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소개해드릴 글은 뉴욕 타임즈의 비디오 게임 관련 기사입니다. NPD라는 꽤 공신력 있는 리서치 기업에서 매년 발표하는 판매량 Best 10 게임들의 목록에서 게임 산업과 게이머 저변에 대한 변화를 읽어낼 수 있다는 내용인데요.

간단히 요약하자면 게임이 드디어 영화나 음악과 같은 대중적인 엔터테인먼트 미디어로의 성숙기에 이르렀으며, 이 때문에 하드코어 게이머들과 게임을 즐기는 일반 대중들 사이에 취향의 Gap이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게임 업계 전반에 부정적이라기 보다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라는 내용입니다.

여기 소개된 Fact 자체야 널리 알려진 것들이지만, 거기서 어떠한 함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이 흥미로운 글입니다. 퍼가실 때는 원문출처와 번역출처를 명시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인기 게임으로 살펴보는 게임계의 지각변동
(원문제목: In the list of top-selling games, clear evidence of a sea change)
The New York Times - 2008년 2월 1일
원문 저자 / 세스 시젤 (SETH SCHIESEL)

아케이드 오락실에서 시작한 비디오 게임이 1980년대에 이르러 각 게이머들의 안방으로 침투하기 시작한 이래로, 비디오 게임은 주로 혼자서 즐기는 취미라는 인식이 지속되어 왔다. 비사회적인데다가 밖에 잘 나오지 않고 집에서만 칩거하는, 서양 말로는 Geek, 일본 말로는 오타쿠, 우리 말로는 폐인. 게이머의 이미지는 대체로 일반인들에게 이러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러한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 수천명이 함께 모험을 즐기는 온라인 PC 게임은 수백만명에 달하는 가입자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거실에서는 닌텐도의 혁신적인 게임기인 Wii가 가족들, 여성들, 연세 많으신 어르신들을 게임의 세계로 끌어모으고 있다. 그동안 복잡하고 폭력적이며 혼자만 즐기게끔 만들어진 게임들로 점철되었던 게임 산업에 새로운 수요가 유입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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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ul Loeb/Agence France-Presse — Getty Images

메릴랜드의 실버 스프링 은퇴 커뮤니티에서 Wii를 즐기고 계신 81세 진 길디아(Jeanne Gildea) 할머니는 넓어진 게임 저변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역설적으로, 기술의 진보로 보다 복잡하고 현실적인 1인용 판타지가 가능해진 이 시점에, 180억불에 이르는 게임 시장의 성장은 가족과 친구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단순하고, 사용자 친화적인 컨셉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2007년 최고 판매량을 기록한 Top 10 게임의 목록은 이러한 교훈을 일깨워준다. 시장 조사 기업인 NPD 그룹에서 최근 발표한 2007년 Top 10 게임의 면면을 보면, 지난 오랜 세월 동안 게임 산업 자체가 크게 의존했던 젊은 남성 게이머를 타겟으로 제작되고 이들과 비슷한 관점을 가진 게임 평론가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은 게임들 대신, 기타 히어로나 닌텐도 Wii와 같은 대중 친화적인 게임들이 높은 인기를 얻었던 것을 명확히 알 수 있다. (2006년까지도 게임 판매량 차트에는 1인용 게임들과 각종 스포츠 게임들이 주류를 이루었던 것과 매우 대조적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이러한 현상은 게임 산업 자체가 성숙에 이르는 초기 단계에 이르렀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비디오 게임이 점점 더 많은 인기를 얻으면서, 게이머를 대표하는 하드코어 게이머들과 기존의 게임 평론가들은 이제 게임을 즐기는 일반 대중의 어느 한 부분이 되어 버린 것이다.

다른 미디어에 있어서는 이러한 현상이 이례적인 일은 아니다. 대부분의 엔터테인먼트에 있어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 작품과 비평가들의 지지를 받는 작품 사이에는 어떠한 간극이 존재한다. 많은 영화들이 평론가들에게 매우 좋은 평을 받으면서도 예술 극장에서의 상영 이상의 성과를 얻지 못하고, 많은 블럭버스터급 영화들은 그 반대의 경우임을 우리는 쉽게 볼 수 있다.

왜 이러한 일이 발생하는가에 대해서는 비교적 분명한 대답이 존재한다. 영화나 소설, 그리고 음악 (덧붙여 음식까지)은 꽤나 긴 역사 덕분에 시장을 이끄는 일반 대중들과는 상당히 다른 취향을 갖춘 일명 '애호가'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 대중적인 취향의 레드 랍스터 음식점에 대해 음식 평론가들의 의견은 엄청나게 분분하며, 이는 대중적인 소설가인 다니엘 스틸에 대한 소설 평론가들의 반응과도 비슷할 것이다.

그러나 비디오 게임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았다. 게임 평론가와 게이머들은 서로 유사한 취향을 통해 매우 비슷한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평론가나 소비자 모두 비교적 같은 유형의 계층, 즉 기술에 대해 잘 알거나 관심이 많은 젊은 남성층로 절대 다수를 이루고 있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올해 Top 10 리스트를 보면, 이러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변화는 비디오게임의 산업/경제적인 측면이나 예술/창의적인 측면에서 그렇게 나쁜 일 만은 아니다. 게임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에 있어서 일반 대중의 중요성은, 기술적인 측면에서 보다 진보된 경쟁자들의 작품인 MS의 Xbox360이나 소니의 PS3보다 훨씬 더 많은 판매량을 보인 닌텐도 Wii의 성공에서 명확하게 볼 수 있다.

Wii는 매우 사용하기 쉬운 반면, 360과 PS3는 비디오게임에 능숙한 게이머를 대상으로 한 제품이다. 비평가들과 개발자들은 Wii에는 별로 "훌륭한" 게임이 없는데도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그런 것에 별로 개의치 않는다. Wii 플레이는 각종 리뷰를 종합한 Metacritic.com에서 100점 만점에 58점이라는 상당히 낮은 점수를 기록했지만 지난 해 두 번째로 가장 많이 팔린 게임이 되었다. 10위에 오른 마리오 파티 8 역시 비슷하게 62점이라는 나쁜 점수를 기록했다. Wii 플레이와 마리오 파티 8은 모두 기본적으로 단순한 그래픽으로 표현된 미니 게임의 집합이라고 할 수 있다. 밤낮으로 게임에 빠져 있는 이들에게 이러한 게임은 상당히 유치하다. 그러나 가족들을 위해 Wii를 막 구입한 이들에게 이러한 게임은 대단히 멋지게 다가온다.

물론, 이러한 게임들이 Top 10에 들었다는 것은, 게임 전문가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게임들은 차트에서 제외되었음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예로는 대서양 해저에서 벌어지는 느와르적 스릴러 게임인 바이오 쇼크를 들 수 있다. 바이오쇼크는 이미 게임 역사 상 가장 높이 평가되는 게임 중 하나가 되었으며 (Metacritic 점수 96점) 게임 비평가 대상을 비롯한 다양한 그룹과 미디어에서 2007년 올해의 게임으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바이오쇼크는 판매량에 있어 Top 10에 드는데 실패하였는데, 아마도 그 이유는 바이오쇼크가 비평가들을 흥분시킨 바로 그러한 특성, 즉 소설가 Ayn Rand의 객관주의적 철학의 세련된 해석에 바탕을 둔 복잡한 스토리가 오히려 비슷한 시스템으로 Top 10에 진입한 헤일로 3나 콜 오브 듀티 4의 달리고 쏘는 재미에 비해 일반 대중들에게 덜 친숙하게 다가왔기 때문일 것이다.

비슷한 이유로 롤-플레잉 명작 매스 이펙트, 신화에 기반한 갓 오브 워 II, 그리고 밸브의 훌륭한 종합선물세트 오렌지 박스 역시 Top 10 진입에 실패했다. 2년 전만 하더라도 이러한 게임들이 Top 10에 오르는 것은 의심의 여지조차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올 해에 이러한 게임들은 기타 히어로 같은 게임들에 의해 10위권 밖으로 밀려나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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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hav Segev for The New York Times

클럽에서 기타 히어로를 즐기는 중인 브레이크 콜먼(Blake Coleman)과 샨디 설리번(Shandi Sullivan)

바이오쇼크, 매스 이펙트, 그리고 갓 오브 워 II가 모두 순수한 1인용 게임이라는 점도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게임은 친구들과 직접 또는 인터넷을 통해 함께 즐길 수 없다. 2007년 판매량 Top 10 게임들 중 9개의 게임이 멀티플레이어 부분을 매우 중요한 요소로 포함하고 있다. 단 하나의 예외는 바로 십자군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모험을 담은 어세신 크리드이다.

일반 대중에게 보다 폭넓은 지지를 받는 것이 게임 산업의 미래를 지지하는 하나의 기둥 역할을 한다면, 균형을 맞출 다른 또 하나의 기둥은 게임이 사회적 현상으로서 인식되는 트랜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드코어 게이머들을 여전히 1인용 게임의 스토리 라인을 따라 30시간 이상 혼자 게임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흥을 즐기는 데 있어 다른 사람들과의 보다 많은 상호작용을 원한다.

이러한 이유로 온라인 게임의 제왕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가 현재 천만이 넘는 사용자를 보유한 것이며, 이러한 이유로 기타 히어로가 대학 캠퍼스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으며, 이러한 이유로 닌텐도가 대중적인 게임 회사의 자리에 등극한 것이다.

게이머들에게도 이제는 게임과 사회 활동이 서로 달리 가는 길은 아닌 것이다.

출처: New York Times

그러나 어째, 온라인 게임의 확산은 게이머를 사회로 나가게 하는 흐름이 아니라, 사람들을 단체로 폐인으로 만드는 흐름같다고 느끼는 건 저 뿐인가요? ^^;;;

PS. 남대문이 소실된 것은 정말 슬픈 일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벌어질 책임 떠넘기기 Blame Game을 생각하니 정말 마음 한 켠이 턱턱 막히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