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몬튼에서 사랑을 담아

비디오게임 개발은 가장 진입하기 어려운 분야 중 하나에 속하지만, 뛰어들고자 한다면 여러 가지 방법들을 찾을 수 있기도 하다. 바이오웨어의 창업자들은 알버타 대학에서 처음 만났는데, 당시 그들은 의학을 전공하고 있었다. 레이 뮤지카(Ray Muzyka)와 그렉 제스척(Greg Zeschuck)은 의학부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용 소프트웨어를 프로그래밍하면서 처음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곧 또 다른 동료인 어거스틴 입(Augustine Yip)과 만나 의학 시뮬레이션 프로그래밍을 함께 진행한다. 그들의 결과물은 건강과 관련된 목적을 달성하는데 성공하지만, 그들은 뭔가 더욱 창의적인 작업을 갈망하고 있었다.

뮤지카, 제스척 그리고 입은 휴식 시간에 컴퓨터 게임을 즐기곤 했는데, 그렇게 몇 년을 보내면서 그들은 이 분야에 스스로 상당한 열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의학 분야도 나름 만족스러웠으며 돈도 꽤 벌 수 있었지만, 그들이 안주할 곳은 아니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의학 쪽에서 그 동안 거둔 성공 덕분에 비디오게임 산업에 진출할 새로운 벤처 회사를 설립할 자금도 준비된 터였다. 세 명은 10만 달러를 모아 자신들의 첫 번째 비디오게임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나중에 셰터드 스틸(Shattered Steel)이라는 게임으로 발전하게 될 컨셉 데모를 만들었는데, 이 데모는 메크워리어의 전통에 기반한 매우 인상적인 고해상도 3D 엔진을 갖춘 작품이었다. 세 명은 이 데모를 10개의 제작사에 보냈는데, 놀랍게도 그 중 일곱 업체에서 계약 의사를 타진해 오게 된다.


그들은 결국 인터플레이와 계약하게 되었는데, 이 결정은 조만간 훌륭한 선택이었음이 드러나게 된다. 이 계약 덕분에 세 명은 처음 투자한 금액에 수익까지 챙길 수 있었음은 물론, 인터플레이가 소유한 엄청난 개발 관련 자원들도 활용할 수 있었다. 캘거리에 위치한 파이로텍 게임 스투디오즈가 바이오웨어의 첫번째 작품 마무리 작업 지원을 위해 고용되었고, 바이오웨어는 이들과의 공동 작업에 큰 만족을 느껴 결국 작업이 끝난 이후에 파이로텍의 베테랑 개발자들을 자신들의 팀에 합류시키게 된다.

셰터드 스틸은 긍정적인 리뷰들과 나름의 판매량을 보이며 작은 성공을 거둔다. 특히 포격으로 언덕이 푹 파이는 등 변형 가능한 지형과 부위별 데미지를 통해 정확한 사격으로 적의 무기를 떨굴 수 있는 점 등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인터플레이 역시 바이오웨어의 첫번째 작품을 맘에 들어 했으며 속편을 1998년에 내놓기로 계획한다. 하지만 속편은 결국 등장하지 못했는데, 바이오웨어의 두 번째 게임은 셰터드 스틸이 이룩한 그 모든 것을 뛰어넘어 이후 회사의 방향성을 결정하게 되는 엄청난 작품이었기 때문이었다.

인피니티, 그 너머

바이오웨어의 창립자들은 사실 회사를 설립하면서 그렇게 큰 야망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주어진 현실에만 머무르진 않았다. 첫 번째 게임의 개발이 이제 막 절반 정도 진행된 시점에 이미 그들은 개발 중인 작품과는 매우 다른 종류의 프로젝트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바이오웨어의 창립자들과 그 휘하의 직원들은 대부분 롤 플레잉 게임에 대한 열광적인 팬이었는데, 컴퓨터 게임은 물론 종이와 연필로 하는 고전적인 게임에도 빠져 있었다. 자신들의 생각이 담긴, 거대한 스케일의 RPG를 만들고자 하는 꿈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인터플레이에서 예비 단계의 개발을 위한 자금을 지원했고, 바이오웨어는 배틀그라운드: 인피니티(Battelground: Infinity)라는 이름의 데모를 내놓았다. 두 회사의 협력 관계는 참으로 행운이라고 할 수 있었다. 데모를 보고 난 후 인피니티는 이 작품이 마침 그들이 SSI로부터 인수한 던전스 & 드래곤즈 라이센스에 무척 적합한 게임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피니티는 D&D의 세계인 포가튼 렐름 속에서 재구성되게 된다.

어드밴스드 던전스 & 드래곤스 라이센스는 단순히 브랜드 파워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바이오웨어에게 있어 이는 단순히 배경 신화나 박스에 붙는 로고가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너무나 사랑하는 게임이었으며 그렇기에 AD&D의 룰북은 마음대로 변경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거의 모든 롤플레잉 게임은 D&D로부터 영향을 받았지만, 바이오웨어의 발더스 게이트는 어떤 면에서 RPG 장르 자체의 원형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단, 보다 더 세련된 모습으로 말이다.  


AD&D의 룰에 기반한 실시간 멀티 플레이어 게임을 만들겠다는 결정은 당시로서는 논란의 대상이 되었으며, 하드코어 RPG 팬들에게 회의적인 시선은 물론 심지어 우스개소리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D&D는 특히 SSI의 '골드 박스' 시리즈를 통해 컴퓨터 게임쪽에서도 상당한 전통을 가지고 있었는데, 때문에 팬들은 D&D의 규칙들이 디지털로 넘어오면서 어떻게 해석되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고정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바이오웨어의 현대적인 접근은 그러나 보다 더 대중적인, 특히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디아블로가 끌어들인 새로운 타입의 RPG 팬들의 취향에 맞추어져 있었다.

발더스 게이트는 결코 디아블로와 유사한 게임은 아니었다. 블리자드의 게임은 로그(Rogue)의 현대적인 재해석에 가까운 반면, 바이오웨어의 작품은 보다 고전적인 의미의 롤플레잉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게임 속 모든 요소들은 플레이어가 스스로의 의지와 스스로의 캐릭터로 심도 있는 스토리를 열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데 중점을 두고 디자인되어 있었으며, 게이머 하나하나가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여지를 충분히 남겨 두었다. 이러한 신선한 시도가 가능했던 것은, 셰터드 스틸을 만들었던 바이오웨어의 창립자들을 제외하고 모든 발더스 게이트 팀원들이 풀 타임으로 게임 개발을 진행했던 경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발더스 게이트의 개발은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이어졌다. 그 사이에 디아블로와 폴아웃은 서양 RPG 시장의 전성기를 열었고, 파이날 판타지 VII은 보다 많은 이들에게 롤 플레잉 게임이 가진 매력을 선보였다. 또한 이 시점에서 바이오웨어의 창립자들은 커리어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발더스 게이트의 개발이 진행되던 시점까지도, 이 세 명의 의학 박사들은 여전히 낮에는 의사로서 업무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프로젝트 마지막 해에 이르자, 게임 개발은 단순히 파트 타임으로 진행할 수 없는 부담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무지카와 제스척은 의학계를 떠나 바이오웨어에 전념하기로 결정하고 지금도 그 자리에 남아 있다. 반면 입은 의학에 전념하기 위해 회사를 떠난다.

발더스 게이트는 이후 바이오웨어가 나아갈 방향성을 정립하는 작품이 된다. 요소 요소만 놓고 보면 혁신적이라고 하긴 힘들지 모르지만, 게임의 깊이와 접근성이 매우 독특한 조화를 이루어 낸 이 게임은 거의 디아블로에 맞먹는 200만 카피라는 판매량으로 당시까지 D&D 관련 게임 중 가장 성공적인 작품이 되었다. 다른 개발사들도 곧 바이오웨어가 개척한 길을 따르기 시작하는데, 그들이 개발한 인피니티 엔진으로 플레인스케이프: 토멘트(Planescape: Torment)와 아이스윈드 데일(Icewind Dale) 시리즈가 등장하면서 바이오웨어는 컴퓨터 RPG 장르의 선구자로 떠오르게 된다.

(2편에서 계속)

글: 트레비스 파스(Travis Fahs) / 번역: 페이비안 / 원문게시일: 2010년 1월 21일 / 출처: IGN Ret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