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플레이의 마지막 나날들

당시 변변한 히트작이 없었던 인터플레이에게 있어 발더스 게이트의 성공은 가뭄의 단비와 같았고, 그로 인해 바이오웨어와 인터플레이의 관계는 매우 돈독해졌다. 바이오웨어에서 다시금 액션 장르에 도전하고자 하는 의지를 표명했을 때 인터플레이에서는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바이오웨어는 처음에 자신들이 만들었던 셰터드 스틸의 후속작을 개발하고자 했으나, 샤이니에서 1997년에 내놓았던 컬트 클래식 MDK의 속편을 만들어 보라는 제의는 거부하기엔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게다가 속편의 플랫폼이 드림캐스트였기 때문에, 바이오웨어로서는 새로운 세대의 하드웨어를 기반으로 하는 콘솔쪽 게임 개발의 경험도 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이러한 행보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은 회의적이었다. 바이오웨어라는 이름은 이미 RPG라는 장르와 불가분의 관계라고 여겨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MDK는 어느 요소로 보나 발더스 게이트와는 너무도 다른 게임이었다. 하지만 만약 이 시도가 성공적인 결과를 낳기만 한다면, 바이오웨어의 명성은 더욱 공고해질 터였다.

개발팀은 먼저 MDK가 가진 독특한 유머 감각을 자연스럽게 흡수했고, 기본적인 게임플레이에 신선함과 적절함을 부여하는 확장을 꾀했다. 결국 바이오웨어의 노력은 성공을 거두어, MDK2는 원작이 3년 전에 얻었던 수준 이상의 좋은 평가를 받게 된다. PC와 PS2 이식이 이어졌고, 판매량 면에서도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바이오웨어가 RPG 장르를 벗어나는 마지막 외도가 되었다. 발더스 게이트로 게이머들에게 각인된 RPG 명가라는 타이틀은 그대로 외면하기에는 너무도 거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발더스 게이트가 발매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후속작과 확장팩의 개발이 이어졌다. 이미 검증된 게임 엔진과 게임플레이 공식이 자리매김한 상황에서 발더스 게이트의 속편 개발은 상당히 빠르게 진행되었고, 전작이 등장한지 채 2년이 지나지 않아 속편의 출시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간의 경험과 축적된 인프라로 인해 바이오웨어는 좀 더 크고 야심찬 비전을 실현시키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이미 플레인스케이프:토멘트나 아이스윈드 데일, 그리고 발더스 게이트 1편의 확장팩들이 인피티니 엔진이 가진 잠재력을 한계까지 뽑아 썼다고 평가받았던 와중에도, 발더스 게이트 II는 여전히 인상적인 게임이었다. 발더스 게이트 II는 전작 이상의 높은 리뷰 점수를 받아 PC 게임 사상 가장 높은 점수를 기록한 게임 중 하나가 되었다. 발더스 게이트 II는 전작의 성공에 육박하는 200만 카피의 판매량을 기록하고, 바이오웨어는 RPG 명가로서의 입지를 더욱 단단히 하게 된다.

안타깝게도, 발더스 게이트 II와 MDK2의 성공만으로는 침몰하는 인터플레이를 결국 구할 수 없었다. 훌륭한 제작 능력에도 불구하고, 당시 많은 작품들이 실패와 실망만을 안겨주면서 결국 인터플레이는 파산에 이르게 된다. 바이오웨어로서는 자신들이 개발한 간판 타이틀을 버리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해야만 했다.

모든 이들을 위한 RPG

설립 당시부터 바이오웨어는 앞을 멀리 내다볼 줄 아는 회사였다.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에 개발하면서 어떻게 하면 자신들이 이루어낸 성공을 뛰어넘을 것인지를 항상 생각하곤 했다. 발더스 게이트가 한창 인기몰이를 하고 있을 때에도 그들은 자사의 시리즈를 뛰어넘는 진정한 차세대 RPG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발더스 게이트 시리즈는 당시까지 가장 성공적인 컴퓨터 버전 D&D 였으나 여전히 펜과 종이를 이용한 RPG 게임을 즐기는 순수파 게이머들이나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온라인 RPG 장르의 팬들을 모두 끌어안지는 못했다. 바이오웨어의 개발팀은 그들의 다음 게임이야말로 모든 이들을 위한 RPG가 되기를 바랬다. 발더스 게이트의 진정한 후속작이면서 소셜 온라인 경험도 제공하고, 또한 던전 마스터들이 스스로의 게임을 창조하는 그런 게임을 꿈꾸었던 것이다.


멀티플레이어 요소는 발더스 게이트 시리즈에서도 가장 큰 세일즈 포인트이기도 했으나 네버윈터 나이츠는 훨씬 더 야심찬 기획이었다. 1991년에 MMORPG라는 장르를 개척한 동명의 게임을 연상케 하는 네버윈터 나이츠는 실제로 진정한 MMO는 아니었지만, 서버를 통해 75명의 유저들이 온라인으로 동시에 접속할 수 있는 연속적인 세계를 창조할 수 있었으며 여러 대의 서버를 연결하여 보다 더 거대한 세계를 만들어 낼 수도 있었다.

진정한 RPG 게임의 창의성을 옮겨내기 위해, 바이오웨어에서는 플레이어로 하여금 자신들의 컨텐츠, 즉 자신들의 세계와 자신들의 이야기, 그리고 자신들의 퀘스트를 창조할 수 있도록 다양한 툴셋을 제공하였다. 이 기능 하나 만으로도 무한히 창조되는 컨텐츠와 활발한 MOD 활동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같은 목적으로 바이오웨어에서는 DM 모드를 지원하여, 플레이어가 던전 마스터의 역할을 맡아 마치 종이와 연필로 즐기는 RPG에서 DM이 그러하듯 다른 플레이어의 게임에 대한 거의 모든 요소들을 실시간으로 조정할 수 있게 하였다.

기획 단계까지 포함하여 네버윈터 나이츠의 개발에는 거의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려 2002년 6월에 아타리의 레이블을 달고 발매가 되었다. 이미 바이오웨어라는 이름 만으로도 게임의 지명도는 확실했지만, 평단의 긍정적인 평가 역시 게이머들의 기대를 높이는데 일조하였다. 네버윈터 나이츠는 수 년간 강력한 커뮤니티를 유지할 수 있었고 속편의 발매 역시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바이오웨어는 이 작업을 이전 블랙 아일 스투디오즈 인원들이 설립한 옵시디안 엔터테인먼트에게 넘기고 또 다시 새로운 기회를 모색한다.

글: 트레비스 파스(Travis Fahs) / 번역: 페이비안 / 원문게시일: 2010년 1월 21일 / 출처: IGN Ret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