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이름들

바이오웨어는 예전부터 (의도적으로) 비밀을 잘 지키지 못하는 회사였다. 따라서 제이드 엠파이어가 발매되기도 전부터 다음 작품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는 소식에 놀라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예전에는 직접 엔진을 만들어 다른 회사에 라이센스를 주었던 바이오웨어가 당시 아직 정식으로 릴리즈되지 않았던 에픽의 언리얼 엔진 3 라이센스를 얻기로 하였다는 것도 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초기에는 바이오웨어가 FPS와 RPG가 혼합된 게임을 만들고 있다는 루머가 돌기 시작했는데, 이는 사실과도 크게 다르지 않은 소문이었다. 비록 3인칭 시점을 갖긴 했지만, 매스 이펙트는 바이오웨어의 RPG 게임들 중 가장 액션 게임의 영역에 가깝게 다가간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전투 스타일에 있어서는 가히 혁신적인 변화가 있었지만 매스 이펙트의 타겟은 구공화국의 기사단의 팬층이었다. 다만 이번에는 바이오웨어 스스로의 브랜드가 스타 워즈 라이센스를 대체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베데스다의 오블리비언이나 폴아웃 3와 더불어, 매스 이펙트는 그간의 서양 액션 게임들과 FPS 덕분에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새로운 세대의 비디오게이머들로 하여금 RPG라는 장르의 매력에 눈을 뜨게 만드는 게임이었다. 예전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던 두 장르가 이제는 서로의 장점을 희생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융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공격의 효율성은 여전히 캐릭터의 스텟과 장비, 그리고 자원의 영향을 받지만 공격하는 그 행위 자체에는 액션의 감각이 필요했다.

매스 이펙트는 또한 RPG에 있어서 그래픽 수준을 한 레벨 끌어올렸다. 그간의 바이오웨어 작품들과 비교해서도 매스 이펙트의 세계는 놀라울 정도의 디테일과 현실감이 살아 있었다. 그로 인해 게임 자체는 좀 더 작고 짧고 제한적이 되었으며, 이는 바이오웨어의 기존 콘솔 게임이 추구하는 방향과도 부합했다. 이러한 "양보다는 질"에 대한 강조는 방대하고도 디테일한 배경 스토리 및 대사와 절묘한 균형을 이루어 매스 이펙트의 세계를 좀 더 현실적이고 풍성하게 만들었다. 비록 배경으로 존재하는 많은 것들이 실제로는 게임 속에서 닿을 수 없는 부분이긴 했지만 말이다. 이러한 접근법은 또한 매스 이펙트를 삼부작으로 만들고자 하는 기획 의도와도 일치했다.


매스 이펙트는 다양한 게이머들을 끌어들이는 작품이었다. 홀리데이 시즌 발매 후 3주 간 백만 장 이상의 판매량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다음 여름에 이르기까지 판매 상위 차트에 꾸준히 랭크되었다. 덜 다듬어진 부분들과 버그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스토리와 캐릭터, 그리고 그들의 매력 넘치는 대사로 인해 매스 이펙트는 거의 모든 매체들로부터 찬사를 받게 된다.

콘솔에서도 성공적인 성과를 보인 바이오웨어는 이제 휴대용 게임기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개발팀은 닌텐도 DS용 게임에 적합한 라이센스를 살펴보고 있었는데, 소닉 더 헤지혹을 기반으로 한 RPG 게임을 개발하기로 한 그들의 최종 결정은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다. 물론 닌텐도 플랫폼에서 소닉의 인지도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만, 소닉의 세계관이 바이오웨어가 추구하는 심오한 깊이를 표현할 재료로 적합할지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의구심을 품었던 것이다.


소닉 RPG에 대한 바이오웨어의 접근은 자사의 기존 게임들과는 무척 달랐다. 바이오웨어 특유의 대화 트리나 자사의 예전 작품들을 연상케 하는 대각선 방향 시점을 제외하고는 일본식 게임 디자인의 전형을 상당히 차용했던 것이다. 바이오웨어의 게임 사상 처음으로 전투가 필드에서 직접 이루어지지 않게 되었고, 엘리트 비트 에이전트 스타일의 터치스크린 조작은 전략성을 완전히 배제한, 반응 속도에 의존하는 액션 게임에 가까웠다.

바이오웨어의 이름 만으로도 게임의 퀄리티에 대한 기대감은 있었으나 이렇게 어울리지 않는 조합에 대한 의구심은 게임 발매 후에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소닉 시리즈 자체가 지난 수 년 간 불필요하게 캐릭터와 스토리를 늘려 왔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점을 전면에 부각시킨 게임을 개발한다는 아이디어 자체가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소닉 RPG가 받은 뜨뜻미지근한 리뷰는 바이오웨어의 작품들 중에서는 최악이었다.

이러한 해프닝 속에서도 바이오웨어는 자사의 초기 RPG 게임들의 흐름을 이어가는 진정한 후속작을 계획하고 있었다. 드래곤 에이지는 2004년 E3에서 처음 공식 발표되었으며 네버윈터 나이츠와 발더스 게이트의 명맥을 잇는 게임으로 포지셔닝되었다. (물론 당시에는 이미 골치아픈 문제가 된 D&D 라이센스를 제외하고 말이다.) 게임의 개발은 5년이 넘게 지속되었는데, 그 와중에 게임 자체도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2007년 10월, EA는 바이오웨어와 판데믹 스투디오즈의 인수를 발표하면서 많은 게이머들을 놀라게 한다. 이로 인해 바이오웨어는 앞으로 멀티-플랫폼 개발사로서의 역할을 기대받게 되었고, 그들의 신작 RPG 역시 멀티플랫폼 발매를 위한 상당한 수정이 이루어진다. 그 결과로 등장한 것이 바로 드래곤 에이지: 오리진스이다.


PC 버전은 카메라 시점이나 인터페이스에 있어서 바이오웨어가 초기에 생각했던 비전과 가장 유사한 형태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멀티플레이어 요소는 모든 버전에서 삭제되어 버린다. 콘솔 버전에서는 전투도 좀 더 액션 지행적인 느낌을 위해 단순화되었다. 길어진 개발 일정은 이러한 수정 사항을 반영하기 위해 사용되었으나, 그로 인해 게임의 디테일과 사이즈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발더스 게이트의 팬들은 드래곤 에이지: 오리진스로 바이오웨어가 고전적인 RPG로 귀환하였음을 무척 반겼으며 특히 PC 버전의 경우 매스 이펙트 때와 마찬가지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반면 판매량에 있어서는 매스 이펙트보다 속도가 더뎠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매 첫 달 북미에서만 50만 카피 이상의 성적을 거두었다. 이름 뒤에 붙은 "오리진스"는 바이오웨어가 지난 5년 간의 작업을 하나의 타이틀로 끝내지 않을 것임을 알려주고 있다.


앞에 놓인 길

앞으로도 바이오웨어는 거칠 것이 없는 행보를 펼치리라 예상된다. 매스 이펙트 2가 발매되기 전부터 그 후속작의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고, 구공화국의 기사단에 이어 MMORPG인 스타 워즈: 구공화국이 블리자드가 장악하고 있는 온라인 게임 시장에서 진정한 도전자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드래곤 에이지 시리즈 역시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다.


바이오웨어가 거둔 성공의 뒤에는 창업자들의 항상 다음 행보를 계획하는 정신이 있었다. 낮에는 의사로서 일하면서 창고에서 과연 완성이 될지 모를 첫 번째 게임을 만들면서도 그들은 항상 다음을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은 두 개의 나라에 걸쳐 세 개의 스투디오를 갖춘 직원 수만 500명이 넘는 대형 개발사가 된 바이오웨어는 그들이 원하는 높은 이상을 추구하기 위한 풍부한 자원까지 갖추고 있다. 그 간의 성과를 바탕으로 하여 자사의 작품들을 계속 가다듬어 나가는 것만으로도 이들이 당분간 실패를 맛볼 가능성은 무척 희박해 보인다.

글: 트레비스 파스(Travis Fahs) / 번역: 페이비안 / 원문게시일: 2010년 1월 21일 / 출처: IGN Ret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