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2

스즈키 유의 지휘 하에 스페이스 해리어, 아웃런, 에프터 버너, 버추어 파이터 등을 비롯한 다양한 히트작을 줄줄이 쏟아낸 AM2는 아케이드 부문 중에서도 가장 사랑받는 팀이었다. 아케이드 왕국이라는 세가의 확고한 명성 뒤에는 AM2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었다.

스즈키 유는 좀 더 거대한 스코프를 가진 게임을 만들고자 했지만 세가의 경영진들은 쉽게 그의 기획을 승인할 수 없었다. 그가 구상한 첫번째 콘솔용 게임은 열 두개의 챕터라는 방대한 양으로 최소 3개의 타이틀로 나뉘어야 했으며, 지금까지의 게임과는 차원이 다른 디테일을 갖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 게임을 통해 새턴이 플레이스테이션과 비교하여 3D 능력에 있어서도 모자람이 없다는 것 역시 보여주고자 했다.

이 프로젝트는 그야말로 돈 먹는 하마였다. 첫번째 추가 비용은 개발 자체를 새턴에서 드림캐스트로 변경하면서 발생하였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몇 명의 사진사들만으로 충분했던 중국 비경지들에 대한 여행을 거의 모든 개발 팀원이 다녀오는 등 비용 낭비가 심했던 것이다. 또한 전례 없는 디테일의 추구로 인해 개발을 진행하면 할수록 추구하던 목표는 점점 더 멀어지곤 했다.


계획대로라면 첫 번째 게임에 전체 12개의 챕터 중에서 다섯 개가 포함되어야 했으나, 발매일이 서서히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완성된 것은 첫번째 장 뿐이었다. 개발팀은 이미 배경은 어느 정도 구성된 뒷쪽 챕터들을 모두 걷어내고 첫번째 챕터의 퀘스트들을 확장하여 하나의 게임 분량으로 만들었다. 나머지 챕터들은 후속작을 기약해야만 했다.

셴무를 둘러싼 마케팅과 입소문은 굉장했다. 초기 테크니컬 데모들은 당시 기준으로는 정말 놀랍도록 현실적인 얼굴들과 배경들을 선보여 게이머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 그란 테프트 오토 IV를 보고 자란 세대들은 왜 셴무가 그렇게 충격적이었는지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 당시에 그 데모를 보았던 게이머들은 그 당시를 생생히 기억할 것이다. 배경이 되는 지역은 그렇게 넓은 것은 아니었지만, 마치 그 곳에서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현실감이 있었다.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살 수도 있었으며 아케이드 센터에서 게임을 즐길 수도, 시내에 있는 술집에서 한 잔 할 수도, 심지어는 직업을 구해서 매일 출근하여 일을 할 수도 있었다. 여기에 셴무 특유의 분위기, 스토리, 그리고 완벽한 음악까지 조화를 이루어 셴무라는 경험 자체를 무척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 주었다.

셴무는 드림캐스트의 가장 성공적인 게임 중 하나가 되었지만, 워낙 개발 예산을 심하게 초과한 탓에 실제로 회사에 이익을 가져다 주지는 못했다. 발매 시점에서 전체 비용이 8천만 달러에 육박했던 것이다. 세가로서는 시리즈의 후속 작품을 좀 더 적은 비용으로 만들어서 최소한 적자는 면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셴무 II에서 원래 첫번째 작품에 들어가야 할 챕터들에 대한 작업은 이미 어느 정도 끝난 상태였기 때문에 세가의 이러한 바램은 전혀 허황된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셴무 II는 좀 더 합리적인 비용만으로 개발을 종료할 수 있었으며 모든 면에서 전작을 뛰어넘는 작품이었다. 스즈키 유가 기획했던 방대한 스토리 중 세 개의 챕터들을 풀어낸 이 게임은 전작에 비해 보다 많은 스토리와 보다 넓은 배경 그리고 보다 큰 다양성을 갖추고 있었다. 게임플레이 시간 자체는 전작에 비해 크게 늘어나진 않았는데, 덕분에 보다 빠른 전개를 보여주었다. 완차이와 에버딘은 셴무 1의 도부이타에 못지 않은 디테일을 보여주는데, 여기에 더해 쿠롱 지하 도시나 가일린의 아름다운 언덕 같은 다채로운 배경은 셴무 II을 더욱 독특하고 아름다운 작품으로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셴무 II는 너무 늦게 등장했다. 셴무 II가 발매될 당시 세가는 이미 드림캐스트 게임들에 대한 북미판 이식 작업의 메리트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유럽에서 영문판이 등장한 덕분에 EB Games등의 몇몇 게임샵에서는 셴무 II를 기다리는 북미 팬들을 위해 유럽판을 수입해서 판매하기도 했다. 결국 Xbox용으로 거의 변경점이 없이 이식된 북미판 셴무 II가 발매되었지만, 그 시점에서는 이미 그래픽은 구식이 되어버렸고 게이머들은 한 때 걸작이었던 이 게임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AM2는 아케이드 쪽에서 여전히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드림캐스트에 있어서는 지속적인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페라리 F355 챌린지는 게임성의 깊이와 현실감 그리고 아케이드 감각을 동시에 살려낸 명작으로 평가받았지만 가정용 이식작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아웃트리거는 보기 드문 일본식 일인칭 슈팅 게임이었지만 언리얼 토너먼트와 퀘이크 3와 비교해서는 경쟁이 될 수 없었다. AM2의 드림캐스트용 마지막 아케이드 이식작이었던 아메리칸 프로 트러커 역시 아케이드에서의 인기를 가정용으로 이어가지 못했다.

AM2의 드림캐스트용 마지막 프로젝트는 8인 온라인 대전을 지원하는 공중전 게임 프로펠러 아레나였다. 특별히 혁신적인 부분이 있는 게임은 아니었지만 나름의 매력을 갖춘 이 게임은 그러나 드림캐스트의 생산 중단과 9.11 테러 사건 등이 복합적인 원인이 되어 결국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지는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유출된 베타 버전을 보면 게임은 완벽하게 완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세가의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온라인 모드를 테스트할 방법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드림캐스트의 퇴장과 함께 AM2는 다시 그 명성을 회복하게 된다. 버추어 파이터 4는 시리즈의 새 역사를 쓰는 걸작이었는데, 만약 이 게임이 2000년에 드림캐스트로 발매되었더라면 드림캐스트 몰락의 흐름을 반전시킬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세가의 모든 개발 스투디오가 통합된 이후에도, 아케이드 부문은 여전히 아케이드 센터를 위한 멋진 게임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러나 스즈키 유의 이후 행보는 팬들로서는 안타까운 일들 뿐이었다. 셴무로 인한 재정적인 문제 이후로 세가는 그에게 더 이상 많은 예산이 필요한 대형 프로젝트를 맡기지 않게 되었다. 셴무 III에 대한 준비 작업은 끝났지만 구체적인 개발 작업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다. 중국쪽 개발사와 함께 시리즈를 온라인 RPG 형태로 이어가고자 하는 시도는 더더욱 실망스러운 결론으로 끝나버렸다. 심지어 그의 전공인 아케이드 쪽에서도 그가 새롭게 내놓았던 사이-파이(Psi-Phy)는 고작 몇몇 지역에 공급되는 것에 그치고 말았다. 드림캐스트 시대 이후에도 그는 몇 가지 게임들을 내놓았지만 지난 명성에 부합하는 작품은 하나도 없었다. 올해 초 그는 사실 상의 은퇴 수순에 들어갔는데, 이는 그의 재기를 오랫동안 바래왔던 팬들에게는 무척이나 슬픈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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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트래비스 파스 (Travis Fahs) / 번역: 페이비안 / 원문 게시일: 2009.9.7 / 출처: IGN Retro

* IGN.com으로부터 출처 표기를 조건으로 전문 번역 허가를 받은 글입니다.

* 세가 팬이시라면 또 다른 IGN 번역연재 '눈물없인 볼 수 없는 세가의 역사'도 읽어보세요. 좀 더 세가라는 회사 쪽에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습니다. (이번 글은 드림캐스트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좀 더 집중하여 전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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