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팟과 맥북으로 얼리어뎁터는 물론 대중적인 인기도 독차지하고 있는 애플사의 과거를 돌아보면, 자사의 이름을 걸고 만들었던 애플이라는 컴퓨터가 있었습니다. 80년대와 90년대 초반 대부분의 컴퓨터 학원에 비치되어 있던 APPLE II 컴퓨터로 BASIC을 배우거나 게임을 돌리면서 컴퓨터와 IT에 첫 발을 디딘 분들도 대단히 많을 것이라 생각하는데요.

가마수트라의 게임 플랫폼 역사 시리즈 3번째 이야기, APPLE II의 역사에 대한 번역 연재를 시작합니다. 저처럼 20년전 추억을 떠올려보면서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좋겠네요. 자유롭게 퍼가시되, 원문 출처, 원문 저자, 번역 출처를 명시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게임 플랫폼 1탄과 2탄은 코모도어 64벡트렉스인데, 이걸 기억하시는 분들이라면 굳이 번역은 필요없을 거 같아 참고로 링크만 걸어둡니다.)

게임 플랫폼의 역사: APPLE II (1)

글/ 메트 바톤 (Matt Barton) & 빌 도기디스 (Bill Loguidice)
2008년 1월 31일 - Gamasutra

APPLE II는 가장 오랫 동안 사랑 받으며 가장 많은 영향력을 가졌던, 그야말로 가정용 컴퓨터 사상 가장 성공적인 기종이다. 특히 애호가들의 소장품에 불과했던 가정용 컴퓨터가 미국의 일반적인 가정 거실로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은 APPLE II의 가장 큰 역사적 의의라고 할 수 있다. APPLE 시리즈는 1977년에 처음 세상에 등장한 뒤, Disk II 드라이브의 등장과 함께 가정용 컴퓨터의 대명사로 자리를 굳혔으며, 시리즈의 완성형이라고 할 수 있는 IIe 기종은 1993년 11월에 이르기까지 생산이 계속될 정도의 장수를 누렸다. 현재 IT 업계에 종사하는 무수히 많은 전문가와 비전문가들이 IT와 컴퓨터에 대한 여정을 시작했을 때 함께 했던 컴퓨터 역시 애플이었다.

APPLE 컴퓨터의 역사

APPLE II 이야기는 캘리포니아 서니베일에 살던 두 명의 스티브와 함께 시작된다. 휴렛-팩커드(HP)의 재능있는 계산기 전문 엔지니어였던 스티브 "Woz" 워즈니악과 HP에서 여름에 근무하던 열정적이고 독특한 인턴 스티브 잡스. 둘은 고교 시절부터 친구였고, 이미 고등학교 시절 "블루 박스"라는 시외통화를 해킹하여 통화 내용을 도청할 수 있던 불법 장비를 만들어낸 바 있는 실력 있는 해커들이었다.

스티브 잡스는 1974년, 아타리의 40번째 직원이 되어 당시 혁신적이었던 젊은 회사인 아타리에서 시간제 기술자로서 근무하였다.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인도로 여행을 떠나는데, 1년 뒤에 삭발한 머리와 인도 전통 복장을 하고 다시 아타리에서 근무를 계속하게 된다. 당시 아타리는 아케이드 게임인 퐁을 개발하여 대히트를 쳤었고, 조만간 퐁을 가정용 버전으로 출시하여 또 다른 성공을 거두기 직전이었다. 야간 엔지니어였던 잡스는 퐁의 게임플레이를 수직적으로 변형시킨 1인용 게임인 브레이크아웃을 개발하는 작업을 의뢰받았다.

브레이크아웃은 화면 밑에 표시된 움직이는 판을 이용해서 작은 공을 쳐내 화면 위쪽에 있는 블럭들을 제거하는 게임이었다. 당시 기술로는 이러한 게임을 돌릴 수 있는 기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대단히 높은 비용을 요구하였기 때문에, 아타리로서는 최소한의 칩셋만을 이용하여 이러한 게임을 구현하고자 했다. 이러한 기술적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잡스는 그의 옛 친구인 위즈니악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아타리는 워즈니악이 취미로 만든 가정용 퐁의 클론이 매우 인상적이라고 생각했으나, HP에서 그를 스카웃하는 데에는 실패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즈니악은 아타리의 아케이드 게임에 대한 애정과 엔지니어로서 문제해결에 대한 열정으로 잡스의 요청에 도움을 주기로 한다. 그는 단지 4일만에 당시 다른 어떤 아타리 게임보다 더 적은 수의 칩셋을 사용한 효율적인 디자인을 제시하였다. 아타리의 엔지니어들은 감동했고 스티브 잡스는 덕분에 많은 연봉과 보너스를 받았다 (이러한 돈을 워즈니악과 나누거나 하진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브레이크아웃은 아타리에게 또 하나의 아케이드 대박을 안겨주었다.

수 년간의 하드웨어 해킹과 취미로 했던 두 번의 비디오 게임 분석 및 개조를 거친 후, 워즈니악은 텔레비전 컴퓨터 터미널에 대한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했다. 그는 이제 막 초기 단계인 가정용 컴퓨터 산업의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가 바로 싸고 효과적인 디스플레이의 부재라는 점을 깨달았다. 컴퓨터 애호가들은 점멸하는 LED 판에 만족하거나 큰 돈을 들여 비디오 또는 텍스트 터미널을 마련해야 했으며, 두 가지 모두 일반인들에게 보급되기에는 적절치 않았다.

워즈니악은 당시 앞서가는 컴퓨터 산업의 인재들이 아이디어와 열정을 교환하던 전설적인 모임인 홈브류 컴퓨터 클럽(Homebrew Computer Club)에 주기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이 그룹에서 창의적인 영감과 동기를 부여받은 그는 곧 훗날 APPLE I이 될 프로토타입 컴퓨터를 선보이게 된다. 비록 저렴한 MOS 6502 마이크로프로세서, 4KB RAM, 그리고 확장 커넥터가 달린 세련된 디자인의 회로 보드에 불과했지만, 이 프로토타입은 향후 컴퓨터 산업의 기반을 다진 제품이라는 의의를 갖게 된다. 아타리와 HP가 이 프로토타입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자, 두 명의 스티브는 애플 컴퓨터라는 자기들만의 회사를 1976년 4월 1일에 설립하였다.

워즈니악의 침실과 잡스의 차고에서 그들은 APPLE I의 생산을 시작했다. 당시부터 설득의 귀재였던 잡스는 지역의 컴퓨터 스토어인 바이트 샵과 5만불에 해당하는 주문 계약을 따냈다. 자금, 시간, 그리고 공급에 대한 상당한 제약에도 불구하고, 바이트 샵에서 자판과 나무 케이스를 제공하기로 하는 조건으로 주문은 성사되었다. 바이트 샵과 각종 잡지의 홍보 및 광고를 통해 APPLE I이 조금씩 판매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애플 컴퓨터는 느리지만 꾸준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APPLE I이 정식으로 발매되기 전부터, 잡스와 워즈니악은 새로운 기능들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디자인을 계속 업데이트해나갔고, 그러한 과정을 홈브류 컴퓨터 클럽과 공유했다. 그 결과로 APPLE II가 탄생했다. APPLE I으로부터 그다지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APPLE II는 모든 면에서 APPLE I보다 진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APPLE II는 플라스틱 본체에 풀 스트로크 키보드와 외부 주변기기 포트, 그리고 쉽게 사용할 수 있는 8개의 내부 확장 슬롯을 갖춘 완성도 높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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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2월 바이트 매거진에 실린, 여러 페이지에 걸친 APPLE II 컴퓨터 광고 중 한 면. 애플은 이미 당시에도 사람을 끄는 광고를 만드는데 특출난 소질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홈브류 컴퓨터 클럽의 친구들을 놀라게 하는 것을 즐겼던 워즈니악은, BASIC 언어만으로 브레이크아웃을 프로그래밍하여 플레이까지 되는 모습을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이러한 것은 APPLE I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으며, 따라서 워즈니악은 APPLE II를 디자인하면서 칼라 그래픽 명령어, 게임 콘트롤러를 위한 기판, 그리고 사운드를 위한 스피커 등을 포함시켰다. 이러한 기본 기능을 갖춘 APPLE II는 1977년 당시 당시 라이벌이었던 코모도어 PET나 탠디 TRS-80 모델 I이 감히 대적할 수 없는 강력한 기술로 무장하게 된다. 말재주가 비상한 괴인과 비디오게임에 매료된 천재 엔지니어 덕분에, 가정용 컴퓨터 산업은 드디어 진정한 발전을 눈 앞에 두게 된 것이다.

"APPLE II가 시대에 앞설 수 있게 만든 많은 기능들은 게임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어요. 특히 클럽에서 자랑하고 싶어서 시작했던 작은 프로젝트가 시작이죠. BASIC 버전으로 브레이크아웃을 만들자는 생각이 APPLE II의 재미있는 기능들의 기원입니다." - 스티브 워즈니악, Call-A.P.P.L.E. 매거진, 1986년 10월호


출처: Gamasutra

덧. 브레이크아웃 (1979년 아타리)의 스크린샷을 인터넷에서 긁어봤습니다.
출처: http://gotcha.classicgaming.gamespy.com/breakout.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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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나시는 분들이 많으신가요? 저는 알카노이드라는 이름으로 기억하던 게임이, 사실은 이쪽이 오리지널이었군요. ^^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Clarendon 2008.02.25 16: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브레이크 아웃이라..브레이크 아웃이라는 벽돌깨기게임을 리눅스에서 해봤던 기억이 나는데..비슷한걸까요..^^

  2. BlogIcon XROK 2008.02.25 17: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http://book.interpark.com/product/BookDisplay.do?_method=Detail&sc.shopNo=0000400000&sc.dispNo=&sc.prdNo=1568904

    '게임의 시대' 라는 책에서 봤던 history를 여기서 한번 더 보게 되는군요.

    감회가 늘 새로워요 고전(?) 게임들은 말이죠 :)

    • BlogIcon 페이비안 2008.02.25 18: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마도 APPLE쪽 히스토리는 무수히 많은 곳에서 언급된 이야기일 거 같습니다. 게임쪽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스티브 잡스 아저씨가 지금 워낙 잘나가고 있기도 하고요. 중복뒷북이긴 하지만서도, 반복학습이 중요한 거 아니겠습니까..핫핫핫.

  3. BlogIcon 하느니삽 2008.02.25 20:0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 첫 컴퓨터가 Apple II+였습니다. 그린 모니터에 5.25" 갈아끼우면서 게임을 하던 기억이 나네요. 그당시 MSX로 롬팩게임을 하는 친구들이 너무 부러웠습니다.

    • BlogIcon 페이비안 2008.02.25 21: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 첫 컴퓨터는 MSX였었어요. 학원에 다니면서 처음 본 컴퓨터는 APPLE II였지만요.. ^^ 롬팩게임은 MSX II용으로 많이 했던 거 같아요. 정말 아련한 추억이네요.

  4. BlogIcon 둠헤머 2008.02.25 22: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새로운 연재를 시작하셨군요. 덕분에 흥미진진한 읽을거리가 생겨서 기쁩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읽을께요..ㅎㅎ
    이글을 보니 어렸을때가 생각나서 댓글로 적을려다가 너무 장황할것같아서 트랙백으로 걸었어요..^^

    • BlogIcon 페이비안 2008.02.26 12: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재밌게 읽어주시니 항상 감사드립니다. ^^ 트랙백 감사드리고요. 반사 트랙백 날리러 갑니다. 저도 어릴 적에 IQ1000 붙잡고 비슷하게 놀았던 기억이 나네요.

  5. BlogIcon drzekil 2008.02.26 14: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알카노이드의 원조로군요..^^
    iCon에 의하면..
    아타리에서 브레이크 아웃을 개발한 비용을..
    잡스는 워즈와 1:1로 나누기로 하고..
    사실은 잡스가 더 많이 가져갔다고 하더군요..
    무엇이 사실인지는 그 두사람만 알겠죠..^^

    • BlogIcon 페이비안 2008.02.26 14: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워즈니악은 돈 보다는 개발 자체를 즐겼던 사람일까요? 회사도 나와서 자선 사업에 뛰어드는 모습을 보면.. 잡스만큼이나, 아니면 더 기인인 거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