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스테이션 2는 드림캐스트에겐 치명타였다. 드림캐스트의 다양한 동시발매 타이틀에 대항하여 PS2는 DVD 재생 기능을 들고 나온 것이다. 소니를 제외하고도 다른 두 가지 경쟁 기기의 등장이 가까워지면서 초조해질 수 밖에 없었던 세가는 드림캐스트의 가격을 99 달러로 인하하여 판매를 촉진하고자 했으나, 하드웨어 판매로 인한 회사의 손해가 더욱 심해지는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소프트웨어 쪽에서 백만장 이상 팔린 히트 게임들로 벌어들인 수익에도 불구하고, 이는 하드웨어로 인한 손실을 메꾸기에는 부족했던 것이다.

2001년, 결국 세가는 패배를 인정한다. 지난 18년간 게임기 시장에서 격렬한 전투를 벌이는 동안 승리했던 순간은 단 몇 해에 불과했던 세가가 드디어 가정용 게임기 시장에서 철수하기로 한 것이다. 드림캐스트의 생산은 2001년 3월에 중단되었으며, 최종 재고는 50달러에 판매되었다. 드림캐스트의 포기는 스톨러가 새턴을 포기했을 때와 비슷한 식이었지만, 이번에는 다음을 기약한다는 희망조차 없었다. 새턴 때와 마찬가지로, 세가와 몇 안되는 서드파티 개발사들은 슬픔을 삭이면서 2002년 초반까지 북미시장에 계속해서 드림캐스트 게임을 공급했다. 게임큐브와 엑스박스가 시장에 등장하면서, 드림캐스트의 마지막 희망은 깨끗하게 사라져 버렸다.

세가의 마지막 가정용 게임기는 컬트 팬들의 추앙을 받았고, 나오미 아케이드 기판과의 연계성을 통해 일본에서는 북미 시장에 게임 공급이 완전히 중단된 그 시점 이후로도 약 5년 동안 계속해서 아케이드 게임의 드림캐스트 이식작들이 등장할 수 있었다. 이 중 보더 다운, 트라이질, 언더 디피트 등의 몇몇 게임은 수집가들에게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게임들이 되었다.

그러나 정작 세가의 게임은 볼 수 없었다. 세가 게임이 없는 드림캐스트는 그저 환영에 불과했고, 세가의 팬들은 회사가 맞이한 새로운 운명을 묵묵히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세가에 대한 애정을 과거 속에 묻어두고 다른 길을 가야만 했다.

하드웨어 포기, 그 이후...

하드웨어 사업에서 철수할 무렵, 세가는 다양한 신작 게임들을 쏟아내면서 소프트웨어 개발의 창의성 면에서는 상당히 풍부한 역량을 보유한 상태였다. 소프트웨어 개발사 및 제작사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에 이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점이었다. 그러나 모든 이가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세가에서 이러한 방향 전환을 공식으로 발표했을 때, EA는 이를 제네랄 모터즈가 BMW를 만들고자 하는 상황에 비유했다.

세가의 새로운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게임큐브 발매와 동시에 내놓은 슈퍼 멍키 볼이 서드파티 개발사로서 그들의 첫번째 시도임에도 불구하고 큰 성공을 거둔 것이다. 엑스박스로도 건발키리나 젯 셋 라디오 퓨처와 같은, 상업적으로는 비교적 덜 성공했지만 매니아들의 인기와 평단의 호평을 받는 게임들을 내놓았고, 뒤이어 발매한 버추어 파이터 4는 상업적인 큰 성공까지 거두었다.


CSK 회장 오카와 이사오는 오래전부터 세가를 소프트웨어 회사로 만들고 싶어했지만, 하드웨어 사업에서 손해를 보던 시기에도 그는 세가의 가장 강력한 투자자이자 지원군이었다. 그러나 2001년 3월, 마침 세가가 드림캐스트의 생산을 중지하고 오카와가 원했던 소프트웨어 회사로 거듭나는 그 시점에, 오카와 이사오는 세상을 떠나고 만다. 세가의 운명은 남아있는 무관심한 CSK 이사회의 손에 놓여져 버린 것이다.

CSK는 1984년 나카야마 하야오의 조직개편 이후 지금까지 세가의 경영권을 좌우할 수 있는 지분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오카와를 제외한 다른 이사회 임원들은 세가에 큰 관심이 없었다. 2003년 2월, 세가가 회사의 생존을 위해 파칭코 제작업체인 새미와 합병을 고려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그 몇 달 후에는 남코가 후보로 오르더니, 나중에는 반다이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이름도 오르내리게 된다. 세가의 재정에 큰 문제가 있는 건 분명했다.

이러한 협상은 합병 비율과 임원진 선출 등의 이견으로 인해 모두 실패로 돌아갔고, 결국 새미가 CSK가 가진 세가의 지분을 인수함으로서 실질적인 세가의 주인이 된다. 새미 역시 소프트웨어 사업에 오랜 경험이 있었지만, 회사가 꿈꾸는 국제적인 제작사의 위상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세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세가가 가진 창조적 자산의 보존 따위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세가의 독립 개발 스투디오를 내부 조직으로 다시 통합하고, 그 와중에 UGA 대표 미츠구치 테츠야 같은 능력있는 개발자들이 하나 둘씩 회사를 떠나게 된다. (미츠구치는 나중에 Q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한다.) 여기에는 소닉 팀 리더 나카 유지와 오랜 기간 동안 AM2를 총괄했던 스즈키 유도 포함되었다. (역주: 스즈키 유와 세가의 관계에 대해서는, 아직도 그가 명목 상으로는 세가에 속해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모든 이야기가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아직 세가는 죽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세가는 예전 그 화려했던 모습도 결코 아니다. 새미에 인수된 이후 세가 내부 개발팀이 내놓는 게임들은 과거의 명성에 못미치는 것들이 많다. 아케이드의 운영 역시 침체기를 겪고 있으며, 원작의 개발자가 여전히 세가 내에서 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양 개발사들에게 세가의 중요 시리즈물 개발을 넘겨버리기도 한다. 많은 전설적인 개발자들이 여전히 세가에 남아있긴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하도록 허용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종종 우리는 세가의 잠재력을 '용과 같이' 같은 게임을 통해 확인할 수 있지만, 이러한 기회는 너무도 적다.

어쨌거나, 세가의 미래는 과거와는 다를 것이다. 그것이 좋은 방향이든 그렇지 않은 방향이든 말이다. 중요한 건 현재 세가의 모습으로 과거를 평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많은 기록이 승자의 관점에서 패자의 역사를 왜곡하지만, 이는 역사의 복잡성을 무시하는 행위이다. 세가는 게임 역사 상 가장 열정적이고 창의적이며 생산적인 개발사 중 하나였으며, 지금, 그리고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완결…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 트레비스 파스 / 번역: 페이비안 / 원문게시일: 2009.4.21 / 출처: IGN Retro

* IGN.com으로부터 전문 번역 허가를 받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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