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운 좋은 게임들은 시대를 뛰어넘어 시리즈로 장수를 누리지만, 어떤 게임들은 세월의 흐름 속에 잊혀져 그저 사람들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 어떤 게임들은 기대만 잔뜩 하게 해놓고 여러가지 이유로 결코 출시되지 않아 실체가 없는 게임도 있고요. 또 어떤 게임들은 게임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인 '재미'를 무시한 채 그저 돈벌이를 목적으로 나왔다가 게이머들에게 두고두고 욕만 먹고 시장에서 퇴출되는 게임들도 있죠.

이런 게임들을 각각 간단하게 정리해보면, '잊혀진 고전 게임', '사라진 기대작', '쓰레기 게임(?)'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는데요. 영어로 이들을 아주 쌈빡하게 한 단어로 표현하는 abandonware, vaporware, shovelware에 대해서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영어에서는 -ware라는 표현으로 software의 특성을 한 단어로 심플하게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위의 세 가지 경우 외에 재밌는 표현에 대해서는 글 말미에 잠깐 다루어 보죠. (여기서 퀴즈, beerware는 무슨 의미일까요? sisterware는..? 정답은 글 말미에.)

1. abandonware

다음 IT용어 사전에 따르면, 어밴던웨어 [abandonware]는 다음과 같은 뜻이 있습니다.

제작사에서 공급이 중단되었지만 다른 소스로부터 습득이 가능한 운영 체계(OS), 워드 프로세서(WP), 게임 및 오디오 파일 등의 소프트웨어. NextStep, OpenStep, 더 향상되어 대체된 많은 게임들, 어떤 것은 제작자의 승인하에 배포되는 것 등이 있고, 간혹 내려받기하는 경우 허가(license)가 필요하다.


The official abandonware ring이나 Dan's 20th Century Abandonware 등을 참고하면, 5년 이상이 된 software들 중에서 더 이상 일반적인 루트로 구입할 수 없으며, 제작사에서 더 이상의 지원이 되지 않는 것들을 abandonware라고 분류한다고 합니다.

abandonware라는 단어 자체는 잊혀지고 묻혀지는 고전 소프트웨어나 고전 게임들이 완전히 사라져 버리지 않도록 보존하고자 하는 차원에서 생겨났습니다. 기업에서는 더 이상 해당 상품으로 이윤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관심이 없고, (아니면 회사 자체가 망해버린 경우도 있고) 사용자들이 가지고 있는 카피는 시간이 지나면 소멸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archive 형태로 모아두자는 차원에서 등장한 개념이지요.

그런데 abandon이 버리다, 포기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니, 말 그대로 해석하면 '버려진 소프트웨어'가 되겠는데요. '버려진' 게임이니 저작권 같은 거 신경쓸 거 없이 마음껏 다운로드 받거나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오해하기 마련인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미국 저작권법 기준으로 저작권은 개인의 경우 저작권자의 사망 이후 70년 간 보호되며, 기업이 저작권을 소유한 경우에는 저작권이 발효된 이후 95년 간 보호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인데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소유권 유지를 통한 기업의 이해관계 유지와 고전 소프트웨어의 공공화를 통한 보존이라는 두 명분 간 논쟁이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만, 엄밀히 말해서 abandonware라고 해서 마음대로 다운로드 받거나 하면 법적으로는 엄연히 불법입니다.

윌리 비미쉬, 아 아름다운 기억.


...만, 게임의 경우에는 스타크래프트 같은 괴물을 제외하고는 5년이나 10년 후에도 계속 구입이 가능하고 제작사에서 서포트가 되는 것들은 거의 없다시피 하니, 인터넷을 검색하면 DOS 시절의 고전 명작들을 풀 버전으로 제공하는 사이트들이 꽤 많이 나오곤 하지요.

최근의 복고 열풍에 힘입어 MS의 마켓플레이스나 소니의 PSN, 닌텐도의 버추얼 콘솔 등으로 옛날 게임들이 다시 나오는데, 이렇게 되면 그 게임들은 더 이상 abandonware가 아니게 됩니다. 구입할 수 있는 루트가 생겼으니까요. 이러한 복고 열풍으로 인해 아마도 기업들은 자사의 고전 명작들에 대한 저작권 단속을 더 철저히 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2. vaporware

또 다시 다음 IT 용어사전을 뒤져보면, vaporware는 한국어로 '증발품'이라고 하는군요.

판매 계획 또는 배포 계획은 발표되었으나 실제로 고객에게 판매되거나 배포되지 않고 있는 소프트웨어. 새로운 소프트웨어의 판매나 배포 계획을 발표해 놓고 실제로 그 제품을 내놓지 못하거나 지연시키고 있는 것을 풍자하여 일컫는 말이다.


말 그대로, 증발해버린 software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12년째 개발만 열나게 진행 중인 듀크 누켐 포에버가 있겠네요. 대체적으로 마케팅을 위해 너무 높은 기대치를 세워놓고 실제 제품이 이를 따라가지 못해 계속 갈아엎고, 갈아엎고 하다가 결국 프로젝트 자체가 망가져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실제로 듀크 누켐 포에버 역시 FPS의 새역사를 쓰겠다고 호언장담을 하다가 게임 엔진 자체를 퀘이크 엔진에서 언리얼 엔진으로 교체하는 등의 난리를 떨었죠. 원래 발매일인 1998년을 훌쩍 넘겨 2006년으로 예정되었던 출시일도 결국 지켜지지 못했고, 개발사인 3D Realms가 망해버리는 상황까지 이르게 됩니다.

지금도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까?


vaporware
중에서 slideware라는 게 있는데, 이것도 말 그대로 'slide'에서 더 이상 진행되지 못한 소프트웨어를 말합니다. 우리말로 하면 기획서에서나 존재하는 물건 쯤이 되겠네요. 사기꾼 조심합시다. ^^

반면 hypeware는 엄청난 마케팅을 통해 hype, 즉 상당한 이야기거리와 높은 주목도를 불러 일으키는 소프트를 이야기하는데요. 이들 중에서는 이러한 광고에 걸맞는 퀄리티를 갖춘 완성도로 순식간에 명작의 반열에 올라서는 게임이 있는 반면, 실제로는 모든 게 다 뻥으로 드러나는 것들도 있죠. 주로 후자에 대해 cynical한 표현으로 hypeware라는 표현을 쓰고는 합니다. 하지만 Metal Gear Solid 시리즈 같이 사람에 따라 명작이라고 하기도 하고, 궁극의 hypeware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말로 하면 '궁극의 떡밥 게임' 정도 되려나요? ^^

hypemachine이라 불릴 정도로 떡밥을 뿌려대는 메탈 기어 시리즈


3. shovelware

마지막으로 shovelware는 다음 IT 사전이 아닌 영어사전에 당당히 들어간 단어로군요.

명사
1. (불가산) 셔블웨어 (책이나 신문에 인쇄된 정보를 무더기로 인터넷이나 CD-ROM에 담은 것)


소개된 뜻은 shovelware의 기원으로, CD-ROM의 엄청난 저장용량을 뭔가 새로운 개념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기존의 소프트웨어를 무작위로 마구 집어넣어서 용량만 채워 판매하는 구태의연한 행태를 풍자한 단어가 되겠습니다.

shovel이 삽이라는 점만 기억하시면, 아주 와닿는 단어가 되겠죠. '삽질하는 게임' 또는 '삽질의 결과로 만들어진 게임' 과연 재밌을까요? 이렇게 보면 영어랑 한국어랑 뜻이 통하는 부분이 의외로 많아요. ^^

만약 (공신력 있는) 게임 리뷰에서 shovelware, 이 단어가 딱 떴다 하면 뒤도 돌아보지 마시고 그 게임은 그냥 패스하시면 됩니다. 게임 쪽에서는 보통 영화나 애니매이션 등의 라이센스를 활용해서 그저 눈먼 돈을 뜯어내고자 허접한 개발사에 빡빡한 일정을 주고 만들라고 해서 영화 개봉 등에 맞춰서 내놓는 허접 tie-in 게임들을 가르키는 말이었는데, 허접 게임이 뭐 라이센스 게임만 있나요. 온갖 허접한 게임들에는 shovelware라는 딱지가 붙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아래의 (별로 길지도 않은) 동영상을 보시면, shovelware가 뭔지 감이 딱 오실 겁니다.

더 많은 shovelware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정말?)

4. 그 밖에...

또한 heroinware는 첫번째 스테이지가 공짜인 게임 소프트를 의미한다고 하네요. 마약처럼 중독시켜 놓고 다음으로 진행하려면 돈을 지불해야 한다고 해서 그런 듯 합니다. trekware는 스타트랙 게임들을 가르킨다고 하네요. 미국은 트래키라고 해서 워낙 스타트랙 팬들이 많으니 용어도 하나 생길 법 하죠. (더 많은 ware 시리즈는 여기에)

아까 beerware와 sisterware가 뭔지 생각해보셨나요? 둘 다 shareware의 한 형태로, 소프트를 사용할 경우 beerware는 개발자에게 맥주를 사주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고, sisterware는 누나나 여동생을 소개시켜주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 것들입니다. ^^ 비슷한 개념으로 mailware, cardware, charityware, prayware, registerware, chocolateware, giftware 등등이 있지요.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의 잊혀진, 사라진, 잊고 싶은 추억의 게임들은 무엇인가요?

다음 시간에는 좀 더 재미있는 게임 속 영어 표현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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