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베데스다에서는...

베데스다는 터미네이터 라이센스를 가장 오랫동안 유지한 개발사로 1990년부터 1996년에 이르기까지 계속 관련 게임들을 내놓았다. 다른 개발사들이 영화의 인기에 편승한 허접 게임들로 팬들의 눈쌀을 찌뿌리게 했던 반면, 베데스다는 게임성 자체로도 매우 창의적이고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는 작품들로 일인칭 액션이라는 장르의 가능성을 개척해갔다. 첫번째 게임 이후,베데스다는 터미네이터 영화의 스토리와 캐릭터는 완전히 무시하고 영화의 배경 스토리를 구성하는 '최후 심판의 날 이후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기반으로 하여 독자적인 이야기를 풀어가게 된다. 베데스다의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카일 리스, 사라 코너, T-800 등을 빼고 나서도 터미네이터를 기반으로 한 게임 중에서는 최고의 작품들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베데스다의 두번째 터미네이터 게임인 터미네이터 2029는 1992년에 발매되는데, 이번에는 전작과 매우 다른 스타일인 미션 기반의 액션 어드밴처 형식을 취한다. 줄리안 리페이가 다시 한 번 프로젝트의 리더를 맡게 되고 비제이 락스미어(Vijay Laksmir)도 참여하는데, 이 둘은 나중에 엘더 스크롤 게임들을 작업할 때에도 함께 일하게 된다. 전작의 1인칭 시점은 유지되었지만 좀 더 디테일한 연출을 위해 전작의 리얼 타임 3D 그래픽은 배제되었다. 게임은 1인칭 던전 탐험 RPG와 유사한 그리드 기반의 시스템을 채택하였지만 게임플레이 자체는 롤플레잉과는 매우 거리가 있었다.

터미네이터 2029는 실시간 액션 장르에 전략적인 요소를 가미한 게임으로, 게이머는 존 코너의 휘하에서 기계와의 전쟁을 수행하는 고독한 병사의 역할을 맡게 된다. 공격 루트를 계획하는 것이 성공을 위한 가장 중요한 부분이지만 사격의 정확도 역시 게임 진행에 필수적인 요소였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터미네이터 2029는 기존의 장르 공식을 파괴한 작품이었지만 게이머들에게는 이와 관계없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다음 해 오퍼레이션 스카우어(Operation Scour)라는 이름의 확장팩이 발매되고 뒤이어 풀 보이스가 추가된 CD-ROM 버전도 선보이게 된다.

2029는 베데스다의 게임들 중에서도 특이한 게임으로 남게 된다. 1992년은 id 소프트웨어가 PC 게임 시장을 완전히 뒤바꾼 시기였으며 이러한 계기가 된 울펜슈타인 3-D는 당시 그 어떤 게임들보다 뛰어난 그래픽을 과시하고 있었다. 불과 몇 개월 만에 엄청나게 많은 아류작들이 쏟아져 나왔고, 이를 통해 FPS라는 장르가 새롭게 정립된 것이다. 반면 베데스다는 다음 게임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가지고 있었으며,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터미네티어: 램페이지(Terminator: Rampage)는 1993년 후반에 등장하였는데, (비록 짧은 기간 동안에 불과했지만) 등장과 동시에 가장 혁신적인 1인칭 슈팅 게임이라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풀 텍스쳐 매핑이 이루어진 배경과 플 스크린 그래픽으로 울펜슈타인과 그 아류작들과는 차원을 달리한 게임이었던 것이다. 또한 거대한 사이버다인 오피스 컴플렉스는 그당시 1인칭 슈팅 게임들에서는 보기 힘든, 스테이지에 '현실성'의 개념이 처음 도입되었다는 의의도 갖는다.

단지 울펜슈타인을 따라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던 베데스다는 램페이지의 게임플레이를 독특하게 구성하였다. 기본적인 이동과 사격은 다른 게임들과 유사하였지만 넓고 광활한 스테이지 전체가 탐험을 요하는 디테일한 구성을 갖추게 한 것이다. 사무실의 현실적인 좌석 배치나 문이 하나씩 열리는 화장실 칸 등의 세심한 디테일은 게임 속 세계를 좀 더 현실과 유사하게 느끼도록 하는 리얼리티를 부여했으며, 이러한 방식은 나중에 듀크 뉴켐 3D 같은 게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혁신적인 게임이라고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는 것이고, 램페이지는 너무 높은 시스템 요구 사양이나 레벨 디자인이 너무 복잡하고 혼란스럽다는 등의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램페이지가 등장한 직후 id 소프트웨어에서 내놓은, 게임계를 순식간에 뒤집어 놓은 또 다른 대작, 둠으로 인해 램페이지는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베데스다의 다음 게임은 결코 이러한 전철을 밟지 않아야 했다.

베데스다는 거의 2년에 걸쳐 다음 작품을 준비하게 된다. 그 와중에 둠과 둠 II는 FPS 장르를 완전히 석권했고, 다시금 무수히 많은 아류작들이 시장을 뒤덮었다. 둠 II 이후로 id 역시 그들의 차세대 게임인 퀘이크를 준비하기 위해 물밑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베데스다는 이번이야말로 id에 복수할 시간이라고 믿었다.

다음 게임을 위해 베데스다에서 개발한 XnGine이라는 3D 엔진은 강력한 텍스쳐 매핑과 광원 효과로 당시 차세대 콘솔들조차 따라갈 수 없는 성능을 보여주었다. 3D를 가상으로 구현했던 기존 엔진들과 달리, XnGine은 게이머가 어느 방향으로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을 구현했던 것이다. 폴리곤으로 구현된 3D 환경이 XnGine으로 처음 실현된 것은 물론 아니다. RPG 장르가 혼합된 시스템 쇼크라는 게임이 1994년에 이미 3D 환경을 선보인 바 있고, 디센트(Descent)라는 게임 역시 3D 환경에서의 선체 조작이라는 감각을 구현한 바 있었다. 그러나 베데스다의 엔진은 그 두 게임을 훨씬 능가하는 것이었고, 여기에 혁신적인 게임플레이가 가미된 베데스다의 차세대 터미네이터 게임은 둠 이후로 활발해진 FPS 장르를 한 차원 발전시키는 작품이 되었다.

1995년에 발매된 터미네이터: 퓨처 쇼크는 게임 디자인의 과감한 변화로 차세대 FPS의 서막을 여는 게임이 되었다. 게이머들은 갇힌 공간에서의 열쇠 찾기에서 벗어나 무너진 빌딩들로 가득한 미래 LA의 광활한 폐허에 놓여졌고, 스테이지는 단순히 거대할 뿐만 아니라 매우 현실적이었으며, 미션과 퍼즐 역시 현실에 있을 법한 디자인을 갖추고 있었다. FPS에서 이렇도록 실감나는 무대가 주어진 것은 처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조작에 대한 혁신이 게임플레이의 진보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했던 개발팀(덴마크 프로그래머 칼 시싱(Kaare Siesing)이 리더였다.)은 새로운 조작체계를 생각해냈다. 마우스로 시점을 조작하고 키보드로 움직임을 조작하는 시스템이 처음 도입된 것이다. 플레이어들은 드디어 복잡한 키조작 없이 원하는 방향을 조준하거나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당시 키보드 조작에 너무 익숙해진 많은 게이머들은 이러한 혁신을 간과했지만 id 소프트웨어를 비롯한 개발사들은 이러한 조작체계가 주는 가능성을 바로 이해할 수 있었고, 퀘이크를 비롯하여 이후의 거의 모든 FPS 게임들은 베데스다의 조작 시스템을 차용하게 된다.

베데스다의 첫번째 터미네이터 게임에서 그러하였듯, 퓨쳐 쇼크에서도 플레이어들은 차량을 타고 거대한 스테이지를 누빌 수 있었다. 새로운 조작체계 덕분에 운전 중 사격이 큰 어려움 없이도 가능했으며 이는 나중에 헤일로나 하프-라이프 2 등에서의 차량 활용 방법에 응용되게 된다.

많은 이들이 퓨쳐 쇼크를 베데스타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정점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자잘한 개선점의 여지는 있었다. 베데스다에서는 퓨쳐 쇼크의 확장팩을 준비하다 결국 완전히 독립적인 속편, 터미네이터: 스카이넷을 내놓게 된다. 전작에서 가장 큰 불만이었던 해상도가 640x480으로 향상되었으며 (퓨쳐 쇼크에도 동일 해상도를 적용할 수 있는 옵션까지 포함되었다.) 온라인 데스매치 모드도 경쟁심 강한 게이머들의 마음에 불을 당겼다. 새롭게 구성된 8개의 레벨에서는 스위치 퍼즐이나 미로같은 복도 등 좀 더 고전적인 디자인도 포함되었다. 스카이넷이 발매될 무렵 id 소프트웨어의 퀘이크도 등장했지만 아무리 퀘이크가 최고의 극찬을 받은 명작이라고 하더라도 베데스다가 이룩한 성과를 쉽게 무시할 수는 없었다.

베데스다의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그 시점에서 가장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역사 속으로 퇴장했다. 이는 영화 터미네이터 2가 개봉한 지 5년이나 지난 시점이었으니, 라이센스 게임 시리즈로서는 엄청난 장수를 누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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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트라비스 파스(Travis Fahs) / 번역: 페이비안 / 원문 게시일: 2009.5.20 / 원문출처: IGN Retro

* IGN.com으로부터 전문 번역 허가를 받은 글입니다.

* 터미네이터의 역사, 1편부터 보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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