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구치의 마지막 작품

파이날 판타지 VII을 통해 사카구치 히로노부는 영화적인 스토리텔링이 갖는 힘에 대해 실감하게 되었다. 40분에 달하는 CGI 이벤트신을 제작하면서 그는 영화를 감독하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에 대해 알게 되었고, 이에 큰 매력을 느끼게 된 것이다. 스퀘어에서 하와이에 애니매이션 스투디오를 설립하면서, 사카구치는 헐리두드 진출을 꿈꾸게 된다. 파이날 판타지 VIII의 개발 중에도 그는 프로듀서 역할을 맡으면서 동시에 파이날 판타지를 소재로 한 영화의 각본과 감독을 맡아 비디오게임 외의 영역을 아우르는 아티스트로의 자리매김을 준비하고 있었다.

사실 '파이날 판타지'라는 이름은 그야말로 브랜드에 불과했다. 공상과학에 가까운 그의 각본은 시리즈의 그 어떤 게임과도 연관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카구치의 영화는 컴퓨터 애니매이션과 포토리얼리즘에 대한 실험이었으며 이를 통해 스퀘어가 컴퓨터 애니매이션 업계에서 드림웍스나 픽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자 하는 시도였다. 약 3년 간의 제작기간 동안 사카구치의 애정과 열정이 온전히 담긴 이 작품은 대작들과 경쟁을 피할 수 없는 7월에 개봉하게 되었다.


'파이날 판타지: 더 스피릿츠 위드인 (Final Fantasy: The Spirits Within)'은 개봉 당시 비디오게임을 소재로 한 영화 중 가장 훌륭한 영화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저명한 영화평론가인 로저 에버트(Roger Ebert)는 애니매이션 영화에 있어서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고 극찬했다. 그러나 이러한 호평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게임 팬들을 끌어들이기에는 시리즈와 너무 동떨어져 있었으며, 일반인들에게 어필하는 액션 영화가 되기에는 너무나 철학적이고 독특했다. 몇몇 팬들은 번역의 문제로 대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나, 일반적인 평가는 원래 대사 자체가 별로 와닿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쨌거나, 영화는 참패를 기록했다.

이는 단순히 흥행이 그다지 잘 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다. 영화 파이날 판타지는 영화 업계 사상 최악의 적자를 기록한 작품 중 하나가 되어버린 것이다. 제작에 깊이 관여하여 많은 돈을 투입했던 소니에게도 큰 타격이었다. 사카구치는 그의 커리어에서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오점을 남겼으며, 스퀘어에서 그가 나오게 된 계기도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다행히 사카구치가 명예를 다소 회복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영화 파이날 판타지의 처참한 개봉 첫 주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파이날 판타지 X가 일본에서 발매되었으며, 새로운 세대의 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 2로 파이날 판타지 시리즈가 성공적으로 안착했다는 사실을 통해 소니의 화도 조금은 누그러지게 된 것이다. 사카구치는 영화 파이날 판타지에 깊이 관여하느라 프로듀서의 역할은 키타세에게 넘기고 총괄 프로듀서로만 참여했지만, FFX의 기획 단계에 있어서 그의 역할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FF VIII의 개발이 마무리되던 시점에서부터 시작된 FFX의 개발에는 2년이라는 시간이 투입되었으며 FF VIII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영역과 관점을 개척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은 게임이었다. 사카구치와 그의 팀원들은 '전통의 고수'라는 역할은 드래곤 퀘스트의 개발자들에게 넘기고, 완전히 새로운 게임을 만드는 데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번에는 배경 전체를 리얼 타임 폴리곤으로 구성해야 한다는 것에 이견의 여지는 없었지만, 사카구치는 이러한 전환이 CGI 배경의 풍부한 디테일에 익숙해진 팬들의 눈높이를 맞출 수 있을 것인지의 여부를 걱정할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이러한 그의 생각은 PS2의 뛰어난 성능으로 인해 기우에 그쳤을 뿐이었다.


게임플레이 역시 새롭게 구성되었다. 맵 디렉터였던 나카자토 타카요시는 게임에 현실성을 보다 높이기 위해서는 세계를 축약해서 보여주는 '월드 맵'에 의존하기보다, 배경의 모든 것이 같은 레벨로 묘사되고 서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또한 전투 스크린으로 따로 넘어갈 필요 없이, 필드 내에서 자연스럽게 전투가 진행되기를 원했다. 판타지 스타 온라인이 발매됨에 따라, 파이날 판타지의 개발진들 역시 네트워크 상에서 친구들과 함께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방법도 모색했지만 당시 PS2에는 온라인 기능이 제공되지 않고 있었다. 온라인 플레이와 필드 내 전투는 프로젝트 내에서 다룰 수 있는 목표가 아니라는 판단에 의해 FFX에서는 빠지게 되었지만, 이러한 아이디어들은 결국 파이날 판타지 XI와 XII의 씨앗이 되었다.

FF VIII과 IX의 발매 이후, 시리즈의 팬들은 보다 현대적이고 공상과학적 모티브를 선호하는 쪽과 전통적인 중세 판타지 모티브를 지지하는 쪽으로 나뉘게 되었다. 키타세는 이 둘 사이에서 어느 쪽에 타협하는 대신, 완전히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했다. FFX의 세계는 과학기술적 요소들이 빠진 판타지 세팅에 가깝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전 시리즈에서 볼 수 있었던 그런 판타지 세계를 답습한 것은 아니었다. 기타세는 디자이너 팀에게 동양적인 요소들과 오리지널 디자인을 통해 FFX의 세계에 좀 더 '고대'의 느낌이 나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기를 주문한다.

시리즈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였던 액티브 타임 배틀 시스템은 컨디셔널 턴-베이스드 배틀 (Conditional Turn-Based Battle: CTB)라는 이름의 새로운 시스템으로 교체되었는데, 캐릭터의 턴이 돌아오면 시간이 멈추고 다음 턴을 보여줌으로서 좀 더 전략적인 접근이 가능해졌다. 또한 전투 중에 캐릭터 교체가 가능해졌으며 레벨 업 방식도 서양식 RPG의 컨셉을 도입하여 독특한 어빌리티 트리 구조를 형성하는 스피어 그리드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지난 몇 년 동안 파이날 판타지 시리즈의 판매량은 조금씩 감소되는 추세였지만 파이날 판타지 X로 시리즈는 다시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다. 800만 카피에 약간 못미치는 판매량은 거의 FF8 수준에 육박하는 성공이었으며 FF9의 판매량을 훨씬 뛰어넘는 성과였다. 스퀘어 역시 FFX에 큰 만족을 느꼈으며, 이번에는 시리즈의 전례와 달리 같은 세계를 한 번 더 방문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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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러스 멕러린(Rus McLaughlin) / 번역: 페이비안 / 원문 게시일: 2009.6.26 / 출처: IGN Retro

* IGN.com으로부터 출처 표기를 조건으로 전문 번역 허가를 받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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