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용 시장으로의 진출

사실 캡콤은 처음에는 아케이드용 스트라이더 비룡을 가정용으로 이식하는데에는 큰 관심이 없었고, 결과적으로 가정용 컴퓨터 이식에 대한 판권을 U.S. Gold (회사 이름과는 다르게 영국쪽에 기반을 둔 회사)에 넘기게 된다.  U.S. Gold는 다시 아케이드 게임 전문 이식업체인 Tiertex에 외주를 맡겼다.

놀랍게도 Tiertex는 단지 6개월만에 여섯 가지 플랫폼으로 스트라이더 비룡의 이식작을 출시할 수 있었다. 16비트 아미가와 아타리 ST용 버전은 비록 수리검 스프라이트와 스크롤이 조악하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아케이드 느낌에 상당히 가까운 게임으로 이식되었으며, 코모도어 64와 같은 8비트 게임기 쪽에서는 어느 정도 다운그레이드가 이루어졌지만 이를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게이머에게는 꽤나 즐거운 경험을 선사하였다.

SF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게임 내용과는 크게 관련이 없어 보이는 박스 아트와 함께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은 게임성에도 불구하고, 가정용으로 컨버전된 스트라이더 비룡은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 당시 게임 잡지들에 따르면 환상적인 아케이드 게임을 가정용으로 이식했다는 사실 자체를 높게 평가했고 때문에 상당히 떨어지는 그래픽이나 게임플레이는 비교적 사소한 문제로 보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왼쪽 아미가 버전, 오른쪽이 제네시스 버전

그러나 1990년 세가에서 제네시스(일본명 메가드라이브)용으로 컨버전한 스트라이더 비룡이야 말로 캡콤이 만든 아케이드 게임의 정수를 제대로 옮긴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제네시스는 발매된지 얼마 되지 않은 최신의 시스템이었고, 스트라이더 비룡은 제네시스의 높은 성능을 과시할 수 있는 최적의 게임이었다. 비록 제네시스판 스트라이더 비룡도 아케이드와 완전히 똑같이 만들 수는 없었지만 8메가 롬팩의 용량에 힘입어 당시 기술로서는 아케이드에 가장 가까운 모습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다. 배경의 몇몇 디테일한 부분이 삭제되었지만 아케이드판의 스타일과 게임플레이는 확실하게 이식된 세가의 스트라이더 비룡은 제네시스 자체의 판매량을 증가시키는 최초의 히트작이 되었다.

당시 라이벌이었던 슈퍼패미콤으로의 이식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아 슈퍼패미콤의 유저들은 '런 세이버'라는 아류작에 만족해야 했으며, 때문에 세가 팬들은 스트라이더 비룡에 대한 강한 애착을 갖게 되었다. 이후에도 아케이드를 거의 그대로 이식한 샤프X68000 버전이나 제네시스판보다 더 뛰어난 이식을 보여준 PC엔진 CD 버전도 차례로 등장하지만, 세가가 만들어낸 스트라이더 비룡이야말로 가정용 게임기 유저들에게 가장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명작으로 남게 되었다.

비룡이 없는 스트라이더

아케이드용 스트라이더 비룡이 큰 성공을 거둔 만큼, 전 세계의 게이머들은 캡콤의 속편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속편의 소식은 아케이드의 성공에 이미 만족했던 캡콤이 아닌 가정용 게임기에서의 스트라이더 판권을 갖고 있는 U.S. Gold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U.S. Gold는 또 다시 Tiertex에 속편의 제작을 의뢰하고, Tiertex는 전작의 일부 그래픽과 사운드를 재탕하여 속편을 제작하게 된다.

스트라이더 2 (아미가)

Tiertex는 확실히 아케이드 게임을 빠르게 가정용으로 이식해내는 데에는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회사였지만,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데 있어서의 역량은 그다지 인상적인 것은 아니었다. 스트라이더 II는 전편과 비슷한 느낌에 비슷한 조작감을 가진 게임이었지만 이상한 부분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먼저 게임에 대한 판권 외에 캐릭터 판권이 없었던 관계로 그저 "용사"라고 불리는 주인공은 전작의 승리에서 돌아와 이번에는 "공주를 구출하는" 미션을 맡게 된다. 또한 그가 가진 무기인 라이플은 가만히 서 있어야만 사용이 가능했고, 전작에서 가능했던 벽을 타는 기술을 전혀 구사하지 못한다. 게다가 적 보스들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주인공이 거대 로봇으로 변신을 해야 했다. 이 모든 것을 감안할 때 Tiertex가 스트라이더 비룡의 세계관을 도대체 어느 정도나 이해하고 있었는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더구나 각 스테이지는 반복적인 구성에 디자인 역시 게임 전반적으로 어둡기만 해 전작의 화려하고 다채로운 컬러의 향연과 크게 대조되었다. 전작이었던 스트라이더 비룡을 훌륭한 게임으로 만들었던 대부분의 요소들이 속편에서는 빠져버렸으며 평단의 반응 역시 싸늘했다.

북미쪽에서는 Tiertex의 스트라이더 II와 세가의 제네시스용 스트라이더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발매되었는데, 게이머들의 선택은 분명했다. 단지 II가 붙는다고 해서, 원작에 충실한 완벽한 가정용 이식작 대신 어설픈 속편을 선택할 사람은 많지 않았던 것이다. 이쯤되면 독자들도 U.S. Gold가 조용히 스트라이더 시리즈에서 손을 떼고 사라져주길 바라겠지만, 역사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스트라이더 2 (제네시스)

1993년 초, 제네시스, 마스터시스템, 게임기어 용으로 (Tiertex가 개발하고 U.S. Gold가 발매한) 스트라이더 II가 각각 등장하였다. Tiertex는 그나마 이전의 잘못에서 많은 반성을 하고 16비트 용으로 개발하는 스트라이더 II는 최대한 원작의 느낌을 살리는 방향으로 전환하였다. 쓸모없던 라이플은 다시 수리검으로 바뀌고, 배경 그래픽도 아케이드의 느낌이 나도록 했으며, 주인공의 로봇 변신 능력도 빼버렸다. 스테이지는 모든 방향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했으며 벽을 타는 기술도 부활했다.

그러나 워낙 엉망이었던 작품을 아무리 뜯어고친다고 해서 명작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스테이지 구성은 지루하기 이를데 없었으며, 제네시스용 스트라이더를 그 해 최고의 게임으로 뽑았던 Electronic Gaming Monthly 잡지조차 스트라이더 II를 역사상 최악의 속편 다섯 가지 중 하나로 뽑았다. U.S. Gold의 삽질(?)로 인해 스트라이더 비룡의 이미지는 크게 실추되었으며 다른 누군가가 비룡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출처: IGN Ret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