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막길

사실 드림캐스트의 미래는 시작부터 그렇게 밝지만은 않았다. 세가라는 기업 자체가 특히 콘솔 영역에서 수익성이 그렇게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가 전체에서 꾸준히 수익을 내는 파트는 오직 아케이드 부문 뿐이었다. 미국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제네시스(메가드라이브)조차도 일본에서의 엄청난 적자에 시달려야만 했다.

세가는 사실 모회사인 CSK, 정확히 말하자면 그 중에서도 대주주인 오카와 이사오 회장의 전폭적인 신뢰와 지지 덕분에 유지가 가능한 회사였다. 그러나 예전부터도 콘솔 사업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던 그가 세가의 CEO 자리에 오르면서 콘솔 하드웨어 사업에서의 철수는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었던 것이다. 

드림캐스트의 런칭은 상당히 인상적이었으며 판매량 자체도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2 등장으로 인해 드림캐스트는 추락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시장에서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세가에서는 가격 인하를 반복하여 결국 2001년 드림캐스트의 가격은 99 달러까지 내려갔다. 들어간 제조원가를 보전하기에는 턱없이 낮은 가격이었다. 


소프트웨어의 판매만이 수익을 낼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지만, 여기에는 더 큰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드림캐스트의 소프트는 GD-ROM이라는, 세가의 장비로만 생산할 수 있는 특수한 더블 레이어 CD에 담기도록 되어 있었지만 드림캐스트가 CD-R 미디어도 읽을 수 있다는 점을 세가는 너무 쉽게 간과한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해커들은 하드웨어에 대한 어떤 개조도 없이 불법복제 CD로 부팅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고, 이를 막을 수 있는 그 어떤 하드웨어적인 기법도 없는 상황에서 불법복제는 걷잡을 수 없이 일반화되어 버렸다. 드림캐스트를 가지고 있는 유저들이 게임 구입에 돈을 쓰지 않게 되는 상황이 발생해버린 것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차치하더라도, 플레이스테이션2는 넘어설 수 없는 강자였다. DVD 영화 재생 기능에 플레이스테이션이라는 강력한 브랜드를 등에 업은 PS2는 하드웨어 공급 부족 현상에도 불구하고 드림캐스트 런칭 이상의 판매량을 보이며 화려하게 데뷔했고, 그 이후로 드림캐스트는 PS2를 결코 당해낼 수 없었다.

다른 게임기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방향으로의 정책 변경에 대한 의사 결정은 피터 무어와 오카와 이사오의 공감 하에 이루어졌으며, 이를 지휘한 것은 피터 무어였다. 2001년 3월, 세가는 드림캐스트의 생산을 중단하기로 결정하였으며 70년대 후반부터 세가의 뒤를 돌봐주던 후원자 오카와 이사오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는 유언을 통해 세가의 부채를 모두 탕감해주기로 하였는데, 이는 서드파티로 거듭나고자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던 세가에게 있어 재기의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이러한 전개는 사실 오래전부터 예측할 수 있었던 일이었으나 팬들은 드림캐스트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는 사실에 대해 분노와 슬픔을 금치 못했다. 무어는 가능한 한 오랫동안 드림캐스트에 대한 지원을 계속할 것이라고 약속했으나 팬들은 이 약속이 그리 오래 갈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2002년 2월, 무어의 발표가 있은지 고작 1년도 지나지 않아 북미에서는 NHL 2K2를 끝으로 더 이상의 드림캐스트용 게임이 출시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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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트래비스 파스 (Travis Fahs) / 번역: 페이비안 / 원문 게시일: 2009.9.7 / 출처: IGN Retro

* IGN.com으로부터 출처 표기를 조건으로 전문 번역 허가를 받은 글입니다.

* 세가 팬이시라면 또 다른 IGN 번역연재 '눈물없인 볼 수 없는 세가의 역사'도 읽어보세요. 좀 더 세가라는 회사 쪽에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습니다. (이번 글은 드림캐스트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좀 더 집중하여 전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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