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을 위한 게임

닌텐도는 마리오로 예나 지금이나 많은 돈을 벌고 있고 세가 역시 소닉 최신작인 소닉 언리쉬드가 전세계적으로 200만 카피 이상 판매를 기록했다. 두 회사 모두 레이건 시절부터 내려오는 '해맑은 현실도피주의 (bright escapism)', 즉 예쁘고 화려하고 밝기만 한 환상의 세계를 바탕으로 게임을 만들어내고 있다. 물론 이게 무슨 문제가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GTA III 이후 촉발된 삭막한 도시 환경을 배경으로 하는 게임들의 러쉬 속에서, 이러한 밝은 게임들은 오히려 반갑기까지 하다.

1995년 당시 비디오게임은 대체적으로 '아이들의 놀이'였다. 배관공이 동전을 모으거나 공룡을 타고 다니던 것이 거의 전부였던 시절, 어른들은 게임을 거들떠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어른의 영역에 들어가기 시작하는 십대 후반의 청소년들은 사회적인 이유로 소위 말하는 '애들이나 하는 유치한 놀이'와는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느꼈다. 액트레이저(ActRaiser)의 사운드트랙과 같이, 비디오게임에 있어서도 예술적인 요소가 가미되기도 했지만 비디오게임 자체는 결코 예술로 여겨지지 않았다.

소니는 이러한 트랜드를 변화시켰다.

비디오게임이 전형적인 게이머들을 넘어 보다 넓은 저변을 갖길 바랬던 소니는 게임 개발사들로 하여금 새로운 계층에게 어필할 수 있는 컨셉들을 시도하기를 독려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소니의 시도가 비디오게임의 면모를 완전히 새롭게, 그리고 영원히 변화시켰다.

소니가 없었다면, 매스 이펙트와 같은 심오한 대사를 갖춘 게임들이 나올 수 있었을까?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어떤 올드 게이머들은 소니가 비디오게임을 주류문화로 올려놓으면서 게임이 원래 가지고 있던 매력을 망쳐놓았다고 한탄하기도 한다. 물론 자기가 좋아하는 무엇인가를 혼자서 독점하고자 하는 마음은 이해할 수도 있다. 아마도 그런 것이 인간 본성의 하나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을 가진 게이머라도 1995년 당시 비디오게임 산업은 스스로를 궁지로 몰아넣고 있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두 라이벌이 오랜 시간에 걸쳐 경쟁을 계속하다보면, 경쟁 자체는 여전히 치열하더라도 점점 더 진부해지기 시작한다. 물론 그 당시에도 나름의 발전은 있었다. 닌텐도와 레어가 돈키콩 컨트리를 통해 CG-랜더링을 이용한 스프라이트를 선보였고 이러한 기술은 게임의 그래픽에 있어서 상당한 향상을 가져왔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는 큰 관점에서 보면 플랫폼 장르에 대한 약간의 개선에 불과했다. 혁신이라고는 하기 힘들다. 

소니의 등장은 게임 산업에 있어 새로운 방향에 대한 신호였다. 소니가 좀 더 성인 지향의 게임(아이들의 장난감과 대비되는 의미이지, 폭력과 선정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을 강조하면서 개발사들 역시 그들의 영역을 확장시켜 나갔다. 만약 소니에서 비디오게임의 구매층을 좀 더 높은 연령으로 높이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더라면 캡콤에서 과연 바이오 하자드를 만들 수 있었을까? 또한 코지마 히데오가 그의 메탈 기어 세계관을 좀 더 과감하게 확장시킬 수 있었을까?

플레이스테이션 세대에 게임 컨텐츠들이 좀 더 성숙해지면서 소니 스스로도 상당히 도전적인 컨셉을 시도하게 된다. 그란 투리스모 시리즈는 게임 자체에 대한 호오를 떠나 레이싱 게임을 완전히 다른 각도로 접근한 게임이라는 점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는 게임이다. 그러나 PS2에 이르러서야 소니 역시 어른들을 위한 성숙한 게임이라는 컨셉을 ICO와 같은 게임들을 통해 현실화시킬 수 있었다. 헤인즈와 IGN 인사이더의 마이클 톰센은 모두 소니가 비디오게임의 컨셉 자체를 변화시켰다고 입을 모은다. 대체로 좋은 방향으로 말이다.

헤인즈: 물론 N64에도 나이트메어 크리쳐스, 콩커스 베드 퍼 데이, 퀘이크 64와 같은 성인 지향의 게임들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닌텐도는 예전부터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듯이 가족 친화적인 기업이다. 게임에 있어서 표현의 경계에 도전했던 많은 게임들, 예를 들면 트위스티드 메탈, 그란 테프트 오토, 그리고 메탈 기어 솔리드 같은 게임들은 아마도 닌텐도가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시장에서는 발매조차 힘들었을 것이다. 또한 사일런트 힐, 사이렌, 데드 스페이스와 같은 호러 장르에 속하는 게임들 역시 마찬가지의 운명이었을 것이다. 폭력과 공포를 제쳐두더라도, ICO, 와이프아웃, 그란 투리스모 역시도 빛을 보기가 힘든 게임들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RPG 장르는 슈퍼패미콤에서부터 내려오던 닌텐도와 스퀘어에닉스의 돈독한 관계를 생각하면 아마도 별 문제 없이 살아남았을 것이지만, 지금처럼 좀 더 성인 지향의 분위기를 가진 게임들이 아이에서 어른으로 자라 그들 나이에 걸맞는, 마리오가 아닌 다른 무엇인가를 찾을 때의 대안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닌텐도 역시 매드월드나 노 모어 히어로즈와 같은 타이틀을 통해 이러한 대세에 조금씩 다가서고 있지만,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게임은 여전히 밝고 달콤한 이야기만을 하는 틈새 문화의 위치에 남아있었을 것이다.

마이클 톰센 (IGN 인사이더): 게임이 예술이 될 수 있으며 그렇게 주변에 인식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소니의 담대한 야망이 없었다면 과연 게임 개발에 있어서의 구도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우에다 후미토가 과연 닌텐도와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ICO와 같은 소프트를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자유스러움을 보장받을 수 있었을까? 데이빗 자페가 소니의 지원 없이 과연 갓 오브 워라는 독특한 초히트작을  만들 수 있었을까?

소니가 가진 가장 큰 가치는 게임을 어른들이 당당히 즐길 수 있는 취미로 만들겠다는 그들의 비전을 이루기 위한 치열한 노력에 있어 왔다. PS3가 고전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도 소니는 플라워, 에브리데이 슈터, 헤비 레인과 같은 게임들을 통해 MS나 닌텐도가 시도하지 않는 것들을 실험하고 있다. 소니가 없었어도 MS는 온라인 영역을 장악함과 동시에 PC 개발사들을 콘솔 쪽으로 끌어들였을 것이며, 닌텐도는 디즈니 스타일의 시간을 초월한 명작들을 만들어 냄과 동시에 가장 널리 팔린 그들의 하드웨어를 통해 서드 파티에 가장 커다란 기반 수요를 만들어 냈을 것이다. 그러나 게이머들은 다른 그 누구도 시도할 수 없었던 소니의 과감한 창의적 도박으로 인해 만들어진, 완다와 거상 같은 멋진 게임들을 결코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완다와 거상은 예술로서읙 게임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소니가 게임 산업을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바꾸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소니가 미쳤던 영향들은 소니가 없었더라도 비디오 게임 산업에 있어서 언젠가는 일어날 일들이었다고 생각하는가?

(끝)

글: 레비 부케넌 & IGN 플레이스테이션 팀 / 번역: 페이비안 / 원문게시일: 2009.2.25 / 출처: IGN Retro

* IGN.com으로부터 전문 번역 허가를 받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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