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여년 간, 컴퓨터게임과 비디오게임은 슈팅, 플랫폼, 스포츠, 액션, 퍼즐, 시뮬레이션, 롤플레잉, 어드밴쳐, 격투 등 다양한 장르를 성립해가며 많은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비교적 최근의 트랜드인 장르간 혼합까지 생각하면 그 조합은 무궁무진하죠.

애초에 게임에서 장르라는 건 그 장르의 공식을 구축하는 걸출한 게임과 그 뒤를 따르는 다량의 유사품(?)들이 저마다의 색깔을 내면서 공통점이 모아지면서 성립되는 경우가 많으니, 이 게임은 저 장르고 저 게임은 요 장르다..라고 구분하는 것도 크게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습니다. 차라리 '이 게임은 GTA에서 폭력적인 부분을 좀 빼고 만화 캐릭터에 개그를 가미한 게임이야.', '요 게임은 DDR 같은 건데 기타로 하는 거야.' 뭐 이런 설명이 오히려 장르 구분보다 더 와닿는 설명이 되기도 합니다.

이렇듯 다양한 장르로 구성된 게임을 아주 큰 줄기에서 나누어 보는 방법 중에 cerebral한 게임과 visceral한 게임으로 나누는 관점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얼마전 포스팅한 론 길버트의 인터뷰에 이런 구절이 있었는데요.

The majority of today's gamers enjoy things that are more visceral. They like to be told what to do and where to do it and then get good at doing it. Adventure games are fundamentally about not knowing what to do or where to do it and figuring it out. Adventure games are slow moving contemplative affairs.

여기서 visceral이라는 표현이 나오죠. 대비되는 의미로 여기서는 contemplative라는 표현이 쓰였습니다.

DOS용 고전 어드밴처 게임을 다운로드받을 수 있는 DFG라는 사이트에서 어드밴처 게임을 설명한 다른 예문을 하나 보면,

Combining puzzle solving with exploration, the adventure game is a popular genre. Adventure games tend to focus on narrative and cerebral problem solving, rather than reflex-based challenges. Adventure games often take you through fantasy or science fiction worlds in which you interact with characters. Though some are available for consoles, Adventure games are generally computer games.

여기서 cerebralreflex-based challenges에 대비되는 표현으로 사용됩니다.

그럼, 더 계속하기 전에 일단 cerebralvisceral의 사전적 의미를 함 찾아볼까요?

cerebral

형용사
1. [해부] 대뇌의, 뇌의; 지적인, 지성에 호소하는; 사색적인; [언어] 반전음(反轉音)의

명사
1. [언어] 반전음

visceral

형용사
1.  내장의, 창자의
the visceral cavity 복강(腹腔) 

2.  (병이) 내장을 침범하는 
 
3.  내장 같은 
 
4.  본능적인, 비이성적인; 노골적인; 마음속에서 느끼는
a visceral reaction 본능적 반응



사전 출처는 다음 사전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cerebral은 '머리, 뇌, 지성 쪽으로 감지되는', visceral은 '본능, 감각, 마음 쪽으로 느끼는' 이라는 뜻이 되겠네요.

이 블로그의 주제인 게임으로 돌아와서 생각해보면, cerebral한 게임이라면 어떤 게임일까요? 아마도 심사숙고하고, 논리적인 판단이나 추리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그 재미의 주안점을 두는 게임들이겠지요. 고전 시뮬레이션 게임들, 대표적으로 삼국지 (삼국무쌍이 아니고요.)라던가 대항해시대 같은 것들이 있을 수 있고요. 심시티가 아마 전형적인 cerebral한 게임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퍼즐게임들 중에서도 레이튼 교수와 이상한 마을이라는 NDS 타이틀이 머리를 써서 푸는 수수께끼가 많은 게임이지요. 그럼 두뇌 트레이닝은? 어떤 면에서는 뇌단련이라기보다는 반사신경 강화 게임인 듯한 느낌도 있지만, 이것도 뇌를 활성화시키는 차원에서 cerebral한 게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cerebral하다면 시작하면서 언급했던 어드밴처 게임들을 빼놓을 수 없지요. 궁극의 골머리(?) 퍼즐형 어드밴처인 미스트(Myst)는 딱 부러지는 힌트도 없이 게이머들을 어떻게 하면 주어진 환경을 이용해서 게임을 진행시킬 수 있는가 하는 고민에 한없이 빠뜨리는 게임으로 유명했었죠. 심하면 자다가도 생각나는... (조만간 아이팟 터치용으로도 나올 예정이라고 하네요.) 그보다는 덜 골치 아픈 원숭이섬의 비밀 류의 시에라나 루카스아츠의 고전 어드밴처 게임들도 주변 캐릭터들, 아이템들, 그리고 배경들을 잘 분석하고 활용하여 주어진 문제를 해결함으로서 게임을 진행해간다는 면에서 cerebral한 게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cerebral한 게임들의 특징은, 게이머들에게 무엇을 해야할지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시도하고, 판단하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힌트가 적으면 적을 수록, 오랜 시간에 걸쳐서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나중에 정답을 맞추어서 다음 단계로 진행하게 되었을 때에 얻어지는 쾌감도 크게 느껴지는게 cerebral한 게임들입니다.

자 그럼 이제 visceral한 게임은 어떤 게임인지 한번 생각해 봅시다. 아마도 빠른 템포에 감각적이고, 충격적이고... 머리보다는 가슴을 화끈하게 달구어 주면서 플레이하면 아드레날린이 불끈불끈 솟아오르는 게임을 visceral한 게임이라고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공포감, 긴장감, 박진감... 이런 것들이 철철 넘치는 게임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게임은 바로 기어즈 오브 워 시리즈네요. 이건 뭐 숨어서 몰려드는 징그러운 외계 침입자들을 보기만 해도 식은땀이 나는데, 이 녀석들을 총으로 죽이는 것에서 모자라 톱으로 썰어버리는 살벌한 게임이니까요. 또 갓 오브 워 시리즈도 신화에서나 나올 법한 무시무시한 괴물들을 호쾌하다 못해 잔인하기 이를데 없는 액션으로 무참히 난도질하는 게임이죠. 그리고 대부분의 FPS 게임들이 그야말로 눈 앞에서 펼쳐지는 전장을 그리기 때문에, 머리로 생각한다기보다는 몸으로 느껴지는 게임들이 많은 거 같습니다. 콜 오브 듀티 4: 모던 워페어의 경우, 눈 앞에서 펼쳐지는 핵폭발 장면은 핵과 관련된 다큐멘터리 몇 편보다 더욱 강렬한 충격으로 다가오던 기억이 나네요.


아주 전형적인 visceral한 게임은 바로 EA의 Visceral Studio라는 (이름부터 정체성이 분명한) 개발사에서 만든 Dead Space라는 게임도 있지요. 우주를 배경으로 아주 그로테스크하고 고어한 연출로 많은 화제와 논란을 일으켰던 게임이지요. 여기서 나올 Dante's Inferno도 스크린샷만 봐도 꽤나 섬찟한 게임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바이오 하자드 역시 visceral한 감각 중 하나인 뱃속부터 찌릿찌릿한 공포감을 불러 일으키는 게임이지요. 최근에는 좀 더 액션 지향의 방향성을 타고 있긴 하지만, 1편부터 해보신 게이머라면 좀비견이 창문에서 뛰어 들어왔을 때나, 좀비들이 이상한 소리와 함께 천천히 다가오는데 조작은 제대로 안되고, 총알은 별로 없는 상황에서의 공포감을 기억하실 거에요.


visceral한 게임들의 특징이라면, 조작 체계 외에 다른 것들을 딱히 생각할 필요 없이, 눈앞의 장애물을 해치워버리는 '손맛'의 짜릿함이 강조된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계속 변화하는, 그리고 극적인 상황에서 게이머들은 자신의 반사신경에만 의존한 채 적대적인 상황에서 생존해나가야 하는 것이죠. 같은 상황에서 조작 미숙 등으로 어이없이 게임 오버를 당하다가도, 조금씩 게임에 익숙해지면서 자신이 이 무시무시한 전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되지만, 언제고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하는 서스펜스 영화와 같은 재미를 주는 것이 visceral한 게임들입니다.

어떤 건 cerebral하고 어떤 건 visceral한 게임이라고 모든 게임들이 무 썰 듯 명확하게 구분되지는 않을 거에요. 스타크래프트만 보더라도 전체적으로 트리를 어떻게 탈 것이며 멀티는 어떻게 할 것인가 등과 같은 전략적인 두뇌 싸움임과 동시에, 극한의 콘트롤로 상대 유닛과 전투가 벌어지면 보는 사람마저 흥분될 정도의 강렬한 긴장감과 자극을 주는 게임이기도 하죠. 또한 같은 FPS라도 레인보우 식스 같은 게임은 visceral한 긴장감도 있지만 부대원의 전략적인 움직임을 더 중요시하는 게임이라는 차원에서 cerebral한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 cerebral한 게임들이 지적인, 심사숙고하는 게임이니까, 이런 류의 게임을 하면 머리가 좋아질까요? 이 질문은 격투게임을 하면 반사신경이 발달하나요? 같은 질문과 본질적으로 유사한 질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주 느슨하게 사고력이나 추론 능력이 길러질 수도 있겠지만, 결국 게임은 게임이에요. 재밌으려고 하는 거죠. 단지 이러한 재미를 cerebral한 자극에서, 즉 심사숙고하는 문제 해결에서 찾는가, 아니면 visceral한 자극에서, 즉 긴박함 속에 반사신경을 가다듬는 데에서 찾느냐가 되겠습니다. 능력 배양의 관점의 cerebral이냐 visceral이냐 보다는 추구하는 재미의 방향이 다른 것 뿐이라는 말이죠.

그럼 cerebralvisceral의 차이, 이제 감이 좀 오시나요? 다음 시간에는 좀 더 재미있는 게임 속 영어 표현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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