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패드, 게이머라면 사야할까?

게임라이프/번역 2010. 4. 13. 17:06 Posted by 페이비안
2004년 E3에서 닌텐도의 새로운 휴대용 게임기 DS가 공개되기 이전에, 닌텐도측으로부터 데모용 DS를 다룰 개인적인 기회를 얻은 적이 있었다. 한 게임 잡지의 편집장과 함께 서 있는 동안 닌텐도의 대변인은 마치 보석이 박힌 왕관을 다루듯 구형의 커다란 DS를 조심스럽게 꺼내들었다. 딱 보기에도 별로 예쁘지도 끌리지도 않은 모습이었다. 우리가 플레이해볼 수 있었던 "초기 컨셉" 게임들 역시 수준 이하였다. 특히 소닉 더 헤지혹은 그 중에서도 최악이었는데, 소닉을 달리게 하려면 스타일러스로 화면을 박박 긁어주어야만 하는 최악의 조작감이 압권이었다. 한마디로 이건 가지고 놀 만한 물건이 아니었다. 데모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나와 함께 참석했던 편집장은 일생을 통털어 닌텐도에게 이렇게 실망감을 느낀 것은 처음이라는 말을 남겼었다.

그러나 지난 6년은 초기 데모에서 보여준 실망과는 전혀 다른 전개로 흘러왔다. 게임 개발자들의 손에 들어간 DS는 창의적인 작품들이 태어나기 위한 최적의 플랫폼이었던 것이다. 모든 연령대에 어필하는 놀라운 게임들이 DS로 쏟아져 나왔고, 그로 인해 DS는 세계 최고의 휴대용 게임기가 되었다.

아이패드가 DS의 놀라운 등장 그리고 이어지는 성공을 똑같이 따를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둘 사이의 유사점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말해주고 있다. 아이패드 역시 공개 직후에는 그리 좋은 인상을 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공개 이후에 만났던 모든 개발자들은 하나 같이 아이패드의 발매 만을 기다리고 있었으며,이러한 관심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확산되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개발자들은 자사의 향후 개발 계획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큰 대화 주제 중 하나는 드림캐스트보다도 좀 더 위쪽에 있는 것 같다고 느껴질 정도의 놀라운 아이패드의 성능과 가능성에 대한 것이다. 처리 속도와 그래픽 성능만이 개발자들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개발자들은 아이폰으로 구현하고자 했던 최고의 아이디어들이 아이패드를 통해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더 커진 스크린 사이즈를 통해 아이폰에서는 너무 작아 보이지 않던 디테일들이 살아날 수 있을 것이고, 화면을 통한 조작 역시 10인치의 넉넉한 화면에 좀 더 편안하게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아이패드 공개 이벤트에서 선보인 N.O.V.A 테크 데모


아이폰에서 아이패드로 넘어가는 변화를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도 있다. 아이패드 공개 발표회에서 선보인 게임로프트의 N.O.V.A 데모는 상당히 멋져 보였는데, 이후 이어지는 아이패드 체험 시간 동안 이 게임의 아이폰 버전을 아이패드에서 풀스크린 모드로 플레이해볼 수 있었다. 결과는 '이건 안되겠다'였다. 더 커진 화면에서 움직이고 조준하고 사격하는 조작을 하려니 더 힘들어진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이러한 문제를 쉽게 인지할 수 있었는데, 사실 초기 체험 기간 동안 이러한 문제가 인식된다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그 이벤트에 있던 모두는 아이폰에서 완벽했던 게임이라고 해서 아이패드로도 꼭 그렇게 된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체험했고, 새로워진 기기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뭔가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확인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말도 안되는 게임에 돈을 지불하는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서도 이러한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는 점이 가장 다행스러운 부분이다.

아이패드의 공개는 또한 하드코어 게이머들에게도 두근거리는 소식이다. 발표회 이후 기기 체험 시간에 에픽 게임즈의 마크 레인도 그 자리에 있었다. 아이패드가 기어즈 오브 워의 개발자가 관심을 갖는 새로운 플랫폼이 되었다는 것, 그리고 아이폰용 언리얼 엔진 3를 만들겠다는 발표까지 (어짜피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같은 DNA를 공유하는 기기이기 때문에 아이패드에도 적용이 가능할 것이다.) 생각하면 아이패드가 단순히 미니게임을 위한 플랫폼은 아니라는 것에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미니게임을 위한 플랫폼이라는 것 자체가 나쁜 건 아니지만 말이다.

또한 하드코어 게이머들이 캐주얼 게임을 즐기는 것도 이상할 것이 없는 일이다. 아이폰이 이루어낸 큰 성과 중 하나가 바로 이 부분이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러한 추세를 만들어갈 것이니까. 개인적으로도 나는 소위 하드코어 게이머라고 불리우는 이들이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형식의 게임들에 열린 자세를 취하는 트랜드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Xbox 라이브 아케이드도 생겨나고, 팝캡이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으며, 페이스북은 SNS를 넘어 게임 플랫폼으로도 자리매김하고 있다. 왜 굳이 게이머를 구분하는가? 즐거운 도전과 일상에서의 회피를 즐기는 모두를 그저 '게이머'라고 부르면 안될 이유가 있을까?

젠 바운드 2는 더 큰 화면이 주는 가능성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예이다


앱스토어의 지난 20개월은 새로운 개념의 즐거움과 창의력이 끓어넘치는 시간이었다. 게이머가 아이패드를 무시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다. 물론 발매 첫 날 줄을 서서 아이패드를 손에 넣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가장 기본적인 모델에 499불을 지불하는 것도 쉬운 결정은 아니다. 하지만 아이패드를 단순히 좀 더 커진 아이팟 터치로 치부하고 아주 간단한 퍼즐 게임용 플랫폼이라고 단정하지는 말자. 아이폰에서의 성공을 이어가고자 하는 EA를 비롯한 게임계의 거대한 이름들이 아이패드 뒤에 서 있다. 게임로프트나 ngmoco같은 모바일 게임 전문업체들도 독창적인 게임들을 지속적으로 내놓을 예정이다. 게다가 1인 개발자나 소규모 개발사에서도 Drop7 같은 독특하고 산뜻한 게임들로 놀라움을 선사하며 게이머들을 끌어들일 것이다.

최고의 게임,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는 게임들은 종종 그 게임이 나온 플랫폼의 성격 자체를 정의해왔다. 패미콤에서는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가 있었고, PS2에서는 GTA III가, Wii에서는 위 스포츠, DS에서는 닌텐독스와 뇌단련 게임이 있었다. 과연 아이패드를 규정하는 게임은 무엇이 될 것인가? 소니의 무브나 MS의 나탈 같은 핫 이슈에도 불구하고,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아마도 2010년 게임업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글: 르바이 부케넌 (Levi Buchanan) / 번역: 페이비안 / 원문게시일: 2010.3.22 / 원문출처: IG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