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성과 다이아몬드 소감

게임라이프/소감 2009. 8. 19. 22:23 Posted by 페이비안
엔딩 본지 며칠 되었는데, 이 훌륭한 게임을 도대체 어떻게 소개해야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느라 버벅버벅. 쓸데없이 원대한 이상은 포기하고 편하게 개인적인 감상을 간단히 정리.

결론부터 말하자면 텍스트 어드밴처가 생소한 사람마저도 끌어들일 수 있을 정도로 무척 재미있는 게임. 플레이하는 내내 루즈해지는 감이 거의 없었을 정도로 페이스 전개가 괜찮았고, 전체적인 플레이 타임도 너무 짧지 않고 아주 약간 아쉬울 정도의 길이로 무난한 편. (100% 클리어에 도전하면 이러한 아쉬움도 없어질 듯)

텍스트 어드밴처라는, 쉬 지루해질 수 있는 장르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런 느낌이 가능했던 건 분명 게임의 핵심을 이루는 협상 파트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범인을 설득하는 데 단순한 선택지가 아닌 시간의 개념과 그로 인해서 '말을 하지 않는 것'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 덕분에 좀 더 설득이 흥미로워졌다고 할까나. 물론 크게 거슬리는 부분 없이 처음부터 끌까지 괜찮은 퀄리티를 보여준 한글 번역도 칭찬하고 싶은 부분.

스토리 면에 있어서도 이런 류 게임을 자주 접하는 사람이라면 아주 예상하지 못할 전개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의 반전.. 그러니까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서 자세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반전이라는 개념 자체를 반전시키는 시도가 꽤나 신선하게 다가왔다. 춤추는 대수사선 영화판의 교섭인 이야기나 미국 영화 네고시에이터, 그리고 최근의 완소 미드 멘탈리스트 등등을 연상하게 하는 설정도 나쁘지 않았고.

제로과나 1과의 구성은 어찌 보면 대단히 상투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상투적인 건 그만큼 잘 통하는 부분이 있어서 상투적이 된 거라는 생각도 들고. 듬직한 상사, 티격태격 파트너, 재수없는 라이벌, 쿨한 선배, 비열하지만 멍청한 내부의 적.. 뭐 이렇게 정해놓으면 알아서 이야기가 돌아가는 구석이 있으니까.

그림체는 솔직히 처음에는 별로였는데, 왜 그랬나면 대부분의 인물들이 정면 모습이 좀 너무 현실적인 느낌이라 맘에 안들었달까. 그런데 나중으로 갈수록 선이 좀 잘나와주는 각도가 주를 이루게 되더라. 이것도 나름 연출인가..? 라고 혼자서 추측하고 있다.

나름 배경의 효과나 연출도 괜찮았고, 가끔씩 여러 명이 각자 떠드는 듯한 흐름을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고. 확실히 이쪽 장르에서 가능할 법한 여러 가지 연출들이 적절히 구사된 느낌이다. 풀 보이스가 아니어서 좀 아쉽긴 한데, 협상 파트에서 풀 보이스면 좀 오히려 이상할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역시나 좀 아쉽다.) 다만 배경 음악은 꽤 괜찮았음.

플레이하고 나면 아주 잘 만들어진 5~6부작 미니시리즈 드라마 하나 재밌게 본 거 같은 느낌이고, 협상 파트를 통해 그저 단순히 이야기에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흐름에 개입하여 만들어 간다는 감각을 준다는 점이 드라마보다 더 멋진 멋진 점이랄까.

워낙에 텍스트 어드밴처가 대중적이지 않은 장르긴 하지만, 이쪽은 그래도 대중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난이도나 시스템, 반면 게임 자체의 내용적인 퀄리티는 높은 편. 한글화로 언어적 장벽까지 깔끔하게 해소된 만큼, PSP를 가지고 있다면 장르 취향 따지지 말고, 총성과 다이아몬드 꼭 한 번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