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블로그 포스트 주제로도 가끔씩 등장하는 NDSL은 한국에서도 백만대 돌파라는 기록을 세우며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많은 20~30대들이 지하철에서 NDSL에 심취되어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이제 별로 놀라울 것도 없는 풍경이며, 아이들 사이에서도 닌텐도 있는 그룹과 없는 그룹으로 나뉜다는 이야기도 종종 들리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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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기의 폭발적인 인기는 비교적 최근의 일이지만, 이와 관련하여 반복적으로 보여지는 패턴이 하나 있으니, 그건 바로 게임기를 '교육용'으로 포장하는 마케팅이라지요. 정확히 말하자면, 감히 게임기는 넘보지도 못할 시절에 게임을 즐기기 위한 기기였던 컴퓨터에 대한 마케팅입니다.

대우에서 MSX 기종을 수입해서 판매할 때는 무려 모델명 자체가 IQ1000과 IQ2000이었더랬죠. 제목부터 IQ라는 교육 냄새 풀풀 풍기는 문구가 붙은데다, 당시 다양한 어플리케이션을 실행시키고 BASIC 언어를 통해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다라는 식으로 광고를 때렸었죠.

저를 비롯한 많은 소년들은 단지 MSX용 롬팩을 꼽아서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주 관심사였고, '교육용'이라는 말은 부모님을 설득시키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했습니다. 본래 목적은 '악마성'이나 '몽대륙'을 플레이하기 위함이었던 것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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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대우에서 나왔던 그야말로 '게임기'였던 재믹스의 경우에는 어땠느냐, 이 녀석도 키보드가 달린 버전이 나와서 '교육용 게임'도 돌릴 수 있다고 광고를 했더랬지요. 과연 어떤 교육용 게임들이 나왔느냐는... 별들에게나 물어볼 일입니다.

그 이후에 등장한 IBM 호환의 XT, AT 컴퓨터는 광고 자체에 카피가 '교육용'으로 박혀 나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학교에도 많이 퍼졌더랬죠. 가장 인상적이었던 기억은, 당시 에이플러스라는 학습지 회사에서 컴퓨터를 사용한 학습 어플리케이션을 제공했었다는 것이네요. (천리안 등의 온라인 서비스를 통해서였는지, Stand-alone 패키지였는지는 뚜렷하지 않습니다.)

이것 역시 부모님께 좋은 핑계거리였고, 사실은 페르시아의 왕자를 하고 싶다거나, PC통신 채팅을 하고 싶어서 PC를 사달라고 졸랐더랬죠.

세월은 그렇게 흘러 상위기종인 386과 486 그리고 586 모델이 등장했을 때에는, 부모님도 왠만해서는 더 이상 속지 않으셨기 때문에 보다 고난이도의 설득이 필요했더랬습니다. 그 때 등장한 것이 바로 '컴퓨터 그래픽'을 배우겠다라는 핑계. CAD니 뭐니, 멀티테스킹이니 뭐니, 앞으로 정보화 사회에 적응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기술을 '배우겠다'는 취지로 또 그렇게 컴퓨터를 업그레이드했더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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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러한 '교육용'이라는 문구가 재밌는게, 일단 구입에 성공하면 부모님께서는 그걸 가지고 뭘 하는지 큰 관심이 없으셨다는 점입니다. 너무 오래 가지고 놀면 물론 불호령이 떨어지긴 했지만, 적당히 쓰고 있으면 이걸로 게임을 하는지 뭘 하는지, 어쨌거나 만지고 있으면 '교육'은 저절로 되는 거라고 생각하셨나 봅니다. (물론 너무 오랫동안 붙잡고 있지 않도록 해주셨던 것은 지금에야 돌이켜 무척 감사드리는 부분입니다. ^^)

대학생이 된 이후에는 비교적 자유롭게 플레이스테이션이니, 세가 새턴이니, 드림캐스트니 사다가 그야말로 눈치 안보고 게임을 했었더랬지만요. 덕분에 이러한 시장은 그 당시에 양지로 절.대. 나오지 못하고, 저 같은 세대들이 어느 정도의 구매력을 갖추게 된 지금에야 PS3나 Xbox360 정발의 형태로 공식화되었습니다. 요즈음의 거치형 기기는 영화나 음악 같은 엔터테인먼트 미디어의 지위를 얻고 나서야 드디어 '교육용'이라는 이름표를 떼고 정식으로 국내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것이지요.

'두뇌트레이닝 게임'을 본체와 동시에 발매한 닌텐도의 마케팅을 보면, 그 간 한국 사회에서 게임기나 PC 같은 것들이 어떻게 가정에 보급되었는지를 닌텐도가 매우 잘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NDSL을 아이들에게 팔려면, Xbox360과 PS3 같은 기기와는 다른 전략이 필요했지요. 그래서 2007년 조금은 세련된 스타일로 과거를 다시 복기하는 형식을 취한 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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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이다 과외다 스트레스도 엄청난 애들한테, 애들이 좋아하는 뭐라도 해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인데... 사실 살아가는 데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시간 낭비에 불과한 게임기를 사주는 게 과연 잘하는 짓일까 하는 망설임. 바로 그 부분에 이런 소프트들이 먹히는 게 아닐까. 제 기억을 되돌아보더라도, 부모님께서 정말 마지못해 속아주는 척, '그래 니가 얼마나 그게 갖고 싶었으면 그런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까지 하면서...'라는 마음으로 기기들을 구입해주셨던 거 같고요.

아이는 부모에게 조금 더 편하게 게임기를 사달라고 할 수 있고, 부모는 덜 불편한 마음으로, '그래 뭐 두뇌계발 게임도 있다는데, 맨날 쌈박질이나 하는 온라인 게임보다는 낫지 않을까...'하는 기분으로 지갑을 열 수 있는 그런 기제 중 하나가 이런 '두뇌계발'이니 '영어교육'이니를 주제로 한 게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닌텐도의 두뇌 계발 게임의 효과에 대해서는, 게임에서 혹은 선전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뇌에 효과가 있을지는 철저히 검증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모르죠. 게임을 하는 행위 자체, 눈으로 보고 손으로 반응하는 그런 행동 자체가 치매를 늦추는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겠죠. 하지만 동경대 무슨무슨 교수가 감수했다고 해서, 정말로 두뇌 계발에 영향이 있을 거라는 보증은 없는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권위에 기대는 습성 때문에 그렇다고 믿어버리곤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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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제 요지는 이겁니다. NDSL을 애들에게 사주는 것을 고려하시는 부모님들은, 혹은 사주신 부모님들은, 두뇌 계발 게임이니 안력 강화 게임이니 이런 허울 좋은 문구들이 늘어놓는 궤변에 혹하지 마시고 현실적으로 구입한 게임기와 게임들이 아이에게 어떻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까를 구입 이후에도 꾸준히 생각하실 필요가 있다는 것.

그게 아이들끼리의 비교 대상이 되었건 어쨌건, NDSL은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가릴 것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장난감입니다. 적당한 시간 동안 가지고 놀면, 책이나 영화, TV를 보는 행위와 마찬가지로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줍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시간을 쏟으면 다른 해야 할 일에 지장을 주죠. 책, 영화, TV가 비교적 좋은 컨텐츠와 피해야 할 컨텐츠가 있는 것처럼, 게임도 그 연령대에 적절한 것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부모들이 게임에 대해 무조건적인 선입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게임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거나 너무 저급의 게임에 노출되거나 하는 것을 적당히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교육용'이라는 문구에, '머리가 좋아진다는' 문구에 혹해서 장난감을 던져주고, 노는 법을 제대로 교육시켜 주지 않아 아이가 장난감을 남용하는 모습을 보고 괜히 장난감을 탓하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NDSL을 사주느냐 사주지 않느냐의 결정이 끝이 아닙니다. 오히려 적절한 자기 관리를 가르치는 시작이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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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지금 NDSL을 원하는 아이들을 두신 부모님들은 저보다는 연배가 좀 더 있을 거 같지만, 아마도 저와 비슷한 추억으로 컴퓨터와 IT 보급 과정을 지내셨을 거 같아 주저리 주저리 옛날 얘기를 꺼내느라 글이 길어진 점 양해해주시기를 ^^

PPS. 댓글을 보고 나서야 정품 관련 이야기가 꽤 중요한 연관이 있다는 점을 뒤늦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주제넘은 충고를 드리는 김에 이 부분에 대해서도 한 말씀 더 드려봅니다.

게임소프트가 비싸다면, 아이가 게임 하나를 완전히 클리어한 후에 다른 게임을 사주는 전략이, 복제품을 돌려서 다수의 게임소프트를 안겨주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시간 관리가 이루어진다면, 대게의 소프트는 영화나 책과는 달리 꽤 오랜 시간 동안 플레이해야만 엔딩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게임은 아예 엔딩이라는 게 없기도 하죠. (동물의 숲 같은 경우... 그래도 어느 정도 진행도를 보여주는 방법들이 있습니다.)

또 하나 복제품으로 인한 부작용 중 하나는, 게임에서 그나마 아이들이 배울 수 있는, 문제에 대한 도전과 해결에 따른 성취감을 앗아간다는 점입니다.

주변에서 공짜로 쉽게 구하는 게임들을 조금 어렵다고 바꾸고 또 바꿔 가면서 하다보면, 아이는 그저 예쁜 그림들과 음악들만을 보게 되는거죠. 그리고 그런 피상적인 경험은 더욱 쉽게 질려서 게임 바꾸기만 가속화. 결국 모처럼 구입한 NDSL도 무용지물이 되버릴 겁니다. (혹시 바라는 바라고 하실지 몰라도... 이제는 또 다른 장난감을 사주어야 하는 겁니다. -_-;;)

그리고 이런 걸 다 떠나서, 불법복제는 엄연한 범죄행위입니다. 아이한테 도둑질을 가르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