드는 게임들이 많았기 때문인지 케이스가 있는 게임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었고, 값도 비쌌다. 아마도 알팩 중 대다수는 중국제 복제품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어쨌든, 초등학교 저학년이라는 어린 나이에다가 별로 붙임성도 많지 않았던 나는, 데모용 패미콤이 가게 TV와 연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게임을 틀어달라고 부탁하기보다, 그저 가게 앞에서 알팩들을 구경하는 것으로 어떤 게임일지를 상상하면서 다음 생일에는, 다음 어린이날에는 이걸 살지 저걸 살지 고민하곤 했다.
사실 그 시절에는 (어떤 면에서 지금도 좀 그런 감이 없진 않지만) 그런 상상과 고민의 시간이 더 즐거웠고, 게임을 정작 구입하고 나면 한 몇 주 동안 타오르다가 다시 다른 것들에 관심을 빼앗기곤 했다. (다음 게임을 사기 위해서는 또 시험공부도 해야 했고, 게임이 아무리 재밌던들 친구들이랑 놀러다니는 것보다 더 재밌었을까.)
그래서 패미콤 시절의 추억은 게임 내용 그 자체보다는 오히려 알팩의 그림들이 더 크게 남아있다.
공이 미트존으로 가고 있는지 타자에게로 가고 있는지 애매한 그림이지만, 머리 속에서는 한국시리즈 4차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왼쪽의 꼬부랑 글씨가 아니더라도 이거슨 해태와 청룡의 대결이라고, 그걸 모를 순 없었다. 패미콤 초기에 나온 게임들 중 하나인데, 그 시절에는 발매일이라는 게 큰 의미는 없었다. 저렇게 발매연도가 잘 찍힌 정품팩도 잘 없었던 듯 하고, 최신 게임이라는 게 큰 의미는 없었을 때니까.
실제 게임화면은 대략 이런 식. 그래픽은 거시기하지만 나름 재밌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의 야구게임도 이 때와 구조적으로는 아주 크게 달라지진 않은 듯 하기도 하고.
요 어반 챔피언이라는 게임은 주인공 캐릭터 그림이 인상적이었다. 시크한 표정으로 적을 무자비하게 맨홀에 처박는 차가운 도시남자. 그래도 내 여자에겐 따뜻하겠지? (응?)
뭐.. 실제로는 이렇게 생긴 녀석들이었지만 말이다.
인터넷에서 찾아낸 익사이트 바이크의 표지는 이렇게 생겼지만, 내가 실제로 가지고 있었던 알팩은 게임화면을 그대로 캡쳐해놓은 그림이 붙어있었던 거 같다.
패미콤용 게임들 중에서도 가장 재밌었던 작품이었고, 그래픽 역시 나름 괜찮았기 때문에 자신있게 게임화면이 붙어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초기 닌텐도 게임들은 저렇게 나름의 일관적인 스타일의 일러스트가 많았다. 약간 양키필이 난다고 할까. 예전에 닌텐도에서 디즈니의 미키마우스 카드로 나름 대박을 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라는 추측을 해본다. (아님 말고.) 어쨌든 저 그림도 도대체 무슨 내용의 게임일까 엄청 설레게 하는데까지는 좋았으나...
찾아보면 나름 히트한 게임인지 여기저기 이식도 되고 패미콤 미니로도 나오고 했는데, 어려웠었는지 어땠는지... 개인적으로는 별로 재미가 없었다.
그리고 이 녀석. DSLR로 치면 바디캡으로 쓰는 렌즈요, 하루키 소설 좀 읽었다 하는 사람들에게는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 같은 녀석이자, 비디오게임계의 마리오 같은(응?) 게임, 슈퍼마리오브라더스. 저 작은 표지 그림 안에, 게임의 모든 요소들과 주요 캐릭터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보통은 그 당시 저렇게 생동감 넘치는 일러스트를 보고 난 후에 실제 게임을 보면 좀 실망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저 그림은 게임화면조차도 더 멋지게 만드는 힘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게임화면 자체도 그 때까지의 패미콤 게임에 비하면 정말 화사하고 멋졌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마리오 게임에서 위에 보이는 구름과 밑에 보이는 (윗 그림의 우측 하단) 덤불은 색깔만 다르고 모양은 똑같다는 걸.
게임과 애니매이션의 결합은 뭐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애니에 나오는 로봇을 타고 적들을 무찌르는 것은 모든 소년들의 로망이니, 이 게임을 발견하자 마자 군침을 흘렸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이 게임은 당당하게 게임화면을 가지고 표지를 만들기까지 했으니! 실제로도 꽤 괜찮게 즐겼던 게임으로 기억한다. 물론 역사와 전통이 깊은 액션치인 나로서는 엔딩까지 가는 건 꿈도 꾸지 못했지만. 아무렴 어떤가, 내가 발키리의 파일롯이 될 수 있는데! 그걸로도 충분했던 게임이었다.
또한 영화와 게임의 결함 역시 예전부터 있어왔던 일이다. 이 게임은 바로 스티븐 스필버그의 '구니스'를 소재로 한 게임이었다. 영화관에서도 맨 앞자리에서 말 그대로 목이 빠져라 봤던 영화의 주인공들이 담겨 있는 표지. 재미가 없었더라도 아마 집어들었을 것이다. 나 같은 구매자들 때문에 영화를 기반으로 하는 쓰레기 게임들이 자꾸 등장하는 것이겠지만..ㅋ
그러나 이 게임은, 지금 구니스를 떠올리면 이 게임에서 들리던 기계음으로 된 테마송이 생각날 만큼 인상적이기도 하고 실제로도 꽤 재밌었던 게임이었다. 코나미라는 이름에 호감을 갖게 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고.
드래곤퀘스트라는 일본국민RPG가 등장한 것도 패미콤을 통해서였지만, 그 시절 RPG는 나에게 정말 이해하기 힘든 영역이었다. 무엇보다도 화면 가득 나오는 꼬부랑 글씨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저 멋들어진 표지와 타일을 오려붙인 듯한 게임 그래픽의 갭이란...
혹시 이 시절 문방구에서 팔던 보드 게임들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잘 알려진 부루마블이나 인생게임 같은 거 말고도, 졸리졸리 시리즈였나 아무튼 비디오게임을 테마로 하는 보드 게임들이 있었다. 시리즈 중에는 슈퍼마리오도 있었고, 마계촌도 있었으며, 마이티봄잭이라는 것도 있었다. 일본에서 만들어진 것들을 카피한 제품이었는지 자체적으로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게임 일러스트들과 캐릭터들이 종이에 그려져 있다는 이유로 그냥 사서 모았던 적이 있었다. 비디오게임으로서 마계촌은 첫 판을 깨본 적이 없고, 마이티봄잭은 아예 해본 적도 없지만, 그림을 보면 반가운 작품들.
이리저리 이사를 다니면서 기기니 팩이니 싹 다 사라지고 없지만, 인터넷에서라도 이런 추억의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길고 길기만 했던 하루하루의 공상 소재가 되었던 패미콤 시대의 게임들... 애뮬레이터나 버추얼 콘솔 등을 통해 지금도 다시 접할 수는 있지만, 아마도 그 때의 공기, 그 때의 감촉, 그 때 TV 모니터에 비치던 햇살을 재현하지는 못할 거 같다. 이 글을 발견하고 읽고 있는 다른 이들도 각자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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