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정말 감탄하면서 즐겼던 루카스아츠의 명작 어드벤처 게임, 원숭이섬의 비밀을 개발했던 론 길버트가 최근에 개발하고 있는 데쓰스팽크는 그의 홈페이지에서 짧게 연재되던 코믹에 나오는 캐릭터를 바탕으로 하는 게임입니다. 그가 연재하던 코믹의 주제가 바로 최근의 게임계에 대한 풍자였다는 점에서 (캐릭터 자체도 그러한 관점에서 만들어지기도 했고) 어떤 게임이 나올지 무척 기대를 하던 차에, Rpgcodex.net에 론 길버트와의 따끈따끈한 인터뷰가 올라왔네요. 인터뷰를 진행한 Baby Arm의 사전양해 하에 인터뷰 전문 번역을 올려봅니다.


 

1. 데쓰스팽크(DeathSpank)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달라. 내세우는 장점은? 게임성은 어떤지?

데쓰스팽크를 한 마디로 설명한다면 '원숭이섬의 비밀과 디아블로가 결합한 게임'이다. 어드밴처 게임의 전성기를 수놓았던 흥미롭고 복합적인 스토리 전개와 재기발랄한 유머가 액션 RPG에 녹아든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데쓰스팽크는 하드코어 RPG는 아니다.

2. 게임 내 RPG적인 요소들(캐릭터 생성, 스테이터스, 장비 등등)은 어떤게 있는가?

전통적인 RPG 요소 중 캐릭터 생성은 데쓰스팽크에서 빠져 있는데, 이는 게임 자체가 데쓰스팽크라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데쓰스팽크의 스테이터스, 정비, 어빌리티 등등은 플레이어가 게임을 진행하면서 스스로의 플레이 스타일에 따라 변화시켜 갈 수 있다.
 
3. RPG와 어드벤처 요소를 어떻게 합칠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두 장르 사이의 밸런스는 어떠한가? 어드벤처가 중점인지, 아니면 RPG가 중점인지?

좋은 질문이다. 데쓰스팽크를 디자인하면서 아마도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 아니었던가 싶다. 만약 여러 장르 중에서 서로 가장 잘 어울리는 둘을 꼽으라면, 나는 어드밴처와 RPG를 뽑을 것이다. 두 장르는 스토리와 세계관에 집중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이점도 상당한데, 가장 큰 차이는 플레이어가 게임을 진행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동기유발의 방법에 있다고 생각한다. 어드밴처 게임을 움직일 수 없는 장애물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진행하는 게임이라고 한다면, RPG는 길에 놓여진 매우 무거운 장애물을 치워가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두 장르에 대한 균형을 맞추는 것은 결코 단순한 도전이 아니었으며 개발 기간 내내 지속적으로 생각을 거듭해야 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존 F. 케네디는 달에 처음 인간의 발자국을 남겼을 때 이런 말도 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해냈습니다. 쉬운 일이어서가 아니라, 이것이 어려운 일이었기에 도전했습니다.' 

4. 대화는 어떤 형식인가? 대화 선택지 트리 구조가 적용되는지?

그렇다. 게이머가 다른 캐릭터와 상호작용을 할 때 (필요에 따라 그들을 두들겨 패는 경우를 제외하고) 그 방식은 원숭이섬의 비밀에서와 같은 유머러스한 대화 선택지에 따른 트리 구조가 될 것이다. 지난 수 년 동안 이러한 방식은 그 가능성에 비해 너무도 묻혀 있었다. 오늘날의 게이머들은 흥겨운 대화에 별로 관심이 없는 거 같다. 아니면 아무도 그들에게 괜찮은 대사들을 갖춘 게임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5. 데쓰스팽크에서 스토리가 갖는 중요성은 어느 정도인가? 데쓰스팽크라는 캐릭터에서부터 어떠한 종류의 이야기가 전개되는가?

데쓰스팽크에서 스토리는 게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다. 과거 어드밴처 게임에서 빌려온 가장 강력한 요소이기도 하다. 게임 전반에 걸쳐서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는 복잡한 스토리가 준비되어 있다. 데쓰스팽크 자체가 2D 게임 캐릭터와 게임 전반에 대한 풍자에서 시작한 캐릭터이자 게임이기 때문에, 스토리에 대한 아이디어들은 자연스럽게 흘러나와 이야기가 엮어지곤 했다.

6. 게임 내 탐험적인 요소는 어떤가? 게임이 선형적 전개를 가지는지 아니면 세계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방식인지 궁금하다.

완전한 오픈 월드이다. 원하면 어디든 갈 수 있지만, 이를 위해서는 퍼즐을 풀거나 적을 물리쳐야 할 수도 있다. 이벤트들이 정해진 순서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스토리의 진행은 고전 어드밴처 게임들에서 그 방식을 직접 빌려왔다고 해두자.

이러한 비선형적 세계는 완벽하게 로딩 없이 펼쳐진다. 지역에서 지역, 동굴이나 빌딩에서의 출입 등등에서도 절대 로딩 화면을 볼 일은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종류의 몰입감(immersion)은 데쓰스팽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7. 디아블로의 요소들 중에서 데쓰스팽크에서는 피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몇 가지가 있긴 한데, 우선 나는 디아블로가 정말 멋지게 디자인된 게임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을 먼저 이야기하고 싶다. 게임 관련 학과들은 디아블로를 가지고 텍스트 해체와 같은 게임 해체 (deconstruction) 과목을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다. (실제로 게임 학과에 그런 과목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다.) 질문에 답하자면, 나는 디아블로가 탐험과 경험을 허용하는 게임이라고 느껴본 적이 없다. 디아블로의 게임성은 장비와 스텟을 올려서 다음에 등장하는 적을 쓰러뜨려 나가는 데에 중심이 맞추어져 있다. (PvP 모드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디아블로는 매우 심오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지만, 이는 단순히 배경스토리로서만 존재할 뿐이다. 나는 내가 게임을 즐기는 와중에 스토리가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방식을 더 선호한다. 발더스 게이트 같은 옛날 게임들은 이러한 방식에 있어서 훌륭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젤다 시리즈 역시 항상 이러한 방식을 잘 구현해왔다.

8. 헬게이트: 런던의 실패가 액션 RPG쪽으로의 방향성에 영향을 주진 않았는지? 헬게이트 개발진들은 RPG에 있어서는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다. 게임 하나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장르 자체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성공하는 게임만큼 실패에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든, 무엇인가 교훈은 남기 때문이다.

9. 당신에게서 향후 또 다른 RPG를 기대할 수 있을까?

나는 너무 먼 미래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주의이다.

10. 코미디를 RPG에 접목시키는 데 있어서 어드벤처 게임 때보다 더 어려운 점은 없었는가? 접근 방식에 차이가 있다면?  

데쓰스팽크에 코미디적 요소를 가미함에 있어서 더 중요한 것은 전투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도록 하는 것이다. 데쓰스팽크에게는 실없는 기술들, 이를테면 상대방의 얼굴에 파이를 던지거나 방귀를 끼는 등의 기술 같은 건 없다. 물론 간혹 웃기는 기술도 있다. 닭떼를 불러들여서 상대를 공격하는 기술 같은 것인데, (게임 내에서 가장 웃기는 요소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이 공격은 실제 스텟과 연관되어 있다. 게이머는 이 주문의 내용과 공격력, 그리고 이 주문이 적에게 미치는 영향 (두려움에 떨게 하는 것 등)을 파악하고 이를 사용하게 될 것이다. 비극이란 나쁜 일이 자신에게 일어날 때 성립되지만, 그런 일들이 남에게 일어날 때 코미디적인 요소가 가미될 수 있는 것이다. 

11. 핫헤드 게임즈와 함께 일하게 된 동기는? 페니 아케이드 게임에서 당신의 역할은 무엇이었는지?

핫헤드와 함께 일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개발한 게임을 자체적으로 퍼블리싱하는 작은 인디 스투디오이기 때문이다. 게임의 장점을 희석시키고자 하는 대형 제작사와는 일하고 싶지 않았다. 데쓰스팽크는 괴짜스러운 게임이고, 나는 이러한 특성을 지켜가고 싶었다.

12. 향후에 함께 일하고 싶은 다른 개발사가 있다면?

만약 블리자드에서 다음 MMO를 개발할 때 불러준다면 기꺼이 가서 일하겠다.

13. 에피소드형 게임을 만들면서 어려운 점은?

데쓰스팽크는 더 이상 에피소드형 게임으로 개발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지난' 어려움이라고 해야 맞겠다. :-) 난 에피소드형 게임에 애착이 많다. 하지만 에피소드형 게임이 재정적인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개발 과정이 매우 경직된 구조가 되어야 했고, 우리는 이러한 방식이 데쓰스팽크 개발에 있어 최선의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향후 게임 산업이 좀 더 성숙되면 에피소드형 게임이 큰 주목을 받게 될 것으로 생각하며, 이러한 형태의 게임 개발에 꼭 참여하고 싶다.

14. 당신과 클레이톤 카즈라릭(Clayton Kauzlaric)이 토탈 에니힐레이션(Total Annihilation)과 연관이 있다고 들었는데, RTS 쪽 개발을 검토할 생각은 있는지? 그 밖의 다른 장르 게임 개발에 대한 생각은? 절대 도전하고 싶지 않은 장르가 있는가?

그걸 언급하다니 놀랍다. 예전에 케이브독 엔터테인먼트에 있을 때, 나는 RTS와 어드벤처 장르를 융합한 '굿 & 이블'이라는 게임을 디자인했었다. 데쓰스팽크는 그 게임과 많은 점을 공유하고 있다. 내가 시도하고 싶은 다른 장르라... FPS 빼고는 뭐든지 다 괜찮을 거 같다. 나는 일인칭 슈팅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좋은 게임을 만들기도 어려울 거 같다.
 
15. 어드벤처 쪽에서 당신을 자극하거나 희망을 주는 최근의 프로젝트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최근의 어드벤처 장르의 흐름에서 당신을 불만스럽게 하는 것들은 무엇인지?

텔테일(Telltale)이 어드벤처 게임 활성화에 있어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회사가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고무적이다. 또한 어드벤처 장르에 대한 인디쪽의 활발한 움직임도 매우 긍정적이지만, 그들에게서 시장을 의식한 혁신들이 좀 더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오늘날 게임 시장에서 어드벤처 게임은 두 가지 문제에 봉착해 있다. 1) 요즈음의 게이머들은 좀 더 감각적인 재미를 추구한다. 무엇을 해야할지, 어디에 가야할지는 누군가 알려주길 바라고 그걸 잘 해내는 것에만 집중한다. 어드벤처 게임의 본질은 무엇을 해야할지, 어디에 가야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를 알아내는 것이다. 어드벤처 게임은 천천히, 그리고 곰곰히 생각하는 게임인 것이다. 2) 나는 전통적인 어드벤처 게임에 대한 새로운 시장이 떠오르고 있다고 믿는다. 오늘날 캐주얼 게이머의 규모는 하드코어 게이머의 그것을 뛰어넘었고, 어드벤처 게임은 (약간의 변화를 통해) 이러한 캐주얼 게이머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충분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어떻게 캐주얼 게이머들에게 접근하느냐인데, 이는 시간이 해결해 줄 것으로 본다. 

16. 업계에서 "원숭이섬의 개발자"라는 칭호가 가져다주는 단점이 있다면? 예를 들어, 제작사에서 게임에 관한 설명을 하면 돌아오는 대답이 "...그런데 그건 어드벤처 게임이 아닌데요." 라던지.

사실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제작사들과의 대화에서 제일 처음에 나오는 말은 "어드벤처 게임 관련된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소." 이다.

17. 아마도 예전부터 당신을 주목하고 있던 이들은 대부분 성인이 되었을 것 같다. 데쓰스팽크의 등급에 관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굳이 데쓰스팽크를 T(미국 Teen 등급, 청소년 이용 가능)로 한정하고자 하는 생각은 없다. 만약 M(미국 Mature 등급, 18세 이상)이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면 M으로 갈 것이다. 몇몇 M 등급 타이틀들의 문제는 정말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개발자의 미성숙함"에 의한 M이라는 점이다. 게임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여자 가슴만 보여줘도 낄낄거리는 친구들이다. M 등급을 멋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는 얘기이다. 두 여자가 키스하는 게임을 만든다고 해서 "예술가"가 되는 것도 아니다. 

18. 데쓰스팽크 이후의 계획은?

데쓰스팽크의 전체 이야기는 게임 하나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하면 빨리 후속작을 만들고 싶다. 예전 원숭이섬의 비밀 3와 같은 상황을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다. 데쓰스팽크 시리즈의 끝에서는 모든 비밀과 궁금증이 다 풀릴 것이다. 

19. 당신에게 천만달러 정도가 주어지고 디이블로 4나 아나크로녹스 2(Anachronox 2) 중 하나를 만들라고 한다면 무엇을 선택해서 어떻게 진행하겠는가? 다른 사람의 원작을 가지고 작업하는 것에 대한 생각은 어떤지.

블리자드의 디아블로 3에서는 이벤트신 제작에만도 천만달러 정도 들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의 프랜차이즈를 이어서 개발하는 것은 원작에 충실하기 위한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내가 게임 디자인을 좋아하는 이유는 새로운 세계와 캐릭터들을 창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프랜차이즈를 맡게 된다면 이런 재밌는 요소들이 다 빠져버린 일거리가 될 거 같다.

원문: Baby Arm / 번역: 페이비안 / 원문 게시일: 2009년 5월 12일 / 원문출처: rpgcodex.net

* Rpgcodex.net에서 전문 번역의 허가를 받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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