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littlemathletics retroperspective 01: monkey island by alistairw

내가 아주 어릴 적, 원숭이 섬의 비밀은 다른 게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아하는 게임이었다. 나는 항상 부모님께 (그리고 가끔씩 친구들에게도) 그 때 플레이하고 있는 게임에 대해서 열을 내며 설명하는 그런 아이였는데, 원숭이섬의 비밀에 대해서는 특히나 많은 시간에 걸쳐 부모님께 이야기하곤 했다. 아마 아버지나 어머니 두 분 다 지금도 원숭이섬의 비밀의 전체 스토리는 물론 주요 캐릭터들의 이름 등 게임에 대한 대부분의 내용을 기억하고 계시리라 생각한다. 가운데 도드래가 달린 고무 치킨 같은 조크마저도 말이다.

그런 내가 아주 나중에서나 파이날 판타지에 빠져들었던 것은 부모님께는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들께선 "그래서 티더랑 유나, 룰루랑 리쿠가..."로 시작되는 나의 장황한 설명을 몇 번이고 들었어야 했을 테니까.

VGA 카드가 있던 선택받은 아이들이 보는 화면과 내가 보던 화면의 비교


하지만 그 당시에 내게 이러한 종류의 게임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아주 많았던 것은 아니다. 원숭이섬의 비밀이 발매될 당시 나는 PC 게임에만 집중하는 게이머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는데, 집에 비디오게임기라고 해봤자 열 번 켜면 한 번만 작동하는 오래된 아타리 2600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닌텐도의 NES(패미콤)이나 세가의 마스터 시스템(마크3)은 친구 집에서나 가끔씩 해 볼 수 있었다. 집에 있는 PC인 Amstrad 1512는 8Mhz 286에 EGA 그래픽만 지원되었고, 부모님이 구입할 당시에도 최신 사양은 아니었기 때문에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은 상당히 제한되어 있었지만 원숭이섬의 비밀만큼은 문제없이 구동시킬 수 있었다.

원숭이섬의 비밀이 어떤 게임인지 잘 모르는 게이머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지금은 루카스아츠라 불리는 루카스필름 게임즈가 80년대와 90년대 두각을 나타냈던 포인트 앤 클릭 어드밴처 게임 중에서도 최고의 수작이라 평가되는 작품들 중 하나이다. 발매일 기준으로 봤을 때, 론 길버트(Ron Gilbert)와 아릭 윌먼더(Aric Wilmunder)가 개발한 SCUMM (Script Creation Utility for Maniac Mansion) 엔진을 사용한 다섯번째 게임이기도 하다.

프로젝트 리더였던 론 길버트가 수석 디자이너와 수석 작가를 포함한 상당히 많은 역할을 했지만, 개발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이들 중에는 공동 작가이자 디자이너였던 팀 샤퍼(Tim Schafer)와 데이브 그로스만(Dave Grossman)이 있었다. 이 이름들을 보고서도 아무런 감흥이 없는 사람들(아마 지금의 게이머 대부분이 여기에 속하겠지만)을 위해서 저 세 사람이 원숭이섬의 비밀과 그 속편 이후에 각자 어떠한 길을 걸어왔는지 잠시 살펴보도록 하자.

론 길버트는 1992년 루카스아츠를 퇴사한다. 알려진 바로는 내부적으로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이루어진 결정이라고 한다. 그는 전 루카스아츠 직원이자 동료였던 셸리 데이(Shelley Day)와 함께 휴멍거스 엔터테인먼트(Humongous Entertainment)를 설립하고 SCUMM 엔진을 활용한 다수의 아동용 게임을 제작하게 된다. 휴멍거스 엔터테인먼트로부터 성인지향의 게임을 제작하는 케이브독(Cavedog)이라는 자회사가 등장하고, 론은 그 쪽에서 가스 파워드 게임즈(Gas Powered Games)가 개발한 토탈 에니힐레이션(Total Annihilation)의 프로듀서를 맡았다.

안타깝게도 케이브독은 1999년에 문을 닫았다. 최근에 론 길버트는 핫헤드 게임즈(Hothead Games)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페니 아케이드(Penny Arcade) 게임에 얼마간 관여하였고, 현재는 데스스팽크(DeathSpank)라는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데스스팽크는 원숭이섬의 비밀과 디아블로가 결합한 게임이라고 한다. 상당히 멋지지 않은가, 아니라고?

팀 샤퍼는 루카스아츠에 좀 더 남아서 데이 오브 더 텐타클(Day of the Tentacle)의 감독, 각본, 연출, 제작을 공동으로 진행하였으며 풀 쓰로틀(Full Throttle)과 그림 판당고(Grim Fandango)의 개발을 지휘했다. 이후 그는 회사를 나와 더블 파인 프로덕션(Double Fine Productions)를 설립하여 매우 독창저인 게임인 싸이코너츠(Psychonauts)를 개발한다. 팀의 회사는 지금도 건재하며 현재는 잭 블랙이 출연하는 세기말적 메탈 게임인 브루탈 레전드(Brütal Legend )의 10월 발매를 앞두고 있다. 물론 말할 필요도 없이 나는 브루탈 레전드를 발매 당일날 누구보다도 먼저 구입하여 즐겨볼 예정이다. (만약 미리라도 구할 수 없다면 말이다)

데이브 그로스만은 아마도 세 사람 중에서는 가장 덜 알려진 인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포트폴리오가 화려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데이 오브 더 텐타클 이후 그는 루카스아츠를 나와 론 길버트가 설립한 휴멍거스에 합류하여 다양한 종류의 작품에 관여하였다. 그후 잠시 디즈니의 게임쪽 부서에 있다가 텔테일 게임즈로 자리를 옮긴 그는 본(Bone), 샘 앤 맥스(Sam and Max) 그리고 스트롱 배드(Strong Bad) 등의 작품을 이끄는 주력 개발자로 활동하고 있다.

아름답지 않은가...

원숭이섬의 비밀을 이야기하면서 마이클 랜드(Michael Land)가 만들어낸 멋진 음악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샘 앤 맥스의 창조자인 스티브 퍼셀(Steve Purcell)이 마크 페라리(Mark Ferrari)와 함께 게임의 그래픽을 담당하였다. 샘과 맥스는 원숭이섬의 비밀 후반부에 부족 우상 중 하나로 등장함으로서 게임 쪽에 처음으로 그 모습을 비치게 된다. 퍼셀은 또한 원숭이섬 1편과 2편의 박스 아트도 담당했는데, 지금까지 내가 보아온 박스 커버 중에서도 단연코 최고다. 특히 2편의 커버는 정말 걸작이다. 지금도 인터넷에서는 2편 커버의 초고화질 버전이 돌아다니고 있는데, 다운로드 받아서 불법으로 대형 포스터를 만들어도 될 정도이다. 내가 그렇게 하겠다는 건 아니고... 뭐 그런 것도 있단 얘기다.
게임 자체는 무척 빠르게 개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원래는 론 길버트가 1988년 매니악 맨션을 마치고 바로 진행하려고 했던 프로젝트였으나, 대신 인디아나 존스를 바탕으로 한 어드밴처 게임의 개발이 선행되었다. 덕분에 원숭이섬의 비밀에 할애된 기간은 대략 18개월 정도에 불과했는데, 프로토타입 버전은 불과 3개월 만에 완성되었다.

원숭이섬의 비밀의 스토리 자체는 간단하다. 캐러비안의 그 어딘가에 해적이 되길 꿈꾸는 가이브러쉬 쓰립우드(Guybrush Threepwood)라는 청년이 있었다. 그는 해적이 되기 위한 시험을 치르고, 섬의 총독인 일레인 말리(Elaine Marley)와 사랑에 빠지고, 그녀를 납치한 유령 해적 리척(LeChuck)에게서 그녀를 구출한다는 간단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게임을 이끄는 것은 스토리 구성보다는 시나리오와 캐릭터, 작은 디테일적 요소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재치와 유머였다.

나에게 있어 원숭이섬의 비밀은 다른 여타 게임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심오한 영향을 주었던 작품이었다. 원숭이섬의 비밀은 1990년 발매되었는데, 아마 나는 부모님께로부터 그 해 생일 선물로 받았던 것 같다. 당시 내 나이는 여덟살이었는데, 그 시기에 접하는 매체들은 대체적으로 아이들에게, 그리고 그들의 성장과정에 상당히 거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듯 싶다.

한 때 사회학을 공부한 얕은 지식으로 이 논지를 가지고 계속 떠들면서 스스로를 바보처럼 만들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말해 나는 그런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다. 따라서 아주 기본적인 지식의 파편으로 뭔가 단정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나의 경우를 돌이켜보면 그런 경향이 있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어쨌든 이야기가 점점 산으로 가는 듯 하니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보자.

뭔가 필요해..

내가 주장하는 바의 요지는, 나에게 형성된 유머 감각에는 다른 무엇보다도 원숭이섬의 비밀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나는 원숭이섬의 비밀을 플레이하면서 그 안에 담긴 유머가 너무 재밌다고 생각했고, 주변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게임 속 조크들을 설명하려고 했었다. 예상할 수 있겠지만, 설명을 듣는 사람들 대부분은 (우리 부모님을 포함해서) 게임을 해본 적도 없고 해볼 생각도 없는 사람들이었고, 나는 그런 사람들을 붙잡고 계속 이런 얘기를 늘어놓았던 것이다. "그래서 중간에 도드래가 달린 고무 치킨을 구해서 섬의 끝으로 가면, 거기에는 네온 사인이 뭐라고 써있냐면..."

짐작하겠지만, 나의 설명은 내가 예상했던 반응을 불러 일으키진 못했다. 그러나 나는 개의치 않았다. 원숭이섬의 비밀에 나오는 조크들은 환상적이었고, 나는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다. 그 조크들은 지금도 날 웃게 만드는데, 아마도 나의 유머 감각 대부분이 원숭이섬의 비밀을 통해 형성되었기 때문이리라. 물론 재미없는 농담만 하는 아버지의 감각도, 내가 한 200만 번 정도 본 영화 UHF도 나의 유머 감각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지만 원숭이섬의 비밀만큼은 아니다.

아주 대놓고... 그래도 웃기다.

원숭이섬의 비밀에 등장하는 많은 조크들은 매우 영리하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상식을 파괴하는 구석도 있었다. 바로 그러한 점이 내가 그 전에 즐겼던 게임에서 재미있다고 느꼈던 것들과 원숭이섬의 비밀의 재미를 구분짓는 아주 커다란 차이점이기도 하다. 예를 들자면, 게임 초반에 만나는 어떤 남자는 루카스아츠에서 발매한 또 다른 어드밴처 게임인 룸에 대해 장황한 선전을 늘어놓는다. 여덟 살이었던 내가 그 당시 이 조크를 완벽하게 이해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해당 캐릭터의 대사에 의도적으로 남용된 트레이드마크 심볼 만으로도 그 의도만큼은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 이 대화를 비롯하여 게임 속 수 많은 장소에서 쓰여진 트레이드마크 심볼은 원숭이섬의 비밀 속 유머가 가지고 있던 권위에 대한 조롱과 풍자의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 조크는 단순히 도전적일 뿐만 아니라 메타텍스트적, (의도적인) 시대착오적, 제4의 벽 파괴적인 함의를 게임 속 5분 동안 함축시켜 놓은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대담하지만 참신하고 웃기기까지 한 이러한 유머를, 안타깝게도 지금의 게임들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또 하나의 예시는 유명한 나무 밑둥과 관련된 조크다. 숲 속에서 나무 밑둥을 들여다 본 가이브러쉬가 그 안에 무덤으로 통하는 동굴이 있다는 대사를 말한 후, 화면에 23번, 47번, 114번째 디스크를 넣으라는 메시지가 나오는 이 장면은 팀 샤퍼가 생각해낸 것이라고 들은 것 같다. 이 조크는 나중에 나온 버전들에서는 삭제되었는데, 이게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하지 못하고 루카스아츠 헬프데스크에 전화해서 필요한 디스크가 패키지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항의하는 전화가 종종 걸려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는 그 당시 불과 여덟 살이었는데도 그 농담을 이해했던 것을 기억한다. 솔직히 말해 나는 원숭이섬의 비밀을 이렇게 어린 시기에 즐길 수 있었던 것이 상당한 행운이라고 생각하는데, 왜냐면 게임 속 유머 자체가 가히 동시대 최고라고 말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다른 놀이감들 보다는 훨씬 지적이고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너무도 적절한 컨셉

내가 좋아하는 농담에 대해서만도 밤을 세워 이야기할 수 있을 거 같다. 고무 나무 관련 조크나 앞에 언급한 도르래 달린 고무 치킨도 빼놓을 수 없다. 또한 말싸움 검술 대결은 지금도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을 웃게 하는 부분이다. 이번에 발매된 스페셜 에디션 웹사이트에도 미니 게임으로 들어가 있는데, 그 당시 내가 얼마나 인상적으로 그 부분을 받아들였는지 아직도 모든 대사를 다 기억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좀 무섭기까지 하다.

말싸움 검술 부분은 공상과학 소설가 오손 스캇 카드(Orson Scott Card)가 작업했다. 그의 정치적 성향이나 동성애에 대한 입장 같은 부분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말들이 많지만, 이렇게 재밌는 대사를 쓸 수 있는 사람은 완벽하게 나쁜 사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또한 거버너 맨션에서 보안관과 싸우는 부분도 유쾌하기 이를 데 없다. 식인종들의 대사들도 그렇고, 또한 항해사의 머리와 관련된 모든 것들도 웃긴다. 아무리 여러 번 게임을 하더라도 그(?)가 나올 때면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한다. 심지어 대사만 보더라도 웃음이 나온다.

론 길버트 홈피에서 가져왔음

또한 "Look at tremendous yak" 조크는 텍스트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유머라고 생각한다. 이로부터 수 년 후 어드밴처 게임에서 이러한 입력 텍스트 창이 사라진 데에는 이유가 있다. 개발자들이 이보다 더 웃긴 농담을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가이브러쉬의 캐릭터에는 친밀감..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뭔가 분명한 개성이 있다. 사실 그는 약간 얼간이에다 여자에게는 말도 제대로 못 건네는 쑥맥에 능력남이라고 하기에는 한참 부족한 순진하고 아무 것도 모르는 청년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덕분에 플레이어는 그와 함께 게임 속 장소와 다른 캐릭터들의 성격, 그리고 해적이 되기 위한 방법 등 게임 속 세상에 대해 배워간다.

게임 속 유머를 살리기 위한 방편으로 가이브러쉬는 과장이 심한 허풍장이라는 설정이지만 이는 그에게 보다 인간적인 느낌을 부여하기도 한다. 진짜 어딘가 존재할 거 같은 캐릭터, 요즈음의 게임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그런 캐릭터의 느낌은 여기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원숭이섬의 비밀이 나에게 있어 어떤 의미인지를 설명하기는 정말 어렵다. 생애 최고의 게임 같은 미사여구를 동원하고 싶지는 않다. 원숭이섬의 비밀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게임이라기 보다는 내가 플레이해본 게임 중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얼마 전 론 길버트의 개인 블로그에 올라온 원숭이섬 관련된 멋진 글을 본 적이 있는데, 그 글을 읽으면서 나는 기분 좋은 향수를 느낄 수 있었다. 게임 그 자체 만이 아니라, 내가 그 게임을 즐길 당시의 냄새와 애완견, 집에서 들렸던 소리들, 그리고 어릴 적 나의 작은 방에 대한 기억들이 모두 새록새록 떠올랐던 것이다.

예전에 우연치 않게도 론 길버트가 나에게 이메일을 보낸 적이 있었다. 그는 내가 가마수트라에 올렸던 데저트 아일랜드 게임즈라는 이름의 내 컬럼을 칭찬하면서 자신도 참여할 수 있을지를 물었던 것이다. 나는 이메일을 읽으면서 믿을 수 없는 마음에 현기증과 숨막힘, 그리고 울렁증을 동시에 느꼈고, 그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지는 이메일을 보낸 후 확인 메일도 몇 번 보냈다. 하지만 결국 그에게서 답장을 받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내가 그에게 조금이나마 좋지 않은 감정을 갖게 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듣기로는 팀 샤퍼조차 그에게 보낸 메일의 절반 이상에 대해서는 답장을 받을 수 없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론 길버트에게서 메일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지 않은가! 아니라고?

VGA 지원 게임 중에서도 최고

앞에서 말했듯이 당시 우리집 컴퓨터에는 EGA 그래픽카드만 있었다. 때문에 VGA 전용으로 등장한 두 번째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당시 나는 원숭이섬의 비밀 속편이 등장한다는 소식을 듣고 발매 당일에 게임을 구하려고 벼르고 있었다. 게임 발매일을 그렇게까지 기다린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하지만 결국 내가 원숭이섬 속편을 플레이할 수 있었던 것은 그로부터 5년이 지난 후 크리스마스 휴가 동안, 할아버지 집에 있는 컴퓨터를 통해서였고, 게임은 친구에게 빌려서 간신히 즐길 수 있었다. 우리집 컴퓨터는 286은 벗어났지만 그보다 성능이 조금 좋은 16MHz 매킨토시 LCII였는데, 어떤 영문인지 몰라도 할아버지 집에는 최신의 486 컴퓨터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내가 거기서 지낸 몇 주 동안 사용했던 것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그 전후로 사용했던 시간보다 훨씬 길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런 이유로 나는 원숭이섬의 비밀 2편에 관해서는 1편만큼 속속들이 알고 있진 못하다. 엔딩까지 두 번 정도 플레이했을 뿐이고, 최근 몇 년 동안은 첫번째 섬 이상 진행해보질 못했기 때문에 게임 속 조크들에 대해서도 자세히 기억하지는 못한다. 조만간 시간이 나면 한 번 다시 플레이해볼 예정이지만 아무튼 내가 기억하기로는 속편 역시 매우 훌륭한 작품이었다. 배경이 되는 장소들도 아름답고 시나리오 또한 1편 이상으로 잘 다듬어져 있으며 몇몇 퍼즐은 1편보다 못하다는 평이지만 그렇다고 비상식적이지는 않았다.

속편은 정말 아름다운 게임이다. 18년이 지난 지금에 다시 보더라도 여전히 아름답다. EGA를 지원하지 않기로 한 그들의 결정은 옳았다고 생각한다. 고작 16색으로 그 정도의 디테일을 표현할 수는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역주: 이 부분은 좀 강력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원숭이섬의 비밀 SE의 성공으로 속편도 다시 등장할 가능성이 있을 거 같은데, 이미 게임 엔딩을 보셨거나 앞으로도 플레이할 계획이 없으신 분들만 읽어 보시고, 그렇지 않으신 분들은 스킵하시기를 권합니다.)


이 엔딩에 얽힌 비밀은 세 번째 게임에서 풀릴 예정이었다. 론 길버트는 처음부터 원숭이섬 시리즈를 3부작으로 구상하고 있었고, 원숭이섬의 "비밀"은 마지막 작품에서 드러날 계획이었지만, 세 번째 작품이 나오기 전, 그가 루카스아츠를 퇴사하고 만다.

세 번째 게임, 원숭이섬의 저주(Curse of Monkey Island)는 1997년에 발매되었다. 재미 없는 게임은 아니었고, 사실 나름 괜찮은 게임, 아니 상당히 훌륭한 게임에 속하는 작품이었다. 무엇보다도 2D 애니매이션이 무척 아름답고 매력적이었다. 시나리오와 퍼즐 역시 훌륭했고 성우 연기 또한 가이브러쉬의 캐릭터를 확실히 표현해주는 것이었다. 도미닉 알마토(Dominic Armato)의 목소리는 가이브러쉬와 너무도 어울려서, 앞에 나온 두 게임의 대사조차 나중에는 머리 속에서 그의 목소리로 흘러나올 정도였다. 또한 잊지 못할 노래도 있었다.

지금 봐도 멋진 그래픽

그러나 원숭이섬의 비밀 1편과 2편을 좋아했던 대부분의 팬들에게는, 이 게임이 그들이 원한 진정한 세 번째 작품은 아니었다. 프로젝트를 지휘했던 것은 풀 쓰로틀(Full Throttle)의 래리 아한(Larry Ahern)과 조나단 엑클리(Jonathan Ackley)였는데, 그들은 이 작품이 원숭이 섬 시리즈의 분위기를 이어가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그들의 노력은 인정할 만한 성과를 보여주었다. 가장 웃긴 농담 중 하나는 가이브러쉬가 벽에 갈라진 틈에 머리를 넣으니 반대편에는 1편의 그 유명한 나무 밑둥이었더라는 장면이다.

원숭이섬 특유의 유머와 캐릭터를 (비록 일레인은 위기에 처한 여주인공에 머물렀지만) 유지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2편에서의 충격적인 엔딩을 론 길버트의 참여 없이 풀어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개발진이 택한 방식은 기본적으로 엔딩에서 언급된 '주문' 부분을 강조하고 나머지 부분은 조용히 묻어버리는 것이었다. 가이브러쉬가 리척을 자기 형으로 잠시 생각했었다라던가 예전의 다른 섬으로 가는 엘리베이터 같은 것은 원래부터 없었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가장 좋은 방식은 아니었지만, 원숭이섬 시리즈가 더 나쁜 방향으로 갈 수도 있었던 것을 그나마 이정도로 무마했다는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궁극적으로 론 길버트가 생각했던 '비밀'을 푸는 방식은 아니었다. 많은 팬들에게, 이것은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나 신경쓰이는 부분이었다. 3편부터 게임을 시작했던 이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골수 팬들은 언제나 까탈스러운 법이다. 사실 첫 번째 게임이 발매된지 12년이나 지난 지금까지 게임 속 '비밀'이 무엇이었는지에 매달리는 것은 그다지 현명한 행동은 아닌 것 같다.

이발소 4중창단

하지만 한 편으로는 원작자의 의도가 과연 무엇이었는지를 궁금해하는 것은 팬으로서 당연하기도 하다. 영화에서 비슷한 예시를 생각해봤지만 막상 떠오르는 게 없고, 만화에서라면 자주 이런 상황이 발생한다. 가장 비슷하면서도 두드러지는 예는 2000년에 크리스 클레어몬트(Chris Claremont)가 떠난 뒤의 판타스틱 포(Fantastic Four)의 경우이다. 시리즈로 연재하는 작가들은 대부분 중간 중간에 반전을 위한 밑밥을 던져놓곤 하는데, 크리스 클레어몬트의 경우에는 그런 부분에 특히 강한 작가였다. 하지만 그는 판타스틱 포의 볼륨 3 이슈 #32에서 꽤 커다란 반전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엑스맨 시리즈로 다시 돌아가버리고 만다. 본인이 닥터 둠과 수 스톰 사이에 태어난 딸이라고 주장하는 한 신비한 소녀가 이제 막 등장했던 것이다. (이야기가 만화 쪽으로 좀 더 흐르더라도 참아주길 바란다. 내가 주장하고자 하는 요지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니까.)

바톤을 넘겨 받은 작가들은 카를로스 파체코(Carlos Pacheco)과 제프 롭(Jeph Loeb)이었는데, 그들은 그 소녀가 볼륨 1 이슈 #267 정도에 나왔던 수가 유산한 아이라고 설명하면서 차원 이동부터 시작해서 말도 안되는 이런 저런 이유를 갖다 붙여 버린다. 심지어 클레어몬트도 이렇게 전개되는 스토리가 별로 탐탁치 않다는 언급을 하는데, 파체코와 롭의 전개는 그녀가 언급한 기억과 그녀가 아는 사람들, 그리고 그녀가 닥터 둠의 보안 시스템을 통과할 수 있었다는 점 등의 상황을 전혀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클레어몬트가 다시 돌아와 이야기를 원래 의도했던 대로 진행하기를 바란다면 무리한 요구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만화와 캐릭터의 팬으로서 작가의 원래 의도를 알기 원하는 강한 욕구는 정당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마블에서 내놓을 예정인 엑스맨 포에버를 통해 이러한 일이 현실화되려고 하고 있다. 이 작품은 글레어몬트가 떠나기 전 90년대 초기 엑스맨 설정에서부터 시작하여 그가 의도했던 스토리를 이어나가는 이야기인 것이다. 특히나 80년대와 90년대 코믹 스타일에 어울리는 클레어몬트라면 이러한 기획이 더욱 의미가 있다는 점을 더 이야기하고 싶지만 이야기가 계속 곁가지로 세어 버릴 테니 일단 여기서 마무리짓도록 하자.

그런데 사실 이 예시는 적절치 않은 것 같기도 하다. 후속으로 들어온 롭과 파체코가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지 못한 반면에, 원숭이섬의 저주는 상당히 멋진 작품이 되었기 때문이다.

거버의 70년대 오메가 시리즈

보다 적절한 예로 1976년에 짧게 진행되었던 스티브 거버(Steve Gerber)의 오메가 더 언노운(Omega the Unknown)이라는 작품의 운명을 살펴보는 게 나을 듯 싶다. 당시 이 만화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슈퍼히어로가 나오는 만화임에도 한 명의 주인공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씩 얽히고 연결되면서 이야기가 만들어져 나가는 구조였던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거버가 12부작으로 계획했던 스토리가 마무리되기 전인 10부에서 연재가 취소되고 만다. 이 작품에 등장했던 캐릭터들의 이야기는 수 년 후에 디펜더스(Defenders)에서 거의 대부분이 몰살당하는 것으로 정리되어 버린다. 마블의 공식적인 세계에서는 이러한 전개가 고정되었지만, 원작의 팬들은 이 부분을 무시하기로 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거버의 오메가 더 언노운은 아직까지 끝나지 않은 명작으로만 남아있다.

2007년에 조나단 레덤(Jonathan Lethem)이라는 작가가 오메가 더 언노운을 10부작으로 리메이크한다. 이번에는 10부에서 이야기가 완결되는데, 조나단의 스토리는 그 나름대로 멋진 구성을 보여주지만 분명 거버가 의도했던 엔딩은 아니었다. 그래도 팬들에게 있어서는 공식적인 마블 유니버스에서의 참담한 엔딩보다는 좀 더 나은 대안을 주었다는 점에서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오메가 더 언노운의 두 가지 마무리 모두 원작자가 펼쳐 놓은 이야기를 훌륭하게 정리한 예시라고 할 수 있지만 레덤 쪽이 좀 더 뛰어났다. 레덤의 리메이크는 지난 10년 동안 읽은 만화들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만화이며,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은 작품이기도 하다.

원숭이섬의 저주도, 이미 말했듯 훌류한 작품이다. 하지만 론 길버트가 의도했던 작품은 아니다.

안타깝게도 게임 업계에서 엑스맨 포에버 같은 작품이 등장할 여지는 별로 없어 보인다. 만약 원숭이섬의 비밀 포에버 같은 작품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이에 열광할 팬 층이 그리 두텁지 않기 때문이다. 엑스맨 포에버가 어필할 수 있는 팬층은 90년대 초 클레어몬트의 엑스맨을 접한 사람들에 한정되지만, 그 당시 엑스맨의 발행 부수가 수백만에 달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들의 향수만 제대로 자극해도 충분히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가이브러쉬 2009 스타일!

때문에 나는 텔테일 게임즈에서 에피소드형 신작인 원숭이섬 이야기(Tales from Monkey Island)를 내놓는다는 사실에 만족해야 할 것이다. 데이브 그로스만이 참여했고, 론 길버트가 컨설턴트로 개발을 도왔으며 도미닉 알마토가 가이브러쉬의 목소리를 다시 맡았다. 내가 꿈꾸는 원숭이섬의 비밀 포에버가 상상하던 그대로의 모습으로 등장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나 비슷하게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상업적으로도 어느 정도 승산이 있는 형태라는 점을 생각하면, 정말 이렇게라도 나와주는 것이 고마울 뿐이다.

사실 내가 불만을 말할 처지는 아닌 듯 싶다. (그래도 조금 투덜거린다면, 텔테일의 광원 처리는 좀 미숙하다. 모든 게임에서 다 똑같이. 이건 좀 고쳐야 한다.) 데이브 그로스만은 이 게임이 론이 의도했던 '비밀'을 밝히는 게임은 아니라고 인정했다. 18년 동안이나 기다려온 비밀(나의 경우에는 13년이지만)을 이제 좀 알려줄 때도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한 편으로는 이제 그 비밀은 밝혀질 필요조차 없어진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제 그 비밀은 원숭이섬의 비밀 팬들의 머리 속에서 있는 편이 좀 더 멋지고 재미있게 된 것이 아닐까? 어쨌거나 새로운 원숭이섬이, 그것도 예전의 멤버들의 손에서 만들어졌다는 점만으로도 정말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루카스아츠에서 내놓는 원숭이섬의 비밀 스페셜 에디션 또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내 주변의 무수히 많은 이들이 원숭이섬의 비밀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에게도 TV나 PC 앞에 앉아 그 멋진 게임을 처음부터 끝까지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사실 난 아직까지도 원숭이섬의 신작과 리메이크가 등장한다는 사실이 믿겨지지가 않는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4편인 원숭이섬으로부터의 탈출 (Escape from Monkey Island) 이후 원숭이섬 시리즈는 이제 끝장나 버리고 말았다고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쫌... 그러네.

4편에 대해서는 별로 길게 언급하고 싶지 않다. 다만 지금 보면 정말 어설픈 그래픽에 시리즈 특유의 카리스마와 분위기도 거의 사라진 게임으로, 다시 찾아서 플레이할 가치가 없는 작품이라고만 해두자. 텔테일의 신작이 4편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건 아닐 듯 싶다.

지금이 아마도 원숭이섬의 비밀 팬으로서는 최고의 시기가 아닌가 싶다. 나와 비슷하게 원숭이섬을 경험한 이들이라면 모두 동감할 것이다. 왜 이렇게 갑자기 원숭이섬이 부활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부활 자체가 너무나 기쁠 뿐이다. 바라건데 시장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일으켜서 루카스아츠가 왜 진작에 이러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끝... 그러나 이어서 1UP의 데스스팽크 특집 번역이 이어질 예정입니다. 다음 글을 위해  클릭!)

글: alistairw / 번역: 페이비안 / 원문게시일: 2009.6.7 / 출처: Littlemathletics (Retroperspective Series)

* 전문 번역에 대한 원작자의 사전 양해를 얻은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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