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닌텐도라는 게 도대체 어떤 물건이 튀어나올까 궁금했는데, 게임파크의 GP2X WIZ가 그 감투(?)를 뒤집어 쓰고 나올 예정이더군요. 닌텐도라는 회사가 하루아침에 나온 게 아니고, 닌텐도 DS 역시 잠깐 생각해서 만든 기기는 아닌데, 과연 관에서 드라이브를 건다고 이게 뚝딱 나올까 했는데, 어쨌거나 나오기는 나오는군요. 문제는 지금부터겠지만요. 개인적으로 '한국형 닌텐도'라는 물건에 대해서 느끼는 생각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실패에서 배우지 못한 회사는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GP2X WIZ라는 게임기는 사실 대통령의 한 마디에 뚝딱 만들어진 게임기는 아닙니다. 2001년도에 나온 GP32, 그리고 2005년도에 나왔던 GP2X라는 선행 모델들이 개발된 적 있었죠. 그리고 GP2X WIZ의 개발 역시 2008년 8월부터 발표된 얘기입니다. 나름의 역사가 있는 게임기임에는 틀림 없죠. 저도 GP32는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동봉판으로 잠깐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전설, GP32


그런데 GP32하고 GP2X 때를 보면, 사업 전략이 똑같아요. 국산 게임 눈에 띠는 몇 개 정도 가져다 놓고, 나머지는 부가 기능에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죠. 부족한 게임은 홈브류나 애뮬레이터 게임들로 채우는 전략이고요. 그런데 이번에 GP2X WIZ를 어떤 식으로 마케팅하나 했더니만, 아니나 달라, UCC 게임기라네요.


상업용 게임이 아닌, 홈브류나 애뮬레이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나쁘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오히려 괜찮은 전략일 수도 있어요. 실질적으로 일본이나 미국 메이저 제작사들과 손을 잡기가 여러 이유로 어렵다면 이 쪽을 파고드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죠. 그런데, UCC 게임기라고 해놓고, 어떤 UCC를 어떻게 만들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방안이 없는 것 같습니다.

기기 하나 딱 시장에 던져 넣고, 자생적으로 커뮤니티가 생겨나길 바라는 것인지, 아니면 회사 내에서는 구체적인 안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애초에 전략을 이 쪽으로 잡았다면, 애플의 앱 스토어 정도는 밴치마킹해서, 이동통신사들에게 등골 빼먹히고 있는 소규모 게임 개발사들을 확 땡길 수 있는 계획을 발매와 동시에 때려주는 정도의 센스는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에요.

이런 거 기대하는 내가 바보?



대신 게임 파크 홈페이지의 개발자 자료실은 텅텅 비어 있군요. GP32와 GP2X... 관점에 따라서 완전 실패한 게임기는 아닐지 몰라도 별로 성공하지 못했던 건 분명한데, 과거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드웨어 사양만 올리고 애뮬 잘 돌아갑니다~ 정도의 전략을 고수하는 비즈니스 마인드로는 닌텐도 DS와 같은 성공을 거두기는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킬러 타이틀 없는 게임기는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전통의 초고수 게임 회사인 닌텐도와 세가는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죠. 돈키콩과 마리오가 없었다면 닌텐도도 없었을 것이며, 소닉이 없었다면 세가도 영광의 세월을 누리지는 못했을 거에요. 이견의 여지는 있지만, 소니가 게임 업계에 진출하면서 플레이스테이션의 성공을 견인했던 건, 소니가 가진 기술력이라기 보다는 슈퍼 울트라 기대작이었던 '파이날 판타지 VII'의 확보가 매우 컸죠. 마이크로소프트는 달랐을까요? Xbox를 출시하면서 MS가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것은 '킬러 타이틀'의 확보였고, 그 결과가 바로 콘솔 역사 상 가장 칭송받는 FPS 게임인 '헤일로'였습니다. 혹자에 따르면, Xbox 판매의 50% 정도가 헤일로 덕분이었다는 얘기도 있어요. 닌텐도 Wii 같은 경우도 '위 스포츠'가 아니었으면 아무리 대단한 신감각 조작을 내세웠어도 성공하긴 힘들었을 거에요.


휴대용 게임기도 마찬가지죠. 닌텐도의 휴대용 게임기에는 언제나 마리오, 포켓몬, 젤다가 든든히 버티고 있었기에 다른 여러가지 시도를 위한 저변을 확보하는 것이 가능했어요. 세가 게임기어, 네오지오 포켓, 반다이 원더스완이 닌텐도의 게임기들에 비해 성능이 떨어져서 실패한 게 아니죠. 소니 PSP의 경우에는 초기에 게임 라인업이 약하긴 했는데, 그래도 모두의 골프 같이 PS로 히트했던 게임들이 이식되어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밀고 간 경향이 있기는 하죠. (그리고 개인적으로 저를 무너뜨린 건 FF VII 어드밴트 칠드런.. 게임도 아닌 것이. -_-)

자 그럼 GP2X WIZ 발매예정 타이틀을 한 번 볼까요. 상황이 GP32 발매 때랑 크게 다른 게 없네요. 전설적인 1인 개발자 별바람님의 그녀의 기사단, 혈십자 리메이크 정도가 눈에 띠는군요. 이게 GP32 때의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R 정도의 역할로 몇 명 정도는 꼬실 수 있겠네요. 와우, 무료게임이랑 애뮬레이터 게임들이 진짜 많네요? 근데 어쩌나, NDS나 PSP도 조금만 손보면 애뮬레이터는 잘 되거든요? 제가 왜 꼭꼭꼭 GP2X WIZ를 사야하나요?



킬러 타이틀, 이거 단순히 하나의 게임에 불과한 게 아닙니다. 단순히 포장이 아니라 정말 닌텐도 정도의 성공을 꿈꾼다면, 킬러 타이틀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확보해야 합니다. 본체 발매와 동시에 내놓을 수 없다면, 개발 발표라도 해야죠. 별바람님 작품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있는 개발 업체가 뒤를 받치고 있다는 인상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소비자가 외면하는 상품은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한국판 닌텐도라는 이름표, 정책에 의해 급조된 기기라는 인식. 과연 얼리 어답터들이 관심을 가질 제품일까요? 얼리 어답터들이 선호한다고 해서 바로 히트상품이 되는 건 아니지만, 이 쪽에서조차 관심을 못받으면 앞날이 그다지 밝은 건 아니지요. 첨단 IT제품은 기대심리로 반 먹고 들어가는 거 아닌가요? 스티브 잡스가 괜히 프리젠테이션 신경써서 하는 게 아닐 텐데요.


아이팟, 킨들, 닌텐도 DS 등등의 잘 나가는 IT제품들을 보고 있으면, 사람 뿐만 아니라 제품에 대해서도 첫인상을 강렬하게 주기 위해 각각의 업체들이 엄청 노력하는 걸 볼 수 있죠. 요새 차 광고에서도 그러는데, 몇 초면 충분하다는 거죠. 보고 그냥 사랑에 빠져버리는 거에요. 그런데 이 제품의 마케팅 프레이즈인 'UCC 게임기'는 '한국판 닌텐도'라는 이름표를 떨쳐 버리고 사람들을 확 끌어당길 수 있는 매력은 찾을 수 없는, 너무 심심한 문구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은 한국판 닌텐도라 불리우는 GP2X WIZ가 성공했으면 합니다.

불법복제 때문에 게임 개발하면 깡통차기 십상이었던 GP32 시절에 비해, 지금은 대한민국에도 대형 게임 업체들도 존재하고, PC 게임이나 핸드폰 게임 쪽에서 소프트웨어 개발 노하우도 어느 정도 쌓였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에서 히트치던 게임 문화가 일본으로 건너갈 즈음, 그래서 드래곤 퀘스트니 뭐니 하던 것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던 시기와 비교하면 그렇게 우리 사정이 나쁘진 않은 거 아닌가요?

닌텐도 DS가 이미 점령해 버리고 나머지는 소니 PSP가 먹고 있는 한국의 휴대용 게임기 시장에서 살아 남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저처럼 20~30대 '올드' 쪽에 속하는 게이머들은 솔직히 닌텐도 DS는 너무 애들 게임만 많고, 소니 PSP는 게임 몇 개 빼고는 별 신통치 않은데 그저 동영상 보려고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아요. 그래서 아이팟 터치 게임들도 기웃거리고, 핸드폰 게임들도 기웃거리고 있는데, GP2X WIZ가 한국 사람 입맛에 딱 맞는 게임들 몇 개만 제대로 터뜨려 준다면, 그 어려운 커펌이고 뭐고 짜증나는 PSP 정도는 제낄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제가 너무 긍정적일까요.

fingers crossed.. 욕 아닙니다.



이렇든 저렇든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게임 파크의 GP2X WIZ, 반드시 실패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께요. 잘 좀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