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된 사수부터 사격 개시
21세기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바이오 하자드는 게임 역사 상 가장 강력한 프랜차이즈 중 하나가 되었으며, 캡콤은 이러한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고자 했다. 이미 사이드 스토리도 써먹었고 차세대 게임기로도 진출했던 바, 남은 것은 기존의 장르에서 벗어난 스핀 오프 형식의 게임이었다. 바이오 하자드의 자산을 써먹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장르는 바로 일인칭 슈팅 장르였다.
기획서 상으로는 상당히 괜찮은 아이디어가 제시되었다. 개발 초기에 미카미는 새로운 게임을 둠과 유사한 형태로 만들고자 했다. 그런데 캡콤은 기본적인 FPS 장르에 자신들의 새로운 컨셉을 도입하고자 했다. 라이트 건으로 조준하고 사격하지만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게임을 고안한 것이다. 이렇게 하면 하우스 오브 데드 같은 아케이드 건슈팅 게임의 매력과 점점 더 인기를 끌고 있는 FPS 장르의 매력을 함께 맛볼 수 있으니 성공은 보장된 것이다..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항상 계획과는 다르다. 1999년 4월 20일, 딜런 클레볼드와 에릭 헤리스가 12명의 동료 학생들을 살해하고 스스로도 목숨을 끊은 콜롬바인 고등학교 사건이 발생했다. 이러한 비극에 대한 원인 규명 과정에서 비디오게임에 대한 비난이 일기 시작했다. 이러한 전개는 캡콤에게 최악의 상황일 수 밖에 없었다.
논란의 여지를 피하고자, 캡콤은 북미에서 발매되는 건 서바이버에서 라이트 건을 활용하는 요소를 삭제해 버리고, 게임 이름 역시 ‘레지던트 이블: 서바이버’로 변경하였다. 라이트건이 빠진 게임에 남은 것이라고는, 별 특징 없는 네모난 방들과 신통치 않은 열쇠 찾기 퍼즐 정도 뿐이었다. 설령 라이트건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건 서바이버는 그닥 훌륭한 게임은 아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라이트건이 빠진 서바이버는 평균에도 못미치는 상당히 한심한 게임이었다.
게임 평론가들 역시 혹평을 퍼부었다. IGN의 더그 페리는 서바이버에 4.0이라는 점수를 주면서 후진 그래픽, 생기 없는 캐릭터, 거추장스러운 게임플레이를 비판했다. 팬들 역시 싸늘한 반응을 보였고, 서바이버는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 사상 첫 번째 실패작이 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캡콤은 이러한 시도를 포기하고자 하지 않았다.
건 서바이버라는 브랜드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캡콤은 차기작을 준비하며 남코와의 제휴를 시도했다. 라이벌 관계에 있던 남코는 이미 아케이드 건슈팅에 있어 상당한 명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따라서 시리즈의 아케이드 데뷔를 위한 최상의 포석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다음 작품은 드림캐스트로 발매되어 호평을 받았던 코드: 베로니카의 자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게임이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들은 처절한 실패를 맛보아야만 했다.
복잡한 의사결정 과정 중, 건 서바이버 2의 아케이드 케비닛에서 라이트 건이 빠지게 되었다. 건 서바이버 2를 실제로 목격한 사람이라면, 분명 케이스에 총이 붙어 있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 달려있던 총은 조준을 위한 것이 아니다. 실상은 총을 앞뒤로 밀거나 좌우로 돌려서 이동하는 데 쓰이는, 총 모양의 조이스틱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조작체계로는 한 바퀴 돌면서 총알을 뿌려대는 연출은 가능할지 몰라도 위와 아래로는 절대로 조준할 수 없었으며, 조작감각 면에서도 라이트건의 자유로운 조준과는 비교조차도 할 수 없었다.
캡콤은 자신들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PS2용 이식에서는 건콘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지만 애초에 게임 자체가 가정용 콘솔에 적합한 물건은 아니었다. 캡콤은 결국 건 서바이버 2의 북미 출시 자체를 포기하게 된다. 일본과 유럽에서도 건 서바이버 2는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바이오 하자드의 건슈팅 스핀 오프 시리즈의 미래 역시 어둡기만 했다.
그러나 캡콤의 의지는 강했다. 다시 한 번 남코와 손을 잡고 디노 크라이시스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전편에서의 문제점들을 보완한 게임을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게임은 비평가들의 혹평을 받았으며 게이머들에게는 주목조차 받지 못하고 사라지고 말았다. 이쯤되면 포기할 법도 한데, 캡콤은 한 번 더 제대로 된 게임을 만들어 보고자 했다.
처음부터 PS2를 타겟으로 바닥부터 다시 만드는 마지막 시도에서 캡콤은 모든 그래픽을 새롭게 작업했고 스토리도 새롭게 구성했다. 완성도를 높이려는 시도에 더해, 컨콘 지원에 대한 부분은 절대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캡콤은 이게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지난 실패에 대한 의식을 떨쳐버리고자, 북미 발매에서는 건 서바이버라는 이름 자체도 떼어버렸다. ‘레지던트 이블: 데드 에임’은 지난 건슈팅 게임들과의 연관성을 부정하고, 완전히 새로운 컨셉으로 시작하는 게임이었다. 1인칭과 3인칭을 적절히 조합한 카메라 시점을 통해, 데드 에임은 스핀 오프 게임이라기 보다는 원래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에 무척 가까운, 그러면서도 액션이 더욱 중시되고 라이트건을 사용한다는 특징을 가진 게임이 되었다. 크루즈 선박이라는 배경 또한 독특하고 매력적인 설정이 되었다.
데드 에임은 비디오게임 업계가 전반적으로 침체기였던 2003년 여름에 발매되었다. 비록 최고의 게임이라는 찬사를 받지는 못했지만, 대부분의 게이머들은 전작과 비교해서 상당히 발전된 게임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게임 매체들마다의 평가는 제각각 이었으나 캡콤은 최소한 그들이 내세웠던 컨셉을 제대로 구현한 게임을 만들 수 있다라는 것만은 충분히 증명했다. 그러나 우호적이었던 평가와 달리, 판매량 면에서는 데드 에임 역시 전작들과 큰 차이가 없는 실패를 거두었다. 이로서 건 서바이버 시리즈는 완전히 종결되었지만, 그래도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사라진 것은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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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트레비스 파스 / 번역: 페이비안 / 원문게시일: 2009.3.11 / 출처: IGN Retro
* IGN.com으로부터 전문 번역 허가를 받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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