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네이터는 제작비가 오백에서 육백만 달러에 불과한 저예산 영화였던 덕분에, 제임스 카메론은 영화의 방향성에 대해 제작자들의 간섭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다. 한가지 그들이 요구했던 것은 사라 코너와 카일 리스 사이에 로맨틱한 관계를 설정하자는 것이었는데, 카메론은 이를 기꺼이 수용할 수 있었다. 특수효과에 대한 카메론의 풍부한 경험 덕분에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었지만, 제작자들과의 진짜 줄다리기는 포스트 프로덕션 기간 중에 일어났다. 최종본을 위한 편집 과정 중에 프로듀서 중 한 명인 존 달리가 카메론에게 터미네이터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는 공장씬을 삭제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불길 속에서 터미네이터의 섬뜩한 기계 해골이 보여지는 바로 그 장면을 말이다. 카메론은 그 상황을 이렇게 기억한다. "나는 그에게 아주 직설적으로 말했죠. 'X 까, 영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라고요." 팬들에게는 다행스럽게도, 결국 카메론은 그의 뜻을 관철시켰다.

터미네이터는 1984년 할로윈을 며칠 앞두고 개봉했다. 영화의 배급사조차 터미네이터가 몇 주 이상 극장에 걸려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개봉한 지 3주가 지난 뒤, 터미네이터는 이미 천백만 달러를 벌어들였지만 여전히 아무도 좀 더 적극적인 홍보를 하지 않았다. 마케팅 등의 지원이 없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터니네이터는 결국 전세계적으로 7천8백만 달러의 흥행을 기록하여 1984년 흥행 TOP 20에 이름을 올리는 영화가 되었다. 이는 그 해에 개봉한 고스트버스터즈, 비버리 힐즈 캅, 인디아나 존스 등의 블록버스터와 비교해서는 상대가 안되는 기록이긴 하지만, 저예산 영화가 올린 수익으로는 근래에 보기 드문 결과였다. 제임스 카메론은 이제 일을 구하기 위해 고생할 필요가 없는 유명인이 되었다. 

그는 돌아온다고 말했지

요즈음 같이 영화를 처음부터 삼부작으로 만드는 시대의 관점으로는 이렇게 성공한 영화를 가지고 제작사가 아무런 후속 기획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사실이 매우 납득하기 힘든 일일테지만, 터미네이터가 개봉하던 당시는 지금과 상황이 많이 달랐다. 카메론이 터미네이터의 이야기를 다시 떠내든 것은 영화산업 자체가 좀 더 발전된 뒤의 일이었다. 컴퓨터 애니매이션의 발달로 새로운 차원의 특수효과가 가능해졌고, 원작을 찍을 무렵에 담지 못했던 아이디어가 현실화될 수 있었던 것이다. 제임스 카메론은 1989년에 인더스트리얼 라이트 & 매직의 컴퓨터 특수효과 전문가들과 일할 기회가 있었고, 이러한 경험을 통해 그는 다음 영화에서 어떠한 컨셉들을 실현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감각을 익힐 수 있었다.


1990년에 이르렀을 때, 아놀드 슈왈츠제네거는 더 이상 영화계 진출을 꿈꾸는 보디빌더가 아니었다. 코만도, 프레데터, 토탈 리콜 등의 영화로 어엿한 액션 히어로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이후 그는 PG-13 등급의 코미디인 킨더가든 캅에 출연하면서 스스로를 좀 더 가족친화적인 캐릭터로 탈바꿈하고자 한다. 냉정한 킬러 로봇은 더 이상 그의 커리어에 적합치 않았고, 그의 개런티 역시 엄청나게 높았다. 터미네이터 2의 출연 제의에 대해, 그는 영화 속에서 그가 아무도 죽이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캐릭터 이름 자체가 '터미네이터'인 상황에서 이는 엄청난 제약이었다. 또한 출연료 역시 천오백만 달러를 요구했고 (대사가 별로 없는 그의 역할로 보면, 그가 말하는 단어 당 2만 달러에 가까운 금액이었다.) 여기에 다시 천사백만 달러에 달하는 걸프스트림 III 비행기까지 계약 보너스로 제시했다. 왠만한 액션 배우가 요구할 수 있는 조건은 아니었지만, 슈퍼스타인 그는 이러한 요구사항을 모두 얻어내게 된다.


제임스 카메론은 슈왈츠제네거의 요구사항에 기반하여 그의 역할을 써내려갔고, 그는 어린 존 코너를 보호하도록 다시 프로그래밍된 터미네이터의 역할을 맡게 되었다. 여전히 무뚝뚝하고 차가운 이 로봇에게 존이 이런 저런 것들을 가르치면서 살인은 하지 않도록 명령한다는 설정으로 슈왈츠제네거의 요구가 충족된 것이다. T-800이 인간의 편에 선 속편에서, 새로운 악당은 좀 더 강력하고 공포스러워야 했다. 카메론은 원래 가지고 있었던 '일반적인 외모'의 터미네이터 아이디어를 좀 더 발전시켜 '언제든 누구로도 변할 수 있는' 터미네이터를 고안하게 된다.

이러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태어난 T-1000은 '액체 금속'으로 만들어진 로봇으로, 비슷한 사이즈라면 자신의 손에 닿은 그 어떤 것으로도 모양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단순히 화려한 모핑과 CGI 기술을 뽐내는 것을 넘어, 이러한 컨셉은 그 당시까지 그 누구도 스크린에 현실감있게 담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인더스트리얼 라이트 앤 매직은 T-1000을 화면에 생동감 있게 구현해내는 비용으로 오백만 달러를 요구했다.

오늘날 대부분의 트레일러들은 영화가 개봉하기도 전에 주요 장면들을 노출시키면서 영화 플롯의 대부분을 공개해버리곤 하지만, 카메론은 그의 비밀 무기 T-1000을 개봉 전까지 철저히 숨기고 싶었다. 엄격한 비밀 준수 서약을 통해 그 누구도 영화가 공개되기 전 T-1000의 능력들에 대해 언급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그 대신, 트레일러는 깔끔한 모습의 T-800의 모습을 한 아놀드가 그의 유명한 대사 'I'll be back.'을 말하는 오리지널 씬으로 구성되었다.

T2가 스토리 상으로도 원작에서 상당히 지난 시점인 덕분에, 카메론은 원작의 인물들이 지난 10년간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보여줄 수 있었다. 한 때 순진한 10대 웨이트리스였던 사라 코너는 아들을 보호하고 훈련시키기 위해 스스로를 단련시켜 강인한 여전사가 되었으나, 미래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에 정신병원에 수용되는 신세이고, 존은 아직 미래의 지도자로서 모습은 보이지 않는 반항기 많은 십대 소년이 되었다. 이번에는 강요된 로맨스는 없었지만, 캐릭터들 각자가 미래를 바꾸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반면, 스스로에게 주어진 운명은 결국 겸허히 받아들이게 되는 흐름이 극 중 긴장감을 유지해 주었다.


영화가 완성될 무렵엔 초기에 계획했던 6천5백만 달러 예산은 1억 달러까지 늘어나 터미네이터 2는 사상 최고의 제작비를 기록한 영화가 되었다. 저예산으로 위험 부담이 적었던 터미네이터 1과는 달리, 이번에는 영화사 입장에서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영화였으며, 이를 위한 마케팅에도 아낌없는 지원이 이루어졌다. 영화가 제작에 들어가기도 전, 장난감, 게임 등 가능한 모든 분야에 걸쳐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회사에 라이센스가 팔렸으며, 영화 자체에 대한 광고도 계속해서 매체를 통해 흘러나왔다.


이러한 노력은 보답을 받았다. 개봉 첫 주말에만 터미네이터 1편이 미국 내에서 벌어들인 금액 전체보다 많은 5천2백만 달러의 흥행을 기록한 것이다. 평단의 반응도 좋았으며 아카데미에서도 여섯 부문에 후보로, 그리고 그 중 네 부문에 오스카 상을 수여했다. 터미네이터 2는 전형적인 여름 블록버스터로 전체 5억 달러가 넘는 수입을 올렸다. 제임스 카메론은 여름 시즌 영화의 새로운 제왕이 된 것이다.

요즈음의 경향이라면 이어서 속편, 만화, 뮤지컬 등으로 터미네이터 울궈먹기가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제임스 카메론은 터미네이터 시리즈를 더 이상 진행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는 심지어 터미네이터 2의 마지막 장면을 인류가 더 행복한 미래를 맞이하는 화면으로 끝낼 생각도 했지만, 영화 전체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그만두었다. 터미네이터 2는 시리즈를 최고의 정점에 올려놓았고, 제임스 카메론은 일단 그 상태로 만족했다... 당분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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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트라비스 파스(Travis Fahs) / 번역: 페이비안 / 원문 게시일: 2009.5.20 / 원문출처: IGN Retro

* IGN.com으로부터 전문 번역 허가를 받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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