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번역알바의 윤회

알림판 2007. 11. 27. 11:09 Posted by 페이비안
전에도 잠깐 쓴 적이 있지만, 번역 작업을 하다 보면 짧은 기간 동안 인간의 간사함을 알게 되는 것 같다. 취미삼아 한다 해도, 돈이라도 몇 푼 걸려 있고, 마감이 걸려 있으니 그저 즐겁게 즐기면서 한다고 하더라도 마음이 싱숭생숭해진다랄까. 아무튼 재미있다.

1. 의뢰 수락.

의뢰 전화나 이메일이 오는 즉시 작업 완료 후 받을 돈을 계산해본다. (그걸로 뭐 살까도 생각해놓는다.) 의뢰 분량이 전보다 많아지거나, 의뢰 횟수가 잦아지면 우쭐해한다.

2. 작업 시작.

보통 당일에 기한인 의뢰는 없으므로, 기분좋게 원문을 한 번 스윽 무성의하게 읽어주고, 그날은 저녁에 놀아버린다. 번역비에 상응하는 가격대에 뭐 살 거 없나 쇼핑몰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의뢰 내용과 관련된 홈피도 구경하고, 읽지도 않으면서 원문 문서 자체는 항상 가지고 다닌다.

3. 작업 중반.

내가 이 의뢰를 거절했으면 지금쯤 대단히 즐거운 일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눈 내리는 야경을 찍으러 카메라를 들고 어디론가 떠났거나, 멋들어진 카페에서 와이프와 향긋한 커피 내음을 맡으며 도란도란 이야기하거나, 오랫동안 연락 없던 친구와 만나 삶에 대해서 진지한 토론을 하고 있었을 수도 있는데... 이놈의 의뢰를 왜 맡아서 이 고생을 하고 있나 생각하며 컴터 앞에 앉아있는다.

4. 작업 후반.

밤샌다. -_-

사실 굳이 밤 안새도 되는데, 마감 2-3일 전 쯤이면 왠지 원본이 지긋지긋해져서 마구 속도를 내서 마무리한다.

5. 의뢰 납품.

일단 한 번 끝내고 나면 다시 마음이 평온해져서 오탈자와 표현이 어색한 부분을 깨작거린다. 괜히 뿌듯해서 읽고 또 읽는다. 마치 자기가 처음부터 쓴 글 같다. 편집에 집착한다. 납품 메일을 보내고 난 후에는 반드시 하나 이상의 오탈자와 하나 이상의 깔끔한 표현이 생각난다.

6. 입금.

처음부터 돈 들어올 날은 정해져 있는데, 매일같이 달력을 본다. 막상 입금되면 돈 쓸 데가 없다. 통장잔고 보고 별 거 아닌 돈에 조금 흐뭇해한다.

7. 다시 1번부터 반복.

그러나 딱히 쓴 곳도 없는 거 같은데 돈은 별로 남아 있진 않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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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2번과 3번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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