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로서 내가 자라왔던 과정을 좀 더 깊게 이해하고, 내 아들이 앞으로 어떻게 자라면서 무엇을 겪게 될 것인가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시켜주는데 이 책보다 더 좋은 책이 있을까. 종종 '단순함'의 전형으로밖에 취급되고 있지 못하는 남자의 심리와 생각, 행동을 그가 맞닥뜨리게 될 '험한' 세상에 대한 나름의 면밀한 준비과정과 적응과정으로 바라보는, 따뜻한 어머니/할머니의 시선이 담긴 책.

남자의 일생을 유아, 십대, 사랑과 성욕, 아버지, 중년, 그리고 노년의 시기로 나누어 각각의 시기마다 본인의 심리치료 사례, 호르몬과 뇌 구조에 대한 쉽고 명쾌한 이론, 그리고 아들의 어머니이자 남편의 아내로서 남자를 관찰한 일화 등이 하나의 이야기로 조화롭게 펼쳐지는 덕분에, 복잡한 의학용어가 종종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술술 읽을 수 있었다.

세살박이 아들을 둔 아빠로서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남자 역시 아버지가 되면서 호르몬 분비도 달라지고, 그로 인해 두뇌의 활동 자체가 꽤나 드라마틱하게 바뀐다는 것인데, 실제로 아이가 생기고 나서는 세상이 달라보이는 경험을 좀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고나 할까. 그리고 아이에게 애정을 쏟고, 함께 놀고 배우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심리나 정서, 교육적인 측면 같은 소프트한 면에서 아이와 나 스스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호르몬을 동반한 '화학 작용'까지 이루어진다는 점은 새롭고 신기한 지식이었다.

사실 호르몬에 의해 이런 행동을 하게 되고, 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는 부분은 어떻게 보면 자아라는 게 호르몬에 의해 조종되는 꼭두각시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 부분이 있었는데, 이러한 생체 시스템 자체가 수백만년에 걸친 진화를 통해 구축된 생존을 위한 전략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나'라는 개인 자체가 경험과 생각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는 '자아'보다 더 커다란 무엇인가에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무의식이나 잠재의식 같은 개념의 물리적인 모습이라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오히려 나의 두뇌가 호르몬에 의해 어떠한 영향을 받는가를 잘 이해함으로서 이러한 영향을 두려움과 불안함 없이 좀 더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경쟁과 조직에서의 생존, 아이의 아버지,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의 믿을 수 있는 남편으로서의 역할에 대해, 나의 두뇌는 태아 때 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를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에필로그에서 이 책을 쓰게 된 의도가 '남자들에게는 드디어 이해받았다는 느낌을 통해 좀 더 편안해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그리고 적어도 나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작가의 따뜻한 마음이 잘 전해진 책이었다. 

남자의뇌남자의발견무엇이남자의심리와행동을지배하는가
카테고리 인문 > 심리학 > 심리이론 > 정신분석학
지은이 루안 브리젠딘 (리더스북,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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