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M vs. 게이머, 그 전쟁의 끝은? -1-

게임라이프/번역 2010. 4. 27. 16:50 Posted by 페이비안
"대부분의 컴퓨터 애호가들은 명심해야 한다. 당신들이 소프트웨어를 훔치고 있다는 사실을. 하드웨어는 돈을 지불하고 사야 하는 물건이지만 소프트웨어는 공유해야 한다? 그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이들이 댓가를 얻든 그렇지 않든 개의치 않는 태도가 과연 공정한 것일까?"

빌 게이츠가 소프트웨어 불법복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썼던 글의 일부이다. 하지만 최근에 토렌트에 나돌아다니는 윈도우즈 7에 대한 것은 아니다. 사실 위의 글은 1976년, 마이크로소프트가 아직 마이크로-소프트였던 시절에 Altair BASIC의 불법복제 카피를 쓰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쓰여졌던 내용이다. Alrair BASIC이 아날로그 페이퍼 테입에 담겨 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상용 소프트웨어의 역사 자체가 처음부터 코드를 만들어 파는 사람들과 이를 공짜로 쓰길 원하는 사람들 간의 테크놀러지 전쟁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최근에 이 문제로 유저들의 엄청난 비난과 분노에 직면한 회사가 있다. 자사의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기 위해서 항상 온라인에 접속해 있을 것을 플레이어들에게 강요하는 무리수를 둔 유비소프트가 바로 그 회사이다. 회사의 인증 서버 문제로 정품 소프트웨어를 구매한 이들조차 게임을 즐길 수 없는 상황까지 더해져 사태는 더욱 악화되고 있다.

그 이전에는 SecuROM이라는 그들의 매우 완고한 DRM 정책으로 EA가 비난의 대상이었다. 예를 들어 스포어 같은 게임들은 10일마다 온라인 인증이 필요하며 게임 인스톨 횟수 자체가 3회로 제한되었지만 사실 이러한 조치들이 불법복제 커뮤니티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미미한 수준이었다. 스포어는 발매 이전에 이미 해킹되어 2008년 불법복제 카피가 가장 많이 퍼진 게임이라는 불명예까지 안게 된다. 또 한 번, 정당하게 돈을 주고 자신들의 소프트웨어를 구매한 소비자만 DRM으로 인해 불편함을 겪었던 것이다.

천공 종이 테이프에 담긴 마이크로-소프트의 Altair BASIC


1980년대에도 (비록 지금같이 복잡한 것은 아니었지만) Apple II 같은 당시 컴퓨터에 쓰였던 초기 플로피 디스크조차 디스크 섹터 작성 방식을 통한 소프트웨어 카피 프로텍션이 적용되었다. 이러한 기초적인 시스템은 적용 즉시 락스미스(Locksmith) 같은, 반 바이트씩 끊어서 복제를 수행하는 프로그램들에 의해 공격당하고 말았다.

영국 게이머들에게 있어 카피 프로텍션 문제가 수면 위로 크게 부상한 것은 고전 명작 젯 셋 윌리(Jet Set Willy)가 스펙트럼용으로 발매된 1984년일 것이다. 다른 여타 초기 가정용 컴퓨터와 마찬가지로, ZX 스펙트럼은 그 저장 미디어의 단순한 형식으로 인해 불법복제의 온상이었다. 누구든 더블 카세트 테이프 덱을 가지고 있다면 한 쪽에 소프트웨어를, 다른 한 쪽에 빈 테이프를 넣고 복사 버튼만 누름으로서 친구들에게 게임을 복사해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카세트 테이프의 특성 상 섹터 읽기를 통한 복제 방지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게임 제작사들은 불법복제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것이 좀 더 귀찮은 작업이 되도록 하기 위한 참신한 방법들을 고안해야만 했다. 젯 셋 윌리에서는 이러한 방법으로 정품 박스 안에 컬러 그리드 카드가 포함되었다. 게임을 로딩하기 위해서는 화면에 랜덤하게 표시되는 그리드 좌표에 해당하는 색이 무엇인지를 입력해야 했던 것이다. 가정용 스캐너가 상상 속의 미래 장비였으며 컬러 복사기 또한 쉽게 찾아보기 힘들었던 그 시절, 색연필을 가지고 그리드 하나마다 색을 칠하는 시간과 노력은 불법복제를 막는 상당히 효과적인 장애물이었다.

1984년 선보인 불법복제 방지 장치 중 하나로 스피트락(Speedlock)이라는 것도 있었다. 컴퓨터로 하여금 고속으로 레코딩된 데이터를 읽을 수 있게 하는 로딩 방법이었는데, 이렇게 빠른 로딩을 통해 카세트 테이프가 가진 로딩 속도를 개선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가정용 더블 덱 스테레오를 통한 불법복제도 어려워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렇게 고속 레코딩으로 저장된 소프트웨어는 매우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게 되어, 심지어 정품을 구매한 유저라도 때때로 로딩에 실패하는 부작용까지 가져오게 된다. 불법복제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가 오히려 더 많은 문제를 가져오는 사례는 이제 막 시작에 불과했다.

게이머들의 엄청난 분노와 불편함을 자아내게 했던 첫 번째 불법복제 장치 렌즈록(Lenslok) 또한 스펙트럼을 통해 등장했다. 1985년 스펙트럼용 엘리트라는 게임을 통해 처음 선보였던 렌즈록은 종이 프레임에 플라스틱 렌즈가 붙어있는 장치였다. 이 시스템이 적용된 게임은 화면에 왜곡된 코드를 보여주는데, 동봉된 렌즈를 통해서만 어떤 글자가 쓰여 있는지 알 수 있었고, 이를 입력해야만 게임이 시작되는 방식이었다.

악명 높았던 렌즈록. 이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난다면 당신은 벌써 올드게이머.


설령 제대로 작동한다 치더라도, 그 방식 자체로도 짜증나는 장치였다. 그런데 종종 제대로 작동하지도 않았으니 당시의 게이머들이 얼마나 화가 났을지는 뻔한 일이었다. TV 화면의 사이즈에 맞춰서 조정을 해야 하는 것 역시 번거로운 일이었는데, 너무 크거나 작은 화면의 TV를 가진 게이머들은 조정조차 할 수 없어서 게임을 플레이하지 못하는 상황도 발생하였다. 어떤 렌즈는 동봉된 소프트웨어와 전혀 맞지 않는 것들까지 있었다.

싱클레어 유저(Sinclair User)라는 잡지의 1986년 3월호에서 M.Briody라는 게이머는 그가 구입한 엘리트에 걸린 렌즈록에 대해 불만을 이렇게 쓰고 있다. "게임을 구매한 후 지금까지 아직도 첫번째 보안 화면을 넘어가 본 적이 없다. 게임 자체는 너무도 훌륭하다는 리뷰 덕분에 게임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 상태이기 때문에 더더욱 화가 난다. 나 같은 사람들이 아마도 수백 혹은 수천에 이를 것인데, 이들 모두가 분명 다음부터는 렌즈록 장치가 된 게임이라면 구매를 망설이게 될 것이다."

렌즈록과 관련된 문제점이 과장된 면이 없지는 않지만, 제대로 작동할 경우에도 짜증을 유발하는 이러한 불편함 때문에 이 장치는 11개의 게임에 적용된 이후 조용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반면, 디스크 기반의 홈 컴퓨터 포맷을 사용하는 게임들은 젯 셋 윌리에서 사용한 방법과 유사한, 정품으로 구매한 패키지에만 포함된 무엇인가를 통해서만 게임을 인증할 수 있는 방식들을 실험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사용된 것이 메뉴얼 특정 페이지에 나와 있는 단어나 문장을 입력하는 것인데, 이는 사실 A4 용지와 복사기만 있다면 쉽게 뚫릴 수 있다는 문제가 있었다.

루카스아츠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매니악 맨션의 경우처럼 암호 자체를 어두운 종이에 인쇄하는 방식이나 붉은 셀로판지를 통해서만 볼 수 있는 잉크를 사용하는 것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원숭이섬의 비밀에서는 돌아가는 암호 원판이 사용되었는데, 두 개의 원판을 통해 해적 얼굴을 조합하는 것으로 암호를 입력하는 방식이었다. 불법복제품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가위질과 원판 조립이라는 부담을 줌으로서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했던 것이다. 1990년대에 PC나 아미가, ST 등에서 불법복제를 회피하는 방법이란 얼마나 정교하게 메뉴얼이나 부속품을 복제해내느냐의 문제였다.

당시의 컴퓨터 게임은 커다란 카드보드 박스에 담겨 있었고, 그 안에는 몇 장의 플로피 디스크와 메뉴얼이 담겨 있었을 뿐 나머지는 그저 무의미한 빈 공간이었다. 몇몇 제작사들은 그 빈 공간을 수집가들을 위한 몇 가지 부속물들로 메우면서 이를 불법복제 방지를 위한 장치로도 활용하였다.

조크 제로(Zork Zero)를 예로 들자면, 컬렉팅 아이템으로 캘린더와 청사진 그리고 모조 양피지가 들어가 있는데 이들 아이템들이 게임 속에서 매우 중요한 퍼즐을 해결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정보를 포함하고 있다. 일정 시점에서 플레이어는 문제 해결을 위해 게임 패키지를 참고하라는 지시를 받게 되는데, 만약 이에 대해 제대로 답변하지 못할 경우 불법복제 유저로 간주하고 "잘해봐라 이 나쁜 놈아!"라는 메시지가 뜨는 것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

글: Dan Whitehead / 번역: 페이비안 / 원문게시일: 2010.4.14 / 원문출처: Euroga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