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사무실에서 깜빡하고 킨들을 챙겨오질 않았습니다. 두세 주 정도 출퇴근할 때마다 붙잡고 있다보니 중독이 되었는지 놓고 온 걸 깨닫는 순간부터 전전긍긍.. 게다가 지금 읽고 있는 The Tourist라는 첩보 소설이 꽤나 흥미진진해질려는 찰나인지라 퇴근길 내내 계속 안절부절 모드였지요. 집에 오자마자 애플 앱 스토어의 Kindle for ipod touch가 생각나서 낼름 아이팟에 깔았습니다.


아마존에서 광고를 본 적이 있었지만, 그동안은 귀찮기도 하고 굳이 킨들이 있는데 뭐하러..라는 생각으로 그냥 있다는 것 정도만 파악하고 있던 어플이었는데, 이런 때 정말 고마운 존재가 되더군요.

Kindle 본체의 경우에는 현지에만 배송이 된다는 점에다가 Kindle용 책들은 또 원칙적으로 미국 내에서만 판매되는 것으로 되어 있어서 본체 구입에 구매대행을 쓰고 책 구매에 Gift Card를 쓰는 등의 삽질을 겪어야 했는데요. 마찬가지로, 아이팟용 킨들 프로그램을 다운받으려면 아이튠즈 스토어의 미국 계정이 있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아이튠즈 미국 계정을 만들려면 미국 주소의 신용카드가 있어야 하죠. 마침 예전에 잠깐 미국에 살던 시절에 거기 신용카드로 만들어놓은 아이튠즈 계정이 있었던 터라.. 이것도 듣자하니 Gift Card 등을 이용하여 계정을 만드는 게 가능하다는 얘기가 있더군요. 실제로 해보진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ifree 사이트 등 조금만 검색하면 나오는 거 같습니다.

아이팟용 Kindle 어플 자체는 앱 스토어에서 무료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습니다. 다운받은 후 아이팟 본체에서 킨들 어플을 클릭하면 Wifi로 아마존 계정을 등록하게 되어 있고요. 등록 후에는 본인이 구입한 킨들용 서적들에 억세스가 가능해집니다.


정작 킨들 본체로는 못해본 무선으로 책 다운로드 받는 작업을 아이팟을 통해 경험하게 되었네요. ^^ 미국에서는 Whispernet과 Whispersync를 통해 현재까지 읽은 진도가 킨들과 아이팟 사이에 자동으로 싱크된다고 합니다만, 그야말로 남의 나라 이야기.

기존에 구매한 서적은 Archive에 들어가 있고, (Wifi가 켜진 상태에서) 표시된 책을 선택하면 아이팟의 홈으로 책을 전송해 줍니다. 당연히 저는 일단 The Tourist를 옮겨놓고, 혹시 몰라서 2-3권 정도 옮겨 보았습니다. 집 네트워크 상태가 안좋아서 그런 건지 시간은 좀 걸리더군요. 그나마 한 권씩 옮기는 게 아니라 멀티로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은 다행.


화면 크기는 확실히 좀 작기는 하지만, 전자잉크의 수수한 화면에 비해 백라이트 액정의 화려함(?)이랄까... 확실히 딱 보기에는 상당히 좋아보이는 화면입니다. 아이팟 터치용 아니랄까봐, 페이지 넘기는 방식은 터치 & 슬라이드로 넘어가네요. 킨들은 초기설정 폰트가 읽기 딱 좋은 사이즈였는데, 이쪽은 한 사이즈나 두 사이즈 정도 줄이는 편이 눈에 좀 잘 들어오는군요.


킨들도 역시 MP3 기능이 있기는 하지만, 아이팟에 깔아놓은 음악을 들으면서 독서. 꽤 괜찮네요.

그렇다고 킨들의 가장 큰 매력인 눈에 피로를 덜 주는 전자잉크 방식의 (나름) 넓직한 화면을 완전히 대치할 수는 없다는 건 분명하지만, 장시간 독서에는 킨들 2, 잠시 짬낼 때는 아이팟 킨들 같은 식으로 상호 보완적인 존재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오늘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니, 삼성에서 '파피루스'라고 e-book을 하나 내놓는다는 소식이 들리더군요. 킨들 사면서, 와이프가 조만간 삼성에서 그런 비슷한 거 국산으로 만들지 않겠냐? 왜 영문만 되는 걸 살라고 그러냐.. 하는 얘기에, 절대 그럴 일 없을거다 호언장담을 하고 내기까지 했는데.. 알고보니 알만한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던 개발 소식이라고 하네요. ㅋㅋ

그래서 오늘의 교훈: 무식하면 용감하다. & 와이프 말은 언제나 잘 들어야 한다.

그래도 e-book 자체의 완성도도 그렇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컨텐츠의 확보 문제를 생각하면, 아직 국내 e-book 사업은 갈 길이 멀지 않았나 싶은 생각을 해봅니다. 교보문고에서 진행하는 개발 사업을 차라리 컨텐츠 개발에 포커스를 맞추고, 하드웨어는 파피루스나 누트랑 잘 엮으면 뭔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 과연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