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바이벌 호러 게임의 심리학

게임라이프/번역 2010. 11. 1. 17:37 Posted by 페이비안
서바이벌 호러를 즐기는 게이머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이야기할 때, '이 장면에서는 소뇌 편도체에 강렬한 흥분을 느꼈어!' 라던가, '감성적 자극에 너무 젖어든 나머지 전대상피질은 전혀 제 구실을 하질 못하더라구~'라는 식의 설명을 하는 경우를 찾기는 힘들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우리가 공포스러운 무엇인가를 보거나 경험할 때 우리의 뇌에서 정확히 어떠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으며, 게임 디자이너들은 이러한 성과를 자신들의 게임에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다.

공포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열쇠는 (무척 놀랍게도) 우리의 뇌가 미디어와 현실을 거의 구분짓지 못한다는 것에 있다.

인디아나 대학의 조교수이자 미디어 소비 심리학을 연구하고 있는 앤드류 위버 박사에 의하면, "깜짝 놀라게 하는 자극에 대한 심리적 반응 자체는 자극의 원천이 현실이냐 미디어이냐에 따라 크게 다르지 않다. 관람자의 입장에서 인간은 '불신의 중지 (suspension of disbelief)' 기제를 무척 잘 활용하는 편이다. 우리가 보거나 즐기는 것들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 대해 자발적으로 망각함으로서 미디어가 펼쳐보이는 이야기에 보다 완전하게 몰입하게 되는데, 이러한 몰입이 이루어지면 이야기 속 캐릭터들에 대해서도 감정 이입을 통한 강한 유대감이 생기고, 그들이 느끼고 경험하는 공포감을 우리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마치 현실의 삶에서처럼 말이다."

TV와 영화, 그리고 비디오게임은 상대적으로 새로운 도구들이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원숭이로부터 발전한 우리의 뇌는 아직도 스크린 속 사물과 현실을 구분하는 데 익숙치 않은 것이다. 이는 모든 종류의 미디어에 공통으로 해당하는 사실인데, 그렇다면 과연 게임은 다른 미이어에 비해 이러한 착시 현상을 활용하는 데 있어 더 유용한 특성을 가지고 있을까? 컨트롤러를 통한 조작은 우리가 느끼는 공포감을 좀 더 강화해줄까 아니면 오히려 약화시키는 역할을 할까?

심리학자이자 비디오게임의 심리학 블로그를 운영하는 제이미 메디간 박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상황에 대한 통제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공포감을 줄이는 효과도 가지고 있다. 게임에서 이길 수도 있고, 게임을 아예 꺼버릴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공포감 자체가 스크린 속 캐릭터에 대한 감정 이입에서 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캐릭터들과의 상호 작용에 대한 선택권이 있다는 것은 감정 이입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공포감을 더욱 높일 수도 있다." 

라우즈의 더 서퍼링은 큐브릭스러운 미묘함과는 거리가 멀다.


2004년 Xbox로 발매된 호러 게임 더 서퍼링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리처드 라우스 III는 다른 종류의 미디어들도 각각의 장점이 있지만 게임 역시도 고유의 장점들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는 소름끼치는 섬뜩함은 사이코나 링과 같은 영화에서 맛볼 수 있는 시각적 불안감과는 다른 감각이다. 마찬가지로 사일런트 힐이나 레프트 4 데드와 같은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느끼게 되는 강렬한 공포감 역시 게임만이 제공할 수 있는 감각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몰입감과 긴장감을 가져오는 부분에 있어 게임 만의 분명한 장점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네러티브가 잘 갖추어진 게임에서는 플레이어가 게임 속 세계와 그 안의 캐릭터에 쉽게 빠져들게 되고, 캐릭터가 느끼게 되는 위험과 위협을 공감하게 되기 때문이다. 다른 미디어는 이런 종류의 공포감을 동일한 방식으로 전달하기 힘들다."

플레이어의 '자아'가 게임 속의 아바타로 확장되는 심리학적 함의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논의되었으며, 이러한 이슈는 특히 서바이벌 호러 장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게임 디자이너들은 게이머들에게 즐거움이나 슬픔보다는 공포감을 심어주는 것에 좀 더 능숙한 것처럼 보인다.

"게임을 통해 이러한 감정들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만 게임을 통해 야기되는 감정은 영화나 소설에서 얻게 되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게임 디자이너들은 이러한 차이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게임이라는 미디어가 가진 강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공포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 것처럼."

하지만 이러한 논의는 애초에 왜 호러 장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해주지는 않는다. 왜 사람들은 그렇게도 무서운 경험을 일부러 찾아 나서는 것일까?

인간을 비롯한 동물들은 생존을 위한 매커니즘의 하나로 공포감을 느낄 수 있도록 진화되어 왔다고 알려져 있다. 비록 이 설명은 왜 몇몇 사람들이 그렇게 광대들을 무서워하는지를 알려주진 못하지만, 왜 많은 사람들이 높은 곳이나 뱀, 혹은 삼각두(Pyramid Head)를 두려워하고 피하고자 하는지를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공포의 대상에 적극적으로 접근한다. 높은 곳을 무서워하면서도 롤러 코스터를 타고, 뱀을 두려워하면서도 스네이크 온 어 플레인이라는 영화를 보러가며 삼각두가 무섭지만 그래도 줄기차게 사일런트 힐 2를 플레이한다.

앤드류 위버 박사는 이러한 현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공포감 그 자체는 즐길만한 감정은 아니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공포감을 주는 자극을 피하도록 강하게 동기부여가 되어 있다. 이러한 자극들은 대체적으로 생존에 위협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일부러 호러 게임이나 영화를 찾는 것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호러 게임의 극한을 보여주는 Amnesia: The Dark Descent


위버 박사는 이러한 이유 중 하나로, 현실에서의 스트레스에 대한 통제력을 갖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자 이러한 경험들을 이용한다는 설명을 제시한다. 그 증거로 공포를 소재로 하는 미디어들은 사회에 스트레스가 만연하는 시점, 이를테면 범죄율이 증가하거나 실업률이 높아질 때, 국가 안보가 위협에 처할 때에 가장 큰 인기를 얻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호러 미디어 소비층을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청소년기의 남성들이다. 위버 박사는 성 역할(gender role)이 이러한 소비층 구성에 큰 영향을 준다고 주장한다. 젊은 남성들은 공포 게임이나 영화를 경험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데, 이는 이러한 호러 미디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스스로의 남성성을 다른 사람들과 스스로에게 증명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남성들 역시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심리적 반응과 피하고 싶은 충동을 느낌에도 불구하고, 남성들이 이러한 컨텐츠를 소비하고자 하는 욕구가, 그리고 이러한 컨텐츠를 감상하면서 시선을 돌리는 등 불편해하는 심리를 드러내는 신호를 보이지 않고자 하는 욕구가 훨씬 높다"

메디간 박사는 취향의 문제를 지적한다. 일부의 사람들은 감정적인 흥분을 즐기는 감각 추구적 경향을 지닌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들은 공포감 그 자체에 끌리는 것이 아니라, 실제의 삶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방식으로 사회 규범이 전복되는 것에 매력을 느끼기도 한다. 그들 스스로가 이러한 행위를 모방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컨텐츠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효과는 영원하지 않다. 우리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우리의 뇌도 함께 성장하고, 따라서 호러 미디어를 탐닉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우리의 뇌에 현실과 미디어의 차이점을 계속적으로 학습시키는 효과를 가져오게 되며 그 와중에 심리적 방어기제 또한 형성된다. 메디건 박사는 이러한 현상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어떤 학파는 사람들이 공포감을 주는 상황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를,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유사한 긴장감을 유발하는 현실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심리적 전략을 준비하는 데 유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픽션, 놀이, 그 밖의 안전한 방식으로 이러한 "모의 연습"을 하는 것은 인간이 가진 특성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뇌는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것이 픽션임을 즉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지만, 여전히 이에 대한 감정적인 반응을 보일 수도 있는데, 그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정신 건강에 궁극적으로 유익하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가 그 원인들에 대해 의식하고 있지 않았더라도, 게임 디자이너들로 하여금 플레이어에게 공포감을 일으키도록 할 수 있게 해주는 요소들은 이미 바이오 하자드와 같은 초기 서바이벌 호러에서 암네시아: 더 다크 디센트(Amnesia: The Dark Descent)와 같은 현대적인 발전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결과물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후에도 게임 디자이너들은 그들의 선배들로부터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더 엄청난 공포를 주는 경험들을 창조해낼 것이다. 치기 어린 청소년들의 자기 과시가 되었든, 카타르시스를 통한 정신의 정화가 되었든, 호러 장르는 게임 속에서 분명한 자리매김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글: 엔드류 그로엔(Andrew Groen) / 번역: 페이비안 / 원문출처: Eurog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