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우드와의 전쟁

워크래프트의 성공으로 인해 블리자드는 프랜차이즈화가 가능한 상품을 손에 넣었고, 속편의 등장은 시간문제였다. 그러나 워크래프트의 성공을 마냥 축하해줄 수만은 없던 이들도 있었다. 듄 II의 개발사였던 웨스트우드 스투디오즈는 자사의 게임과 블리자드의 히트 작품이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아직 일반에게 공개되진 않았지만, 웨스트우드 역시 듄 II의 후속작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블리자드가 온갖 명예와 영광을 가로챈 것이다. 웨스트우드는 자사의 신작으로 블리자드에게 빼앗긴 주도권을 다시 찾아오고자 했고, 두 개발사 사이에 보이지 않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블리자드는 워크래프트의 속편에서 모든 이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설정으로 팬들을 놀라게 하고 싶었다. 초기 기획했던 오프닝 무비는 전투기 부대가 공중전을 대비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적이 발견되었다는 무선 경보가 들리고, 구름 속에서 매복하면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바로 불을 뿜는 드래곤이었다. 워크래프트 II는 판타지와 현대 기술이 공존하는 새로운 아제로스를 보여줄 예정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개발이 진행되면서 이러한 아이디어는 폐기되었다. 워크래프트 II는 원작과 매우 유사한 형태로 다시 작업되었다. 원작에서 개선될 수 있는 부분들이 무척 많았기 때문에, 굳이 새로운 세계관을 끼워넣을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1편의 발매로부터 단 일 년의 기간동안, 블리자드는 컴퓨터 랜더링과 픽셀 아트를 결합한 고해상도 그래픽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세대의 게임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게임플레이 역시 확장되어 조선소와 해양 유닛으로 해상전의 가능성이 열렸으며, 오일 자원의 추가로 바다의 주도권을 잡아야 할 필요성까지 확실하게 주어졌다. 더욱 다양한 유닛들과 탈것들이 추가되었고, 새로운 영웅 유닛의 추가로 전략과 생산의 의사결정이 더욱 큰 의미를 갖는 흥미진진한 요소가 되었다.

반면 웨스트우드의 반격 역시 만만치 않았다. 그들의 역작 커맨드&컨쿼는 오랜 개발 기간을 거쳐 오리지널 워크래프트를 가볍게 능가하는 작품이 되었다. 워크래프트를 유명하게 해준 멀티플레이어 기능은 당연히 포함되어 있었으며, 몇 가지 매우 중요한 혁신과 더욱 깔끔해진 인터페이스까지 갖추어 C&C는 블리자드에게 호락호락하게 당하고 있지만은 않겠다는 웨스트우드의 의지가 느껴지는 작품이었고, 이제는 블리자드가 웨스트우드의 도전에 답을 해야 할 차례였다.


워크래프트 II: 타이드 오브 다크니스는 C&C의 발매로부터 약 6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후에 발매되었지만, 블리자드의 신작 역시 웨스트우드의 도전에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퀄리티를 보여주었다. C&C에 뒤지지 않기 위해 남은 기간동안 인터페이스와 컴퓨터 AI를 계속 다듬어 온 결과였다.

비록 불편하게 시작된 라이벌 관계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러한 경쟁이 두 회사 모두에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하였다. C&C와 워크래프트 II라는 강력한 원-투 펀치 덕분에 이제 막 태동기에 불과했던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이 하나의 당당한 주류 장르가 되었던 것이다. 워크래프트는 발매 후 9개월 동안 120만 카피를 팔아 당시까지 블리자드의 가장 큰 성공작이 되었으며 C&C 역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각각의 게임이 확장팩을 발매하면서 블리자드와 웨스트우드의 우호적인 라이벌 대결은 계속되었다.


사이버로어 스투디오즈에서 개발된 워크래프트 II의 확장팩 '비욘드 더 다크 포털'은 본 게임으로부터 채 반년도 지나지 않아 발매되었다. 이 확장팩에서는 히어로 유닛에 대한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어 시리즈가 앞으로 걸어갈 방향성을 살짝 보여주었다는 의미와 함께 게임 자체의 수명도 연장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게임의 수명에 있어서는 워크래프트 1편과 2편 사이에는 인터넷을 통해 대전 상대를 찾아서 연결시켜주는 칼리(Kali)라는 유틸리티가 큰 공헌을 하는데, 이 프로그램을 통해 형성된 강력한 온라인 커뮤니티로 워크래프트는 블리자드에서 상상했던 것 이상의 기간 동안 게이머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게 된다.

처음에는 자사의 게임을 대놓고 배낀 블리자드에 대해 별로 좋은 감정이 아니었던 웨스트우드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웨스트우드에서도 블리자드가 단순한 모방자에 불과하진 않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 둘은 경쟁을 통해 더 나은 게임을 개발하는데 필요한 자극을 받았고, 이러한 과정에서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장르는 PC 게임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장르가 되었으며, 블리자드와 웨스트우드는 이렇게 떠오르는 인기 장르를 대표하는 인기 스타가 되었다.

클릭하면 워크II의 게임플레이 동영상으로 넘어갑니다.



최후의 개척지, 우주

두 개의 워크래프트 게임과 확장팩 하나를 선보인 후, 블리자드는 자사의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프랜차이즈에 새로운 방향성을 부여하고자 했다. 워크래프트 II의 개발 당시에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워크래프트라는 아이디어를 검토한 바 있었지만, 이번에는 이러한 감각을 좀 더 발전시켜 아예 공상과학 서사시 쪽으로 새로운 작품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워크래프트에 기반한 판타지와 새로운 공상과학 컨셉을 섞는 대신, 이번 작품을 위해서 완전히 새로운 세계관이 구성되었으며, 이 게임이 워크래프트의 스핀 오프라는 점을 명확히 하기 위해 새로운 프로젝트는 스타크래프트라고 명명되었다.


이 프로젝트의 진행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개발이 시작된 것은 워크래프트 II의 최종 마무리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을 무렵이었고, 따라서 워크래프트 II와 동일한 엔진과 인터페이스가 사용되었다. 1996년 5월, 두번째 E3를 통해 스타크래프트가 일반에게 처음 공개되었을 때 게임평론가들은 스타크래프트가 워크래프트와 너무나도 비슷하다는 점을 꼬집었으며, 많은 이들이 그저 껍데기가 바뀌었을 뿐인 이 작품이 굳이 발매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보냈다. 게임플레이에 있어 그다지 큰 향상도 없었고, 하나 하나의 유닛들도 단순히 그래픽만 바꾼 똑같은 느낌의 유닛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블리자드는 자신들이 자만심에 빠져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이라는 장르는 빠른 속도로 팽창하였고, 게이머들은 뭔가 완전히 새로운 것을 간절히 열망했던 것이다. 개발진들은 다시 작업에 들어가면서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게임 엔진도 완전히 다시 뜯어 고쳤으며 모든 그래픽이 45도 각도로 바라보는 3차원 감각으로 새롭게 그려졌다.


무엇보다 중요한 변경점으로, 처음부터 새롭게 만들어진 스타크래프트의 세 종족은 각각 독특한 특징을 갖도록 구성되었다. 체스판의 말처럼 각 진영의 유닛이 각각 거의 비슷한 역할을 하는 대신, 종족에 따라 유닛들의 특성이 크게 달라지는 게임을 만든 것이다. 각각 진영의 전투 유닛, 탈 것, 그리고 기본적인 기지 유닛들까지 모든 유닛들은 기본적인 스텟은 물론 그 능력이 서로 완전히 달랐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이러한 독특한 종족들 간에 밸런스 작업이 훌륭하게 이루어져, 어느 한 종족도 두드러지게 강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역주: 국내에서의 평가는 조금 다르죠) 이 덕분에 발매된 지 10년이 넘게 흐른 지금도 저그와 테란, 그리고 프로토스의 온라인 전투에서는 계속해서 새로운 전략이 다양하게 개발되고 있다.

이러한 재조정 작업에는 수 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고, 스타크래프트가 결국 발매된 1998년 시장에는 좀 더 강력한 경쟁자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런 건 스타크래프트에겐 큰 문제가 아니었다. 모든 경쟁자들을 물리친 스타크래프트는 총 천만 카피에 가까운 판매량을 보였던 것이다. 많은 이들이 지금도 스타크래프트가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의 정점을 대표하는 게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블리자드는 다시 판타지 설정으로 돌아가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다른 방향성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계속…  RSS 구독으로 다음 이야기를 편하게 받아보세요~   클릭!)

글: 트래비스 파스 (Travis Fahs) / 번역: 페이비안 / 원문 게시일: 2009.8.18 / 출처: IGN Retro

* IGN.com으로부터 출처 표기를 조건으로 전문 번역 허가를 받은 글입니다.

* 게임역사 및 기타 게임관련 번역글 더보기 (클릭)

* 추천하시면 스타크래프트 II의 발매일이 빨라진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믿거나 말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