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제목: Mapping Uncharted 3: Drake's Deception
저자: Thierry Nguyen 원문 게시일: 2011년 10월 21일 원문 출처: 1UP.com 번역: 페이비안
2005년 말 개발팀은 프로젝트 빅에 대한 개발 문서를 완성하고 당시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월드와이드 스투디오의 회장이었던 필 해리슨에게 게임을 설명하기 위한 데모 영상을 만들었다. 아래 동영상은 그 중 일부를 재현한 내용이다. 웰즈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당시 소니 스투디오는 물론 경쟁 플랫폼인 Xbox에서 제작이 추진되던 게임들 중 다수가 암울한 미래, 종말론적 미래를 갈색과 회색 위주의 칙칙한 색감으로 표현하면서 근육질의 스페이스 마린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곤 했습니다. 우리가 이 와중에 주목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했죠.
온갖 종류의 총성과 폭발 화면이 가득한 E3 회장에 입장한 게이머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서는 어떤 방향이 좋을까요? 먼저 컬러풀한 화면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오만과 겉멋에 가득찬 마초 슈퍼히어로가 아니라, 게이머가 친밀감을 가지면서도 동경할 수 있는 현실적인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기로 했죠.
저자: Thierry Nguyen 원문 게시일: 2011년 10월 21일 원문 출처: 1UP.com 번역: 페이비안
2005년 말 개발팀은 프로젝트 빅에 대한 개발 문서를 완성하고 당시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 월드와이드 스투디오의 회장이었던 필 해리슨에게 게임을 설명하기 위한 데모 영상을 만들었다. 아래 동영상은 그 중 일부를 재현한 내용이다. 웰즈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당시 소니 스투디오는 물론 경쟁 플랫폼인 Xbox에서 제작이 추진되던 게임들 중 다수가 암울한 미래, 종말론적 미래를 갈색과 회색 위주의 칙칙한 색감으로 표현하면서 근육질의 스페이스 마린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곤 했습니다. 우리가 이 와중에 주목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했죠.
온갖 종류의 총성과 폭발 화면이 가득한 E3 회장에 입장한 게이머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서는 어떤 방향이 좋을까요? 먼저 컬러풀한 화면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오만과 겉멋에 가득찬 마초 슈퍼히어로가 아니라, 게이머가 친밀감을 가지면서도 동경할 수 있는 현실적인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기로 했죠.
웰즈는 위의 데모 영상에서 추구하고자 했던 몇몇 요소들은 언차티드 3에 이르러서야 실제로 구현시킬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레마찬드의 구체적 설명에 따르면, 맥락에 따라 변화되는 동작이 다양하게 사용되는 근접 전투 시스템, 다수의 적들, 임기응변으로 사용하는 무기류 등은 모두 첫번째 게임에서부터 개발팀에서 도입하고자 했던 아이디어들었다. 하지만 이들이 너티 독이 추구하는 완성도로 게임에 적용되기까지는 결국 6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여기 나와 있는 게임플레이 시스템에 대해서는 수 개월 넘게 잊어버리고 다른 작업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어요. 하지만 이 영상에 모든 컨셉이 담겨 있었기 때문에, 이를 보면서 우리가 구현하고자 했던 내용을 스스로에게 다시 학습시키곤 했죠."
하지만 본격적인 개발에 대한 승인은 그 후로 점점 더 심해지는 언차티드 개발의 진정한 어려움의 시작에 불과했다. 발레스트라에 따르면, "당시 우리는 막 PS2에서의 개발을 마친 후 였고, 셰이더 등등을 포함한 PC 환경에서의 개발에 대해서는 알아나가야 할 부분들이 많았어요. 우리 팀이 PS2라는 기기에서만 작업하는 수 년 동안 눈부시게 발전해 버린 새로운 기술들을 어떻게 따라잡아야 할지 감도 못잡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들을 바닥부터 시작해야 했고, 일하는 방식 자체도 바꾸어야 했어요.
개발팀으로서는 참 난감한 상황이었지요. PS2의 익숙한 환경에서 PS3의 적응해야 할 환경 사이에, 자연스러운 전환이라는 것이 전혀 없었으니까요. (이 글에 삽입된 동영상을 보며) 여기 보이는 것들을 구현했던 코드 중 단 한 줄도 언차티드 3까지 살아남은 것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어요. 정말 어려운 환경이었고, 그로 인해 떠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살아남은 팀은 더 강해질 수 있었기도 해요. 당시 상황을 견딜 수 없었던 이들은 아마도 그 이후에 우리가 가고자 했던 길을 버틸 수 없었을 테니까."
"개발팀은 PC에서의 작업을 시작했는데, 당시에는 하드웨어의 한계에 대한 범위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나중에 실제 하드웨어 스펙이 정해지자 많은 사람들이 '고작 이 정도였어?'라며 크게 실망했어요. 사실 우리의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거죠. 모션 블러를 모든 곳에 사용할 수 있고, 메모리는 무한정에 가깝다고 상상했었으니까.
거기에 더해, 언차티드와 같이 큰 규모의 게임을 만들 때에는 엄청나게 생산적이어서 매 시간마다 개발 진도가 쭉 올라가다가도 어느 순간 너무 단순한 작업조차 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죠. 개발툴이 망가지기도 하고, 스스로가 무슨 게임을 만들고자 했는지 모르게 되는 경우도 생깁니다. 정말 쉽지 않은 일이죠."
헤니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하드웨어가 바뀔 때마다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엄청난 변화였어요. 그리스토피가 말했듯, 폴리곤과 텍스쳐에 대해 생각하던 옛날 방식에서, 영화나 HDTV 화면에 대해 생각해야 했으니까요. 광원과 노멀 맵, 그리고 둘 사이의 상관 관계 같은 것들을 포함해서 말이죠. 정말 모든 걸 다시 배워야 했어요."
웰즈는 이어 이러한 기술적 어려움이 너티 독의 디자인 접근법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를 설명했다. "정말 어려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디자인 쪽에서 요구되는 여러 가지 실험들을 가능케 할 기술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으니까요. 우리에게는 수많은 멋진 아이디어들이 있었고 이를 정리한 문서가 있었지만, 문서는 결국 문서일 뿐이죠. 그 자체로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실제 쓸만한 아이디어인지, 구현이 가능한지는 실제로 구현하고 테스트해 보아야만 알 수 있으니까요."
그는 구체적인 예를 들었다. "언차티드가 2007년에 발매되었는데, 2007년 1월인가 2월까지는 록온 조준 시스템이 들어가 있었어요. 그 즈음에서야 수동 조준 방식을 테스트해 볼 수 있게 되었는데, 이 방식이 게임의 맛을 좀 더 좋은 쪽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 전에 실험을 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이러한 테스트가 이루어진 후에야 수동 조준이 게임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습니다.
비슷한 예로, 그 당시까지 잠수하여 수영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결국 빠졌고, 불을 가지고도 여러 가지를 해보려고 했었어요. 게임에 도입하고자 하는 요소들의 긴 목록이 있었는데, 결국 게임을 발매하기 10개월이 남은 시점에서야 게임 엔진, 애니매이션 시스템, 캐릭터 조작 시스템 등등이 어느 정도의 완성도에 도달했고, 그제서야 디자인 팀이 이러한 요소들을 적용해보고 다듬어서 결국 어느 것을 남기고 어느 것을 쳐낼 것인지 결정할 수 있게 되었던 거죠."
헤니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그리고 실제로 게임을 만드는 데 남은 시간은 9개월이 되는 거에요. 당시 우리는 디자인 측면에서 종이에 맵을 그리는 작업을 많이 했어요. 엔진을 돌려서 빠르게 아이디어를 시각화하거나 테스트할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대부분 지도만 그려놓고 건축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과 같았다고 할 수 있어요."
(3편에서 계속...)
하지만 본격적인 개발에 대한 승인은 그 후로 점점 더 심해지는 언차티드 개발의 진정한 어려움의 시작에 불과했다. 발레스트라에 따르면, "당시 우리는 막 PS2에서의 개발을 마친 후 였고, 셰이더 등등을 포함한 PC 환경에서의 개발에 대해서는 알아나가야 할 부분들이 많았어요. 우리 팀이 PS2라는 기기에서만 작업하는 수 년 동안 눈부시게 발전해 버린 새로운 기술들을 어떻게 따라잡아야 할지 감도 못잡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들을 바닥부터 시작해야 했고, 일하는 방식 자체도 바꾸어야 했어요.
개발팀으로서는 참 난감한 상황이었지요. PS2의 익숙한 환경에서 PS3의 적응해야 할 환경 사이에, 자연스러운 전환이라는 것이 전혀 없었으니까요. (이 글에 삽입된 동영상을 보며) 여기 보이는 것들을 구현했던 코드 중 단 한 줄도 언차티드 3까지 살아남은 것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어요. 정말 어려운 환경이었고, 그로 인해 떠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살아남은 팀은 더 강해질 수 있었기도 해요. 당시 상황을 견딜 수 없었던 이들은 아마도 그 이후에 우리가 가고자 했던 길을 버틸 수 없었을 테니까."
"개발팀은 PC에서의 작업을 시작했는데, 당시에는 하드웨어의 한계에 대한 범위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나중에 실제 하드웨어 스펙이 정해지자 많은 사람들이 '고작 이 정도였어?'라며 크게 실망했어요. 사실 우리의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거죠. 모션 블러를 모든 곳에 사용할 수 있고, 메모리는 무한정에 가깝다고 상상했었으니까.
거기에 더해, 언차티드와 같이 큰 규모의 게임을 만들 때에는 엄청나게 생산적이어서 매 시간마다 개발 진도가 쭉 올라가다가도 어느 순간 너무 단순한 작업조차 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하죠. 개발툴이 망가지기도 하고, 스스로가 무슨 게임을 만들고자 했는지 모르게 되는 경우도 생깁니다. 정말 쉽지 않은 일이죠."
헤니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하드웨어가 바뀔 때마다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엄청난 변화였어요. 그리스토피가 말했듯, 폴리곤과 텍스쳐에 대해 생각하던 옛날 방식에서, 영화나 HDTV 화면에 대해 생각해야 했으니까요. 광원과 노멀 맵, 그리고 둘 사이의 상관 관계 같은 것들을 포함해서 말이죠. 정말 모든 걸 다시 배워야 했어요."
웰즈는 이어 이러한 기술적 어려움이 너티 독의 디자인 접근법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를 설명했다. "정말 어려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디자인 쪽에서 요구되는 여러 가지 실험들을 가능케 할 기술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으니까요. 우리에게는 수많은 멋진 아이디어들이 있었고 이를 정리한 문서가 있었지만, 문서는 결국 문서일 뿐이죠. 그 자체로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실제 쓸만한 아이디어인지, 구현이 가능한지는 실제로 구현하고 테스트해 보아야만 알 수 있으니까요."
그는 구체적인 예를 들었다. "언차티드가 2007년에 발매되었는데, 2007년 1월인가 2월까지는 록온 조준 시스템이 들어가 있었어요. 그 즈음에서야 수동 조준 방식을 테스트해 볼 수 있게 되었는데, 이 방식이 게임의 맛을 좀 더 좋은 쪽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 전에 실험을 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이러한 테스트가 이루어진 후에야 수동 조준이 게임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습니다.
비슷한 예로, 그 당시까지 잠수하여 수영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결국 빠졌고, 불을 가지고도 여러 가지를 해보려고 했었어요. 게임에 도입하고자 하는 요소들의 긴 목록이 있었는데, 결국 게임을 발매하기 10개월이 남은 시점에서야 게임 엔진, 애니매이션 시스템, 캐릭터 조작 시스템 등등이 어느 정도의 완성도에 도달했고, 그제서야 디자인 팀이 이러한 요소들을 적용해보고 다듬어서 결국 어느 것을 남기고 어느 것을 쳐낼 것인지 결정할 수 있게 되었던 거죠."
헤니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그리고 실제로 게임을 만드는 데 남은 시간은 9개월이 되는 거에요. 당시 우리는 디자인 측면에서 종이에 맵을 그리는 작업을 많이 했어요. 엔진을 돌려서 빠르게 아이디어를 시각화하거나 테스트할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대부분 지도만 그려놓고 건축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과 같았다고 할 수 있어요."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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