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제레미 페리쉬(Jeremy Parish) / 번역: 페이비안 / 출처: 1UP.com / 원문게시일: 2011.12.10

그건 메탈 기어 솔리드 2: 선즈 오브 리버티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자 치밀하게 기획된 일련의 트레일러들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고작 몇 초에 불과했지만, 그 찰나의 장면은 팬들의 머리 속에 기대감과 궁금증을 강렬하게 심어주었다. 무기를 손에 쥔 채 돌아서서 눈 앞의 벽을 바라본 스네이크를 놀라게 하는, 그 형태가 너무도 분명한 그림자. 전편을 플레이한 게이머라면 누구라도 그 실루엣이 의미하는 바를 알 수 있었다. 스네이크에게 패배하여 죽음을 맞이했던 발칸 레이븐. 그는 복수를 위해서 부활한 것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로 스네이크의 앞에 다시 나타나게 된 것일까.

애초에, 어떻게 레이븐이 다시 등장할 수 있는 것일까. 그는 단순히 패배한 것이 아니라 확실히 죽어버렸는데 말이다. 전작 메탈 기어 솔리드는 캐릭터 머리 위에 떠오르는 문장기호부터 괴상한 이름의 다양한 슈퍼 악당들까지, 미국식 슈퍼 히어로 코믹물의 전형을 충실히 따르는 비디오 게임이었다. 캐릭터의 죽음 역시 이러한 문법에 충실하다. 눈 앞에서 확실히 죽었다는 것을 독자에게 보여주지 않는 이상, 진짜로 죽은 건 아니라는 말이다. 리퀴드 스네이크가 타고 있던 소련제 헬기가 그렇게 낮은 고도에서, 그렇게 심하게 폭파되었음에도 가까스로 탈출하여 솔리드 스네이크와 다시 싸울 수 있었던 것도 그런 맥락에서 가능했던 전개였다.

하지만 레이븐의 경우는 다르다. 분명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패배 후 이어지는 이벤트 신에서, 스네이크가 떠나고 남겨진 그의 시신은 까마귀 떼에 의해 철저하게 훼손당했다. 그리고 그 장면은 그 잔인함에 게이머들의 비위가 상하지 않을 정도로의 거리에서, 그러나 분명하게 게임을 플레이하는 모든 이들에게 보여졌다. 따라서 발칸 레이븐의 부활은 속편의 범상치 않은 복선과 놀라운 반전을 암시하는 것으로 팬들에게 인식되었다. 혹시 폭스 하운드 멤버 전원이 부활하는 것일까? 혹시 그레이 폭스처럼 사이보그로 재탄생된 것은 아닐까? 아니면 레이븐만 어떤 주술적인 능력에 의해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일까? 팬들의 호기심에는 불이 붙었고, 높은 인기를 끌었던 악당이 부활하는 것을 암시하는 이 짧은 영상을 가지고 몇 달이 넘도록 각종 게시판에서는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1년이 넘게 지난 후, 드디어 게임이 발매되었다. 플레이어들은 위장된 군용 유조선에서 적들에게 발각되지 않도록 신경을 곤두세우며 앞으로 나아갔고, 마침내 어느 꺾어진 통로에서 벽에 비치고 있는 바로 그 실루엣을 직접 마주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게이머들은 숨을 죽이고 레이븐의 움직임을 살폈고, 그가 어떤 식으로 공격하게 될지를 머리 속으로 시뮬레이션하며 대응을 준비했다.

그러나 그렇게 몇 초가 지나도 그 실루엣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플레이어는 위험을 감수하고, 코너를 돈다. 그리고 발견하는 진실: "레이븐"은 피규어 인형에 불과했고, 그 그림자가 그렇게 큰 이유는 조명의 바로 앞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플레이스테이션 2의 실시간 광원 처리를 보여주는 매우 인상적인 데모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팬들이 기대하던 전개는 결코 아니었다.

오셀롯: 유감스럽지만 메탈 기어를 팔 생각은 없어. 말했듯이, 다시 그걸 회수하러 돌아왔지. 그래 회수야. 애국자들에게로!

돌프: 이 XXXX! 그게 가능한가!?

고르르코비치: 오셀롯, 네놈이..! 우리를 팔아넘긴 건가?

오셀롯: 애초에 네 밑에 있었던 적이 없었던 거지, 고르르코비치...

발칸 레이븐 피규어에 얽힌 이야기는 메탈 기어 솔리드 2의 핵심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이 속임수에 대한 반응은 그 플레이어가 게임 전반에 대해 갖게 되는 감상과 대체적으로 유사하다. 거기 서 있는 장난감 피규어에 묵묵히 총알을 갈겨댈 정도로 분노하였는지, 아니면 전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적 캐릭터가 모터 구동의 발칸 캐논까지 달린 1/6 스케일 피규어로 쪼그라든 모습에 유머를 느끼고 낄낄거렸는지. 이에 대한 답은 그 플레이어가 게임을 마친 후 느낀 감상을 거의 틀림없이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메탈 기어의 프로듀서 코지마 히데오는 게임 디자인에 있어 영화 감독의 접근법을 적용하는 게임 개발자를 논할 때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지만, 메탈 기어 솔리드 2(이하 MGS2)는 발매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영화 감독 성향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작품으로 남아 있다. MGS2만큼이나 그 가치를 높게 평가받는 게임도 드물고, 당시 새로운 플랫폼이었던 PS2의 미래와 방향성을 확실하게 대변해 주었던 게임도 드물지만, 그 드문 게임들 중에서도 코지마의 이 PS2 블록버스터는 무척 특이하다. 게임 프로듀서가 그가 가진 영향력을 모두 동원하여 무수히 많은 인력이 투입된 제작 과정과 결과물 자체를 하나의 분명한 메시지를 담은 선언문으로 변화시킨 것은 그 이전에도 없었던 일은 물론, 그 이후로도 재현된 적이 없는 일이었으니까.


선언, 그 이상이라고 봐도 좋다. MGS는 그야말로 교묘한 장난질처럼 보이기도, 이래도 좋아할 수 있으면 좋아해보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가능한 모든 부분에서 플레이어를 농락하면서 말이다. 스토리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부터 시작하여 게임을 둘러싼 복잡한 수수께끼같은 마케팅 계획에 이르기까지, 게임의 구석 구석이 플레이어를 속이기 위한 기획으로 가득찬 것처럼 보인다. MSG2의 10시간 넘는 이야기 구조는 계략과 책략, 배신, 충격적 반전 그리고 전복들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과장을 섞어 이야기하자면, MGS2는 처음부터 왜곡된 기대를 갖게 하는 위장이 씌워진 채 게이머들의 손에 넘겨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부분이 MGS2가 전하는 메시지의 본질이며, 게이머에 대한 사기극은 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활용된다. 이렇게까지 코지마 히데오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놀랍게도 10년 후 시대에 대한 의미 있는 통찰을 담고 있었다.

궁극적으로, MGS2는 대통령을 구하거나 첨단 무기의 확산을 막는 이야기가 아니라, 디지털 시대의 정보 왜곡에 대한 경고문이다. 모든 종류의 커뮤니케이션이 디지털화된 사회에서 모든 것은 데이터로 존재하고, 데이터는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다. 텍스트는 편집될 수 있고, 비디오는 조작될 수 있으며, 오디오는 덧씌워지거나 샘플링될 수 있다. 디지털 정보는 신뢰할 수 없다. 그리고 비디오 게임인 MGS2는 완전히 디지털 정보로 구성되어 있다. 본질적으로 믿을 수 없는 것이다. 프로듀서인 코지마 히데오는 게임 그 자체는 물론 게임을 둘러싼 모든 것들에 왜곡을 심어놓음으로서 이러한 사실을 부각시킨 것이다.

프리스킨: VR에서는 부상을 당하지 않아, 그렇지? 매년 실제 훈련에서는 병사들이 죽어가지.

라이덴: VR에도 통증 감각은 있어, 또한 현실감과 급박감도 있지. 단 하나의 차이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뿐이야.

프리스킨: 니가 그렇게 생각하는 게 그들이 원하는 바야. 전장에 나서는 데 따르는 공포를 배제시키는 것. 비디오 게임으로서의 전쟁, 이보다 궁극의 병사를 만드는 더 좋은 방법은 없지.

라이덴: VR 트레이닝이 일종의 마인드 콘트롤이라는 말인가?

2011년 시점에서 이 모든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10년 전, 인터넷은 여전히 그 수단이 되는 매개를 찾고 있던 시절이었다. 현대 인터넷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유투브, 페이스북, 트위터, 심지어 디지털 배포 방식도 당시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매우 일부의 사람들만이 광대역망으로 웹에 접속할 수 있었고,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이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 삶에 완전히 녹아들지 않았던 시대였다.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코지마는 이러한 변혁에 정면으로 의문을 제시하고, 겉으로는 군사적 대치와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임의 핵심에 이러한 메시지를 녹여 넣은 것이다.

메탈 기어 시리즈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이러한 야심찬 기획이 뜬금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메탈 기어는 냉전의 끝자락이었던 1987년, 여전히 미국 학교 교실에 "은폐, 엄폐"의 방법이 적힌 포스터가 붙어 있던 시절에 태어난 작품이었다. MSX와 패미콤용으로 발매된 원작은 전통적인 의미의 액션이 억제된 군사 액션 게임의 배경으로 이동 가능하며 탐지 불가능한 핵무기 발사 장치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이어 속편에서는 산업 사회의 오일 의존성이 화두에 올랐다. 대략 10년 후, 메탈 기어 솔리드는 소련 붕괴 이후의 세계에서 파편화된 핵무기의 위험성을 이슈로 다루었다. MGS2에서는 그 초점이 전쟁의 새로운 양상, 정보전으로 바뀐 것일 뿐에 불과하다. (월드트레이드센터가 공격 받은 이후, 현실 세계 전쟁의 초점은 조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지만 말이다.)

메탈 기어 솔리드 2는 '정보의 오류'를 테마로 구축된 게임이다. 게임은 처음부터 잘못된 첩보로부터 시작된다. 솔리드 스네이크와 오타콘은 오타콘의 여동생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정보로 인해 스스로 함정에 걸어 들어간다. 그들은 허드슨 강에서 운항 중인 위장된 군사 유조선에 잠입하지만 다른 세력의 작전에 이용당하고 마는 것이다. 그 다른 세력의 중심 인물은 바로 샤라샤스카. 리볼버 오셀롯의 러시아 코드네임이다. 그는 메탈 기어 솔리드에서 다루어진 셰도우 모세스 사건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폭스 하운드 멤버였다.

셰도우 모세스 때와 마찬가지로 오셀롯은 이 상황을 스스로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조종한다. 그의 목적은 미국 해병대로부터 새로운 메탈 기어 시스템, 레이를 탈취하는 것이었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는 러시아측과 협력하여 병력을 제공받지만, 레이를 확보한 즉시 배신하고 러시아측 리더 (그리고 그의 오랜 전우였던) 고르르코비치까지 제거한다. 스네이크를 유조선에 잠입하게 만든 것 역시 오셀롯으로, 스네이크에게 레이 탈취의 혐의를 덮어 씌우고 유조선 침몰과 함께 최후를 맞이하도록 꾸민 것이다. 오셀롯의 계획대로 스네이크는 바다 속으로 사라지고, 그의 시체는 회수된다. 정부는 죽은 그를 유조선을 폭파한 테러리스트로 지목한다.

스토리는 2년 후, 스네이크라는 이름의 에이전트가 유조선이 좌초된 지역에 설치된 정화 시설에 잠입하는 것으로 재개된다. 비록 그에게 임무를 하달하는 것은 캠벨 중령이지만, 이 "스네이크"는 솔리드 스네이크가 아니다. (의도적으로 잠시 동안은 플레이어들이 착각하게 만들지만.) 그는 좀 더 젊고, 아마도 일본 게이머들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서인지 모르겠으나, 상당히 여성스러운 외모를 하고 있다. 일단 잠입이 시작되면, 캠벨은 스네이크에게 라이덴이라는 새로운 코드 네임을 부여한다. 여기서 솔리드 스네이크는 더이상 영웅이 아니며, 미국 대통령을 인질로 잡고 있는 악당에 불과하다. 라이덴의 임무는 붙잡힌 대통령을 구출하는 것이다.

중령: 리더의 이름은 솔리드 스네이크다.

라이덴: 셰도우 모세스의 영웅!? 그래서 내 코드네임을 바꾸었군.

중령: 그렇다. 하지만 그가 솔리드 스네이크일 수는 없어. 그는 2년 전, 그 유조선에서 죽었다. 유조선을 폭파시킨 후에 말이지.

라이덴: 살아 있을 가능성은?

중령: 전혀.

여기서부터 게임은 코지마가 현실 상에서까지 촘촘히 짜놓은 왜곡의 거미줄을 펼쳐 내기 시작한다. 플레이어가 이 시점에 이를 때까지, 그 길었던 개발과정과 다양한 마케팅에서도 라이덴은 한번도 언급되거나 등장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그의 존재에 대한 그 어떤 힌트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다지 길지도 않은 초반 유조선 챕터 이후, 플레이어는 솔리드 스네이크가 아니라 라이덴을 조작하게 된다. 스네이크는 죽었거나 아니면 살아서 악당이 되었으며, 플레이어의 임무는 이 금발머리의 새로운 캐릭터를 조작하여 그를 물리치는 것이다. 

게임을 이렇게 두 부분으로 나눈 것에는 뭔가 부자연스럽고 수상한 느낌이 있다. 라이덴이 주인공인 플랜트 편은 게임의 거의 대부분을 구성한다. 구조적으로나 감각적으로 스네이크가 등장하는 유조선 편과는 상당히 다르다. 유조선은 거대한 배에 대한 현실적인 디자인을 바탕으로 다양한 루트가 존재하는 복잡한 구조를 가진 반면, 빅 쉘은 공사판의 조립식 구조로, 거의 비슷하게 생긴 팔각형의 지주가 좁은 연결 통로로 이어진 형태이다. 마치 밀실 공포증을 자아낼 것 같은 인공적인 구조가 주는 답답함은 라이덴에게 주어진 임무의 선형성, 그리고 라이덴이 가진 전략적 옵션의 한계로 인해 더욱 강조된다. MGS2에서는 유조선 부분 이후로 전작들에서 보여주었던 상대적으로 열린 공간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나중에 드러나게 되지만, 이러한 구조 자체가 그가 수행하는 임무들을 둘러싼 음모와 빅 셸의 본질에 대한 힌트이다. 이러한 게임 디자인 자체가, 게임을 개발한 이들의 숨은 의도, 스토리적으로는 라이덴의 미션 뒤에 드리워진 숨겨진 세력의 의도를 암시하는 결정적 힌트인 것이다.

유조선 편과 플랜트 편의 단절은 그 의도와는 관계 없이 많은 플레이어들의 분노를 자아내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유조선 편의 절반 정도가 MGS2의 데모로서 존 오브 디 엔더스 (Z.O.E)라는 게임에 포함되었었고, 많은 팬들은 그 때문에 실제 게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플랜트 편과는 매우 다른 경험을 기대했었다. 그들은 스네이크가 매우 풍부한 디테일을 가지는 인터렉티브한 환경에서 민첩하게 움직이는 그런 게임을 기대했지만, 정작 실제 게임에서는 왠 애송이가 삭막한 철골 구조를 지루하게 뛰어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데모와 실제 게임의 낚시질은 게임 스토리에도 반영되어 있다. MGS2에서는 그 어떤 것도 정직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라이덴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예외 없이 어두운 비밀을 숨기고 있다. 심지어 라이덴 스스로도 말이다.

라이덴: 넌 절대 빠져나올 수 없어. 다리가 그런 상황이라면, 그들이 널 쉽게 찾아낼거야.

스틸맨: 그렇지 않아. 나...나는 제대로 걸을 수 있어. 뛸 수도 있다고... 그 폭탄, 5년 전... 내가 망쳤어. 그 많은 경험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하지 못했어. 교회 하나가 폭발로 날아갔지. 그 주변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도 모두... 지난 5년 간, 나는 거짓을 살아 왔어.

라이덴: 거짓?

스틸맨: 그래, 거짓말을 했어. 그 폭발로 난 다리를 잃지 않았지. 많은 이들이 죽었어... 다 내 실수로 인해서. 내가 생각할 수 있던 건 오직 그 죄로부터 숨는 거였고, 사람들의 분노로부터 나를 지킬 방법이었지. 사람들이 나를 불쌍히 여기길 바랬어... 나의 약점때문에... 스스로를 피해자인 척 했지. 실제 피해자들의 가족들을 마주하는 걸 견딜 수 없었기 때문에.

테러리스트의 폭발물 전문가에 대응하기 위해 고용된 폭탄 전문가 피터 스틸맨은 장애를 가진 시늉을 하고 있었다. 솔리드 스네이크는 죽었다고 전해지지만 정부가 유조선 잔해로부터 발견한 시신은 그의 쌍동이 클론인 리퀴드 스네이크였다. 솔리드 스네이크가 테러리스트라고 하지만, 빅 셸 사건의 진짜 범인은 그의 또 다른 쌍동이 클론인 솔리더스 스네이크였다. Mr.X라는 이름으로 암약하는 사이보그 닌자? 실제로는 여성이다. 잡혀 있는 미국 대통령은? 실제 대통령이지만, 사실은 무엇인가를 위해 스스로의 납치를 꾸민 정치적 꼭두각지에 불과하다. 대부분이 이런 식이다.


진짜 스네이크는 그럼 어떤가? 라이덴은 미션 초기에 외모도, 행동도, 그리고 목소리도 솔리드 스네이크와 똑같은 수수께끼의 특공대원을 만난다. 그는 심지어 자신의 코드 네임을 "일로퀴스 프리스킨"이라고 밝히는데, 일로퀴스는 인디언 말로 "뱀"이라는 뜻이고, 프리스킨은 코지마가 스네이크라는 이름을 생각해 낸 커트 러셀 주연의 영화 코브라 22시(Escape from New York)에서 주인공 이름인 스네이크 프리스켄을 생각나게 한다. MGS2의 플롯을 구성하는 촘촘한 속임수들의 한 가운데서, 솔리드 스네이크와 똑같이 생긴 이 사람이 너무도 분명하게 본인이 진짜라는 냄새를 풀풀 풍기는 건 너무 뻔한 속임수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그는 실제로 솔리드 스네이크다. 비록 그의 오랜 전우이자 라이덴의 지휘관인 캠벨 중령도 그를 알아보거나 인정하지 않지만 말이다.

라이덴: 중령, 코덱 콜을 계속 모니터링하고 있지. 그 남자는 진짜 스네이크였어...

중령: 아마도.

라이덴: 아마도?

중령: 그에 대한 경계를 풀지 말게.

라이덴: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지?

중령: 왜냐면 그들은 시뮬레이션의 일부가 아니였었기 때문이지. 그들은 불확정 요소야.

그 이유는, 결국 캠벨조차도 가짜였기 때문이다. 라이덴에 대한 명령은 스네이크의 오랜 전우이자 전 폭스 하운드 사령관인 로이 캠벨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를 컴퓨터로 재구성한 카피로부터 내려지는 것이었다. 빅 셸은 사실 주인공에 대한 광범위한 VR 트레이닝에 포함된 마지막 단계에 불과했다. 셰도우 모세스 사건에 대한 시뮬레이션으로서 실제 훈련처럼 구성되어 "새로운" 솔리드 스네이크를 만들기 위한 과정이었던 것이다.

사이보그 닌자의 존재에서부터 이 사건이 스네이크의 유전적 쌍둥이가 높은 지위의 정치적 인물을 인질로 잡는 것으로 시작하는 부분까지 모든 것이 라이덴을 궁극의 병사, 솔리드 스네이크처럼 되게끔 기획된 일종의 시련이었다. 라이덴의 오랜 여자친구도 그를 조정하고 다루기 위해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여성으로 변장한 정부 요원이다. 심지어 라이덴 자신조차도 VR로 트레이닝된 신참이 아니다. 그는 전쟁으로 망가져가는 아프리카의 소년병 출신으로, 다른 아이들이 자전거 타기를 배울 때부터 사람들을 죽였왔던 인물이다.

라이덴은 MGS2 스토리의 구심점과도 같다. 빅 셸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그의 이익을 위해 연출된 것은 결코 아니지만, 그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납치, 협박, 데드 셀, 그리고 솔리더스 스네이크의 등장 같은 것들 모두가 애국자들이라 불리우는 기관에서 마련한 S3 계획이라 불리우는 음모의 구성 요소들이다. 처음에 라이덴은 (그리고 플레이어도) S3가 라이덴을 전설적인 병사의 완벽한 복제로 만들어 내고자 하는 "솔리드 스네이크 시뮬레이션"을 의미하는 것으로 믿게 된다. 그러나 결국 그 계획의 진짜 이름은 "사회 건강을 위한 시뮬레이션 (Simulation for Societal Sanity)"라는 것이 밝혀진다. 그 계획의 전모는 라이덴이라는 실험체를 통해 디지털 미디어의 잘못된 정보를 이용해 사람을 완전히 기만하거나 속이는 것이 가능한지를 증명하는, 이를 통해 전세계 인류를 대상으로 이러한 속임수가 가능한지를 알아보는 야심찬 지배 계획을 위한 실험이었던 것이다.

중령: 라이덴, 솔리더스와 그의 부하들을 처치해. 무기는 반드시 회수해야 한다.

라이덴: 중령, 당신은 애국자들로부터 명령을 받고 있나?

중령: 너의 역할, 즉 임무는 시설에 침입하여 테러리스트를 제거하는-

라이덴: 내 역할? 왜 같은 말을 반복하는 거지?

중령: 이건 일종의 롤플레잉 게임이다. 중요한 것은 네가 너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고, 나는 완벽한 성과를 내기를 기대하고 있어.

라이덴: 중령, 지금 뭔가를 기억해냈어.

중령: 무엇을?

라이덴: 난 당신을 직접 만난 적이 없다는 거야. 단 한번도.

코지마는 MGS2 발매 전 마케팅과 게이머들의 기대감이 섞인 떠들썩함(hype)을 가상 사계에서 애국자들이 세운 계획이 실제 세계에서도 유효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기회로 활용하였다. 악명 높은 레이븐 액션 피규어 사건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MGS2의 발매에 앞선 그 어떤 마케팅에서도 레이븐의 게임 속 역할에 대한 힌트가 주어지지 않았다. 코지마는 역사 상 가장 기대되는 게임 속 주인공에 대한 것을 비밀로 지키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해낸 것이다. MGS2가 2001년 말 미구에 발매되었을 때, 누구도 스네이크가 공동 주연이 될 것이라는 것을, 게다가 게임 전체의 85% 정도에서는 그저 조연에 머무를 것이라는 것을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코지마는 단순히 정보를 누락하는 것만으로 이를 달성한 것이 아니었다. 비록 코나미에서 발매전 배포한 스크린샷 대부분이 유조선 편에 집중되어 있었으나, 플랜트 편에 대한 자료도 꽤 많은 양이 공개되었었다. 그리고 그 자료들 대부분에서 라이덴이 주연이라는 것을 보여줄 만한 것들은 스네이크가 주인공인 것처럼 조작되거나 다시 랜더링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분명하다. MGS2의 요점이 바로 디지털 미디어는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었으니까. MGS2는 컴퓨터 기반이 시스템에서 돌아가도록 컴퓨터로 제작된 게임이며, 홍보물 역시 전 세계 컴퓨터 모니터에서 보여지도록, 역시 컴퓨터로 만들어진 동영상과 스크린샷이었다. 당시는 "구라샷(bullshot)"이란 단어가 유행하기 전인 좀 더 순박한 시절로, 소비자들은 제작사에서 발표하는 사진과 영상을 지금보다는 좀 더 신뢰하고 있었다. 그 누구에게도 코지마 프로덕션이 조작된 트레일러나 스크린샷을 내놓을 것이라고 의심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라이덴에 대한 거짓과 진실은 이렇게 게이머들이 방심한 틈을 파고들었다.

라이덴: 왜 그들은 여기 축구공을 가져온 거지? 이런 정화 플랜트에 말이야. 하고 많은 장소 중에서...

Mr.X: 하지만 그들은 그래야 했어. 왜냐면, 사실, 빅 셸은 정화 플랜트와는 한참이나 거리가 먼 시설이니까. 데드 셀은 핵폭탄을 여기로 가져올 필요가 없었지. 처음부터 여기 있었으니까. 이 사건에서는 그 어떤 것도 보이는 것과는 달라.

라이덴: 은폐... 하지만 왜? 무엇을 위해서?

Mr.X: 메탈 기어를 위해. 그게 여기 있으니까.

MGS2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는 상당히 부정적이다. 많은 팬들이 속았다고 생각했고, 이러한 의견을 소리 높여 말하는 걸 꺼리지 않았다. 그들은 쿨하고 자신에 찬 스네이크가 등장하는 모험을 원했지, 음침한 주인공을 원하지 않았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MGS2가 너무도 전위적인 시도였다는 것이다. 스토리 자체가 해독 불가한 의도와 야망, 그리고 배신이 마구 짬뽕된 구성이었고, 결국 모든 사람들이 다른 모든 사람들을 속이는 이야기였다. 근본적인 의도와 진정성은 심각하게 뒤얽혀 있고, 너무 많은 구성 요소들이 불투명하여 그 덕분에 메탈 기어 솔리드 4의 절반은 헝클어진 시리즈의 스토리를 정리하는 데 할애될 정도였다.

하지만 너무 높은 밀도에 가끔 오버하는 네러티브가 게임을 망치는 요소라고만은 할 수 없다. 반대로, 대부분의 게임들이 엉터리 플롯에 문장력도 엉망인 경우가 많다. MGS2는 가끔 지나치게 수수께끼같은 구석이 있지만, 나름의 수준은 갖추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그 스토리가 너무도 매력적이지 않은 캐릭터들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라이덴은 처음부터 솔리드 스네이크가 아니라는 이유 만으로 힘든 경쟁을 해야 했지만, 그가 결국 수동적-공격적 성격 장애가 의심될 정도의 얼간이라는 점이 드러나는 부분에서 게이머들의 애정이 아닌, 비난의 대상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해 버렸다. 스토리 내에서 그를 너무도 완벽하게 애국자들의 꼭두각시로 만들어 버린 덕분에, 게이머들에게 라이덴은 어리석음과 무능함의 화신이 되어버린 것이다. 거기에 더해, 그의 조력자는 잔소리가 심해 짜증까지 나는 여자친구였기 때문에, 플레이어들은 그녀의 징징거림이 예상되는 통신 호출음에 거부 반응까지 일으킬 정도였다.


MGS2는 또한 지나칠 정도로 환상의 영역으로 다가가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전작 역시 가스 마스크를 쓴 독심술사에서부터 스네이크가 전설적인 병사 "빅 보스"의 유전자 조작 복제 인간이라는 설정에 이르기까지, 신비적이거나 괴이한 소재를 기꺼이 차용하였지만, 속편은 그럴듯한 픽션과 환상의 경계를 너무 심하게 밀어붙였다. 오셀롯은 리퀴드 스네이크의 혼이 담긴 팔에 의해 정신적인 노예가 되었다던지, 오타콘의 의붓 동생은 오빠가 양어머니와 바람나서 아버지를 배신했기 때문에 그를 미워한다던지, 포츈은 죽은 아버지가 사랑했던 양성의 뱀파이어와 "친구 이상의 관계"였다던지... MGS2의 스토리는 뒤로 갈수록 점점 더 상식과 대치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어느 정도냐면, 마지막에 애국자들의 A.I가 망가지면서 라이덴에게 늘어놓는 비현실적인 말들과 디지털 정보의 속성에 대한 복잡한 설명이 오히려 편안하게 받아들여질 정도니까. 최소한 여기서는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가 나오는 게 당연한 상황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중령: 하하하... 바로 맞췄어. 결국, 너는 우리가 보호해야 하는 대중들을 완벽하게 대변하고 있지. 그래서 우리가 널 고른거야. 넌 우리가 제공한 허구를 받아들였지. 우리의 명령을 따랐고, 우리가 시키는 대로 모든 것을 했어. 이 실험은 완벽하게 성공한거야.

MGS2의 엔딩은 아주 인상적인 충격을 남긴다. 게임플레이 면에서는 상당히 어설프지만 말이다. 완전히 선형적인 전개에 난이도에 따라 최대 24대의 메탈 기어와 싸워야 하는 지루함까지. 하지만 모든 해답이 드디어 주어지는 듯한 시점에서 드러나는 스토리 최후의 반전은 가장 기억에 남는 게임 엔딩 중 하나로 꼽아도 부족함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속임수가 밝혀지고 진실이 드러난 마당에, 라이덴이 솔리더스랑 싸워야 할 이유가 없었다는 점에서 깔끔하지는 않았다. 마지막 전투는 논리적인 귀결이라기 보다는 게임 디자인 상의 필수 조건에 불과하다는 느낌이다. 게임에는 최종 보스가 있어야 하고, 그래서 라이덴은 양아버지를 죽인다. 끝. MGS2는 기존 게임의 문법 중 많은 부분을 파괴하고 조롱한 게임이면서, 동시에 다른 여러 관점에서는 게임의 형식과 유형을 충실히 따르고 있기도 한 게임이다. 심지어 엔딩조차도 일종의 거짓말이다. 숨가쁜 결론에 다다른 다음, 코지마는 복선을 그 구석에 살짝 깔아놓는다. 스스로 이어갈 의도가 없음에도 말이다. 실제로, 그는 원래 메탈 기어의 다음 작품들을 휘하 스텝들에게 넘길 예정이었다. 그게 생각대로 되지 않아서 돌아오게 되었지만 말이다.


비록 이러한 단점들과 불만들에도 불구하고, MGS2는 결코 실패작이라고 할 수 없다. 개발 과정 그 자체와 게임 속 네러티브를 섞어내는, 대담하고, 높이 평가받을 만한 실험이었던 것이다. 완벽하게 성공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 대담함과 이를 통한 예측 불가능함 만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게임, 캐릭터, 그리고 스토리가 의도적으로 게이머들을 혼란에 빠뜨려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시도는 정말 획기적인 것이었고, 오늘날 이 정도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 중 어떤 것이 안전하고 보수적인 방식 대신 이러한 위험한 시도를 할 수 있겠는가.

아마도 이 모든 사건에서 조연급으로 전락한 스네이크가 내뱉는 말들이 라이덴, 스토리, 그리고 그 모든 사기극에 대해 투정을 부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코지마의 메시지를 대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라이덴: 왜 내게 알려주지 않았지...?

스네이크: 물어보지 않았으니까.

라이덴: ...

스네이크: 불만인가? 빨리 털어버리는 게 좋을 걸. 

글: 제레미 페리쉬(Jeremy Parish) / 번역: 페이비안 / 출처: 1UP.com / 원문게시일: 2011.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