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짜증나던 요 며칠...

알림판 2007. 11. 16. 17:25 Posted by 페이비안

대학생때 용돈 벌이 삼아 시작했던 번역 알바를 어쩌다보니 회사를 다니고 있는 지금도 틈틈이 하고 있다. 영어를 빼어나게 잘한다는 이유에서보다는, 학부 때 마주 대한 온갖 허접스런 전공 번역서들을 돈 받고 파는 걸 보면서 나도 그만큼, 아니 그거보다는 잘 하겠다 싶어서 시작했었는데, 들어오는 돈은 정말 용돈도 될까 말까 할 정도다.

그래도 꾸준히 지금까지 할 수 있었던 건, 다른 번역 알바와 달리 모 웹진에서 자기네 쪽 일거리를 맡기기 때문이었다. 데드라인도 너무 타이트하지 않고, 많지는 않지만 지속적으로 의뢰를 주고, 게다가 하루아침에 회사가 사라져 버릴 위험도 적기 때문.

그런데 요 며칠 동안 일거리를 주던 두 곳에서 거의 동시기에 번역비 지급을 차일피일 미루는 상황이 발생했다. 뭐 인터넷에 떠도는, "책 한 권 번역 다 해주고 돈 떼먹혔다."라던지, "번역알바라고 했는데, 책만 팔아먹는 악덕 업체였어요."라는 수준의 괴기담은 아니지만,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채로 정당하게 받을 돈을 못 받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경험을 하고 보니 몇 푼 되지도 않는 돈에 참 분하고 답답하더라.

원하지 않는 상황에 처해 있을 때, 내가 그에 대해 어떤 대응도 할 수 없고, 또한 대응해봤자 그 상황을 바꿀 수 없는 그런 상황. 정말 최악이었다.

직장 다니면서 심심풀이로 하는 일도 이러할진데, 이게 먹고 사는 일하고 관련되었으면 그 기분이 과연 어떨지는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제대로 된 계약서와 공식적인 프로세스 같은 건 거추장스럽다고만 생각했던 내가, 그리고 대학생 때 번역 일을 하면서, 뭐 이런 거 해도 먹고 살기는 하겠네라고 생각했던 그 때의 내가 참 어리숙하고 세상을 몰라도 정말 몰랐구나 싶기도 하고.

일의 난이도로 치자면 번역도 그다지 쉬운 일은 아닐진데, 정규직으로서 내가 받는 대우와 알바로서 내가 받는 대우는 정말 하늘과 땅이로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려서부터 어른들이 늘 강조하는, '대접받는 일을 하고 살아야 한다.'라는 말이 허튼 소리는 아니었던 셈이다. 일 그 자체의 가치보다는 그 일을 하는 위치를 사회에서 어떻게 대우해주느냐가 사실 일상의 지랄맞음 정도를 결정한다는 걸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물론 회사원도 그다지 떵떵거리는 삶은 아니겠지만...)

또한, 빚독촉 전화도 괴롭겠지만 요 며칠 경험한 바로는 돈 달라고 칭얼대는 전화를 거는 것도 그다지 유쾌한 경험은 아니라는 점도 알게 되었다. 역시 돈 거래는 신용과 신뢰를 바탕으로, 아무 잡음이 없을 것이라고 확신할 때에만 하는 게 좋다라는 뻔한 진리.

그리고, 회사 열심히 다녀야지.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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