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GN에서 (아마도) 슈퍼마리오 갤럭시 발매를 기념하여 슈퍼마리오 브라더스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특집기사를 냈군요. 90년대부터 게임을 즐겼던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한두번 들어본 이야기이겠지만, 읽다보니 꽤 재미있게 작성되었네요.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번역을 올려볼까 합니다. (꽤 길어요.) 해당 글의 저작권은 IGN과 저자인 Rus McLaughlin에게 있습니다. 퍼가실 때는 원문 출처와 번역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IGN 특집기사: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의 역사
글 / 러스 맥러힌 (Rus McLaughlin)
2007년 11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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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의 야심찬 미국 진출은 3년만에 완벽한 실패로 판명되었다. 엄청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킬 것이라 여겨졌던 레이더 스코프는 출고된 3000천대 중 고작 1000대만 팔렸을 뿐이었고, 나머지는 창고에서 먼지만 쌓여가는 신세가 되었다.

미국 진출을 진두지휘했던 아라카와 미노루는 장인인 닌텐도 사장 야마구치 히로시에게 곤경에 처한 닌텐도 오브 아메리카를 살리기 위해 레이더 스코프 기기를 활용, 재프로그램하여 새로운 히트 게임을 만들자고 간청했다. 야마구치는 이에 동의하여 새로운 게임을 만드는 작업을 '게임&워치' 시리즈로 성공을 거둔 요코이 군페이와 그의 휘하에 있던, 게임을 한번도 디자인해본 경험이 없던 젊은 그래픽 아티스트에게 맡겼다. 그 젊은이의 이름이 바로 미야모토 시게루.

당시로서는 획기적으로, 스토리가 먼저 만들어지고 거기에 맞추어 게임플레이가 디자인되었다. 미야모토는 당시 닌텐도가 라이센스를 얻으려 시도하다 실패한 뽀빠이의 삼각관계를 바탕으로 플롯을 구성하였다. 먼저 부르토를 대신하여 거대한 고릴라를 등장시켰고 뽀빠이 역을 대신하여 통나무를 뛰어 넘어 "레이디"를 구하러 위로 위로 전진하는 "점프맨"이 탄생되었다. 미야모토는 서로 다른 스테이지가 차례로 연결되는 전개를 원했고, 그의 밑에서 일하던 네 명의 프로그래밍 팀원들은 똑같은 게임에 대해 개개인이 4번의 중복작업을 하는 것은 피하고 싶었다. 그들이 보기에는 체스를 두면서 다섯 수마다 체스판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것처럼 바보같이 느꼈던 것이다.

결국 프로그래머들은 20k에 달하는 코드를 완성했고 그 사이에 미야모토는 배경음악을 만들고 중간 중간 스토리의 진행을 알려주는 "인터미션"을 만들었다. 모든 것은 레이더 스코프의 하드웨어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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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담은 칩과 컨버전 키트가 1981년에 미국으로 발송되었다. 아라카와와 그의 아내를 포함한 몇 명의 닌텐도 오브 아메리카 직원들이 2000대의 레이더 스코프를 돈키콩으로 변환하는 작업에 매달렸다. 아라카와는 "점프맨"은 미국인들에게 와닿는 이름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캐릭터에 붙일만한 '진짜' 이름을 필요했다. 마침 그 때 오랫동안 밀린 사무실 임대료를 받기 위해 건물주가 회사 임원회의 시간에 들이닥치는 일이 일어났다.

그  인물의 이름은 시갈리... 풀 네임은 마리오 시갈리였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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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IG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