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텐도 진영으로의 진격

2000년에 이르자, 닌텐도는 더이상 아동지향형 게임만으로는 갈수록 치열해지는 비디오게임기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업계의 다른 회사들은 다양한 성인 지향 게임들을 선보이고 있었고, 19세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게임들 중에서 바이오 하자드는 단연코 돋보이는 이름 중 하나였다. 닌텐도는 그들의 전통적인 팬 기반을 포기할 마음은 없었지만, 그 외의 시장도 좀 더 적극적으로 공략하고자 했다.

그 시작은 바이오 하자드 2의 N64 이식이었다. 엔젤 스투디오에서 이식을 맡은 N64용 바이오 하자드 2는 플레이스테이션 버전이 나온지 거의 2년이 흐른 뒤에야 등장했지만, 많은 이들이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2CD 구성의 바이오 하자드를 카트리지 용량 속에 담아내는 도전에 성공했다는 의의를 갖는다. 이러한 기반 하에, 팬들은 닌텐도 콘솔로도 시리즈의 새로운 작품이 나오길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

놀랍게도, 캡콤은 영국 개발사인 핫젠 스투디오와 계약을 맺고 게임보이 컬러용으로 바이오 하자드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이 GBA용 게임은 바이오 하자드 1편의 맨션을 2D 타일 맵으로 변환하는 일반적인 GB 게임에 대한 접근법 대신, 원작의 모든 프리랜더링된 배경과 역동적 카메라 시점을 모두 유지하고자 하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에 도전하였다. 처음에는 모두가 회의적이었지만, 스크린샷이 하나 둘 공개되면서 조심스러운 기대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닌텐도 팬들의 소망에 화답하듯, 2000년 1월 캡콤은 닌텐도용 콘솔로 새로운 바이오 하자드 게임의 개발을 공개하였다. 바이오 하자드 제로는 1편 라쿤 시티 맨션에서의 사건 전 24시간 동안 일어난 레베카 챔버스의 이야기를 다루게 되며 오직 닌텐도 64로만 발매될 예정이었다. 공식 발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열차 내를 배경으로 하는 게임의 초기 버전이 공개되어 팬들의 기대감을 한층 높여주었다.

그러나 뒤이어 이러한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는 뉴스들이 들려왔다. 캡콤에서 게임보이 컬러용 바이오 하자드의 개발을 취소했다는 소식이 3월에 발표된 것이다. 캡콤은 핫젠의 최종 결과물에 실망감을 금치 못했고, 여기저기 손을 보기 보다는 깨끗이 개발을 접는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반면 바이오 하자드 제로의 발매일이 그 해 가을로 정해졌다는 사실은 그나마 팬들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비슷한 시기에는 젤다의 최신작과 닌텐도가 자체적으로 개발한 성인지향 게임인 죄와 벌 (Sin & Punishment)도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5월 달부터 바이오 하자드 제로에 대한 여러가지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캡콤이 평소와 다르게 제로의 마케팅에 큰 힘을 쏟지 않고 있는 데다가 닌텐도의 차세대 게임기인 ‘돌핀’ (현재의 게임큐브)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많은 게이머들이 제로가 이미 차세대 게임기로 넘어간 것이라고 예상했다. 당시 N64는 이미 하향세에 접어들었고, 닌텐도의 자체 개발 게임들도 게임큐브로 넘어가면서 발매일이 미루어지고 있던 실정이었다.

그 해 9월, 캡콤은 이러한 루머를 공식화했다. 개발기간을 이미 1년 정도 소비한 시점이었지만,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의 전통(?)에 따라 개발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된 것이다. 이러한 소식은 닌텐도 64를 소유한 게이머들에게는 가슴 아픈 일이었지만, 새로운 하드웨어는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에게 상당히 좋은 기회였다. 캡콤의 무게 중심이 귀무자 시리즈와 데빌 메이 크라이 시리즈로 옮겨지면서 지난 1년 동안은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에 있어 침묵의 시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캡콤은 닌텐도 팬들과의 약속을 결코 잊지 않았다. 9월의 프레스 컨퍼런스에서 캡콤은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가 적어도 당분간은 게임 큐브 독점 타이틀이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시리즈가 소니의 차세대 게임기로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많은 게이머들을 놀라게 한 소식이었다. 캡콤 역시 원래는 플레이스테이션 2로 바이오 하자드를 계속 이어갈 생각이었지만, 자사의 다른 시리즈들이 워낙 PS2 쪽으로 많이 전개되고 있던 탓에 바이오 하자드에 대한 주목도가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로 게임 큐브로 돌아선 것이다. 게임 큐브로 나오는 것은 바이오 하자드 제로만이 아니었다. 미카미 신지가 다시 디렉터의 역할을 맡아 시리즈의 1편을 새로운 시스템에 맞게 리메이크하기로 한 것이다. 이 두 게임은 차세대 바이오 하자드를 이끌어 갈 타이틀로 많은 주목을 받게 되었다.


2001년 후반, 캡콤은 게임보이 팬들에게도 지난 잘못에 대한 보상을 하고자 했다. 게임보이 컬러용으로 바이오 하자드 외전이라는 오리지널 타이틀을 선보인 것이다. 지난 번처럼 너무 큰 욕심을 내지 않고, 8비트 휴대용 게임기의 스펙을 적절히 고려한 이 게임은 그러나 RPG, 슈팅, 어드밴처의 요소들을 너무 어설프게 묶은 나머지 게임매체는 물론 팬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아마도 게임보이의 작은 화면을 통해 바이오 하자드의 진짜 매력인 실감나는 공포감을 심어준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을지도 모른다.

캡콤은 게임 큐브용 바이오 하자드 리메이크에 코드 베로니카와 같은 실시간 3D 배경이 아닌 프리랜더링된 배경을 사용하기로 결정하여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원작이 나왔던 당시보다 발전된 컴퓨터 그래픽 기술로 인해 세밀하고 다이나믹한 조명 효과와 복잡한 그림자 효과 등이 적절하게 구현되어 결과적으로는 거의 실사와 같은 리얼함을 보여주는 멋진 배경 그래픽이 되었다. 2002년 봄 발매된 바이오 하자드 리메이크는 발매되자마자 ‘명작의 재림’이라는 칭송을 받으며 그간 실추되었던 시리즈의 명성을 다시금 드높이는 게임이 되었다. IGN의 매트 카사마시나는 바이오 하자드 리메이크를 사상 최고의 공포감을 조성하는 게임으로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물론 바이오 하자드 리메이크는 앞으로 나올 제로에 대한 맛보기에 불과했다. 바이오 하자드 제로는 리메이크를 개발하던 바로 그 기술들이 적용되어 업그레이드가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캡콤은 닌텐도 유저들을 끌어들이고자 많은 자원을 투자하였으며, 그 성과는 제로의 성공 여부에 달려 있었다.

많은 기다림 끝에 할로윈을 조금 지나 바이오 하자드 제로가 발매되었다. 그러나 신작에 대한 기대감을 끌어올리기 위해 만들어졌던 바이오 하자드 리메이크가 오히려 제로에 악영향을 끼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게이머들이 리메이크를 플레이하면서 새로운 그래픽에 완전히 적응해버는 바람에, 제로에서는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는 오래된 조작 체계와 어색한 카메라 앵글 등의 단점들만이 두드러지게 된 것이다.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는 첫 작품이 발매된 6년 전에 비해 본질적으로 크게 바뀌지 않은 반면, 게임 업계 전반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1996년에는 지능형 시점 체계와 3D 화면에 기반한 움직임과 관련된 기술은 개념조차 없었지만, 2002년에는 모든 게임들에 이러한 기술이 필수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추세였던 것이다.

평가에서나 판매량에서나 바이오 하자드 제로를 실패한 게임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발매 전 기대에 비해서는 실망스러운 게임이었다. 많은 이들이 캐릭터를 바꾸면서 진행하는 방식에 좋은 평가를 내렸지만, 이마저도 전작들과 너무 유사한 느낌을 주었다. 제로의 판매량은 125만 카피로, 결코 적다고는 할 수 없었으나 리메이크의 기록은 깨지 못했다. 캡콤은 닌텐도 하드웨어를 선택한 자신들의 결정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지만, 시리즈의 운명을 궁극적으로 결정짓는 것은 바이오 하자드 4가 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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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트레비스 파스 / 번역: 페이비안 / 원문게시일: 2009.3.11 / 출처: IGN Retro

* IGN.com으로부터 전문 번역 허가를 받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